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

유현이는 억만년만의 오후 연차를 써서 집에 일찍 옴. 비서이자 연인인 하진이는 아직 회사에서 근무 중인데, 혼자 남겨두고 합법적으로 땡땡이를 침.

이런 일이 잘 없는데, 오늘은 날씨가 너무 궂어서인지 어쩐 일로 일이 좀 하기 싫었음. 사실 하진이도 같이 데려와서 품에 안겨 쉬고 싶었지만 그럼 업무에 지장이 생길 테니 어쩔 수 없이 혼자서만 퇴근함. 남겨진 하진이나 정 비서에게는 좀 미안했지만, 뭐, 사람이 살다 보면 한 번쯤은 이럴 때도 있지,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음.

운전도 하기 귀찮아서, 차를 가져가라는 하진이의 말을 거절하고 택시를 타고 집에 옴. 날이 궂으니까 기사는 하진이와 함께 사는 오피스텔의 입구 바로 앞까지 들어와서 내려줬는데, 유현이는 입구로 들어가려다 말고 1층에 있는 편의점으로 방향을 꺾음. 점심을 너무 설렁설렁 먹어서 약간 출출하기도 했고, 날씨도 쌀쌀하니까 따뜻한 국물이랑 맥주가 땡겼음. 그런데 할 줄 아는 국물 요리는 없으니까 대충 컵라면이랑 사서 먹고, 하진이가 퇴근하기 전에 증거를 싹 인멸해놓을 생각임.

낄낄낄. 하진이 모르게 라면을 해치우고 증거까지 싹 없애둘 생각을 하니 음흉한 웃음이 다 나옴. 혼자 낄낄 웃으면서 편의점 문을 밀고 들어가려는데, 순간 시야에 스친 게 있어 행동을 뚝 멈춤.

편의점의 옆으로는 오피스텔을 빙 둘러싼 화단이 있었는데, 겨울이라 앙상한 가지만 남은 식물들 사이로 흰색의 보송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음. 함박눈이 내리는 것도 아닌데 흰색? 게다가 보송?

유현이는 거의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서 화단을 돌아봤음. 앙상한 나뭇가지와 진눈깨비 때문에 질척하게 젖은 화단 아래쪽에 정말, 조그만 흰색 털뭉치가 있음. 너무 작아서 처음엔 뭔지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는데, 가만히 서서 보니 강아지였음.

정체를 알아채고서 유현이는 경악함. 진짜 강아지야? 강아지가 저렇게 조그맣다고?

 

“허어….”

 

눈으로 분명하게 확인하고서도 믿기가 힘들었는데, 그 정도로 강아지가 너무 작았음. 유현이 두 손바닥 안에 충분히 들어올 만한, 너무 조그만 크기였음.

유현이가 자기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가서 들여다보니, 코도 아직 검은색이 채 되지 못하고 연한 핑크빛이 아직 남았을 정도로 너무 어린 강아지임. 강아지 알못인 유현이가 보기에도 어린 게 딱 느껴지는 생김새였음.

그리고 몸통만 흰색이지, 얼굴에는 갈색으로 선명한 얼룩이 있음. 이마는 하얀데 얼굴의 양옆에서부터 갈색의 얼룩이 시작되어 양쪽 눈 주변까지 갈색임. 역시 강아지 알못인 유현이가 보기에도 딱 시츄 같았음.

이 겨울에, 진눈깨비까지 내리는 궂은 날씨에 이런 어린 시츄가 혼자 화단에 앉아있다니. 이 어린 게 아무것도 모르고 현관문이 열린 틈을 타서 바깥으로 나왔다가 길을 잃은 걸까? 아니면 누군가가 병원에라도 데려가려고 같이 나왔다가 잃어버린 걸까?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일단 얘를 이렇게 놔둘 수는 없겠다고 유현이는 생각했음. 다 큰 강아지여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을 텐데 심지어 아기이기까지 하니 더더욱 그냥 둘 수가 없음.

입고 있던 재킷 벗어서, 얌전히 앉아서 바들거리고 떠는 강아지 폭 감싸서 안아들 때 약간 걱정이 되기는 했음. 자기는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함께 사는 배우자가 있었으니까.

게다가 유현이는 하진이가 강아지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키워본 경험은 있는지, 혹시 알러지가 있지는 않은지… 그 모든 것들을 전혀 알지 못했음. 그동안 하진이와 강아지 관련으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조차 없음. 그래서 순간 좀 멈칫했지만, 그래도 이 어린 애를 다시 내려놓고 갈 수는 없었음. 옷으로 감싸서 안아 올리니 또 너무 작고 가벼운 게 실감나서 도저히 외면이 안 됨.

라면이고 맥주고 순식간에 싹 잊고서 유현이는 그렇게, 새끼 강아지를 소중하게 품에 안고 집으로 옴. 강아지는 원래 성격이 무던한 건지, 아니면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할 만큼 어려서인지 깽, 하는 작은 소리조차 내지 않고 너무 얌전하게 유현이에게 안겨 옴.

집에 도착하자마자 보일러부터 세게 틀고, 옷 채로 거실 바닥에 내려두고서 가만히 상태를 살펴봤음. 보일러가 은은하게는 켜져 있던 집이니 공기는 훈훈한데 이 조그만 아기에게는 아직 추운지 계속 바들바들 떠는 중. 뭘 어떻게 해줘야 하나, 고민하다가 손을 내밀어서 몸을 살짝 만져봄. 보기에도 젖은 것 같던 털이 역시 흠뻑 젖어 있음. 일단 젖은 것부터 닦아줘야겠다 싶어서 얼른 수건을 챙겨오는데, 순간 강아지에게 사람이 쓰는 수건을 써도 되나, 고민은 됐지만 다른 방도가 없으므로 일단 쓰기로 함.

 

“자아, 아가야, 잠깐만. 아저씨가 따뜻하게 해줄게. 잠깐만- 좀 불편해도 참아-”

 

알아들을 리가 없지만 자기도 모르게 강아지한테 말도 걸어가며 유현이는 아주 조심스럽게 수건으로 강아지를 감싸고 물기를 닦아주고 털어줬음. 그런데 너무 조심스러워서 효과가 바로 나오지는 않았음…. 드라이기를 이용하면 편할 텐데, 너무 아기니까 혹시 드라이기 큰 소리에 놀라지는 않을까 싶어서 쓰지 않음. 손으로 아주 조심조심, 천천히 닦아줬음.

한참 그랬더니 털도 슬슬 마른 것 같고, 강아지도 더 이상 떨지 않았음. 어떻게 이렇게 작을 수가 있나. 이런 작은 몸으로 비를 그렇게나 맞았다니 감기에 걸리는 건 아닐까. 그런데 강아지도 감기에 걸리나.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하다 보니 하진 생각도 났음.

아, 그렇지. 집에 잘 도착했는지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강아지에게 덮어줬다가 대충 치워뒀던 재킷을 끌어와서 주머니 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봤더니 역시나 문자가 와 있었음.

 

[형]

[잘 가고 있어요? 비 와서 차 막히죠?]

 

집에 도착했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도착했다는 연락이 없으니 차가 막히는 걸로 생각한 모양이었음. 유현이는 바로 답장을 보냈음. 사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전화를 해버렸을 텐데, 지금 한 생명체를 다짜고짜 데려와 버렸다는… 절대 평소 같지 않은 일을 벌여버린 여파로 약간 당황한 상태라 전화할 생각을 못 했음. 그냥 문자가 와 있으니까 무심코 문자로 답장을 보내고 났더니 뒤늦게 ‘아… 전화로 할걸….’ 싶었음.

 

[하진아]

[나 사고쳤어]

 

하지만 문자는 이미 보내졌고, 하진이는 0.1초만에 바로 확인해버렸음. 뒤늦게나마 설명을 덧붙이려고 했는데 이미 늦음. 핸드폰의 화면이 갑자기 싹 바뀌면서 [예쁜이] 라는 이름이 떠올랐음. 그리고는 우우우웅- 하고 무겁게 진동까지….

유현이는 약간 좀 잘못한 것 같은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음.

 

“어… 하진아….”

[형! 무슨 일 생겼어요?! 괜찮아요?!]

 

무슨 일을 당했다, 가 아니라 사고를 쳤다고 했는데 바로 유현이의 안위를 물어보는 발언이 나왔음…. 그새 너무 걱정하는 듯한, 잔뜩 놀란 것이 분명한 목소리에 유현이는 진짜 너무 미안해졌음….

 

“어, 아니… 내가 무슨 일을 당한 게 아니고….”

[무슨 일인데요? 그래서 괜찮은 거 맞아요? 목소리가 왜 이렇게 안 좋아요?]

“이, 일단…! 나는 괜찮고, 아무렇지도 않아! 내 안위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전혀 아니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미안해. 내가 너무 이상하게 얘기를 꺼내서….”

[형은 괜찮다고요? 그럼 어디 가볍게라도 다치거나 한 건 아닌… 거죠?]

“응, 그런 거 전혀 아니야.”

[…그런데 목소리가 왜 아직도 심각해요…? 문자 보낸 건 또 무슨 뜻이고요?]

“그게….”

 

안 그래도 진짜 미안했는데 본론을 이야기하려니 미안함이 더더욱 가중되었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정말 대책 없긴 했구나, 나…. 반성하면서 유현이가 드디어 사실을 이야기함.

 

“내가… 집 앞에서 강아지를 한 마리 데려왔어.”

[……네?]

“허락도 없이 데려와서 미안…. 그런데 애가 딱 보기에도 너무 어려 보이고… 또 비도 많이 오고, 날도 춥고 그래서….”

[잠깐만요, 형. 지금 강아지라고 얘기한 거 맞아요? 형이 강아지를 데려왔다고요? 집에?]

“응….”

[강아지가 집 앞에 그냥 있었어요? 혼자? 뭐 목줄 같은 것도 없이요?]

“응….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고, 지금 춥고 비인지 눈인지 모를 것도 많이 내리는데 이걸 다 맞으면서 혼자 화단에 덩그러니 앉아있더라고…. 근데 아무리 봐도 너무 어려 보이고… 애가 너무 작고…. 그래서… 도저히 모른 척을 할 수가 없어서…….”

[아….]

 

약간 얼빠져서 대답하는 목소리가 영 좋게 들리지는 않고, 안 그래도 이래저래 찔리는 게 많았던 유현이는 결국 덥석 사과부터 함….

 

“하진아, 미안! 너한테 미리 얘기를 했어야 하는데, 아무런 말도 없이 이래서…. 미안해. 진짜 미안.”

[네?]

 

유현이의 사과를 듣고 하진이는 약간 정신이 든 것 같았음. 목소리에 얼빠진 기운이 완전히 없어지고 본래의 말투로 돌아옴.

 

[아니에요, 형! 비 맞으면서 화단에 그냥 있던 애라면서요. 그런 애를 앞에 두고 나한테 얘기할 여유가 어디 있었겠어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미안해하지 마요.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아마 한동안은 얘랑 같이 지내야 할 텐데, 그것도 괜찮겠어? 강아지 털 알레르기 같은 것도 없고?”

[그런 거 없지만, 있었어도 괜찮다고 했을 거예요. 나였어도 일단 데려오고 봤을걸요? 그냥 강아지라면 모를까, 많이 어려 보인다면서요. 날씨 때문에라도 나도 일단 데려오기부터 했을 거예요.]

“아….”

[그러니까 미안해할 거 없고, 오히려 잘한 거예요, 형. 잘했어요.]

 

그렇게 말해주는 목소리가 정말 너무 다정하고 따뜻해서, 하진이에게 이래저래 미안하고 심란하던 유현이의 마음도 사르르 녹음. 심지어 미소도 살짝 나왔음.

 

“고마워…. 이해해줘서.”

[에이, 당연한 걸 가지고 뭘요. 그나저나 형, 그럼 지금 집인 거죠? 강아지랑 같이 있는 거고?]

 

잠깐 핑크빛 세상에 들어갔던 유현이는 재빠르게 현실로 달려 나오면서 강아지를 살펴봄. 작은 강아지는 이제 떨지도 않고, 수건에 대고 아직 반은 핑크색인 코를 킁킁거리고 있었음.

 

“아, 응. 지금 바로 앞에 있어.”

[어떻게 하고 있어요? 비 맞았다면서요. 강아지 많이 젖었어요?]

“젖은 상태였는데, 내가 수건으로 좀 닦아줬어.”

[와, 잘했어요. 그럼 이제… 음….]

 

잠깐 침묵이 이어졌음. 그것만 봐도 대충 감은 오지만, 유현이는 한번 물어나 봤음.

 

“너… 혹시 강아지 키워본 적 있어?”

[…아뇨….]

“그치…? 나도 안 키워봤거든…. 그래서 지금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어쩌지? 검색을 좀 해봐야 하나?”

[음… 잠깐만요.]

“응.”

 

아마 컴퓨터 앞에 앉은 상태일 테니, 하진이가 검색을 해보려는 줄 알았음. 그런데 하진이의 목소리가 살짝 멀어진 채로 다시 들림.

 

[선배, 혹시… 강아지 키우시지 않으세요?]

 

아마 계속 옆자리에 있었을 정 비서에게 물어보는 거였음. 그제야 유현이는 정 비서의 핸드폰 배경화면이 말티즈 사진이었다는 걸 떠올림.

 

[키우죠. 왜요, 무슨 일이에요? 진짜 대표님이 강아지를 주우신 거예요?]

[네…. 어린 강아지가 혼자 비를 맞고 있어서 집으로 데려왔대요.]

[아이고야, 세상에…. 또 어떤 천벌 받을 놈이 강아지를 그렇게…. 그래서 대표님 지금 강아지랑 집에 같이 있으시대요? 강아지가 어리다고 했죠?]

[네…. 많이 어린가 봐요. 데려와서 일단 젖은 것만 좀 닦아준 모양인데, 이제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음… 우선 병원에 한 번 데려가 보는 게 좋을 거예요. 비 맞으면서 화단에 있던 애라고 아까 말을 들어서 하는 소린데, 그럼 몸에 진드기 같은 게 있을 수도 있거든요. 그거 잘못하면 러그나 이불에 옮겨갈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야 해요.]

“헉.”

 

설명해주는 정 비서의 목소리가 너무 잘 들려서 가만히 듣고 있던 유현이는 심히 당황했음. 지금 강아지랑 자기가 같이 앉아있는 곳이 바로 거실에 깔아둔 러그 위였기 때문임….

유현이의 당황한 목소리를 들었는지 하진이가 말해왔음.

 

[선배, 죄송한데 잠깐만요. …형, 왜요? 방금 놀라지 않았어요?]

“어, 응…. 나 지금 얘랑 러그 위에 앉아있었거든…. 어쩌지? 우리 여기에 한참 있었는데….”

[아, 얘기 다 들었구나. 근데 아예 스피커폰으로 얘기하는 게 더 편하겠어요. 선배, 그래도 될까요?]

[아, 그럼요!]

 

해서 결국 셋이 이야기하게 됐는데, 정 비서는 우선 러그를 잘 접어서 치워두라고 조언했음. 그리고는 병원에 꼭 데려가서 검진을 해보라고 강조하면서 물어왔음.

 

[그런데 혹시, 직접 키우실 건가요?]

“아… 그건…….”

 

유현이는 자기 앞에서 꼼지락거리는 강아지를 가만히 내려다봤음. 아직 엄청 작고 어린 애지만… 어쨌든 얘는 살아있는 생명체고…. 앞으로 10년은 족히 넘게 살아갈 앤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결정하기에는….

 

“아직… 그것까진 잘 모르겠어요. 내가 강아지를 키워봤으면 모를까, 정말 아무런 경험도 없고 아는 것도 하나도 없어서….”

[역시 우리 대표님, 신중하십니다. 그럼요, 당장 결정할 일은 아니죠. 그런데 제가 이걸 왜 여쭤봤냐면, 그… 요즘엔 ‘임시 보호’라는 게 있거든요. 강아지를 아예 키우는 건 아니고 아이를 데려갈 마땅한 보호자가 정해질 때까지만 임시로 돌봐주는 개념인데, 그렇게 하실 거라면 제가 강아지의 입양처를 구하는 사이트에 글을 한번 올려보겠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마땅한 가족을 찾을 때까지만 데리고 계셔도 충분하니까 너무 걱정하거나 부담은 가지시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아…….”

 

그런 것도 있구나…. 동물에 관심이 하나도 없었던 유현이는 정말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라 놀라웠음. 그런데 그 와중에 하진이가 정 비서에게 물어보는 목소리가 들렸음.

 

[그런데 그 임시 보호라는 걸 한다고 해도 어쨌든 한동안은 같이 살아야 하는 거니까 강아지 먹을 사료나 간식 같은 것도 다 준비해놔야 할 것 같은데, 애견용품 파는 곳 가면 될까요?]

 

그 질문을 들으면서 유현이는 내심 흐뭇했음. 하진이야말로 이번 일이 정말 갑작스럽게 느껴졌을 텐데도 마냥 얼빠져있지 않고 바로 필요한 걸 찾고 알아봐주니까. 역시 우리 예쁜이는 꼼꼼하고 차분하고 섬세하고 똑똑하다고, 매우 흐뭇해했음.

그리고 분홍 코의 어린 강아지는 혼자 낄낄거리고 웃는 유현이를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음. 까만색 눈을 깜빡깜빡, 하면서.

 

[우리 강아지 어릴 때 먹였던 거 알려줄게요. 그런데 저, 대표님, 강아지가 얼마나 어릴까요? 너무 어리면 간식도 아직 안 먹이는 게 좋거든요.]

“아… 그… 내가 강아지를 잘 몰라서요…. 어리긴 어린데 이게 얼마나 어린 건지는 잘…. 혹시 내가 사진을 찍어서 보내면 알아볼 수 있겠어요?”

[네, 그럼 좋죠. 바로 찍어서 보내주십쇼. 사진 보고, 적당히 쓸만한 것들을 제가 하진 씨한테 전달하겠습니다.]

[그럼 형, 선배한테서 듣고, 내가 그것들 사서 바로 들어갈게요. 형 혼자 강아지 케어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둘이 같이해요. 최대한 빨리 갈게요.]

“어, 응…! 근데 너무 급하게는 오지 마! 비도 오니까 조심해서 천천히 와. 강아지는 내가 어떻게든 보고 있을게.”

[네, 형. 걱정하지 말고, 강아지랑 잘 있어 주세요. 혹시 필요한 거 생기면 바로 전화해주고요. 알았죠.]

“응!”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났더니 어느새 마음이 많이 편해져 있었음. 하진이에게 미안하던 것도 완전히 괜찮아졌고, 또 이 생명체를 혼자 책임지는 게 아니라 하진이가 선뜻 같이 책임져주겠다니까 마음이 너무 든든했음.

조금 좋아진 기분으로 유현이는 강아지를 내려다봄. 러그를 당장 잘 접어서 세탁실에 가져다 둔 바람에 맨바닥에 수건을 덮은 채로 앉아있는데, 맨바닥이라 보일러의 따뜻한 기운이 더 잘 느껴지는지 어느새 그 위로 엎드려 누워서 졸린 듯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고 있었음.

유현이는 수건을 살짝 치워서 강아지의 얼굴과 크기가 잘 보이게끔 구도를 잡고 사진을 찍어서 하진에게 보냈음. 하진이는 메시지를 바로 확인했고, 잠시 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린 것 같다는 답장이 돌아왔음. 정 비서의 의견으로는 한 살은커녕, 태어난 지 두 달도 안 된 것 같다고 했음.

태어난 지 두 달도 채 안 됐을 정도로 어린 아기 강아지가 대체 어떤 사연으로 비 내리는 화단에 혼자 나와 있던 걸까.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강아지를 보고 있자니 문득, 아까 들었던 말이 떠올랐음.

 

<그런데 혹시, 직접 키우실 건가요?>

<‘임시 보호’라는 게 있거든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마땅한 가족을 찾을 때까지만 데리고 계셔도,>

 

마땅한 가족…. 임시….

아직 어려서 그런지, 자기가 지금 있는 곳을 너무나 당연히 자기 집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강아지는 굉장히 편하게 누워있었음. 그 모습을 보면서 유현이는 계속 되뇌었음. ‘마땅한 가족’. 그리고 ‘임시’라는 말을.

 

 

 

 

*

 

 

“생각보다도 더 작아요…. 어쩜 이렇게 조그맣죠…?”

“그러게…. 네 앞에 있으니까 애가 더 작아 보이는 것 같다….”

 

하진이가 엄청 심각한 얼굴과 목소리로 물은 말에 유현이는 픽 웃으면서 대답했음. 왜냐면 하진이가 그 조그만 강아지 앞에 무릎까지 꿇고 납작 엎드려서 보고 있었기 때문임…. 하도 거대한 몸집이라 무릎 꿇고 웅크리듯이 엎드려 있어도 엄청 컸고, 덕분에 그 앞의 아기 강아지는 더욱더 작고 가련해 보였음.

 

“새로운 사람이 등장해서 신기한가 봐.”

“그러게요…. 엄청 빤히 보네….”

 

사실 강아지는 두 사람의 예상대로 새로운 사람이 등장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2개월도 채 되지 않은 삶 동안에 이렇게 거대한 인간은 처음 봐서 약간 겁에 질려있는 상태였음. 그러나 강아지 생초보인 두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강아지가 하진이를 너무 빤히 보니까 신기하기만 했음.

 

“안녕-”

 

하진이는 정 비서한테 배운 대로, 손을 주먹 쥔 채로 손등이 보이게끔 내밀어서 인사했음. 그러자 강아지는 흠칫! 하고 놀라는 것 같더니 금세 분홍 코를 킁킁거리며 하진이의 냄새를 맡아줬음.

그걸 빤히 보고 있자니 하진이는 저절로 말하게 됨….

 

“귀엽다….”

“그치? 귀엽지?”

“네…. 엄청 귀엽네요…. 털도 만져보고 싶은데, 벌써 막 만지면 놀라겠죠?”

“내가 아까 수건으로 털 말려줄 땐 아무렇지 않아 보이기는 했는데, 글쎄…. 네 말 듣고 보니 놀랄 것 같기도 하고….”

“혹시 모르니까 참아야겠어요.”

 

그런 말을 너무 비장하게 해서 유현이는 하진이가 참 귀여워 보였음. 그런 것도 모르고 하진이는 비장하고 진지한 얼굴 그대로 허리를 일으키면서 말함. 그런데 무릎은 아직 그대로라 본의 아니게 유현이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였음.

 

“언제부터 굶었을지 모르는 상태니까 일단 밥부터 조금 먹이고 병원 데려가 봐요. 아까 정 선배랑 같이 알아봤는데, 집 근처에 마침 규모도 크고 평도 괜찮은 동물병원이 한 곳 있더라고요.”

“우와…. 그새 병원까지 알아보고 왔어?”

 

난 계속 집에 있었으면서도 병원을 미리 알아볼 생각까지는 전혀 못 했는데…. 정말 너 없으면 난 대체 혼자 어떻게 살까?

감동한 것 같은 얼굴로 유현이가 그렇게 중얼거렸고, 하진이는 씩 웃으면서 대답함.

 

“그런 거 생각 안 해도 돼요. 내가 형 옆에 없을 리는 절대 없으니까.”

 

그렇게 말해주고는 유현이의 두 볼을 감싸서 뽀뽀도 쪽 해주고서 일어남. 어린 강아지들은 사료를 그냥 못 먹고 따뜻한 물에 불려서 줘야 한다면서, 새로 사온 밥그릇을 씻어서 거기다 불려서 오겠다고. 유현이는 그냥 멍하니 고개만 끄덕이다가, 하진이가 새 밥그릇과 사료 봉투를 통째로 들고 주방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림.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내려보니 강아지가 새까만 눈으로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음. 유현이는 자기도 모르게 강아지에게 말함.

 

“…너무 든든하다, 그치.”

 

너는 이제 우리 집에 있는 동안만은, 배고픔이란 걸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될 거야. 내 애인은 끼니 챙기기에 언제나 진심인 남자거든….

라던 유현이의 장담대로, 하진이는 어린 강아지에게 먹이는 것 치고는 상당한 양의 사료를 물렁하게 불려서 나타났음. 처음에는 밥그릇 채로 강아지에게 내주었는데, 냄새를 맡는 걸 보니 관심은 있어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먹으려 하지를 않는 것 같았음. 게다가 몸집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작아서, 하진이가 사온 밥그릇이 좀 커보이는 것 같기도 함.

약간 고민하던 하진이는 잔뜩 불려서 흐물흐물한 상태인 사료를 자기 검지에 살짝 올려서 강아지의 입 앞에 대줌. 강아지는 바로 앞에서 분홍 코를 씰룩거려 냄새를 한참 맡더니, 드디어 혀를 내어 할짝할짝, 사료를 핥기 시작함. 생각처럼 와구와구 먹어주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입에 넣기 시작했으니, 하진이랑 유현이는 살짝 화색이 됨.

 

“식욕이 있나 봐요. 강아지는 정말 아프면 뭘 먹으려고 하지를 않는다던데, 다행이에요.”

“그러게- 너무 다행이다. 이제는 떨지도 않고.”

“아까는 떨었어요?”

“응. 비 많이 맞아서 추웠던 것 같더라.”

“그럼 형이 물기도 잘 닦아주고, 보일러도 따뜻하게 틀어줘서 애가 괜찮은 건가 봐요. 형이 잘 돌봐 줘서.”

“에이…. 뭐 대단한 일을 했다고….”

“얘한테는 대단한 일이죠. 춥고 배고파도 누구한테 말도 못 하고서 거기서 혼자 한참을 떨었는데 형 덕분에 따뜻한 곳에 와서 밥도 조금씩 먹고 있는 거잖아요.”

 

정말 잘한 거예요. 잘 데려왔어요, 형.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강아지는 조금씩 입도 벌려가며 하진이가 떠준 사료를 다 먹음. 또다시 사료를 손가락에 살짝 떠올리면서 하진이가 물음.

 

“그래서 형, 이제 어쩔까요?”

“뭘?”

“얘랑요. 임시 보호만 할지, 아니면….”

“…….”

 

끝까지 말하지는 않았지만, 무슨 뜻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는 말이었음. 유현이는 눈을 살짝 내리깔고 강아지를 가만히 보다가, 일단 물어봄.

 

“너는? 생각해봤어?”

“…생각… 해보기는 했는데요….”

 

하진이는 차분하고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밝혔음.

 

“강아지를… 막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또 싫어하지는 않거든요. 알러지 같은 것도 딱히 없고 그래서… 여건이 된다면 한번 키워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그건 그냥 내 입장이고… 얘 입장에서는 우리가 그다지 좋은 보호자는 아닐 수도 있겠더라고요.”

 

들어보니까 강아지한테 제일 좋은 보호자는, 계속 옆에 같이 있어 줄 수 있는 사람이래요. 보호자가 최대한 오래 같이 있어 주는 게 정말 중요하대요.

 

“정 선배네는 선배 부모님께서 계속 집에 계신다더라고요. 정말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서야 항상 보호자가 같이 있어 줄 수 있고, 집에 혼자 두는 일이 정말 드문 환경이라던데…. 우리는….”

“…우리는 그럴 수가 없지….”

“네…. 낮에는 둘 다 출근해서 집에 없고… 그동안 얘는 이 넓은 집에 혼자서만 있어야 하고…. 그렇다고 우리 중 하나가 일을 그만두고 같이 있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응….”

“그래서… 솔직히, 우리가 얘를 키우겠다고 결정하는 게 정말 맞는 일인지 모르겠어요. 얘를 행복하게 잘 키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정 비서는 강아지 유치원도 요즘엔 좋은 곳들이 많이 생겼고, 그것도 아니면 펫 시터를 이용해보는 방법도 있다고 알려줬지만… 그래도 역시 보호자가 직접 같이 있어 주는 게 가장 좋기는 하다는 말을 강조하듯이 덧붙이기도 했었음.

게다가,

 

“형도 나도 강아지 키운 경험이 전혀 없으니까 많이 서툴 테고…. 그래서 좋은 보호자가 나타난다면 그리로 보내는 게 얘한테는 가장 좋은 일이겠다, 싶었어요.”

 

유현이는 그 말들에 모두 공감했음. 거기에 자신이 했던 생각도 덧붙임.

 

“또 일단 지금은… 얘가 어쩌다 거기에 혼자 있었는지 아직 모르는 상황이잖아. 어쩌면 누가 실수로 잃어버렸을 수도 있는 일이고….”

“그렇죠. 그래서 선배가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아주는 사이트에도 글을 올려보겠다고 했어요.”

“그럼 더더욱, 진짜 보호자가 언젠가는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아직은, 우리가 결정할 때는 아닌 것 같아.”

“그럼 일단은 최대한 잘 돌보고 있다가, 잃어버린 보호자가 나타나든 아니든 뭐라도 가닥이 잡히면 그때 다시 얘기해볼까요?”

“응, 그러자. 시간이 지나면 뭐라도 답이 나오겠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하진이는 꾸준히 자기 손가락에 사료를 찍어서 강아지에게 내주었고, 강아지는 그걸 꾸준히 잘 받아먹었음. 그리고 유현이는 그런 강아지를 약간 멍하게 내려다보며 얘기하고 있었는데,

그때.

 

“어?”

“뭐, 뭐야? 갑자기 왜 이러지?”

 

강아지의 작은 몸이 갑자기 꿀렁이기 시작함. 배 부분이 꿀렁, 꿀렁, 움직이는 것 같더니 결국엔 몸 전체가 꿀렁이면서 입에서도 이상한 소리가 나서 둘은 엄청 당황함.

어쩌지? 정 비서한테 전화를 해봐야 하나? 아니면 검색? 하면서 허둥지둥하던 사이, 강아지가 입을 벌리더니 켁, 하고 방금 먹은 사료를 온통 바닥에 쏟아냄. 그에 유현이는 정말 사색이 됐고, 하진이도 너무 놀라서 잠깐 굳어있다가, 뭔가 이상한 걸 발견함.

 

“이게 뭐지…?”

“뭐야, 벌레야?!”

 

방금 토해낸 사료 잔해들 사이에 뭔가 꿀렁거리는 하얀 실지렁이 같은 것들이 잔뜩 있었음. 유현이는 거의 비명을 질렀고, 하진이는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하고는 재빠르게 일어났음.

 

“형, 빨리 병원부터 가요.”

 

 

 

 

*

 

 

그렇게 약 두 시간쯤 뒤.

 

“…….”

“…….”

 

둘은 맥이 다 빠진 얼굴로 멍하니 차에 앉아있었음. 운전석에 앉은 하진이도, 조수석에 앉은 유현이도 멍한 얼굴로 한참 동안 말이 없는데, 둘 다 똑같은 장면과 목소리를 계속 떠올리고 있었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상태가 정말 좋지 않습니다. 정말 어려워요.]

[화단에 있었을 시간이 얼마나 오래였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시간만 문제였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고요. 그 전에도 아마, 좋지 못한 환경에 계속 있었을 겁니다. 어미한테서 케어도 거의 못 받은 것 같고요…. 그래서 기본적인 영양 상태도 너무 안 좋아요.]

[토사물에서 발견됐다던 건 기생충일 걸로 보이는데, 그건 구충제로 해결할 수 있지만… 아이의 전반적인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고요…. 뭣보다 지금, 홍역이 좀 의심되기도 하는데 이건 다 큰 강아지한테도 치명적이라….]

 

그 말까지 들었을 때, 하진이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뭔가를 물어보려다가 그만두었음. 차마 끝까지 말할 수가 없어서 “그럼….” 이라는 말밖에 못 했는데, 의사는 뭘 묻고 싶어하는지를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음.

 

[예. 마음의 준비를… 어느 정도는 하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유현이는 자기 무릎을 내려다봄. 조금 전에 병원으로 올 때, 힘이 다 빠져서 축 늘어진 강아지가 누워있던 자리였음. 춥지 말라고 애를 돌돌 싸맸던 담요도 계속 만지작거렸음.

설마 그런 엄청난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음. 둘은 강아지의 건강이 당연히 양호한 상태일 거라고만 생각했고, 그래서 너무나 당연히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거라고…. 그래서 이 강아지를 입양 보낼지 말지 미래의 문제만 생각했는데, 설마 목숨조차 부지하기 어려워 미래는커녕 현재조차 장담할 수 없는… 그렇게나 안 좋은 상태일 줄은 몰랐어서 충격이 너무 컸음….

좀 전에 품에 안았던 그 강아지가 곧… 잘못될지도 모른다니. 이게 말이 되나? 그래도… 식욕도 있는 상태였는데.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밥도 조금이나마 먹던 앤데…….

 

“형.”

 

그때, 하진이가 약간 잠긴 목소리로 불러왔음. 유현이가 얼른 돌아보니까, 하진이의 표정은 왠지 좀 단호해 보였음.

 

“우리 다시 가서, 제대로 얘기하고 와요. 치료… 최대한 노력해 달라고.”

“…응?”

 

좀 전에, 일단 아이가 상태가 너무 안 좋으니 병원에 입원부터 시키고 계속 지켜봐야겠다고 의사가 내린 결론만 듣고서 둘은 너무 놀라고 당황한 나머지 별말 없이 그대로 나와 버렸었음.

 

“아무리 생각해도 일단은 살리고 봐야겠어요. 분명히 밥을 먹으려고도 했고… 내가 인사하니까 냄새도 열심히 맡던 애고….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도와주기만 하면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아니, 어떻게든 살리고 싶어요….”

 

하진이는 강아지에게 인사를 하고, 자기 손으로 직접 밥을 떠주던 그 순간이 도저히 떨쳐지지가 않았음. 잠깐이었어도 분명히 교감을 나눴고, 하진이에게 강아지와의 교감은 살면서 그 순간이 처음이었음. 하진이에게는 그 강아지가 인생의 첫 강아지라고 말해도 무방했음. 앞으로 그 강아지를 직접 키우게 되든 아니든, 하진이의 기억에 그 순간은 아주 오래도록 남게 될 것임을 직감했음.

그러자니 도저히, 이대로 둘 수가 없었음.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지 않으면 분명 계속 후회하게 될 것 같았음.

 

“그러니까 다시 가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 달라고 얘기 제대로 하고 와요. 아마 비용 문제 때문에, 보호자가 해달라고 요청하지 않으면 병원에서 마음대로 치료를 다 해주지는 못할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 비용 다 대겠다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 달라고 하고 싶어요.”

 

형이 안 내킨다면 비용 다 내가 낼게요. 그러니까,

까지 말이 이어졌을 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현이가 바로 고개를 끄덕임.

 

“그러자. 그리고 비용은 내가 낼게. 내가 데려온 애니까.”

“…형….”

“여기서 할 수 없을 것 같다면 다른 더 큰 병원을 찾아가기라도 해보자. 네 말이 맞아. 일단 살려두기는 해야겠어. 나중에 누가 키우게 되든 간에.”

 

그리고 유현이도 생각이 비슷했음. 유현이도 화단에 있던 강아지랑 눈이 마주쳤던 그 첫 순간이 도저히 떨쳐지지 않았고, 강아지의 젖은 털을 말려주면서 스쳤던 강아지의 온기나 맥박 같은 것이 계속 생각나고… 그게 어쩌면 곧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니 믿어지지가 않았음.

그래서 마음이 자꾸 찝찝했음. 이대로 돌아서면 안 될 것 같고.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고. 그러나 대체 자기가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서 답답하던 참이었는데 하진이가 방금 답을 내줌. 직접 치료를 해줄 수는 없으니, 대신 될 수 있는 한 모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 그 정도야 얼마든지 가능했음.

 

“다시 가보자.”

“네, 형.”

 

그렇게 둘은 다시 병원에 가서, 다시 의사를 만나서 제대로 얘기하고 옴. 할 수 있는 치료가 얼마나 있는지. 만약 시도가 가능한 치료가 있다면 비용은 얼마가 들든 아무런 상관없이 우리가 다 댈 테니까 뭐든 다 해달라고. 상황이 어렵다니 무조건, 무슨 일이 있어도 살리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일단 최선은 다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그리고 의사는 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심각한 표정으로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워낙 어려서 가능성이 높다고는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만, 일단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아이가 잘 버텨주길 바라죠.”

 

거기에 유현이는 확신조로 대답함.

 

“아이는 분명 잘 버틸 거예요. 그러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그렇게 의사와의 상담을 마무리하고서 둘은 잠깐 아이를 만났음. 병원의 입원실, 투명한 문으로 된 작은 칸에 들어간 아이는 정말 너무 작아 보였음.

좀 전에 잔뜩 토한 여파로 아직 기운이 없는 아이를 둘은 가만히 들여다봤음. 그러다 유현이가 투명한 문을 톡톡, 두드리듯 만지면서 속삭임.

 

“금방 또 올 테니까, 치료 잘 받고 있어. 치료 잘 받고, 건강해지고 나면 밥 더 많이 줄게.”

 

그러니까 꼭, 같이 집에 다시 가자.

그렇게 중얼거리는 유현이를 하진이는 가만히 돌아봤고, 안에 가만히 누운 채로 강아지도 빤히 바라봤음. 그 까맣고 맑은 눈동자를 보면서 유현이는 좋은 느낌을 받음.

 

“…살 수 있어. 분명 건강해질 거야. 이런 모습은 생각도 안 날 만큼….”

 

그 말에 하진이는 당연하다는 듯 바로 대답했음.

 

“네. 형의 느낌이 그렇다면, 무조건 그렇게 될 거예요.”

 

그렇게 둘은 강아지를 병원에 둔 채 둘만 집으로 돌아왔음. 그러자 토한 것만 대충 치우고 뛰쳐나갔던 바람에 강아지가 먹던 사료와 밥그릇, 강아지를 닦아준 수건이 바닥에 그대로 놓인 것이 보임. 게다가,

 

“이런 것도 사왔었어?”

“네…. 강아지도 자기 공간이 필요하다길래….”

 

하진이가 가져온 커다란 봉투 속에는 강아지용 침대와 이불, 그리고 솜으로 된 고기 모양의 인형과 이갈이용으로 만들어진 다소 딱딱한 밧줄 모양의 장난감이 들어있었음.

그걸 하나하나 만져보면서 한참 앉아있던 유현이가 갑자기 물었음.

 

“정 비서님 말이야. 그거 글… 올리셨대?”

“어떤 거요? 보호자 찾는 글?”

“응, 그거랑… 그… 입양처 찾는 거….”

“우선은 보호자 찾는 글만 올렸다고 아까 연락 왔어요. 입양처 찾는 건 보호자 찾는 글로 연락이 오는지부터 지켜보고서 좀 나중에 올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구나….”

 

유현이는 계속 고기 모양의 솜 인형을 만지작거림. 뭔가 망설이고 있는 티가 나서 가만히 바라보던 하진이가 조용히 한번 웃더니, 먼저 물어줌.

 

“입양처 찾는 글은… 올리지 말라고 할까요?”

“어?”

 

유현이는 지금 진심으로 놀랐음. 딱 저렇게 물을까 말까, 그래도 되나, 계속 고민 중이었는데 그 말이 그대로 하진이한테서 불쑥 튀어나왔으니까.

너무 놀란 게 빤히 보이는 얼굴을 부드럽게 만져주면서 하진이가 또 작게 웃음. 이럴 때 보면 우리 형, 은근히 정이 많구나.

 

“만약 누군가가 잃어버린 강아지라서 그 본래의 보호자가 찾으러 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냥, 우리가 계속 데리고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벌써 정이 이렇게나 들었잖아요. 계속 생각나죠? 벌써 보고 싶고.”

“……응….”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게 귀여워서, 하진이는 옆에 꼭 붙어 앉으면서 볼에 입 쪽쪽 맞춰줌. 그리고는 손도 꽉 잡아주면서 다시 말함.

 

“보호자가 안 나타나면, 우리가 보호자 해요.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최대한 좋은 보호자 되어봐요.”

 

눈으로는 진작 그러자고 대답했는데, 입으로는 차마 그러지 못하고서 유현이가 작게 물어봄.

 

“…그럼… 우리 출근해 있는 동안 애 혼자 있어야 하는 문제는 어떻게 하고…?”

“방법을 찾아봐야죠. 이 나라 모든 견주들이 다 백수여서 계속 강아지랑 같이 있어 주는 건 아닐 테고 아마 나름의 방법들이 있을 테니까, 우리도 우리만의 방법을 찾아보면 뭐라도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정 안 되면 뭐….

 

“어차피 형 사무실은 형 혼자 쓰고, 형 허락 없으면 아무도 못 들어가잖아요? 거기에 몰래 숨겨서라도 우리가 계속 데리고 있는 방법도 있을 거고-”

“아니면- 이 기회에 아예 So건설을 반려견 동반 출근이 가능한 회사로 바꿔버려-?”

“그것도 방법이죠.”

 

당최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가 없는 대화였으나, 그런 말을 하면서 둘은 너무 환하게 웃고 있었음. 어쨌든 뭐라도 방법을 찾아보는 걸로 의견을 맞추고, 둘은 그렇게 결심함. 오늘 만난 그 강아지를 가족으로 들이겠다고. 직접 책임지겠다고.

 

“그럼 이름도 지어줘야겠네?”

“그쵸.”

 

안 그래도 오늘 병원에 갔을 때는 아이의 이름이 아직 없고, 혹시나 있었더라도 두 사람이 알 수가 없었으니 그냥 보호자로 하진의 이름만 올려둬야 했었음. 그때도 괜히 마음이 쓰이고 속상했는데, 이젠 이름을 붙여줄 수 있게 됨.

 

“이름 지어서 내일 병원 또 가봐요. 애한테, 우리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하니까.”

“그런 이유라면 다 나아서 퇴원할 때까지 매일 한 번씩은 꼭 가야겠는데?”

“음… 그럼 병원 분들 드실만한 거 가볍게라도 좀 사 갈까요? 마실 거랑 가벼운 디저트 같은 거요.”

“오, 좋은 생각이야. 안 그래도 보호자가 매일같이 가도 괜찮나, 싶었는데 그런 거라도 챙겨 가면 좀 낫겠지.”

 

하여간 우리 이 비서- 아주 꼼꼼해-

뿌듯하게 웃으며 유현이가 하진이 머리를 토닥토닥함. 기분 좋게 샐샐 웃으면서 하진이가 다시 이름 얘기를 꺼냈음.

 

“그래서 이름은 뭘로 지을까요? 방금 생각났는데, 예삐랑 비슷하게 지으면 좋을 것 같아요. 돌림자 써서.”

“돌림자씩이나?”

 

그 ‘예삐’가 누구인지 모를 리가 없는 유현이는 푸핫! 하고 진심으로 웃기다는 듯이 웃었는데, 하진이는 한없이 진지했음.

 

“왜요? 예삐의 동생이니까 돌림자 쓰면 좋잖아요.”

“뭐? 아니, 잠깐만.”

 

이제는 유현이도 엄청 진지한 얼굴이 돼서는 진심으로 따짐.

 

“내가 왜 걔 형이야? 형이 아니라 아빠지, 걔는 내 자식이고!”

“네, 형은 아빠가 맞죠. 예삐가 그 애의 형인 거고.”

“…….”

 

말은 딱히 없지만, 솔깃하고 있는 게 표정으로 다 보였음. 하진이는 씩 웃으면서 입술에 쪽! 경쾌하게 뽀뽀해주는 걸로 작은 논란을 마무리한 뒤, 자연스럽게 화제를 본론으로 돌림.

 

“‘삐’ 자를 돌림자로 쓰면 좋을 것 같아요. 귀엽게.”

“…삐?”

“네. 뽀삐 같은 걸로.”

“뽀삐?!”

 

푸학! 유현이는 진짜 뒤로 넘어갈 정도로 크게 웃어버림. 그러나 하진이는 또 진지한 얼굴이었음….

 

“그거 화장지 이름 아냐?!”

“그냥 예를 든 거예요. 생각난 게 뽀삐 밖에 없어서요.”

“아- 너무 웃겨. 무슨 80년대 강아지 이름 같아.”

“…강아지 이름에도 그런 유행이 있어요?”

“있지! 요즘엔 강아지 이름을 백구, 바둑이 이런 걸로 짓지는 않잖아!”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하진이 제안한 ‘삐’ 자 돌림의 이름으로는 뽀삐밖에는 떠오르는 게 없었음…. 아무래도 뽀삐의 충격이 너무 강렬했던 것 같았음.

 

“…….”

“형, 이제 그만 인정해요.”

“뭘?”

“뽀삐로 마음 기울어졌잖아요.”

“……아니거든.”

“스읍. 거짓말하면 혼나요.”

“아! 젠장! 진짜 뽀삐밖에 안 떠올라! 생각이 다 뽀삐한테 먹혔어!”

 

안 돼…. 엄청 귀엽고 예쁘게 생긴 강아지였는데 화장지 같은 이름을 붙여줄 수는 없다고…!

라며 유현은 좀 더 머리를 굴려봤지만,

 

“……그래….”

“결정했어요?”

“응…. 뽀삐로 하자….”

 

결국 뽀삐의 임팩트에 굴복하고 말았음. 그렇게 강아지의 이름은 뽀삐로 결정됨….

 

“아… 그냥 예삐랑 돌림자를 포기하면 되는 건데 그건 또 절대 못 하겠네….”

“이제 미련을 버려요, 형. 뽀삐도 아마 좋아할 거예요.”

“…하, 또 이렇게 들으니까 너무 찰떡이기는 해. 자꾸 들으니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그쵸? 원래 이렇게 얻어걸리는 게 가장 좋더라고요.”

“그래…. 그런 것 같다….”

 

그렇게 다음날. 커피와 케이크를 들고 병원에 찾아간 둘은 당당하게 뽀삐로 이름을 올려둔 뒤, 의사를 만나 상황을 전해 들으면서 아이가 나아서 퇴원할 때까지 아이를 찾는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보호자가 되어 평생을 책임지기로 결정했다는 소식도 알렸음. 의사는 잘 생각하셨다고 칭찬해주면서, 벌써 아이를 살리기 위한 열정을 그렇게 보이시는 걸 보니 분명 좋은 보호자가 되실 거라고, 그러니 자기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야기함.

그리고 어제보다는 컨디션이 더 나아 보이는 아이를 만났을 때, 둘은 웃으면서 아이의 이름을 여러 번이나 불러줌.

 

“뽀삐야- 뽀삐야, 이제 네 이름은 뽀삐다-”

“뽀삐야, 얼른 나아서 나와. 같이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먹자-”

 

그리고 어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뽀삐의 꼬리가 그날부터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다다음날이 되었을 땐 둘이 들어오는 걸 보자마자 크게 흔들렸음. 둘은 그걸 좋은 신호로 여기고, 뽀삐가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얻음.

그러나,

 

“……그래서 지금 상태는요?”

[일단 정말 위험하던 고비는 겨우 넘겼습니다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아마 오늘 하루 전체가 쭉 고비일… 듯해요….]

 

새로 만난 아빠들에게 확신을 안겨줬던 뽀삐는 그날 밤, 상태가 급격하게 너무 안 좋아져 밤새 긴급 치료를 받았다고 했음. 그러나 상황을 전하는 의사의 목소리는 너무나 어두웠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또 나왔음.

이른 아침에 소식을 들은 아빠들은 오늘만은 출근 전에 뽀삐를 찾아감.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어쩌면 오늘 저녁에는… 뽀삐를 만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에 도저히 보러 가지 않을 수가 없었음.

오늘 하루 내내 고비를 넘어야 한다던 뽀삐는 정말, 전날의 활기차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축 늘어진 상태였음…. 그러나 조그만 장 안에서 힘없이 늘어진 채로도 뽀삐는 아빠들이 들어오자 바로 알아봤는지, 꼬리를 살짝 흔들었음. 그에 유현이는 바로 눈이 그렁그렁해졌지만, 뽀삐의 앞에서는 어떻게든 웃었음.

 

“뽀삐야아- 오늘은 아빠들이 아침에도 왔어…. 아침부터 뽀삐가 너무 보고 싶었거든-”

 

그렇게 말하는 유현이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서, 옆에 선 하진이도 울컥하는 걸 견디기가 너무 어려웠음. 그러나 꾹 참아내고, 하진이도 같이 뽀삐한테 환하게 웃어줬음.

 

“건강하게 나아서 아빠들 집으로 가면, 그땐 매일매일, 오래오래 같이 있을 수 있어.”

“맞아- 그러니까 얼른 나아서 아빠들이랑 집에 가자- 뽀삐 가지고 놀 장난감도 잔뜩 있어-”

“다시는 이렇게 아플 일 없게 해줄게. 아빠들이 뽀삐 건강하게 지켜줄게. 그러니까 꼭 같이 가서 살자. 알았지.”

 

아빠들의 말을 들으면서 뽀삐는 한순간도 눈을 다른 쪽으로 돌리지 않고 아빠들만 빤히 봤음. 그걸 보며 아빠들은 오히려 뽀삐에게서 위로를 받은 듯한 기분이 됐음. 꼭 자긴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고… 잘해보겠다고 약속해주는 것 같았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겨 회사에 가기는 했는데, 둘 다 일이 전혀 손에 안 잡혀서 애먹음. 하진이는 핸드폰을 수시로 계속 확인하고, 유현이는 멍하게 허공을 보고 있는 일이 잦았음. 점심도 깨작깨작 먹고, 하루종일 약간 나사가 빠진 사람들처럼 상태가 좋지 않았음.

그러다 퇴근 시간을 앞뒀을 때, 병원 번호로 전화가 옴. 하진이는 눈 질끈 감고 잔뜩 긴장한 채로 받았는데,

 

[보호자님! 뽀삐 상태가 좋아졌어요!]

“네…? 정말요?!”

[예! 고비를 확실히 넘겼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좋아졌어요!]

 

라는 희소식이 들렸고, 뽀삐는 그로부터 딱 닷새 뒤.

 

“뽀삐야- 아빠들 말 잘 듣고- 밥도 잘 먹고, 잘 지내라- 다음에 접종 때 보자-”

 

두꺼운 담요로 돌돌 감긴 채 유현이의 품에 안겨서 의사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게 됐음. 건강을 되찾아서 당당하게 하는 퇴원으로, 한눈에 보기에도 상태가 처음보다 훨씬, 훨씬 더 좋아 보였음.

아빠들은 의사에게 허리까지 숙여가며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함. 의사는 아이가 잘해준 거지 자기는 크게 한 일이 없으니 그러지 마시라고, 이제 가셔서 아이랑 행복하게 지내시라고,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해줌. 아빠들은 앞으로 이 병원에 아예 뼈를 묻으리라 다짐했음. 병원이 갑자기 제주도로 이사를 간다면 거기까지도 따라갈 의향이 너무나도 있을 정도로.

어쨌든 아빠들은 너무 환한 얼굴로, 담요로 아주 답답할 정도로 꽁꽁 싸맨 뽀삐를 데리고 나왔음.

 

“뽀삐야- 이제 집에 가자-”

“이제부턴 아빠들이랑 오래오래 같이 사는 거야-”

 

뽀삐가 고비를 넘기고 건강을 되찾는 동안, 자신이 그 강아지를 잃어버린 보호자라는 연락은 단 한 통도 오지 않았음. 그러나 하진이와 유현이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기며 뽀삐를 가족으로 맞이할 준비를 착실히, 차곡차곡 해두었음. 강아지용 치약, 칫솔, 그리고 강아지 샴푸와 린스, 타올 등 뽀삐가 앞으로 생활하면서 쓰게 될 필수품들을 사놓는 일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고, 바로 어제였던 토요일에는 강아지 훈련사를 만나 자문을 구하기도 했음. 반려견 상식 관련 책은 뽀삐가 고비를 넘긴 날 퇴근길에 바로 사서 이미 둘 다 읽은 뒤였음. 게다가 앞으로 아빠들이 출근해 있는 동안 집을 방문하여 뽀삐를 돌봐 줄, 믿을 만한 펫시터도 다 구해뒀음.

그렇게 만반의 준비가 다 되어있는 집으로 뽀삐는 아빠들과 함께 돌아감. 이제는 유현이의 무릎 위에 축 늘어져 있지도 않고 꼿꼿하게 앉아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수시로 운전석의 아빠와 자길 안은 조수석의 아빠를 돌아보면서 밝은 얼굴이었음. 아빠들도 마찬가지로 너무 밝은 표정이라, 차 안이 온통 밝았음.

 

“근데 얘… 뽀삐 이름이 진짜 마음에 드나 봐. 자꾸 부르는데도 표정이 나빠지지를 않네.”

“거봐요. 좋아할 거라고 했잖아요.”

“그러게- 그때 너무 비웃어서 미안-”

“하나도 안 미안해하는 말투 같지만 네- 사과는 받아들일게요.”

"뉘에뉘에, 고맙습니다아-"

"고마우면 신호 걸린 김에 뽀뽀."

"그래, 뽀뽀- 뽀삐도 뽀뽀-"

"뽀삐, 아빠한테 뽀뽀-"



 

 

 

-2편에서 계속

BL작가 이하진입니다~ 달콤하고 행복한 글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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