너의 곁에 있고 싶어

 

 

움직이는 차안, 창문 너머로 서서히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아직 한시간 정도 여유 시간이 있었다. 어느새 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유스케는 그가 자신을 어디로 데려왔는지 알아차렸다.

 

“여기….”

“좀 걸어야 하는데 괜찮지?”

“응, 걸을 수 있어.”

 

차에서 내리자 즈홍이 손을 내밀었다. 잠시 손을 바라보던 유스케는 즈홍의 손을 잡았다. 마치 놓지 않겠다는 듯 강한 힘이 전해졌다. 곧 두 사람은 인파 속으로 걸어갔다. 단수이는 일몰이 아름답다고 소문이 나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었다. 여기저기 작은 기념품 가게들과 식료품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은 채 구경하는 사람들 사이를 걸어갔다.

유스케는 즈홍의 옆모습을 쳐다보았다. 쌍꺼플이 짙은 큰 눈과 살짝 나온 광대, 너무 까맣지 않은 구릿빛의 피부, 입술은 도톰했고 윤기가 났다. 처음이었다.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본 것이, 어두워져가는 거리를 비추는 등불이 아름다웠지만 유스케의 눈에는 즈홍의 얼굴만 보였다. 사람들 사이 오직 그의 얼굴만이 빛이 났다.

즈홍이 자신을 쳐다보자 유스케는 고개를 돌렸다. 즈홍이 미소지었다.

 

“내가 그렇게 잘생겼어?”

“무슨 말이야?”

“에이 아까 빤히 쳐다봤잖아.”

“안봤어.”

“그래?”

“응.”

 

마치 전속력으로 달리기라도 한 듯 심장이 미친 듯 뛰어댔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아 숨을 몰아쉬고 유스케는 최대한 아닌척했다. 그 때, 즈홍이 손을 잡아당겼다.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니 저 멀리 다리 사이로 해가 저물고 있었다. 파랗던 하늘은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해가 내려갈수록 그 색은 짙어져 붉은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하늘이 색깔을 가지고 노는 동안 두 사람은 여전히 손을 꼭 잡은 채 길을 걸어갔다. 점점 짙어져가는 하늘빛, 서로의 손을 통해 온기가 전해지고 유스케는 문득 자신의 다리가 아프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다리 위에 올라갈 수 있겠어?”

“그정도 쯤이야.”

 

즈홍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해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 두 사람은 다리 위에 올라가 남은 해가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이었다.

 

“유.”

“응.”


즈홍의 다정한 목소리에 유스케가 그를 바라보았다.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에 검은색 머리카락이 얼굴을 간지럽혔다.

 

“내가 계속 네 옆에 있어도 될까?”

“이미 그러고 있잖아.”

“그런거 말고 널 사랑하는 사람으로 곁에 있고 싶어. 그리고 네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곁에 있고 싶어.”

“난….”

“아직 아니라는거 알아. 기다릴 수 있어.”

“동정심에 내가 좋은걸지도 몰라.”

“아닌거 알잖아.”

“하지만 난 아직 그 사람을 보내지 못했어. 내가 어떻게 그래….”

“유.”

 

울지 않으려 애를 썼다. 바람결에 머리카락이 흩날려 눈을 건드렸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에반을 생각하는 것 만으로 눈물이 뺨을 타고 턱으로 흘러내렸다. 잊으라 말하는게 아니라는걸 알지만 즈홍을 사랑한다고 말해버리면 그를 영원히 지우는 것 같아 그럴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미안해, 울지마.”

“네가 왜 미안해.”

“그냥 다.”

 

유스케의 어깨를 끌어당겨 품에 안은 즈홍은 숨죽여 우는 그의 등을 살며시 토닥거려주었다. 그냥 곁에 있고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위로가 되어 주고 싶다. 동정심이라고 말해도 좋고 사랑이라고 말해도 좋다. 그를 향한 마음은 진심이니까, 에반은 좋은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처음엔 궁금했지만 나중에는 왜 그가 사랑에 빠졌는지 알 것 같았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슬픔을 품은 등을 어루만지고 다독여주고 싶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네가 좋아.”

“알아. 미안해.”

“미안하다고 하지마. 너라서 좋은거니까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줘.”

“기다릴 수 있어.”

 

품에서 유스케를 놓아준 즈홍은 눈물 자욱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그리고 바람에 차가워진 뺨을 감쌌다. 촉촉이 젖은 커피색 눈동자가 즈홍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두르고 싶진 않다. 하지만,

 

“키스…. 해도 될까?”

 

유스케가 말없이 그를 응시했다. 그의 대답을 기다리다 즈홍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눈물에 젖은 그의 입술에선 짠맛과 함께 달콤한 맛이 느껴졌다. 살며시 닿았던 입술은 점점 다가갔고 진한 키스로 이어졌다.

한번 부드러운 입술에 닿자 놓아주기 싫어졌다. 두뺨을 여전히 감싼 채 즈홍은 유스케의 입술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냥 그를 놓기 싫었다. 품에 안고 입술을 훔치고 그의 온 마음을 훔치고 싶다. 그것은 본능이고 열망이었다. 그러나 숨죽여야 한다는걸 알았다. 아쉬운 듯 입술이 떨어지고 즈홍은 눈을 아래로 내린 채 유스케의 뺨을 놓아주었다.

해는 이미 사라지고 사위는 어둑했으며 다리 건너로 보이는 항구에선 불빛이 반짝거렸다. 환한 등불을 킨 어선들이 항해를 위해 나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디선가 버스킹을 하는 사람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 사이의 시간만 멈춘 듯,


“기다릴 수 있다고 했지만 내가 널 못 참으면 어떡하지?”

“기다릴 수 있다며?”

“응, 그런데…. 네 입술이 너무 좋아.”

“그게 무슨 말이야.”

 

유스케가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무슨말인지 모르겠다. 가자.”

 

함께 웃던 즈홍이 유스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다리를 내려와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어갔다.

 

*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유스케의 집앞까지 걸어갔다. 손을 놓으려는 유스케와 놓지 않으려는 즈홍 사이에 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들어갈게.”

“잠깐만 있다가 들어가.”

“너 내일 출근해야 하잖아. 얼른 가.”

“헤어지기 싫다.”

“들어간다.”

 

자신의 손에서 유스케의 손이 빠져나가자 아쉬운 듯 즈홍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 빠져나간 손과 함께 유스케가 멀어졌다. 집앞에 서 있던 즈홍은 한참 뒤에 차에 올라탔다. 그의 차가 집에서 멀어지자 창가에 앉아 그를 보고 있던 유스케는 걷었던 커튼을 내리고 집안을 향해 몸을 돌려 앉았다.

다정하고 착한 사람이다. 그를 좋아하고 그에게서 나는 향기를 좋아한다. 거친 손바닥이 측은해 자꾸 만지고 싶고 넓은 가슴에 안기고 싶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겠지만 그러면 안될 것 같아 말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의 차이점, 그것을 설명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를 좋아한다. 그러나 사랑하진 않는 것 같다. 누가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고개를 숙인 채 괜히 손가락만 만지작 거렸다. 한참 후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바구니를 챙겼다. 그리고 서랍장을 열어 옷을 꺼내 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서랍에서 비워지기 시작하는 에반의 옷, 속옷과 양말까지 모두 꺼내 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그는 책장 앞에 섰다. 그와 함께 읽고 공부했던 책들이 책장을 빼곡이 메우고 있었다.

어느것하나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었다. 물건을 비운다고 사람을 비워낼 수 있는건 아니었지만 최소한의 노력은 해보고 싶었다. 물건들은 점점 거실 한켠에 쌓여갔다. 본가가 따로 있었지만 제법 그의 물건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테이블 위에 그가 선물해준 책이 뒤집힌 채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저것마저 버린다면 그의 흔적은 모두 사라질터였다. 유스케는 고민하다 책은 그대로 놔두기로 하고 꺼낸 물건들은 현관 옆에 옮겨두었다.

물건들을 뒤로 하고 유스케는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곧이어 물소리가 들리고 현관 옆에 쌓인 물건들만 덩그라니 남겨졌다. 씻고 나온 즈홍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근무표가 적힌 메시지와 예가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예가의 메시지를 확인하자 그는 머리를 털어내던 수건을 내려놓고 핸드폰을 든 팔을 내렸다.

단 한번도 잊은적 없는 친구의 기일, 리치의 기일을 잊은건 처음이었다. 예가는 이젠 가족끼리만 조촐하게 모일테니 더 이상 기일에 오지말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답장을 할까말까 하다 즈홍은 알았다는 대답만 남기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너의 기일을 잊을 수 있지?

 

침대에 그대로 드러누운 즈홍은 한숨을 내쉬었다. 유스케라는 사람에게 취해 친구를 잊었다. 그에겐 잊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면서 정작 본인은 친구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실소가 터져나왔다. 그렇게 잊고있어선 안되는 친구인데,

연애라도 하라던 리치의 말이 떠올랐다. 그게 지금은 아닐텐데, 녀석이 알면 뭐라고 할까?

옆으로 돌아누워 몸을 잔뜩 웅크렸다. 금방 손에서 놓아주었던 유스케가 보고 싶었다. 샤오가 그릉소리를 내며 침대 위로 올라와 즈홍의 손에 머리를 비볐다. 부드러운 털의 감촉이 좋아 즈홍은 샤오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릉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친구 녀석이 보고싶다.

미안하다. 널 잊어가고 있어서,

 

*

 

그날 이후 4일째 즈홍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마치 자신의 탓인 것 같아 유스케는 신경이 쓰였다. 먼저 연락해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싫어하게된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닐걸 알면서도 괜히 연락없는 즈홍이 변한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괜스레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자 위신이 금방 내린 커피가 든 머그잔을 앞에 내려놓으며 미소지었다.

 

“연락 기다려?”

“아니야.”

“먼저 연락해봐.”

“일하는 중이면 어떡해?”

“그럼 전화말고 메시지를 남기면 되지.”

“답장 안오면?”

“그럴 리가. 그럴만한 행동이나 말을 한적이 있어?”

“내가 그 사람한테 에반을 보낼 수 없다고 했어. 아직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 사람은 뭐라고 대답했는데?”

“잊지 않아도 된다고 기다린대.”

“근데 뭐가 걱정인거야?”

“모르겠어.”

“연락 안하는 이유가 있을거야. 아니면 못하거나.”

“무슨 일이 생겼을까?”

“그럼 연락해봐.”


위신이 건넨 머그잔을 만지작 거리다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곤 다시 핸드폰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소방관이니 일 때문에 그럴수도 있겠지, 하면서도 왠지 모를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게 어떤 불안감인지는 알 수 없었다.


“유, 여기 좀 도와줘.”

“알았어.”

 

위신의 부름에 유는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 때, 책상 위에 있던 핸드폰 화면이 켜지며 즈홍의 메시지가 떴다. 이어서 두 번째 메시지, 그러나 유스케는 당장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했다.

땀범벅이 된 즈홍은 유스케의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답장을 보냈다. 걱정할거라는 걸 알았지만 그동안 연락할 수 없었다. 3일전 있었던 출동에서 소방관 몇 명이 부상을 입었고 그 공백을 메꾸기 위해선 남은 이들이 연장근무를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집에가서 옷만 겨우 챙기고 나와 서에서 살다시피 했다. 메시지를 보내고 겨우 한숨 돌리려는 찰나, 출동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다. 핸드폰을 사물함에 두고 즈홍은 다시 현장으로 나갔다.

한참 뒤 메시지를 확인한 유스케는 한참동안 즈홍이 보낸 문자를 읽고 또 읽었다.

 

- 문제가 생겨서 계속 근무하는 중이야, 연락 못해서 미안해, 유 혹시 우리집에가서 고양이 좀 챙겨줄 수 있을까?

 

두 번째 메시지는 그의 집 주소였다. 4일째인데 여전히 근무중이라는 것은 걱정스러웠고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는 말은 의외였다. 유스케는 어릴적 강아지를 키운적은 있지만 고양이는 키워본 적 없었다.

 

- 고양이 밥은 내가 챙겨줄게, 몸 챙기면서 일해.

 

메시지를 보내고 난 후 유스케는 퇴근준비를 했다.

 

“나 먼저 가볼게.”

 

멀리서 아이들과 대화하던 위신이 손을 흔들었다. 유스케는 상담소를 나가며 바로 앞에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탄 뒤 즈홍의 집 주소를 기사에게 보여주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즈홍이 키우는 고양이는 어떻게 생겼을지 상상해보았다. 그를 좀더 알 수 있을 것만 같아 왠지 즐거웠다.

택시가 멈춰서고 안에서 내린 유스케는 핸드폰으로 주소를 다시한번 확인한 뒤 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아파트, 다행히 3층이라 올라가는데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즈홍이 알려준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갔다. 작은 아파트 안, 거실에는 소파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식탁도 테이블도 아무것도 없었다. 유스케는 두리번 거리며 고양이의 흔적을 찾았다.

 

“샤오, 어딨어? 샤오야.”

 

싱크대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사료봉투에서 사료를 꺼내 그릇에 담자 소리를 들었는지 샤오가 뛰어와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유스케는 갑자기 나타난 샤오의 옆에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털을 조심스레 만졌다. 부들거리는 느낌이 꽤 좋았다. 잠시 후, 집을 둘러보던 유스케는 창문을 열었다. 4일동안 주인이 없었던 집에선 좋지 않은 냄새가 나고 있었다. 환기를 시키고 구석에 놓인 청소기로 집을 돌아다니며 청소하기 시작했다. 욕심이 없는건지 아니면 무관심한건지 아무것도 없었다.

방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리는 사이 잘 정돈된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침대 옆 창문틀 위에 놓인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어깨동무를 한 채 환하게 웃는 두 남자, 행복해보였다. 청소기를 끄고 유스케는 액자를 들어 사진 속 두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즈홍이 사진 속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본 적 없는 것 같았다.

 

“고마워.”

 

갑자기 들린 음성에 놀라 유스케가 손에 들고 있던 사진을 떨어트릴 뻔했다.

 

“조심해.”

“언제왔어? 못 오는 줄 알고.”

“못 올 거였는데 중앙에서 사람을 파견시켜줘서 퇴근했어. 고마워.”

“일찍 말하지, 엄청 배고팠었나봐.”

“정신없었어. 밥은?”

“아직.”

“이건 내가 치울게.”

 

즈홍이 유스케의 손에서 청소기를 뺏어들고는 거실로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다 유스케는 거실로 따라 나갔다. 즈홍의 얼굴이 피로감에 젖어있었다.

 

“잠은 제대로 잔거야?”

“아니, 지금 엄청 졸려. 근데 너 보니까 좋다.”

 

즈홍이 유스케에게 걸어가 그를 품에 안았다. 그에게서 땀냄새가 났다. 밀어내려다 유스케는 그동안 힘들었을 그가 안쓰러워 그러지 않았다. 향긋한 살내음에 즈홍은 유스케를 품에 안은 채 놓지 않았다. 그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4일내내 그리워했다.

 

“끌어안고 자고싶다.”

“그렇게 해.”

“진짜?”

 

유스케의 대답에 놀라 즈홍이 품에 안았던 그를 놓아주며 얼굴을 바라보았다. 안그래도 큰 즈홍의 눈이 커져있었다.

 

“응.”

“그럼 나 얼른 씻고 올게. 맛있는 것도 시켜먹자.”

“내가 시킬게, 씻고 나와.”

“알았어.”

 

주문한 음식이 도착함과 동시에 즈홍이 욕실에서 나왔다. 식탁도 테이블도 없는 집안을 유스케가 두리번 거리자 즈홍이 방으로 가더니 작은 탁자를 꺼내와 다리를 펴 거실 한복판에 내려놓았다.

 

“식탁이라도 놓지.”

“이게 편해. 얼른 먹자. 나 배고파.”

 

저녁을 먹고 난 뒤 유스케가 씻으러 들어간 사이 즈홍은 그가 입을만한 옷을 꺼내 욕실 앞에 두었다. 그리고 그가 들고 있었던 액자를 쳐다보았다.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는 리치의 모습, 오늘은 그의 기일이었다. 잠시 뒤 유스케가 뒤에서 오는게 느껴졌다.

 

“다 씻었어?”

“응. 얼른 누워. 너 금방 쓰러질거 같아.”

 

피곤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즈홍이 안쓰러워 유스케는 거실에 불을 껐다. 즈홍이 침대 맡에 있던 작은 실내등을 키자 유스케는 방의 불도 꺼버렸다. 어둠이 살짝 내리깔린 방안, 즈홍이 먼저 침대 안으로 들어가 최대한 벽쪽으로 몸을 옮겼다. 슈퍼싱글 사이즈 침대라 둘이 자기엔 조금 작았다. 유스케가 침대로 올라가며 그의 품으로 들어가며 팔로 끌어안았다. 즈홍이 긴장한게 느껴졌다.

 

“사진 속 친구야?”

“응.”

“진짜 행복해 보였어.”

“응.”

“좋겠다. 그렇게 웃을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유스케가 가슴에 귀를 대고 눈을 감았다. 리치를 말하는 유스케의 목소리에 즈홍은 서글퍼졌다. 품에 안겨오는 유스케를 끌어안으며 즈홍은 리치에 대해 말해야 겠다 마음 먹었다.

 

“사실은 오늘 친구 기일이야. 매년 찾아갔었는데 형님이 오지말라고 하더라.”

“왜?”

“날 보면 녀석이 생각나겠지. 그럼 슬퍼질거고 이유는 알지만 서운했어.”

“널 걱정한거 아닐까?”

“그랬을거야. 하지만 내겐 녀석이 가족이었어.”

“너만 친구를 잊지 않으면 되지.”

“너도 잊으려 하지마.”

 

유스케가 고개를 들어 즈홍을 바라보았다. 말 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두 사람,

 

“잊을 수 없어. 그 사람도 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너도.”

 

즈홍이 유스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사랑해, 유.”

“얼른 자.”

“응.”

 

나도 사랑한다, 말하면 되는데, 왜 그게 되지 않을까?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위로가 되고싶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말은 목구멍에서 막혀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한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아무래도 나는 널 사랑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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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글이 알람이 안갔다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는데

이번엔 제대로  갔겠죠? 너라는 계절도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네요.

긴 호흡 계속 따라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샘유포타쟁이 그러나 BL작가가 되고싶은 평범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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