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녤윙단 비정기 전력 '강 경비 X 괴도 윙크' 지훈이 시점 외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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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근본 아고물

* 의식의 흐름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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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내가 이 건물을 밥 먹듯 드나들던 이유는 원래 지하에 있는 피시방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 인생에서 가장 태평한 한때라는 '수능 끝난 고삼'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학교는 느지막이 갔다가 점심 먹기 전에 끝이 난다. 아홉시에 가서 열 두시에 보낼 거면 대체 왜 오라고 하는거야?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학교는 점심 때쯤 하여 일찍 마쳤고, 나는 가방도 없이 교복만 입은 채로 피시방을 향해 어슬렁 어슬렁 걸어가고 있었더랬다. 요즘 배그에 빠져서 하루가 멀다하고 들락거려서 피시방 건물 경비 아저씨들 얼굴을 다 외울 정도였는데, 지나가다 보니까 경비실 앞에 못보던 남자가 서 있는 거였다.


 파란 경비복을 입고 같은 색의 파란 모자는 손에 든 채, 머리를 탈탈 털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먼저 보였다. 와, 저 아저씨 뭐야... 경비원 코스프레 하는 모델 아니야? 끝없이 긴 두 다리와 딱 벌어진 어깨에 나는 입을 헤 벌리고 감탄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 사람이 뒤를 홱 도는 바람에 놀래서 호다닥 차 뒤로 몸을 숨겼다. 왜 숨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숨고 봤다.


 찰나의 순간 본 그의 얼굴은 하얀 멍멍이 같았다. 피지컬이랑 상반되는 순둥한 얼굴. 근데 또 얼굴선은 뾰족하고 날카로워서 오묘했다. 간첩마냥 봉고차 뒤에 숨어서 실눈까지 뜨고 그 하얀 얼굴을 감상하고 있으려니까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 혹시 처런 취향이었나? 며칠간 건물을 드나들며 내가 나도 모르게 눈으로 그 아저씨만 쫓는 것을 깨달은 순간 인정했다. 배그보다 나를 부지런하게 만든 사람이 생긴 것이다.

 

 그래, 스물을 목전에 둔 19.9세 나 박지훈은 그 건물 새로 온 젊은 경비아저씨에게 첫눈에 반했다.







강 경비 X 괴도 윙크

w. 백화

 

 

 

 



 <관찰 3일차>

 

 나는 그냥 아침에 아저씨가 몇 시에 출근하는지가 궁금했다.

 

 학교는 아홉시까지만 가면 되지만 오늘은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왔다. 일곱시에 자전거 끌고 나왔으니까 사실 너무 일찍 나오긴 했다. 원체 잠이 많은 편이라 수능 보기 전에도 이렇게 일찍 등교한 적은 없었는데. 강다니엘 경비아저씨 렬루 대단한 새럼. 어제 아저씨 이름도 알아냈다. 히힛.


 사실 내가 그래서 오늘 자전거를 가지고 나온 거다. 내 이름 떡하니 써 있는 자전거 경비실 앞에 대 놓으면 아저씨도 내 이름 알아주겠지? 아아아아 관심 받고 싶다... 일부러 경비실 문 바로 앞에다가 자전거를 대고 뒷바퀴를 자물쇠로 잠갔다. 그리곤 호다닥 숨어서 아저씨가 언제 오는지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서 훤칠한 그 사람이 휘적휘적 출근하는 게 보인다. 아침이라 부스스해 보이는데 경비원 유니폼 안 입은 모습은 처음 본다. 그냥 사복 입고 있으니까 더 어려보이네. 그냥 대학생 형 같다. 존나 멋있어 시발.... 헉, 지금 아저씨가 내 자전거를 발견하곤 허리를 숙여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아마 내 이름 보고 있는 것 같다. 으아아, 거기까지 보고 가슴이 뻐렁쳐서 파닥거리면서 학교로 도망쳤다.

 






 

 


 

 <관찰 5일차>

 

 우씨, 예상은 했지만 자전거 작전이 별 소득이 없었다.

 

 그래두 얼굴은 한번 보고 학교 가려고 조금 일찍 나왔다. 근데 또 너무 일찍 갔는지 아저씨는 아직 출근 전이었다. 불 꺼진 경비실 앞을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며 운동화 끝으로 땅만 툭툭 차고 있는데, 경비실 문이 지 혼자 끼익 하고 열렸다. 아씨, 놀래 자빠질 뻔 했다. 문 고장난 건가? 처음엔 그냥 밖에서만 살짝 들여다봐야지 했는데 어디서 솟은 용기였는지 어느새 살그머니 안으로 발을 들여버렸다.

 

 오, 경비실 내부가 의외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다른 아저씨들두 다 같이 쓰시니까 깨끗하게 해둔 건가. 어스름한 아침 햇빛이 조그만 경비실 안을 비춘다. 깨끗한 책상 밑에 파란 슬리퍼 한 쌍이 나란히 놓여있는 걸 발견했는데 아... 매직으로 위에 '강다니엘꺼'라고 써 있다. 그냥 이름 써 있는 게 뭐라고 그게 너무 귀엽고 웃겨서 주먹 울음이 자동으로 나왔다. 엉엉 이 아저씨 뭐야. 존나 귀여워. 귀여우니까 놀리고 싶어.... 장난치고 싶다.....

 

 가방을 뒤져 노란 포스트잇을 꺼냈다. '바보'라고 적은 다음에 한쪽 슬리퍼 바닥에 붙이고는 경비실 구석에 있는 간이 침대 밑에다가 숨겼다. 아, 자꾸 웃음이 나온다. 누가 오기 전에 이제 얼른 가야겠어서 후다닥 경비실을 나와 학교로 향했다. 몇 걸음 걷다가 나는 다시 경비실로 발걸음을 돌려 쪼르르 돌아왔다. 그리곤 다시 포스트잇을 떼어내 바보 양 옆으로 하트를 하나씩 추가했다. 

 

 '♡바보♡'

 

 아아, 만족스러워. 유치한 거 알지만 그저 장난이 치고 싶어서 이러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저 하트들이 아저씨한테 알려줬으면 좋겠다. 헤헤. 이제 학교 가야지! 룰루.

 

 

 

 







 <관찰 8일차>

 

 후, 일단 피시방으로 도망왔다.

 

 나는 그냥 진짜 주머니에 있던 초콜릿이랑 사탕만 두고 나올 작정이었다. 진짜다. 아저씨네 갈비가 그렇게 맛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 ㅠㅠㅠㅠㅠㅠ 망했다. 아저씨 미안... 내가 진짜 미안.....

 

 

 

 







 <관찰 10일차>

 

 오늘은 내가 아저씨 도시락 뻇어먹은 거 미안하기두 하고 해서 집 냉장고에 있는 음료수 몇 병을 긁어왔다.

 

 들키면 엄마한테 등짝 맞을 거 알지만 아빠 드시는 홍삼즙도 하나 챙겼다. 그리고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포카리스웨트도 한 캔 샀다. 저번에 보니까 경비실에 조그만 미니 냉장고가 있길래 거기에 몰래 넣어두고 갈 생각이다. 근데 이놈의 경비실 문은 잠겨 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고맙게시리. 히히.

 

 두리번거리며 조심조심 냉장고를 열었더니 김치가 들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조그만 반찬통이랑 파란 맥주 여섯캔 세트가 덜렁 들어있다. 그걸 보는데 왠지 심통이 났다. 아 지짜 내가 이렇게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맥주캔 묶음을 슬쩍 꺼내고 거기에 내가 가져온 음료수들을 예쁘게 차곡차곡 넣었다. 그대로 냉장고 문을 닫으려다가 이제는 항상 가방에 넣어다니는 노란 포스트잇을 또 꺼냈다.

 

 '몸에 안 좋은 맥주는 내가 가져간다. ♡괴도 윙크♡'

 

 아, 내가 봐도 나 너무 귀여워. 아저씨 설마 화내진 않겠지..? 맥주 말고 이런 거 마셔야 만수무강하지. 부디 내가 으른이 될 때까지 건강하세요, 경비아저씨. 이건 며칠 있다가 나 스무살 되면 돌려줄게요. 그때 같이 마십시다! 헤헤.

 

 

 

 

 






 <관찰 14일차>

 

 아 어떡하지. 아저씨 증명사진을 통째로 들고 와 버렸다.

 

 아니 진짜로 처음부터 몽땅 훔쳐 올 생각은 아니었고 진짜 딱 한 장만 꺼내오려고 했는데 경비실로 누가 오는 것 같은 인기척이 들리는 거다. 그래서 놀라는 바람에... 봉투 째로 홀랑 들고 와 버렸다. 잉잉. 어쩌지. 집에 돌아와 물끄러미 사진을 바라보다가 너무 잘생겨서 우선 핸드폰 뒤에 한 장 붙였다. 그러자 온갖 걱정이 사라지고 마음 속에 평화만이 남았다.

 

아, 몰라 일단 존나 잘생겼어. 내일 다시 생각하자.

 

 

 

 







 <관찰 16일차>

 

 아무래도 증명사진을 통째로 들고 튄 게 미안해서 (핸드폰에 붙인 한 장은 빼고) 다시 갖다 놓으려고 요즘 맨날 기회를 살피는 중이다.

 

 근데 아까 낮에 핸드폰하는 척 하면서 아저씨가 건물 앞에서 빗자루질 하는 거 훔쳐보는데 파란 경비복이 꼬질꼬질... 카라도 꾸깃꾸깃... 그걸 보는 지후니 맘도 꾸깃꾸깃.... 안되겠다 싶어서 깜깜한 밤이 된 지금 ★강 경비아저씨 유니폼 빨아다주기★ 미션을 하러 몰래 다시 왔다. 오늘도 역시나 잠겨있지 않은 경비실 문을 살그머니 열고 들어가 가슴팍에 '강다니엘(아, 새삼 이름도 존나 멋져 시발)'이라고 써 있는 옷을 호다닥 챙겨 나왔다. 놀라지 말아요. 아저씨! 내가 이거 뽀송뽀송하게 빨아다 주께!!!

 

 아, 맞다. 근데 나 증명사진도 도로 놓고 오려고 했는데 까먹고 또 옷만 홀랑 들고 왔다. 이상하게 자꾸 뭘 훔쳐오게 되네. 하하. 사랑에 빠지면 바보가 된다더니. 아이쿠, 귀여운 박지훈! 바보 박지훈! 헤헤헤.

 

병신.....

 

 

 

 

 






 <관찰 17일차>

 

 아저씨 옷을 일단 집으로 들고 오긴 했는데 손빨래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우리 엄마 첫째 딸한테 전화를 걸었다.

 

 "누나."

 "왜 전화질이야."

 "손빨래 할 때 세제 뭐 넣는거야?"

 ".....니가 손빨래 할 일이 뭐가 있는데."

 "아, 몰라도 돼. 그냥 좀 알려줘."

 ".....욕실 샴푸 옆에 있는 거. 분홍색 통."

 "오케. 땡큐."

 "야."

 "엉?"

 "혈기 왕성한 건 알겠는데,"

 ".....?"

 "작작해라. 뼈 삭는다."

 

 아씨, 뭐래!!!!!! 뭔가 단단히 오해 산 걸 알았지만 바쁘니까 일단 핸드폰은 소파에 던지고 욕실로 들어왔다. 대야에 물을 받아서 누나가 말해 준 세제를 풀고 조물조물 손빨래를 시작했다. 깨끗해질 때까지 몇 번이고 뽀득뽀득 비벼가며 정성스레 빨았다. 다 하구 나서는 베란다에 나가서 엄마가 빨래할 때마다 넣는 섬유 유연제도 가지고 와서 쪼르륵 넣고 헹궜다. 이제 아저씨 옷이랑 내 교복 셔츠랑 똑같은 향기가 날 거다. 헤헤.

 

 물기를 꼭 짜서 어느 정도 말린 옷을 엄마 어깨 너머 배운 다림질로 조심조심 다렸다. 아, 생애 처음 손빨래+다림질 콤보를 이뤄낸 장한 박지훈. 옷걸이에 걸린 파란 옷을 한참 뿌듯하게 바라보다가 '강다니엘' 이름이 수 놓아져 있는 가슴 주머니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 사탕을 하나 넣었다.

 

왠지 이제 아저씨가 나를 알아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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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내 착각이었다. 시발!

 

 내가 그렇게 지 주위를 맴돌았는데 모르는 척 하는 건지 둔한 건지 알아보기는커녕 나한테 눈길도 안 준다. 지짜 너무하네! 눈치는 드럽게 없고 잘생기기만 한 저 아저씨가 다른 경비 아저씨들하고 신나게 점심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심통이 나서 휙 돌아섰다. 요새는 배그도 재미 없다. 하릴 없이 건물 근처만 빙빙 돌다가 주차장 쪽까지 왔다. 우울한 음악이나 들으면서 감정 좀 잡아볼까 하고 이어폰을 찾는데, 가방 속에서 까만 매직을 발견했다. 홀리듯 꺼내 주차장에 붙어 있던 안내문에 끄적끄적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시방 나는 이제 한 마리 삐뚤어진 짐승이여.

 

 숭구리 당당 숭당당.. 아무 생각 없이 서서 낙서 중인데 멀리서 누가 야!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뒷목에 소름이 오소소 돋으면서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본 적은 없지만 저건 분명... 아저씨 목소리다. 깜짝 놀라서 호다닥 도망가려는데 어느새 그 긴 다리로 휘적휘적 달려 온 아저씨에게 목덜미를 붙잡혔다. 으앗, 놓으라고 낑낑대는데 이 아저씨, 들은 척도 안 한다. 일부러 꽥꽥 더 소리를 질렀다. 놓고 말해요!!!! 아 지짜!!!!!!

 

 니 여서 뭐했노. 그가 내 쪽으로 허리를 숙이며 얼굴을 들이미는 통에 고개를 돌려버렸다. 볼따구랑 귀에서 불이 난 느낌이 난다. 이 와중에 목소리랑 사투리.... 멋있고 지랄이야..... 나는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아저씨랑 첫 대화를 하게 되었고 정체(괴도 윙크..)를 들키고 말았다. 다행히 아저씨가 내가 한 낙서를 보고 웃음이 터지는 바람에 (대체 뭐가 웃긴지 나는 모른다. 이 사람 웃음 장벽 일미리 정도 되는 듯) 정신 없는 틈을 타 내 번호까지 손바닥에 적어주고 호다닥 도망쳐 왔다. 나이스. 근데 아저씨가 내 손목 잡은 거 실화냐.... 나는 여유 넘치는 척 호기롭게 돌아섰지만 집에 오는 내내 뻐렁치는 심장이 주체가 안 됐다. 횡단보도를 건너다가는 스텝이 꼬여 한 번 넘어질 뻔도 했다.

 

 근데 이 아저씨는 왜 밤이 되도록 연락이 없지. 역시 내 번호를 알려줄 게 아니라 아저씨 번호를 어떻게든 받아왔어야 했나. 흑흑. 아무튼 그 이후 나는 괜히 쫄아서 사흘 정도 아저씨를 보러 안 갔다. 피시방도 옮겼다. 아저씨가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게 슬프고 시무룩해서 어제는 치킨을 남겼더니 엄마가 진심으로 걱정했다.

 



 그런데 드디어 오늘!!!!! 아저씨한테 문자가 왔다!!!!!!!!!!!!


나는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삘이 와서 핸드폰을 들고 소파 위에서 팔짝팔짝 뛰었다. 엄마랑 누나가 손을 맞잡고 나를 불쌍하게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발발 떨며 방으로 들어와 문자를 확인했다.

 


 

 




 

 

 





 아... 팍식...... 이 아저씨 진짜 철벽 모야. 쳇. 내가 이렇게 애교 넘치게 얘기하는데두 절대 안 넘어온다. 사실 낙서한 거 걸린 날, 아저씨가 날 그냥 그렇게 보내 준 것에서부터 뭔가 희망을 느꼈었다. 역시 내 얼굴은 웬만하면 먹힌다, 는 자부심도 은근 생겼었는데... 에이잌!!!!!! 괜히 또 심술이 나서 침대에 드러누워 팔다리를 팡팡 굴렀다. 아저씨 보고 싶다... 며칠 안 봤더니 지짜 보고 싶다. 뿌에엥 ㅠㅠㅠㅠ 진짜로 눈물도 찔끔 났다. 괜히 슬퍼서 핸드폰을 저만치 던져두고 멍하니 누워 있었다.





 

그리고 몇 분 후,

나는 잘생긴 경비아저씨의 마지막 문자는 확인하지 못한 채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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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괴도 윙크 이제 스무살 되었으니까 화이팅!!!!!

아이스크림이랑 위스키 사가지구 가서 강경비한테 마저 들이대라!!!! 그리고 행복해라!!!!!!!!!!

1차가 다 하는 녤윙... 오늘도 저는 숟가락만 얹습니다......

읽어주신 분들 감사해요 ♥









사복 입으면 대딩 형아 같은 경비아저씨 출근하시는 중.





손빨래+다림질도 야무지게 잘 하시는 19.9세 괴도 윙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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