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날리는 흙먼지와 잿가루를 헤치며 요시코는 앞으로 나아갔다. 기침할 겨를은 없었다. 마음을 먹은게 있다면, 반드시 해내야만 한다.

그렇게 다짐했으니까.

요시코는 어느정도 걸은 뒤 발걸음을 멈추고 머리 위로 올려다 봤다. 거대한 건물같이 우뚝 솟아나 있는 드래곤…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누마즈의 백화점에 처음 방문 했을때가 기억났다. 거대함에서 느껴지는 압박감. 요시코는 그때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때 보다 더 큰 압박감이 요시코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뿌연 먼지 속에서도 에메랄드 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드래곤의 눈동자가 확연하게 보인다.

저 속에 쿠로사와 루비는 존재하는 것일까? 모른다. 하지만 지금부터 찾아나가야 하겠지. 그것이… 츠시마 요시코. 타천사 요하네가 해야만 하는 일.

드래곤의 열기 때문에 뺨이 뜨겁다. 숨이 가쁘고 목구멍은 불타오를것만 같다. 나는 해낼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몇번이고 되뇌이고 있는 와중에, 하늘에 떠있는 두명의 모습을 발견했다.

카난과 다이아.

도움이라도 될수 있겠지.


“어─이! 다이아!”


요시코가 하늘의 그림자를 향해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지르자, 그림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분위기가 바꼈다.
요시코는 흔들던 손을 거두고 하늘을 계속 응시했다. 빠른 속도로 점점 다가오는 그림자, 그 모습은 오만의 악마, 마왕 다이아. 그녀는 무서운 얼굴을 한채 요시코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고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목이 압박된 요시코가 짧은 비명을 지른다.


“컥… 왜, 왜그래… 다이아!”

“제가 하는 말을 뭘로 들었습니까!”


이제까지 본적 없는 모습.

요시코는 말문이 막혔다.


“돌아가라고, 도망가라고 그렇게 말했을텐데! 왜 여기까지 쫓아온겁니까! 그 작은 날개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그 가냘픈 손으로 무엇을 쥘 수 있다고. 범인(凡人) 츠시마 요시코에게 어떤 대단한 능력이 있다고 이곳에 발을 들이는 겁니까!”

“…그치만!”


바닥에 누워있는 요시코,

그 뒤에 엎드려 서서 그녀를 노려다 보는 다이아.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요시코는 다이아의 분노를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1초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자신의 목을 부러뜨려 버리겠지. 목숨은 이미 그녀의 손안에 있다.

하지만 요시코는 물러서지 않는다.


“네 동생이기도 하지만, 내 친구이기도 해!”

“또 쓸데없는 말을!”


다이아가 요시코의 멱살을 잡아 끈 뒤 다시 바닥에 밀어 넣는다. 다시 숨이 막히기 시작한 요시코, 하지만 그 눈빛 만큼은 절대로 지지 않는다.


“인간과 악마가 친구가 될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츠시마 요시코!”

“왜 안돼!”

“설마 루비가, 나태의 악마가 당신과 잠깐 친하게 지냈다고 해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됐을거라고 생각 하시는 건가요? 당치도 않는 소리! 악마와 인간은 결국 계약으로 묶인 종속관계일 뿐입니다! 애초에 우리들 악마가 필멸자인 인간 따위를 거들떠라도 볼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요시코는 다이아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게 보편적인 악마들의 인식인거야?”


다이아는 대답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요시코는 분명 그 모습을 긍정으로 받아 들였겠지. 하지만 아니다. 절대로 그건 아닐 것이다. 요시코는 수많은 것을 봐왔다. 악마가 되어버린 인간도 있었고, 인간인줄 알았던 악마도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직접 찾아온 대악마도 존재했다. 그녀들이.

츠시마 요시코를 그저 필멸자인 인간으로써 대했는가?

아니다, 결단코 아니라고 말할수 있다.

저녁 노을 지는 하늘 아래에서 같은 시간을 보낸 친구가 있었다.

병원에 입원한 친구를 진심으로 걱정하던 녀석도 있었다.


“웃기지 마.”


쇼게츠의 창가 자리에서.

떠나기 싫은듯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바닷가를 바라보던 녀석도 있었다.


“난 그런 네 말, 안믿어.”

“믿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비켜─────!!!”


주위의 잿더미를 한꺼번에 날려버릴듯한 충격파가 요시코의 주변에서 일어났다. 공기가 찢어지는것과 동시에 등 뒤로 크게 도약한 다이아. 그녀의 눈 앞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소녀의 모습만이 보였다.


“어째서…….”


다이아가 중얼 거렸지만 요시코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마왕 루시퍼. 그녀는 과연 요시코의 선택에 실망한 것일까?


“어째서 이렇게 된거죠…….”


후회하고 있는 걸까?


“요시코 양…….”


의지가 담긴 눈으로 자신을 보는 인간 소녀를 향해.

지옥의 업화와도 같은 말투로 마왕이 말했다.


“…….건방지군요.”


고개를 들어올려 요시코를 내려다 보는 다이아.

그녀의 새하얀 뺨에 난 한줄기 상처, 그곳에서 붉은 피가 흘러 그녀의 턱을 적시고 있었다.


“어째서 인간 따위인 츠시마 요시코가 제 앞에 설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딱딱한 용암 속의 불꽃처럼 타오르는 목소리.


“저에게 부여 받은 힘으로, 저에게 대적하겠다.”


마왕이 미소 짓는다.


“오만함 그 자체. ”


오만의 악마가 오만에 대해 말한다.,


“좋습니다. 원한다면.”


요시코.

마왕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


“상대 해 드리죠.”


그리고 정신을 차린 순간 요시코의 얼굴을 다이아의 오른손이 한손으로 쥐고 있었다.

너무 빨라.

눈이? 아니… 뇌가 따라가지 못한다!


“큿!”


요시코는 최대한 빠르게 몸을 눕혀 다이아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그리도 뒤이어 다이아의 손에서 솟구친 붉은 불길. 조금만 늦었더라면 앞머리가 그을리는 것 만으로는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숨 돌릴 틈 따윈 없다!

연속으로 날아오는 다이아의 왼손 어퍼컷. 요시코의 오른쪽 옆구리를 정확히 노리고 들어오는 주먹. 피할수 없다! 그렇다면 최대한 막아내야.

요시코는 오른 팔꿈치를 옆구리에 갖다대 막을려고 했지만.


“어림 없습니다!”


폭음, 그리고 피부를 찌르는듯한 열기.

다이아의 주먹이 요시코의 팔꿈치에 닿는 순간 폭음과 불길이 일어나는것과 동시에 요시코는 직선으로 수미터를 날아가 바닥에 고꾸라졌다. 팔꿈치를 관통하듯 온몸에 엄습해 오는 고통. 요시코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땐 이미 다이아가 빠른 속도로 시야속에 들어와 있었다.


“크악”!


걷어차였다.

공중으로 몸이 붕 뜨기 시작한 요시코의 입에서 피가 토해져 나왔다. 내장이 망가진 것이다. 평범한 인간이였다면 여기서 조금 더 버티다가 죽어버렸겠지.

하지만 요시코는 버텨야 한다.

버텨낼수 있어야 한다.


“화관(火冠), 남백색의 품(品).”


다이아의 영창이 끝나자 요시코는 공중에 우뚝 솟아 더 이상 날아가지도, 떨어지지도 않게 되었다. 그저 자신의 등 뒤에 나타난 붉은 마법진, 그리고 그 중심으로 물감처럼 서서히 퍼져만 가는 남백색의 연기.

그것은 곧 요시코의 근육과 내장을 찢어 발기며.


퍼엉─!


폭발했다.

밤하늘을 수놓는 빛나는 불똥, 그리고 재. 그곳에서 요시코는 팔다리를 축 늘어뜨린채 포물선을 그리며 풀숲으로 날아가 버렸다. 다이아는 그런 그녀에게 눈길 하나 주지도 않고 다시, 포효하며 공중을 날아다니는 카난을 필사적으로 공격하는 나태의 악마를 올려다 보았다.


“….으… 큭…. 쿨럭!”


풀숲에 날아간 요시코는 다행히도 숨은 붙어있었다. 하지만 온몸이 그을리고 상처투성이. 피가 모두 증발해버릴것만 같은 고통이 온몸에서 느껴졌다. 더 이상 일어날수 없다. 뇌리에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움직여야만 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붙잡을수 없으니까.

움직여야만 한다.

하지만 그렇게 머릿속을 되뇌일때마다 그녀에게 돌아오는건 숨막힐듯한 고통과, 절망감.

오만의 악마가 강한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심을 다한다면 상대할수 있을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래도 이정도로 차이가 날줄은 전혀 몰랐다…….

그랬다. 요시코의 그 힘은 결국 오만의 악마에게서 빌린 힘. 도대체 그런 작은 힘으로 무엇을 할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거 따윈 아무래도 상관 없어.

나는 타천사 요하네니까.

필사적으로 움직여야만 해.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움직일려고 하는거야?”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와 요시코는 옆을 쳐다봤다. 분명히 본적 있는 모습. 아까전 까지만 해도 자신을 습격하던 천사중 한명, 리아였다.

그녀 역시 너덜너덜해진 모습으로 요시코를 싸늘하게 내려다 보고 있었다.


“너… 인간이지?”


요시코는 대답 대신 눈을 깜빡였다. 대답할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럴 기력이 있다면 지금 당장 일어서서 다이아의, 오만의 악마의 뒷통수에 무언가라도 하나 꽂아 넣었겠지.


“왜 악마 행세를 하는거야?”

“…악마가… 아니야! 내이름은……!”


요시코는 기침을 한번 한뒤 말을 이었다.

이것만큼은 말해야만 한다.


“타천사 요하네…!”


리아는 온힘을 다해 꺼낸 말이 고작 그거냐며 콧방귀를 뀌었지만 요시코의 얼굴을 사뭇 진지해 보여 그이상의 조롱은 할 수가 없었다. 웃는 얼굴에 침은 못뱉는 법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진지하게 얘기하면 그녀 역시 거기에 감화될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알았어… 타천사 요하네. 하지만 난 네가 인간이라는걸 상정하고 이야기 할거야.”


리아가 물었다.


“너… 나태의 악마하고는 어떤 사이야?”


루비하고 어떤 사이냐고? 물어볼것도 없다.

친구.

소중한 사람.

한마디로 설명할수 있을까 보냐.


“그정도로 필사적인걸 보면 분명 돈독한 사이겠지.”


리아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나도 소중한 사람들이 있어. 내 언니도 그렇지. 다른 천사들도 그럴거야. 그리고 분명 그건 인간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악마들은… 어떨까.”


저 멀리.

나태의 악마가 포효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요시코.”

“…요하네.”

“…그래. 넌 저 악마들에게서 어떤 모습을 봐왔던 거야?”

“………”


간단하다고 하다면 간단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렇지 않을 대답.


“너는 저 악마들을 친구라고 말할수 있어?”


리아의 물음.

요시코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하는건 나태의 악마 뿐만이 아니야. 널 이 지경으로 만든 마왕, 그리고 분노, 색욕의 악마까지. 넌 걔네들을 친구라고 말할수 있어?”


요시코는 이번에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그동안 요시코가 그녀들과 함께 해왔던 그 순간들은 거짓이였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엄연히 존재했던 진실들. 서로가 서로의 등을 맞대고, 서로가 서로를 위하며, 같은 시간을 보내던 나날들.


‘없어지지 않아.’


‘그 무엇도.’


“좋아.”


리아의 목소리에서 무게감이 덜어낸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한테 생각이 있어. 도와줄게.”


천사가 먼저 손을 내민다.


“대신 가르쳐 줘. 네가 봐왔던 풍경들을.”


요시코의 떨리는 손이, 눈부시게 빛나는 천사의 손을 잡았다.

割と普通の男子,そんな感じ 비교적 평범한 남자, 그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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