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싫다고오!"



 엄마는 공부며 숙제며 크게 터치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잘하는 준호가 늘 자랑스러웠다. 누구 뱃속에서 나왔는지 얼굴도 고와, 키도 저만하면 됐지, 공부도 잘해. 뭐 하나 빠질 게 없는 아들이었다. 동네에서 이웃 아주머니라도 만났다 치면 다들 꼭 한마디씩 건네올 정도니 말 다 했다.



"준호 엄마는 좋겠어~ 준호 이번에 또 1등이라며?"

"아유·· 우리 애는 준호 반만 닮아도 소원이 없겠어."

"어머, 아니에요. 우리 준호는 오히려 너무 집에만 있어서 걱정이죠 뭐. 무슨 공부가 그렇게 할게 많은지 차암…."



 준호 엄마는 아닌척하면서도 그런 칭찬들이 듣기 싫지는 않아 크게 부정하지 않았다. 이따금씩 호호호 가식적인 웃음을 내비치며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갑자기 미운 18세라도 된 것인지 오늘따라 답지 않게 떼를 쓰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다 결정 난 일을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진짜 싫어…. 나 대학은 어쩌고!"

"거기 가서 또 열심히 하면 되지~ 원래 내년에 옮기라는 거 너 고3인 거 생각해서 우리가 겨우 앞당긴 거야.. 응? 아드을~"

"아, 몰라!"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주는 엄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준호는 있는 힘껏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처음 보는 아들의 모습에 적잖이 놀란 엄마는 자신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잃었다.



"...준호, 괜찮을까요?"



 저렇게나 싫어할 줄은 몰랐는데. 문까지 걸어 잠가 버린 아들이 오늘따라 남의 아들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두들겨도 대답 않는 방문에 엄마는 옆을 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그와 달리 아빠는 그저 허허 웃으며 속 편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우리 아들 이렇게 보니 영락없는 10대 맞네."



 방문 너머로 아직 떠나지 않은 부모님의 대화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아까보다 한껏 풀이 죽은 듯한 엄마의 목소리가 조금은 신경 쓰였으나 준호는 이미 머릿속이 복잡했다. 휴우-, 착잡한 한숨을 한 번 토해내다 침대 위로 풀썩 누워버렸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어 귀에 꽂은 에어팟의 볼륨을 최대로 높일 뿐이었다.


 준호가 갑작스럽게 들은 소식은 이러했다. 아빠가 직장의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어 당장 부산으로 가야 한단다. 그것도 우리 가족 모두. 그나마 다행이라면 2년 정도만 있으면 된다는 것? 어차피 곧 대학 때문에 다시 서울로 올 텐데 뭐가 다행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고3이나 다름없는 18살 예민한 시기에, 친구들도 모두 여기 있는데 이게 웬 날벼락 같은 소식인지. 태어나면서부터 자라 오기까지 서울을 벗어나 본 적 없는 준호가 그것도 전혀 다른 지역인 부산에 살아야 한다니. 걱정부터 앞서는 것은 당연했다. 특히나 좁고 깊은 친구 관계를 갖는 준호는 새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피곤해지는 느낌이었다.






Burning Heart

: 불타는 내 마음






"거기 다 확인했지? 자,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던 이삿짐센터는 갖은 박스들을 밀봉하여 옮기고 있었다. 부산에서 잠깐만 살다 오면 된다 해놓고 무슨 짐이 이렇게도 많은지 차 안에 살림살이가 한가득 실려있었다. 마지막 점검을 끝냈는지 하나 둘 체크하던 기사님이 화물칸의 잠금장치를 걸어 잠그며 철문을 손바닥으로 탕탕 쳐주었다. 출발을 알리는 신호에 이삿짐을 실은 커다란 트럭이 앞서 시동을 걸었고, 뒤이어 우리 가족을 태운 아빠 차도 곧 따라 움직였다.



"준호야~ 그래도 부산 가면 이제 바다도 매일 볼 수 있고 좋겠다. 그치~?"

"......"



 애써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엄마의 공이 무색하도록 상대방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꿍하게 앉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준호가 나 삐쳤어요- 하고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이리 보니 몸만 컸지 영락없는 미운 네 살의 모습 그대로였다. 며칠이면 괜찮아지겠거니 했던 부모님의 속 편한 생각을 발로 뻥- 차버리듯이 준호는 꽤나 고약한 똥고집을 가지고 있었다. 이사 소식을 전해 준 그날 이후부터 줄곧 대화 거부를 하는 모양새가 그러했다. 부산으로 향하는 그 긴 시간 동안 꿋꿋이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부우우― 부웅――.



 결국 오고야 말았다. 이곳에. 크게 울려 퍼지는 뱃고동 소리가 이곳은 부산이라고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듯 했다. 착잡하기 그지없는 준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모님은 바다 구경을 하고 가자며 부둣가 근처에 잠시 차를 멈춰 세웠다. 차 안에서 가만히 눈이나 붙이려던 준호는 빨리 나와보라며 부추기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차 문을 열었다. 나오자마자 훅 끼쳐오는 짭짤한 바다 비린내가 내 몸을 휘감았다.



'차라리 인천이면 인천이지 부산일 건 뭐야. 나 더위 잘 타는 것도 알면서··.'



 준호는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 야속해 괜히 속으로 툴툴거렸다. 거기다 유독 준호의 머리 위로만 끼룩끼룩 거리며 날아다니는 갈매기 무리가 왠지 나를 약 올리는 것 같이 들렸다.












"야들아, 주목! 전학생 왔다. 준호라 했제? 인사 함 해라."

"아... 안녕하세요. 이준호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시끌벅적했던 교실이 선생님의 등장으로 인해 모두 제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준호를 보자마자 몇 십 개의 눈이 오로지 저에게만 고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준호가 어색하게 인사를 하자 교내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곧 얼어붙을 것 같은 분위기에 준호는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오올~ 서울 사람~~"

"야, 나도 서울말 좀 한데이. 안녕하세요↗?"

"자, 자, 조용. 너거들 중요한 시기니까 전학생 잘 적응 하구로 도와주고."

"네-."

"이상! 준호는 저 짝에 자리 비었으니까 거 앉으면 된데이."

"네? ...네."



 처음 들어보는 부산 사투리는 생각보다 더 이상했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말이 이렇게 달랐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은커녕 말이나 다 알아들을 수 있을지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준호는 선생님이 말한 '저 짝'이 어디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으나 대충 빈자리 같아 보이는 텅 빈 책상에 가방을 풀었다. 모두 둘둘씩 붙여 앉은 책상에 자신의 짐들이 가득했지만 그에 반해 준호의 옆자리는 깔끔해 보였다.

 여기도 빈자리 인가..?


 그 생각을 하자마자 뒷문이 열리는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준호도 자연스레 눈길을 따라가니 아침부터 매점을 털고 온 것인지 남학생 하나가 팔 안에 빵을 바리바리 싸 들고 있었다. 친구들에게 각자의 빵을 하나씩 던져 주며 부산스럽게 나타난 남자는 등장부터 요란스러웠다.



"뭐고, 내 드디어 짝꿍 생겼나? 아싸!"



 내가 앉은 창가 쪽 맨 뒷자리는 오랫동안 공석이었나 보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저 짝꿍이 생긴 것에 저렇게 좋아하니 말이다.





"반갑데이 난 장우영이다."

"어, 어.. 안녕."

"......"

"......"

"와- 서울말 쥑이네. 안녕~? 어떠노 비슷하나."



 개구지게 웃으며 말을 걸어오는 녀석은 그렇게 내 옆자리에 앉았다.












 친화력 좋은 짝꿍 덕에 준호는 걱정과 달리 학교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준호가 귀찮음에 점심이라도 거를라치면 어떻게 해서든 질질 끌고서라도 급식실에 함께 간다던가, 쉬는 시간이면 매점에 가자고 옆에서 계속 쫑알거리는 덕에 준호는 매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한 날은 서울에서 온 전학생이 너냐? 거기서 성적 못 맞출 것 같으니 지방에서 내신 점수 딸려고 온 것 아니냐며 애꿎은 시비를 걸어오는 학생도 있었다. 고3을 앞둔 예민한 시기에 뭐라고 말을 해봤자 말싸움만 길어질 것 같아 준호는 별다른 대꾸 없이 지나가려고 했다.



"어? 뭐라고 말 좀 해봐라. 아이가?"



 옆으로 지나치려는 준호의 팔을 붙잡았다. 니 지금 내 무시하나? 높아지는 언성에 복도를 지나가던 학생들의 시선이 잔뜩 이곳으로 쏠렸다. 조용히 지나가려던 자신의 행동에 더 열이 받는지 그 학생은 준호를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몸이 밀쳐지겠다 생각한 순간,



"뭔데?"



 어느새 나타난 우영이 그 사이를 가로막았다. 다가오는 학생의 가슴을 밀치며 거리를 확보한 우영이 등 뒤로 준호를 단단히 붙잡았다. 



"왜 가만히 있는 아한테 시비터노."

"니는 뭔데?"

"나? 야 친구지. 가던 길이었음 그냥 가라."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항상 맥없이 실실 웃는 모습이라 헐랭이인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또 강단 있는 목소리에 진지한 표정을 하니 꽤나 냉랭해 보였다. 단호한 우영이의 목소리에 시비를 건 학생이 뭐라 더 말을 하려다 말고 그냥 가버리자 주변에 멈춰 선 학생들도 하나둘씩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반으로 돌아가는 문제의 학생을 끝까지 쳐다보며 나를 등 뒤로 감추는 우영이를 보고 있자니 조금 멋있는 거 같기도 하고….



"봤나? 내 카리스마에 꼬리 내리고 가는 거."

"뭐래…."



 모두가 제 자리로 돌아가니 금방 원래의 개구진 우영이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 방금 멋있다 한거 취소. 얘는 그냥 말티즈다. 하루 종일 학교 안을 뽈뽈거리며 돌아다니고 붙임성 좋다가도, 화나는 것을 보면 참지 않는 그런 말티즈. 준호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서서 친구라고 도움 준 우영이 고마웠다. 그날따라 왠지 우영이의 등이 유독 넓어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지나다 보니 어느새 준호 역시 우영과 함께하는 것이 익숙하고 자신의 옆자리는 장우영인 것이 당연해졌다.



"우영아, 이제 날씨 많이 더워졌다. 그치?"

"그러게. 니 왔을 때만 해도 동복 입고 있었는데 벌써 반팔이고."



 부산은 확실히 남쪽이라고 서울보다 빨리 기온이 높아지는 것 같았다. 더위를 잘 타는 준호는 벌써부터 땀이 삐질삐질 나오려는 것 같아 티셔츠를 펄럭이고 있었다.

 해가 수평선 뒤로 넘어갈 준비를 하는 시간, 준호와 우영은 토요일이면 오후 자습을 끝낸 후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들리는 곳이 있었다. 나름 둘만의 암묵적인 룰이랄까. 학교 뒤 가파른 언덕을 오르다 보면 나오는 정자는 바다가 한눈에 보여 쉬었다 가기 딱 좋은 아지트였다.



"하이고, 시간 자알- 간다."

"풉. 뭐야 너. 무슨 우리 할아버지 같아."



 나무 평상에 가방을 던지며 풀썩 앉고는 한다는 말이 세상 다 산 어르신 같은 소리였다. 할아버지 같은 친근한 말투에 준호가 웃음이 튀어나왔다. 



"니는 가만 보면 다른 애들한텐 안 그러면서 내가 뭐만 하면 웃는데이."

"..내가 그랬나?"

"왜? 내가 재밌어?"

"푸흐, 응. 우영이 너 재밌지. 진짜 웃겨."



 아무래도 너는 가수 말고 개그맨 해라. 웃음 장벽이 낮은 준호는 우영이 뭐만 해도 즐거운지 항상 웃음이 헤펐다. 너무 대놓고 면전에다 웃기엔 왠지 우영에게 미안해진 준호가 애써 입술을 깨물어 가며 터지려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하지만 아까부터 달달 떨리고 있는 어깨는 차마 숨기지 못했다. 그것을 본 우영이 우쒸, 하며 준호에게 성큼 다가왔다.



"야, 장차 예비 슈퍼스타님을. 뭐어? 개-그매앤? 일루와."



 평상을 두고 갑자기 시작된 술래잡기에 준호가 잡힐세라 꺄르르 넘어가면서도 요리조리 잘도 피해 갔다. 그때, 우영이 준호의 옷자락을 콱 잡아채자 준호의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넘어지려는 준호를 보고는 그대로 자신의 몸을 받쳐 평상으로 방향을 돌렸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몸이 포개진 채 쿵, 하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아으..."

"야, 괘안나. 안 다쳤나.."

"하…."

"왜, 왜, 마이 아프나?"



 내가 니 잡는다고 잡았는 긴데…. 나무 바닥에 머리를 찧을까 봐 받쳐준 우영의 손이 준호의 동그란 뒤통수 밑에 그대로 깔려있었다. 그 덕에 우리 둘의 사이는 주먹 하나 겨우 들어갈 만큼 바짝 붙어 버렸다. 고개를 드니 숨결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 놀라 우영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 마셨다. 살포시 머리를 놓아주며 진득하게 몸이 닿을세라 엉거주춤 일어난 우영과 달리 준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멀어지려는 우영을 도로 붙잡았다.



"…우영아, 아무래도 나 부산 잘 온 것 같아."





 이준호는 솔직한 구석이 있어서 기분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얼굴이나 목소리에서 모조리 티가 났다. 평소보다 높고 들뜬 목소리가 지금 기분이 매우 좋다는 것을 여지없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행복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준호의 얼굴이 내 눈 안에 가득히 들어찼다. 그 해맑은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우영은 문득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뭐랄까… 매일 보던 얼굴인데 마치 처음 보는 것 같달까.


 갑작스레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연신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가 내 마음속까지 파동을 일으킨 것만 같았다. 준호의 등 뒤로 내리쬐는 태양에 우영은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햇살을 받아 잘게 반짝이는 바다가 어여뻤지만 그 풍경이 가릴 만큼 눈부시게 예쁜 미소였다.



"...미치겠다."

"응?"

"돌아삐겠다 내가 아주."



 니는 머쓰마가 무슨…. 하, 아이다. 말을 하다 마는 우영에 영문을 모르는 준호가 그저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쟈는 사내 자슥이 뭐가 저래 곱노. 저를 향해 웃던 그 미소가 더할 나위 없이 해사하여 하마터면 잠시 숨이 멎을뻔했다. 우영은 어느새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에 열이 몰리는 것 같아 다급히 손부채질을 해댔다.



"많이 더워?"

"어…. 어, 좀 덥네."



 지금 계절이 여름이란 것에 고마울 때가 다 있다. 점차 달아오르는 마음을 더위라는 핑계로 감출 수도 있고 말이다.



"내가 아이스크림 사줄게, 가자."



 손을 덥석 잡아오는 이준호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데 쓸데없이 다정하게까지 느껴진다. 이대로라면 요동치는 내 마음은 진정될 기미가 안 보였다.


 엄마 나 더위 먹은 거 맞제? 그렇다고 해도….


 매앰 매앰 맴― 짝짓기를 위해 목청이 터져라 울어대는 매미소리에 우영은 같이 울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뜨거운 여름 날이었다.








우리 말티즈 우앵이는 참지 않긔.

18:03 ~ 18:09 이 영상 때문에 이 글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한여름에 맞춰서 올릴까 하다 먼저 다 써버려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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