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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결전 이후 여생을 보내는 우즈이와 기유의 이야기 날조 망상.

우즈기유 외 타컾 요소가 존재합니다. FB2 요소가 가득.



#1.

네놈의 우는 얼굴이 보고 싶다고 말하자 그는 울려보시지 하며 웃었다.



#2.

나의 기척을 느낀 그는 이쪽을 돌아보며 “우즈이.”하고 해사하게 웃는다. 나는 그 얼굴이 낯설어 어색하게 눈썹을 찌푸린다. 사시사철 장례식에 온 것처럼 우중충하던 얼굴이 맑게도 개었다. 나는 너무하리만치 단호했던 옛 감상을 덜어내며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 있었어, 토미오카?”


“응.” 아이처럼 대답하는 목소리가 가볍게 마음을 두드린다. 무잔을 죽인 것이 대체 그의 심정에 어떤 변화를 준 것인지. 모든 것이 끝난 이래, 토미오카는 꽤나 잘 웃게 되었다.

그는 정말로 잘 웃었다. 일단, 나를 보면 웃는다. 그리고 내가 들고 온 선물을 확인하고 또 웃는 것이다. 저택을 거닐며 시답잖은 여름의 더위를 얘기하면서도, 서투른 왼손 글씨로 카마도에게 보낼 편지를 쓰면서도, 길거리 음식점의 당고를 사면서도 토미오카는 웃었다.

하여튼 정도라는 것을 모르는 놈이다. 웃음이라는 것을 모르는 녀석인가 싶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헤퍼도 너무 헤픈 것이 아닌가. 물론, 잘 웃는 것은 좋다. 하지만 토미오카는 아무래도 저런 외모인 것이다.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 위로 그림자가 질 정도로 길고 두터운 속눈썹을 거느리고, 그 아래 바다처럼 청명한 눈동자를 나비처럼 팔락이는 인형 같은 얼굴.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럼에도 주변의 시선을 이끄는 아름다운 남자. 그런 극상의 미모가 이제는 과거와 같지 않은 체력으로, 하물며 오른팔조차 없다. 어쩌다 나쁜 마음을 먹은 이에게 해코지를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다.


“야아, 토미오카. 너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편이 조금 더 미남이야.”


조언하자,


“그런가.”


대답한 토미오카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괜찮다, 우즈이. 남들에게 미남으로 보이고픈 마음은 딱히 없으니까.”

“…왜?”

“음…….”


고민하며 입술을 두드리는 손가락은 흉터투성이였다. 원체 선이 얇고 뼈가 도드라졌으니, 이런 일을 하지 않았다면 분명 아주 예쁜 손이었을 터다. ‘그리고 보니.’ 이놈은 어쩌다 귀살대에 들어온 것일까 얄팍한 호기심을 시가에 태워본다. 그러나 이 호기심이 입 밖을 나서는 일은 없다.

은밀한 정보를 다루던 우즈이이기에 뼈저리게 알고 있다. 어떤 지식의 습득에는 그에 마땅한 시기가 있음을. 예전이었다면 서로의 과거사가 우리의 사기를 불태울 원동력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불가피하게도 이런 시대가 왔다. 이제 와 서로의 상처를 들춰봤자 무엇이 나아진단 말인가.

과거에는 관심이 없어 알지 못했을 까닭을, 이제는 물을 이유가 없으므로 알지 못한다. 심심하기 짝이 없는 결론에 힘 빠진 몸을 그에게 툭 기대자, 능숙하게 무게를 흘려넘긴 토미오카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무겁다, 우즈이.”


22cm의 키 차이에 자연히 위로 꺾이는 고개 속 단정한 얼굴은 까닭은 묻노라면 너무나도 쉽게 답해줄 듯한 낯을 하고 있어서. 아무래도, 걱정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이놈의 웃음이 거짓된 것은 아닐까. 오니가 사라진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하여되, 이제는 그저 웃는 방법밖에 모르게 된 것이 아닌가…….


“토미오카, 너 지금 행복해?”

“?”

“……됐다.”


그러니까 나는 이놈의 울음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 생각에 무심코 네놈의 우는 얼굴이 보고 싶다고 말하자, 그는 울려보시지 하며 웃었다.



#3.

토미오카의 우는 얼굴을 보기 위해 맹렬하게 돌진한 지도 어느덧 석 달이 넘어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를 울리는 것은 대실패였다. 그리하여 내가 석 달 동안 토미오카에 관한 고민으로 끙끙 앓았느냐 하면, 그 또한 아니다. 토미오카는 나의 염려가 우스울 정도로 많은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아내와 다툼이 있었던 척 울적하게 찾아가면 서툰 말솜씨로 위로를 건넬 줄도 알았고, 장난이었다고 표정을 바꿔 웃으면 자신의 걱정을 돌려내라며 화를 낼 줄도 알았다. 아무것도 없는 평지에 발이 걸려 넘어질 때면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기도 했고, 좋아하는 음식을 보면 여전히 예쁘게 웃기도 했다.

그 모든 변화를 보고 있자면, 새삼스럽게 이놈 또한 하나의 인간에 불과했음을 자각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너 말이야, 인형이 아니었구나.”

“무슨 당연한 말을 하는 거지?”

“아니, 뭐.”


토키토는 토미오카를 조각품 같은 사람이라고 평했다. 깔끔 단정하여 쉬이 무너지지 않는 시원한 생김새에 사람이 사는 냄새를 풍기지 않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먼저 간 놈들은 모를지도.”


그를 조각품이라 칭했던 토키토는 물론이고, 친화력이 좋았던 렌고쿠와 칸로지, 그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다고 부탁하셨던 어르신마저도 토미오카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모를 것이다. 유달리 사이가 좋아 보였던 코쵸가 그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던 이야기를 시나즈가와로부터 전해 들었지만, 계기에 관한 것은 듣지 못했다. 대화 도중 찾아온 토미오카의 미소에 시나즈가와가 고장 난 고양이처럼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기 때문이다. 그에게 토미오카 기유의 웃는 얼굴이란 그리도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나보다.


“그 정도였던가…….”

“뭐, 너무 신경 쓰지는 말고.”


우스갯소리인 양 말하고 있지만, 사실 지금의 토미오카가 보여주는 천의 얼굴은 살아남은 자들이 누리는 특권과도 같았다. 자신의 옛일을 떠올리며 난처해하는 토미오카라니. 먼저 간 놈 중 누구도 그의 이런 얼굴은 알지 못할 테지. 귀한 것이다, 당연히 이 눈에 단단히 새겨두어야지. 언젠가 죽어서 만날지 모를 동료들에게 자랑거리인 양 늘어놓을 수 있게.


“과거의 나는 너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어? 갑자기 옛날이야기 시간이야?”

“응.”


눈꼬리가 내려간다. 입술이 빙그레 휘어진다. 뺨이 석양빛으로 물든다. 토미오카가 웃는다.


“한데 얽매이지 않고 유쾌히 노니는 모습을 좋아해. 자유로운 듯한 모습이 늘 부러웠다.”


하물며 토미오카는 예전의 내 모습마저도 기억하고 있었다. 무엇에도 관심 없어 보이던 그 겉모습은 정말 겉뿐이었다는 오해에 멋쩍게 머리를 긁었다. 이 남자에 관한 것은 알아도 알아도 모르는 것투성이다. 워낙에 아는 것이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비겁한 변명을 방패막이로 세우고, 그 뒤에 숨은 나는 ‘그러니까.’하고 속삭인다. 그러니까 더욱 알고 싶었다. 알면 알수록 색다른 너에 대해서.


“역시 말이야, 너 한 번만 울어주지 않을래?”

“울려보라고 했을 텐데.”

“아, 정말.”


하나밖에 없는 팔을 붙잡아 바닥을 구른다. 마룻바닥에 흐트러지는 검은 머리카락 위로 하얀 머리칼을 겹친다. 순진무구한 시선 속에 내가 담긴다. 나는 짓궂게 웃는다.


“너는 어떻게 울까, 토미오카.”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웠어도 결국에는 그저 너의 흐트러진 모습이 궁금했을 뿐이다. 의외로 눈물이 많은 편일까. 피부가 하얗고 부드러우니 쉽게 눈가를 붉힐지 모른다. 울고 난 뒤에는 어떻지. 얇은 눈이 팅팅 부어서 우스운 꼴이 돼버리나. 목소리는 어떠한가. 가늘게 떨릴까, 아니면 울음을 감추기 위해 거칠어지는 편일까.


“……울려보시지 그래.”


나의 웃음을 따라 하듯, 토미오카 또한 얄궂게 웃는다. 서로의 동의 하에 우리는 단숨에 흐트러졌다. 토미오카는 부끄러워했고, 곤란해하기도 했으며, 조금, 아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4.

아침부터 토미오카가 부지런을 떨었다. 가야 할 곳이 있다고 했다. 꼭 이런 시간이어야만 하느냐고 늦장을 피우자, 토미오카는 “너는 오지 않아도 된다.”하고 나를 떼어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따를 수는 없었다. 아침 녘에 비친 그의 옆모습이 사뭇 진지했으므로, 그를 혼자 두어선 안 될 것 같았다. 전 닌자로서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오늘, 토미오카 기유가 울 것이다.



#5.

매정하리만치 차가운 시선이 한곳을 바라본다. 모르는 이가 본다면 원수의 무덤인가 싶겠으나, 그 시선 끝이 가리키는 것은 지긋지긋하게 익숙한 그의 옛 하오리다.

절반의 진홍, 절반의 녹음. 이제 와 그것이 누구냐고 묻는 등의 촌스러운 짓은 하지 않는다. 시신조차 남지 않은 무덤 위에 가지런히 올라간 하오리와 두 쌍의 꽃다발의 의미를 대체 누가 모른단 말인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들은 은인이되 또한 원수였다. 토미오카 기유의 인생 절반을 가져놓고도 끝까지 곁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 하여, 그에게 저런 표정을 짓게 만드는 사람들.

죽은 것은 그쪽인데도 마치 자기가 죽은 것처럼 울적한 눈동자가 고요히 녹색의 하오리를 내다본다. 사비토. 이름 석 글자를 읊조리는 목소리가 가늘게 쉬어있다. 부드러운 눈물도, 옅은 흐느낌도 없이. 다만 목덜미만이 붉었다. 예전에도 이처럼 붉었을까. 단지 등허리까지 기른 머리카락에 덮여 알지 못했을 뿐인가. 잃은 손가락으로 남몰래 손대중해본다.

틀림없이, 그는 울고 있었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지언정.


- 늘 장례식장에 온 것 같은 얼굴을 하고.


그의 우는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울고 있었다. 세상의 전부였던 이들을 양어깨에 걸치고, 언제나 언제나.


“…됐다. 가자.”

“…….”

“우즈이?”


무심코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이런 곳에서,” 동그랗게 커지던 눈동자는 어떤 욕망도 담기지 않은 순수한 포옹에 곱게 가라앉는다. 한쪽 팔로는 전부 껴안는 것이 버거울 정도로 단단한 등허리에 손을 뻗어온다. 나는 순순히 안겨 오는 토미오카에게 묻는다.


“내 품은 어떠냐, 토미오카.”

“넓고, 따뜻하다.”

“또?”

“……아늑하구나.”


그만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싶어질 정도로.


“괜찮다, 우즈이.”

“…….”

“나는 이제 괜찮아.”


그런 울음이 있었다. 본인이 울지 않기에 주변인이 대신 울어주어야만 하는 울음이.


“괜찮지, 않아.”

“…….”

“내가 괜찮지 않아.”


하필 이런 날 비는 내리지 않는다. 하늘조차 대신해주지 않는 너의 울음을 내가 대신할 수는 없을까. 그러자 토미오카, 나의 바다가 답한다. “아니야, 텐겐(元).”


“너는 괜찮다.”

“…….”

“괜찮아야만 하잖아.”


인간을 무너뜨리는 가장 쉬운 방법. 그 사람의 일부가 되기. 그리고 사라지기. 그것을 나보다 먼저 해낸 놈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절대로 그렇게는 될 수 없었다. 한여름 아지랑이처럼 사라질 그의 존재는 나의 일부가 되어서는 안 되었다.

나는 다만, 토미오카를 바라보았다.



#6.

설마 우즈이 텐겐님께서 고작 나 하나 때문에 울지는 않겠지 말하는 목소리에 나는 그럴 리가 있겠냐며 웃었다.




사랑과 가장 먼 단어|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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