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에이블 투 신 24,

 

 

 

 

거기까지가 태형이 기억하는 이야기의 끝이다. 제정신으로 할 수 있던 이야기는 아니다. 그땐 미쳤었지. 정말이다. 상담사도 그렇게 얘기했다.

파혼은 결국 김태형 전정국에게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별 당시의 기억은 듬성듬성 끊긴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갔는지 그 길은 여태 모른다. 태형은 지독히 스스로를 불신했다. 헤어지자마자 번호를 바꾸고 폰도 바꿨다. 연락하고 싶을 때가 많을 것 같았는데 지내다보니 과연 그랬고, 사고가 난 직후엔 절실하기도 했다. 때는 사서교육원을 다니기 시작한 즈음으로, 태형의 부주의다. 밤 고가도로에서 급하게 차선을 변경하다가 뒤로 고속버스에 받히고 앞으로는 잘 나가던 트럭 뒤꽁무니에 받는 3중 추돌사고. 김태형 자차만 앞뒤로 범퍼가 바스라졌다. 외상이 없는데도 앰뷸런스가 달려오고 현장이 요란했던 건 운전석의 김태형이 기절해버린 탓이다. 따지려고 내린 트럭, 고속버스 운전기사가 놀라 신고했댔다.

헤어지는 꿈을 꿨다. 남자가 집 안으로 뛰어 들어왔고, 결국 태형과 이별했다. 어디지? 왜 헤어졌지? 장면은 역순이다. 텅 빈 집에 가구와 무드등이 들어차고 태형은 침대맡에 걸터앉아 있다. 차단할게. 태형은 새해벽두부터 남자와 싸운다. 헤어지는 게 어때? 그 집까지 다리가 아프도록 먼길을 걸어왔구나. 헤어지기 위해. 여자와 헤어졌다. 커피잔 위로 피어오르는 김. 그 전날 밤 태형은 남자와 애틋하게 끌어안았다. 남자의 집까지 눈진창이 된 골목을 걷다 발이 다 젖은 걸 보니 태형은 아주 급했다. 남자는 태형의 집에 있다 쫓겨났다. 태형이 밀어냈다. 그 전엔 제집에서 태평하게 바느질도 하던 남자다. 그 전엔 여자에게 구두를 선물했고. 그 전엔 남자와 잤다. 지긋지긋하게 싸웠고, 윽박지르고 울었고. 이제 남자는 태형과 회사 옥상에 서 있다. 태형이 또 화를 냈다. 결혼식장, 남자는 태형을 향해 뒤돌아 선다. 갑자기 영상은 빠르게 돌아간다. 어느새 태형은 버스터미널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사람들이 형체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리 스쳐가는 가운데 태형만 또렷한 윤곽으로 정지. 누나 따위. 속삭이며 제 품에 파고든 것은 다짐에 가깝게 들렸다. 어둑어둑한 주차장에서 생일을 축하받았다. 버스에서 옆자리. 펜션에서 함께 스쿠터를 탔고, 그 허리를 꼭 잡았다. 동방에서 태형의 무릎을 베고 잠든 남자의 옆얼굴. 바위에 나란히 앉아 나눠낀 이어폰. 희미한 선율. 이제 태형은 청량리역에 서서 짜증을 낸다. 선배? 남자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찬다. 전정국.

태형은 팟 눈을 떴다. 환자분, 정신이 드세요? 내려다보는 간호사의 눈빛이 무심하게 안면을 훑고 사라진다.

괘씸하게도 태형은 응급실에서 다음 날 오전까지 푹 자고 깨어난 것이다. 과로로 바로 수면에 들어간 것을 제외하면 따로 이상증상도 없었지만 교통사고라는 게 으레 후유증이 심하다 해 이러저러한 검사를 마치고, 보험처리 담당자와 만나 서류처리를 하고 나니 점심때는 훌쩍 지나 있었다. 태형은 과실을 인정했다. 안 하던 공부를 갑자기 시작해 밤 늦게까지 학교 도서관에 뭉개고 있던 건 오기에 가까웠다. 집에 들어가 쉰다 해도 잠은 오지 않고 할 게 없었으니까. 태형은 응급실 수납을 마치고 복도를 걸어나온다. 복도에 일렬로 나붙은 포스터를 생각없이 읽었다. 돌아오는 월말에 자선음악회, 암환자들을 위한 명상클래스, 자살 유가족자들을 위한 심리상담센터……. 와중에 고속버스에 승객이 얼마나 타고 있었는지, 대인보상 골 아프겠다 뒤늦은 걱정이다. 복도의 끝, 으레 영화의 출소신마냥 묘한 햇빛이 쏟아졌다. 차는 수리센터에 가 있었고 집까지 멀지도 않아 태형은 멀쩡히 걸어갔다.

다음 날, 태형은 교육원 수업을 결석했다. 시간에 맞게 나와 버스를 기다렸는데 막상 버스가 도착하자 무언가가 태형의 발목을 잡았다. 의지와도 몸과도 한참 동떨어진 느낌이다. 두 대째 버스를 보내곤 초조하게 택시를 잡았으나, 올라타기 무섭게 무시무시하게 큰 버스가 태형의 뒤를 들이받을 것 같은 환각이 덮쳤다. 숨이 막힌다. 택시가 출발하기 직전에 도로 내려버렸다. 태형에게 선택지는 몇 없었다.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휴대폰 배터리가 닳을 때까지 ‘갑자기 차를 못 타겠어요’를 검색해보는 일. 어제 걸어온 길을 따라 동네 대학병원으로 다시 가는 일.


“운전은 아직 어려우시죠.”


맞은편 소파에서 상담사가 묻는다. 회상에 잠겨 있던 태형의 눈이 그 말을 신호로 초점을 찾았다. 디귿 자 병원 건물의 안쪽이라 조용하다. 이 도심에서 가끔은 새도 운다. 열어놓은 창은 커튼 대신 키가 큰 나무가 가렸다. 팔 뻗으면 닿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차 팔아버릴까 봐요.”


태형이 농담했다.


“불면증이나 악몽은…….”


악몽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태형은 굳이 그 단어를 정정하지 않는 편이었다. 단 한 번도 같은 꿈을 꿔본 적 없는 인생에 두 번 이상 찾아오는 손님이라면 감히 ‘괴롭힌다’ 불러도 될 것이다. 가끔은 꿈에서도 자신이 이야기를 망쳐버릴 것 같았다. 태형의 구두끝이 까딱인다. 오늘 기분이 괜찮다는 사인이다.


“희미해요.”


교통사고 후 생긴 차 트라우마를 추적할 때다. 상담사는 태형이 왜 외상 없이도 간밤을 응급실에서 보냈는지 물었다. 그 정도 과로가 있을 정도로 몸을 혹사시킨 이유를 물었다. 태형은 질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갔다. 응급실에서 꾼 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역재생의 끝에 이별이 있었고 전정국이 없었다.

당장 차를 못 타는 증후군은 욕 나오게 불편했지만 중첩된 이별과 마음의 상처를 그 어떤 병명으로 진단받았을 때, 태형은 기뻤다. 복합적인 감정이 휘몰아친 가운데서도 분명 기뻤다. 포악하고 구제불능인,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는 자신을 위한 언어가 존재한다는 것이.

상담사는 태형이 내내 큰 감정표현 없이 무던하게 군 것을 기록했다. 당장 차를 못 타는 건 현실과 직결된 불편이라 골이 아프지만 지나간 연인, 지나간 이별의 트라우마에 대해선 태형은 어느 정도 묻어둔 편이었다. 후회도 그리움도 그다지. 특히 두 번째는 자신이 원해 헤어진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좋다고 같이 껴안고 죽는 건 애들 얘기죠. 태형이 말한다. 그런 면에서는 어떤… 고결함을 지옥행 열차에서 구했다는 뉘앙스도 풍겼다.

고립됐던 태형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 없던 기억을 처음 입밖으로 꺼내 파편을 짜 맞추기 시작했다. 헤어지고 버려졌단 사실은 각인이 돼 있었으면서 막상 당시 얼마나 아팠는지 같은 감정은 들춰본 지 오래라 먼지가 쌓여 있었다. 태형은 첫사랑의 첫사랑 이름이 가물가물해 한 번 더듬었다.

이별을 당한 것보다 이별을 고하고 만 것이 흉터가 더욱 선명했다. 단순한 사랑의 문제가 아니었고 저를 이기지 못해 통제를 벗어났다는 패배감, 상실감이 중첩됐다. 태형은 털어놓고도 한참 눈을 굴리며 되짚었다. 서로 사랑해준 시간보다 매달리고 급급한 시간이 컸다.

태형은 과거를 하나씩 묻는다. 애도한다. 첫사랑과 맞부비며 사는 것 대신 첫사랑을 마음 속에 살게 둔 것은 더 이상 손 쓸 수 없어지기 전에 그를 영원히 살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지 않았을까? 매일 태형은 과거의 태형과 또 하루씩 멀어져버려 그때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과정은 보통 평온했으나 중간중간 턱에 받힌 양 제동이 걸린다. 억압된 기억이 떠오르는 통찰의 순간. 기억으로부터 추방당한 고통스러운 사건의 귀소. 첫 번째 과거가 어쩔 수 없는 상실감이었다면 두 번째는 통제를 잃었다는 두려움이었다. 몸과 마음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무시무시한 경험.

누구도 사랑하고 싶지 않은 억압이 있었지. 제게 영향을 끼치는 일이라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내에서 일어나기를 바란 것이다. 태형은 다시 차를 탈 수 있게 되기까지 도서관을 다니며 유의미한 자가분석에 열중했지만 책을 읽고 스스로를 들여다볼수록 또렷해지는 것은 사랑하는 전정국을 내쳤다는 사실 그 하나였다.

책은 말한다, 잘 헤어졌다고. 복수는 태형을 괴물로 만들 뿐 과거는 변하지 않고 보상받을 수도 없으므로 좌절되고 용서는 인간의 일반적인 능력을 넘어선 영역이라고. 하물며 종교체계 내에서도 신이 내리는 용서는 조건적이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무력감, 무능함에 직면한 것은 전정국 하나가 아니었다. 미쳐 있던 건 김태형 하나가 아니었다. 헤어지지 않았다면 서로를 해칠 때까지 풀 수 없었을 골이다. 자신을 잃기 전에 도망쳤고, 자신과 화해하는 중이다. 태형은 받아들인다.

오히려 태형의 일상을 불쑥불쑥 멈추게 하는 것은 후회가 아니라, 가슴저림(태형은 그 감정의 이름을 물었으나 상담사는 딱히 정의해주지 못했다)이다. 한날 상담실에서 태형의 묘사는 다음과 같았다.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 날 것 같은 과거. 가슴 시린 과거.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때의 난 왜 그랬을까 싶은. 하지만 돌아간다고 해도 더 잘할 자신은 없는.

운전은 아직 무리지만 버스나 택시는 타기 시작했다. 그게 태형이 아주 괜찮아졌다는 뜻은 아니다. 마법처럼 한순간에 짠하고 새로 태어날 수 없었고 상처 받기 전의 태형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누구를 사랑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다. 미래는 그려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미래를 그려본 적이, 없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별 당하던 정국의 심정을 당시 태형이 전혀 헤아리지 않았다는 것인데… 일종의 감각 마비였다. 지각 기능, 판단 기능의 일시적 상실이라고 본다. 자기 고통에 매몰돼 눈 뜬 장님 다름없었다. 태형은 차츰 그 고통을 절감하게 된다. 대개 자신이 겪은 경험에 비추어 이뤄졌다. 그제야 미안했고, 미안한 걸 넘어 염치가 없었다. 그런 주제에 태형은 한 뼘 더 이해할 때마다 정국의 번호를 떠올리려 애썼던 것 같다. 외운 적도 없었지마는 애쓰다보면 떠오를 것처럼 애를 썼다. 용을 쓰다 늘 그렇듯 실패하는 밤이면 태형은 침대에 누워 한참을 보냈다. 떠오른다 해도 연락할 것인가?

태형이 공시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고 호석, 지민은 영 의외란 반응이다. 심지어 지방 도서관 사서직. 이날은 오랜만에 윤기도 술자리에 왔다. 얼마나 지방? 묻는 말에 태형은 바닷가, 읍, 면 이런 대답을 했다. 김태형은 스스로 부침이 심하다고 느끼지 않는 가운데서도 무의식이 이끄는 목적지를 볼 때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도시가 싫었다. 자신의 역사를 모르는 타인들의 틈바구니가 불편했다.

밤이 적당히 깊자 태형은 택시에 올라탔다. 라디오에서는 이름 모를 익숙한 목소리가 조곤조곤 말한다. 길은 안 막히지만 신호에 걸릴 때마다 차는 섰다 출발하기를 반복했다. 전 회사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는 법 아니랬는데. 어쩔 수 없이 가는 길이 그랬다. 태형은 변한 게 없는 익숙한 빌딩들 사이를 무심히 훑었다. 사옥을 지나면 회식 때문에 지리하게 드나들던 상가 건물이라든지…….


“기사님, 잠시만요. 잠시만 세워주시겠어요.”


태형이 탄 택시는 이미 줄지어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행렬 옆에 파묻혀 선다. 뒤따라 오던 다른 차가 차선을 변경해 앞질러 갔다. 그 사이 태형의 택시 앞 신호등은 빨간불. 운전기사는 차를 조금 앞으로 당겨 정지선에 맞췄다. 한남동 안 가고 여기서 내리게요? 기사가 백미러로 뒷좌석을 바라봤다. 태형은 홀린 양 창밖을 봤다.

전정국이었다. 익숙한 술집 앞, 담배 태우는 동료들과 서서 얘기 중인 정국이 보인다. 또 무슨 행사가 있었나, 셔츠를 팔뚝으로 올려붙인 정국이 손짓을 하며 동료들에게 설명한다. 웃는다. 웃을 때면 시원하게 접히는 눈의 호선과 날이 도드라지는 턱뼈. 또 호탕하게 웃는다. 웃음소리가 당장이라도 귓가에 아득했고 근 과거보다는 먼 과거의 그것과 비슷했다.

어떤 사랑은 끝난 후에 더욱 분명해진다. 그 시절이 그리운 건지 전정국이 그리운 건지 생각해보니 답은 아주 쉽게 나왔다.


“여기서 내리세요?”


신호등이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바뀌었다. 기다리던 기사가 재차 물었다.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그냥 가주세요.”


안다. 전정국이 날 힘들게 한 게 아니라 내가 나를 힘들게 했다. 태형은 아직 운전을 못 한다. 운전대를 다시 잡고 싶다. 택시가 다시 출발했다. 달리는 시야로 밤거리 가로수 불빛들이 번진다.

간절히 원한다면 언젠가. 우리가 절박함을 이해하고 감히 스스로 용서할 수 있을 때가 오면 그때는. 다른 이유로 서로를 버리지도, 서로 때문에 자신을 버리지도 않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책장의 마지막 페이지처럼 도무지 쉽게 놓을 수가 없지만… 이제는 닫아야겠다. 

 

 

 




 



2년 후

 

식이 시작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 어수선했다. 축의금 걷을 일꾼들은 이르게 홀 앞에 앉아 자리를 지켰다. 신부가 자리를 비운 대기실. 태형은 기울어진 전신거울 앞에 섰다. 소매의 커프스를 고쳐 잠근다. 사회는 안교식이 맡았다. 목을 요란스레 푸는 걸 곁눈질하자 교식이 단숨에 태형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섰다. 떨리냐? 거울을 통해 태형과 눈을 맞춘다. 뭘 떨려. 태형이 건성으로 반응했다. 교식은 종잇장을 들고 쉽게 멀어졌다. 여전히 입을 푼다고 괴이한 소리를 냈다.

마저 반대편 손목의 커프스를 정리하고 있을 때 뒤에서 우악스런 손이 덥석 어깨를 쥐었다.


“야, 결혼 축하한다.”


태형이 돌아봤다. 민윤기였다.


“아. 여기가 아니네.”

“일찍 오셨네요.”

“신랑은.”

“호석이 형 화장실요.”

“너 오늘 축가라며.”

“네.”


민윤기가 간이소파에 벌렁 앉기 무섭게 호석이 대기실로 들어섰다. 어이, 이게 누구야, 왜 이렇게 빨리 왔어. 만난 게 엊그젠데 몇 년은 못 본 사이처럼 상봉이 이뤄진다. 태형은 옷매무새 정리를 마쳤다.

도착하자마자 인사부터 한다고 축의금을 안 냈다. 헐빈한 테이블에서 폰을 만지던 지민이 의외란 낯으로 고개를 든다. ‘뭐냐, 너 내게?’ ‘엉.’ 태형이 안주머니를 뒤적여 봉투를 꺼냈다. 마침 대기실을 나온 호석이 봉투에 이름 쓰고 있는 태형을 보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야, 축가는 축의금 내는 거 아니다!’ 등을 철썩 때린다. ‘됐어요.’ 태형은 이 정도 예상한 사람처럼 묵묵히 봉투를 지민에게 건넸다. ‘야씨, 포항에서 먼 길 온 애가… 이러면 나 너한테 줄 봉투 얼마나 두꺼워야 되냐.’ ‘그래, 그러면 되지, 뭘.’ 태형이 방명록에 이름을 적는다.

반면교사로 안교식 결혼식에서 배운 게 있을 거라 지정좌석제는 시행되지 않았다. 영등포 A는 차라리 광활하다. 이따 오를 예정인 무대에 미리 올라가본 태형은 밑에서 따라오라 손짓하는 교식을 보고 풀쩍 뛰어내렸다. 리빙포인트: 영등포 A 흡연구역은 타임스퀘어 1층까지 내려가 밖으로 나가서도 한참 멀리에 있다. 멀찍이 벗어난 후 교식이 담뱃갑을 내밀었다. 태형이 무시하고 적당히 떨어진 바위에 앉는다.


“끊었다.”

“독한 새끼.”

“제수씨가 안 싫어하냐?”

“와이프도 끊어야 돼.”


그르냐. 대충 받아친 태형이 폰을 보다 말고 켈룩켈룩 기침했다. 교식은 자기가 온 악의 근원이자 주범 된 것마냥 일시정지다. 태형이 손을 내저었다.


“담배연기 때문 아니야. 어제부터 감기기운이 좀 있어서.”

“축가 부르다 삑사리 내는 거 아냐?”

“아 오늘 좀… 아침도 소화가 영 안 되고.”


태형이 목을 이리저리 틀어 스트레칭한다. 날은 기가 막히게 좋다. 감탄한 교식이 다른 손으로 손차양을 만든다.

왕복 시간이 꽤 걸렸다. 에스컬레이터로 5층까지 가는 하객 행렬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머릿수도 합류한다. 축의금 받느라 정신없던 지민이 저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고 태형을 5분 정도 앉혀놓았다. 긴장한 건 정말 아니다만 속이 영 편치 않았다. 아침을 거를까 싶었을 때 그냥 걸렀어야 했는데. 태형이 도로 의자를 지민에게 내어주며 물었다. 너 근처 약국 알아?

있어도 열었으려나, 주말인데. 확신엔 없는 말투로 지민이 알려준다. 태형은 지하 1층으로 직행했다. 체하는 일은 진짜 흔치 않아 연중행사보다도 못했다. 다행히 열려 있다. 내친 김에 목감기 약도 사 들었다. 약국 안에서 병을 차례로 비워버린다.

아까 안교식도 물었지만 어째 포항으로 거처를 옮긴 후 얼굴 보는 사람들 하는 말이 죄 기승전물회다. 오면 사준다니까. 태형이 말해도 작년엔 지민밖에 왔다 가지 않았다. 안교식은 결혼한 몸이라 여러 의미로 거동이 불편하고 호석은 결혼할 몸이라 또한 여러 의미로 거동이 불편하고 민윤기는 웬만해서 위수지역 벗어나는 성정이 아니었다. 안교식이 올해는 꼭, 꼭 놀러 오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다. 같은 서울 있었을 때도 챙겨보던 사이가 아니었으면서 멀어지니까 그렇게들 온다 어쩐다 한다.

시간이 임박하자 복도부터 발 디딜 틈이 없다. 홀 입구에 호석이 자리를 비운 상태다. 잠깐 안에 들어갔다고 한다. 태형은 아까 인사를 했으면서도 다시 또 호석의 부모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지정좌석제는 아니어도 동그란 테이블은 으레 끼리끼리 모여 앉기 마련이다. 웅장할 정도로 높은 층고와 샹들리에. 홀 안에서 태형은 아는 얼굴을 찾기 위해 기웃댄다. 장정 여럿이 선 무리라 찾기 어렵진 않았다. 멀끔하게 머리를 넘긴 호석이 먼저 태형을 발견했다. 야, 안 그래도 왔네. 무리에게 말한 호석이 재색 수트의 팔을 툭 두드리곤 홀의 출입구로 뛰어 멀어졌다. 호석이 제 옆을 스쳐 지날 때에도 태형은 그 자리에 멍하니 꽂혀 있었다. 태형은 모르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

전정국이 뒤돌았다.

다시, 우리의 시간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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