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너진 세계와 기숙사생들









이게 무슨. 입술을 짓씹은 대장이 뒷말을 삼켰다.



낙뢰가 기숙사 건물에도 들이친 모양이었다. 망해버린 세상에서 안전지대는 없었다. 기숙사와 연결된 자습실이 반파되어 있었다. 식수대 파이프가 부서져 물이 뿜어져 나왔었던 듯, 사방이 물천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습실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가 떨어져 나온 건물 잔재로 막혀있었다. 갇혔다.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절망감과 무력감이 온몸을 뒤덮었다. 상처투성이 오른손으로 얼굴을 덮고 한숨을 쉰 대장이 내게 푸념했다.


“야, 망했어. 아. 그냥 다 때려치고 죽자.”


“그 말 J한테 가서 똑같이 해 봐.”


“맞아 죽긴 싫은데. 아, 이걸 얘들한테 어떻게 말하라고!”


대장님이 히스테리를 부리게 냅두고, 나는 로비로 돌아갔다. 욕쟁이, J가 열흘이 지나도 패닉 상태인 선배들에게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다. 쌍자음이 난무하는 그의 거친 언어 사이로 목소리를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씩씩대던 J가 나를 발견하더니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내 멱을 쥐고 짤짤 흔들며 고함을 쳤다. 침도 튀겼다. 재수 없게.


“저새끼들 그냥 싹 다 좀비 밥으로 주는게 어때? 존나 쓸모 없는 식충이 새끼들이, 매일같이 하는 소리라곤 배고프다, 뭐 하고 싶다, 어차피 망했는데 뭐하러 사냐, 이러다 죽겠지 뭐. 이놈이나 저놈이나 이딴 소리나 지껄이는 쫄보새끼들 뿐이야. 씨발, 그렇게 살기 싫으면 알아서 나가 뒈지라고!”


J한테 배급을 맡긴 대장님의 판단미스다. 대신 님 부하가 죽어 나가네요. 대장, 꼭 죽인다.


“지구 망했다고 우는 새끼 저 안에도 있는데, 가서 한 대 때려줘라.”


“뭐야. 뭔 일 있었어?”


“어젯밤에 우리 나갔을 때 가까이에서 낙뢰 쳤잖? 그거 때문에 자습실 반파함.”


“아, 진짜. 망하기 전에도 충분히 팍팍 했는데. 망하고 나니까 더 좆같아졌어. 우리가 그렇게 좆같냐? 어우 시벌, 다 뒈지라지. 그 새끼 어디 있어. 내가 정신 들 때까지 쥐고 팰거임.”


“안 말림. 근데 패대기 치기 전에 걔랑 이제 어떻게 나갈지 토론 좀 해봐라. 이대론 꼼짝없이 여기서 아사 엔딩이라고. 뇌에 힘 좀 줘봐, 특목고생. ”


“지는.”





적재적소, 짧게 손바닥을 마주치고 나는 흐느적거리는 쓰레기들에게 다가갔다. 하늘만 바라보고 살아왔던 사람들이, 지옥의 밑바닥을 기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 당시 우리가 알던 하늘은, 그렇게 높지 않았으니까.






세상이 망하고 사람들은 보통 세 부류로 갈렸다.


자살하는 놈, 절망하는 놈, 미친놈.


자살하는 놈들은 일찌감치 죽었다. 망한 세계에서 절망하는 건 당연한 순리다. 요는 그걸 극복해서 살아남느냐, 혹은 극복하지 못하고 주변인들 힘 빼는 짐덩어리 고구마가 되느냐이다. 전자는 대장과 J이고, 후자는 저기 늘어진 선배들이다. 그리고 미친놈들은, 무모했다. 겁대가리를 상실한 사람들에게 무서운 건 아무것도 없기에. 그래서 어제 무리하게 보균자와 대치하던 그 선배가 내 옆에서 헤드샷을 당한거고.


대장은 저렇게 나약한 척하지만, 그의 명석한 두뇌는 벌써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어떻게 해서든 해결책을 강구해낼 것이라고, 그 날의 우리는 막연히 믿고 있었다. 그가 모럴리스의 냉혈한이라는 것을 멸망 전 기억처럼 덮어 놓고 보지 않으면서.


선배와 동기들을 일으키고 밥을 먹인 나는 비어가는 박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며칠 전, 3명이나 희생해서 도착한 학교 매점에서 급히 털어온 물품들이었다. 급식실에 가는 것이 더 많은 걸 구할 수 있었을 테지만, 우리에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급식실 안에서 보균자가 날뛰고 있었으니. 대여섯 명이 한 박스 씩 이고 왔는데, 매점의 불량식품들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벌써. 총체적 난국이었다. 음식은 점점 더 떨어져 가는데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이곳에 갇혔다. 좀 있으면 인육이라도 먹어야 할 판이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 나는 로비 문 앞에 산처럼 쌓인 시체 더미를 바라보며 그 생각은 접기로 했다. 역겨워. 사람이 정도가 있어야지.


둘이서 무슨 작당모의라도 하는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대장과 J가 돌아오지 않자 슬슬 불안해졌다. 어차피 열흘째 패닉인 놈들은 보름이 지나도 정신 차릴 일 없다. 주위를 흘깃 돌아본 나는 J와 대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둘은 아주 진지한 대화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장이 무너진 건물 잔재를 손으로 짚으며 무언가 설명하고 있었고, 꽤 괜찮았던 것인지 내뱉는 말의 97%가 비속어인 J도 조용히 경청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로 주변의 짱돌을 하나 주워 던져 내 존재를 알렸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돌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추락했다. 돌이 산산조각나는 경쾌한 소리가 울리고, 그들은 나를 돌아보았다.


“짱구 좀 굴려 봤어?”


“오냐, 딱 맞춰 왔네.”


대장이 입꼬리를 밀며 미소 지었다. 비릿한 얼굴에 어린 것은 일종의 광기였다.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끼며 나는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갔다.


“여길 버릴 거다.”




뭐라고?






공방주인.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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