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강대리의 오후 4시 간식이 화려해졌다...분명 예전엔 편의점 샤*빵이었는데, 미국 출장 이후 고급 호텔 제과 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것도 매일 매일 다른 메뉴로-

그리고 묘하게 민현과 사이가 좋아졌다.

둘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건가

무언가 상당히 의심스럽지만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



73. 출장 이후 매일 민현을 어르고 달래는 것이 일이 되었다.

분명 손잡기부터, 차근차근 시작하자 했는데 아침에 손 잡았으니 오후 3시인 지금은 키스를 할 때라며 박박 우기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 내가 황민현과 다시 사귀는구나-를 실감했다.

하루종일 눈을 빛내는 모습이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연애 초반 그 감정을 되새기며 잘 참는 것 같다.



74. 종현이 연애 초반 같은 설렘을 즐기고 있을 때, 민현은 죽을 지경이다.

10년을 참았다. 

이젠 일방통행도 아니고 김종현도 나랑 하고 싶어하는데!!!(그런 말 한 적 없음)

어째서 참기만 해야 하는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재결합 이후 민현의 머릿속은 24시간 종현과 그걸 하는 생각 뿐-

하도 그 쪽으로만 생각하다보니 이젠 종현의 모든 행동이 다 야하게 느껴졌다.

덕분에 스트레스 받는 건 최민기였다.



[민기야, 종현이가 아까 회의 때 나 두 번 쳐다봤어 그럼 하자는거 아니야?]


[ㄴㄴ]


[민기야, 종현이가 아까 점심 맛있게 먹으라 했는데 자기 먹으라는거 아닐까?]


[ㄴ]


[민기야, 종현이가]


[보낸 이가 도라이라 전송되지 않은 메시지입니다]


[야 최민기 나 심각해]


[보낸 이가 도라이라 전송되지 않은 메시지입니다]




최민기 이 의리없는 놈

친구가 지금 과다 흥분으로 쓰러지게 생겼는데


이젠 숫자 1도 사라지지 않는 카톡을 보며 민현은 배신감에 부들부들 떨었다.


어째야 할까

마음 같아선 팀원들을 어디 워크샵 같은 데로 다 내보내고 사무실에서라도 덮ㅊ...잠깐 워크샵?



75.


"응, 안돼"

"나 아직 뭐라 말도 안했어!!!"


척하면 척, 황민현의 시커먼 마음을 이미 간파한 종현이다.

빙긋이 웃으며 [팀 화합을 위한 제안서]를 들고 오는 모습이

영 수상하더니만...첫 장만 봐도 알 것 같아 단칼에 잘라버렸다.


"들어봐 종현아!! 팀 화합이라는 것은 정말 중요해!! 내가 사비로 다 댈테니까"

"황비서, 제가 거절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회사 예산도 아닌 개인 사비로 이런 행사를 진행할 이유가 있나요? 둘째, 팀 화합이라면서 어째서 황비서와 나는 빠져야 하는 겁니까?"


아니..그건..상사들이 빠져줘야 직원들끼리 재밌게..웅앵웅...

궁지에 몰린 민현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더니 삐진듯 말이 없었다.



76. 


"워크샵은, 내가 윗선에 보고해서 예산 받아볼게- 그리고 오늘"


종현은 쑥쓰러운지 볼펜으로 책상을 톡톡 두들기며 뜸을 들였다.


"오늘, 우리집에서 자고..갈래?"


그냥 게임도 하고, 밥도 먹고....애써 그런 뜻이 아니라는 듯, 말이 길어지는 종현의 모습을 보며 민현은 가슴이 벅차 올랐다.

너무나도 좋은 나머지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종현을 꼭 껴안았다.


"나 너무 기뻐 종현아"

"야야, 여기 회사..."


밀어내려던 종현도 그런 민현의 뒷목을 쓰다듬으며 토닥였다.


아...


벅차오른 건 민현의 가슴만이 아니였나보다

아래쪽에 느껴지는 무언가에, 종현은 재빨리 떨어져 참새를 쫓듯 훠이훠이-손짓하며 밖으로 내몰았다.



77. 언제 퇴근 시간이 되나-내내 시계만 노려보던 민현은 6시 땡 치자마자 날아가듯 집으로 갔다. 

원래도 꼼꼼하게 씻지만 더더욱 구석구석 잘 닦은 후 종현이 -냄새 좋다-라고 한 바디 제품을 챙겨 발랐다. 세면도구를 챙기다 -이제 뭐 거기서 살텐데-라며 멋대로 동거를 확정짓더니 이것저것 갖다놓고 쓸 물건들도 챙기기 시작했다.


민현이 밤을 보낼 도구들을 챙기는 동안 종현은 저녁거리를 준비했다.



78. 종현 역시 조금 긴장된 마음으로 테이블을 정리했다.

그냥 이웃끼리 노는 것 뿐이다-라며 진정하려 했지만 자꾸만 가슴이 뛰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어린 애들도 아닌데, 유사행위(?)는 이미 한 사이인데도 왜 이리 떨리는지 모르겠다.

장 볼 시간이 없어 배달 음식을 다시 풀어 놓는 것 뿐이지만 다 차려놓으니 꽤나 그럴싸하다.


분주한 와중에


[띠리링]


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인데...회사인가?

네, 김종현의 핸드폰입니다. 라고 받으니


[오랜만입니다 종현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79. 


[그때, 장학금은 잘 받은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목소리


[회장님께서 이제 장학금 받을 나이는 아니니 사업 자금을 지원하고 싶으시다고 합니다]


좁은 쉐어하우스에서 숨죽여 울게 만든 그 목소리다.


[사업이 아니면 이민자금으로 써도 됩니다. 어찌됐든 이 나라를 떠나주기만 하면 됩니다. 입금은 곧 될 겁니다. 제안이나 부탁이 아님을 명심하십시오]


일방적인 통화가 끝나고, 종현은 힘없이 주저앉았다.



 

80. 멍-하니 쇼파에 앉았다. 꿈을 꾼 것 같다.


그래, 우리가 어떻게 함께 할 수 있겠어


황민현을 만나며 잠든 현실감각이 다시 예민하게 깨어나는 기분이다.


일단 민현이를 오지 말라고 해야겠다

지금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을 보여줄수없잖아

뭐라 핑계를 대지-라며 핸드폰을 드는데 그새 초인종이 울렸다.

손에는 와인과 와인잔을 든 채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이는, 그런 민현의 모습을 보니 다시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문을 열어주고 고개를 돌리며 피곤한 척, 아픈 척 연기를 했다.

그대로 곧장 쇼파로 가서 누우며 최대한 우울한 자신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종현아, 아파? 많이 아파? 그러니까 그냥 회사 때려치고 우리 집 본부장하라니까..."


덩달아 한숨을 쉬며 -우리 종현이 얼굴 좀 보자-라며 자꾸 얼굴을 가린 팔을 풀어내려고 했다.

너무 다정한 말투에 또 다시 눈물이 흘러서종현은 팔로 버티고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

그 모습이 수상했는지 민현은 집요하게 종현의 팔을 치우더니 우는 얼굴을 보고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종현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냐, 그냥 너무 피곤하고 지쳐서 그래-라며 고개를 가로 저어도 민현은 믿지 않는 눈치다.

때마침, 핸드폰에 문자 알림이 들어왔다.



81. 먼저 반응한 것은 민현이었다.

재빨리 손을 뻗어 문자를 확인하더니 엄청난 액수가 입금되었다는 알림 문자를 읽고 종현을 한번 쳐다봤다.


"야아, 이거 사생활 침해야"


더이상 들키고 싶지 않아 허우적대는 종현을 한 팔로 제지하더니 이젠 통화기록을 훑는다.

그리고 가장 상단에 있는 번호를 망설임 없이 눌렀다.

연결음이 얼마 가지 않았는데 상대방이 응답한다.


[네 종현군 입금 확인했나보군요 어디로 떠날지는 결정했습니까?]


"비서실장님이군요"


[........]


상대방도 이 목소리가 누구인지 알아챈 듯 답이 없었다.

전화를 끊은 민현의 손 끝에서 핸드폰이 미끄러져 와인잔을 덮쳤다.


유리잔이 산산히 부서지며 내지르는 소리에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온 듯, 민현과 종현은 쭈그리고 앉아 유리 파편을 치우기 시작했다. -너는 손 다치니 하지마- 이 와중에도 서로 다칠까 걱정하면서-


묵묵히 유리 조각을 치우던 민현이 물었다.


"종현아, 혹시 예전에도 이런 전화 받았어?"


종현은 대답없이 유리 조각을 비닐봉투 안에 넣었다.


"응? 거짓말하지 말고"


여전히 답은 하지 않았다. 대신 눈가에 눈물이 맺혀 뚝뚝 떨어졌다. 

민현은 말 없이 울기만 하는 종현을 바라보다 주웠던 유리 파편을 털어내지 않고 꼭 쥐었다.

파편이 살 속에 파고 들어 피가 배어 나올때까지, 종현이 놀라 말릴때까지...

민현은 초점없는 눈동자로 그러쥐은 자신의 손을 풀지 않았다.



82. 황회장은 오랜만에 집에서 저녁을 먹은 후 서재에서 쉬던 참이었다.

요즘 검찰에서 재벌 개혁이다 뭐다 해서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는 통에 머리가 아픈 지라

되도록 외출은 자제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에게, 막내 아들 민현이 찾아온 것은 뜻밖이었다.


"어쩐 일이냐, 니가 집에 얼굴을 다 비추고"


사람보는 재주로 재벌 총수 자리를 꿰찬 인물이었다.

아들 민현의 표정과 분위기, 피가 흐르는 손을 보고 종현과 관련된 일임을 알아챘다.


"미친놈, 그깟게 무어라고 부모가 준 몸을 그따위로 굴리고 다녀"


혀를 차며 꼴도 보기 싫다는 듯 손짓하자 비서실장이 움직였다.


"잘 아시네요, 아버지 아들 미친거"


비서실장이 다가오든 말든 민현은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이 USB에 뭐가 들었는지, 안 궁금하세요?"

"무슨 얄팍한 수를 쓰려는 게냐"

"글쎄요, 지금 아버지를 담당하는 정 검사님이 원하는 것 정도일까요"


한심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던 황 회장은순식간에 얼굴을 굳혔다.


이놈이, 설마



83. 비서실장이 받아들어 열어 본 USB안에는 성수그룹의 모든 비리 증거가 담겨 있었다. 

이중 회계 장부, 불법 증여, 탈세 증거, 주가 조작을 위한 문서, 주식 가치를 뻥튀기 하기 위해 짜고친 자료 등등

성수그룹 상무 시절, 종현이와의 영원한 미래를 꿈꾸며 틈틈히, 차곡차곡 모아 둔 자료였다.

이렇게 빨리 쓸 줄은 몰랐지만...


하나 하나 살펴보던 황회장은 분노로 책상을 쾅쾅 내리쳤다.


"이런 개자식!!!!! 그깟 사내새끼 하나 때문에 부모에게 칼을 꽂아?"

"아직 안 꽂았어요, 그리고 제가 개자식이면 아버지도 개인거 아시죠?"


저저 망할놈, 한마디도 안지네

황회장은 뒷목을 잡았다. 비서실장이 일부러 오바하듯 회장님!!!하며 부축했지만 민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84. 


"이 자료들, 정 검사님께 넘길까요?"


그걸 말이라고 하냐!!!!!!!!!라며 고함치는 황회장에서 민현은 또박또박 원하는 바를 말했다.


"종현이랑 저, 건들지 마세요- 저는 절대 김종현 포기 못합니다."

"이 정신나간 놈이!!!!! 사내 놈이랑 붙어 먹으려고 아주 지극 정성이구나!!!!"


이 말에 어깨를 으쓱-하더니 -나이 70넘어서 첩질하는 아버지 정성보단 덜 한 것 같은데요-라고 대꾸했다.


"어차피 저 말고도 아들 많잖아요. 없는 셈 치고 사세요."


돌아서는 민현의 등 뒤로 과장된 탄식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오 저 후레새끼!!!!!!!!!"

"회장님!!!! 진정하십시오!!!"

"제가 후레새끼면 아버지가 후레놈이라니까요...한국말이 이해가 안되시나요?"


나가!!!!!!!!!!!!!!

끝까지 깐족대는 민현의 모습에 황회장은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나가려고 했거든요~ 종현이가 기다리거든요~


이모티콘 마냥 끝까지 약을 올리며 민현은 집 밖으로 빠져 나왔다.



85. 민현이 잠시 가볼 곳이 있다며 나간 후 종현은 홀로 쇼파에 앉아 떠오르는 생각들과 싸우고 있었다.


처음 만났던 날부터 죽을만큼 괴로웠던 유학시절, 다시 본부장과 비서로 만난 날-

그리고 바로 전 자신을 위해 유리 가루라도 남았을까 꼼꼼히 청소한 후 떠나던 모습까지...


어느것 하나 잊을 수가 없는데

어디서부터 널 다시 버려야할까


그렇게 민현과 함께 한 기억을 더듬으며 울다 웃다 종현은 점점 피곤함을 느꼈다.



86.


"깼어?"


울다 잔 탓에 눈이 부어 제대로 떠지지 않았다. 흐릿한 시야 안에 뛰어왔는지 볼이 빨갛게 피어오른 민현이 보였다.


잠긴 목소리로 어딜 다녀왔느냐고 물으려 했는데 왼손에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에 질문조차 까먹었다.

종현이 덜 뜬 눈으로 본인의 왼손을 바라보자 그제서야 민현은 꼭 쥐고 있던 손을 풀어 보여줬다.

네 번째 손가락에는 조금 작은 듯 들어가다 만 반지가 걸려 있었다.


"이...건...."

"아직 정식 프로포즈 아니야!! 급하게 구하느라...."


부끄러움 세포는 다 죽은 황민현인줄 알았는데 새삼 뭐가 그리 창피한지 종현의 허리춤에 파고들며 얼굴을 가렸다.


"그냥...증거...같은거야..."


더 이상 네가 우는 일 없고 우리가 영원히 함께 할 거라는 증거



87.


"김종현, 네가 나를 버리지만 않는다면..."


목까지 빨개진 채 고개를 든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10년간 변함없던 눈빛-

그런 민현의 눈을 보다 끝내 종현도 졌다는 듯 울면서 웃더니 민현의 얼굴을 꼭 감싸안았다.


"민현아"

"응, 종현아"

"우리 같이 살까?"


그 말에 민현의 입술이 다가와 닿았다 떨어졌다.


"당연하지, 김종현"


다시 한번 다가오는 입술에 팔이 목을 감쌌다.

감싸던 팔은 어느덧 풀어져 손으로 서로를 더듬기 시작했다.

얼굴부터 타고 내려온 손가락은 목을, 어깨를, 안고 있는 팔을-

사랑스럽다는 듯 어루만졌다.

긴 입맞춤 중 간간히 가쁜 숨을 쉬느라 입술이 떨어졌지만 그마저도 아쉽다는 듯 서로 다시 붙기 바빴다.


한참을 입맞추던 연인은 쇼파가 좁은 듯 몸을 비틀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번쩍-민현이 안아들자 잠시 또 입술 간의 틈이 생겼다.

아주 짧은 정적과 함께 서로 마주보다 서서히 방 안으로 이동하며 다시 키스를 시작했다.





+++)

이제 진짜 곧 완결입니다....ㅠ..양치기 소년이 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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