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이런 비슷한 경험을 많이 해봤던 아이들이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그 동안엔 벽에 새겨진 벽화를 눌러서 비밀 장치를 가동시키거나, 횃불을 당겨서 비밀문을 열거나, 아니면 보다 간단하게 벽을 누르거나 바닥이 열리거나 하는 식으로 일이 풀렸었다. 

그런데 여기는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통과할 수 있는지 연옥봉을 휘둘러보고 영력을 써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보통 이런 때에 소 뒷걸음 치다가 쥐 잡는 격으로 길을 몇 번인가 뚫은 적이 있는 다니엘이 벽을 샅샅이 문지르고 누르고 여러가지를 해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이리저리 눈 앞에서 다니엘의 섬섬옥수가 움직여대자 괜히 지훈의 짐승력만 자극당하고 말았다.

"야... 손 보고 꼴리는 거... 정상이지?"

"뭐? 아 ㅋㅋㅋㅋㅋㅋㅋ 넌 진짜 확실히 나랑 같은 과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훈이 갑자기 다가와서 다른 아이들에게는 들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묻자, 우진은 웃겨 죽으려고 했다. 

"아 쫌 그만 처웃고 대답이나 해!" 

"아 그야 당연히 정상이지! ㅋㅋㅋㅋ 생각보다 뭘 좀 아는데~ 박지훈 ㅋㅋㅋ" 지훈이 버럭하자 우진이 뭘 그런 당연한 걸 묻냐는 투로 격하게 긍정했다. 저런 걸 묻는 지훈이나.. 그걸 또 받아주는 우진이나.. ㅋㅋㅋㅋ

지훈은 '당연히 정상'이라는 우진의 말에 굳었던 표정을 풀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 반지도 야해 ㅅㅂ"

"ㅋㅋㅋㅋㅋ 아 너 내숭 안떠니까 좋다 ㅋㅋㅋㅋㅋ 원래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심하게 포인트잖아 😆 난 영민이 손가락을 $%&$*#%*#%" 

'손가락이 포인트다' 까지는 용납해 줄 수준이었지만 그 다음에는 방송에서 삐처리를 해야 할 정도로 내용이 막장이었다. 

지훈이야 그러려니 했지만 바로 뒤에서 모든 대화를 들은 진영은 주위를 살펴서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음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진영은 이 문제의 시작점이었던 다니엘의 손을 바라보며 어이가 없어 했다. '아니 근데 대체 어디가 야하다는 거야 ㅡㅡ;; 눈물점이면 몰라도.' 엥? 얘도 잘 나가다가 끝에 ㅋㅋㅋ

정말 다행히도 이 엄한 대화 내용을 들었다면 버럭했을 재환이는 아직 민현의 백치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중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그저 시간만 하염 없이 흐르고 있었다. 

물론 이렇게 지체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재환이 단단히 막아놨어도 결국엔 뚫린 모양인지 뒤에서 폭탄이라도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Go get 'em! (가서 잡아와!)] 

"헉!" 

위에서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군화 소리 같은 절도 있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왔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었다.

"쳇, 빨리도 왔네." 가장 계단 가까이에 있던 지훈이 천도선을 펼쳐들었고, 그 옆에 있던 우진은 연옥봉의 출력을 최대로 올리며 전투 태세에 돌입했다. 다음으로 관린 역시도 권총을 손에 쥐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정작 여지껏 차단되어 있던 빛이 답이었다. 

"저기 저기 보세요!" 대휘가 가리키는 곳에는 매우 인도스러운 문양이 하나 새겨져 있었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는 아무것도 없는 회벽이었던 곳이었다. 

지훈의 섬광각(閃光殼)이 비췄을 때는 맨벽으로 보였던 그곳에 자연의 빛이 닿자 문양이 생겨났다. 빛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수록 문양은 점점 앞으로 볼록하게 돌출되기 시작했다.

"오오!" 

"와~!"

가운데 커다란 루비색 보석을 중심으로 주변에 다양한 색을 가진 여덟개의 보석이 박혀있는 형태였다.  

인간의 영혼 또는 태양을 상징한다고 알려진 나브라트나(Navratna)라 불리는 인도의 전통문양을 토대로 만들어진 장신구였는데, 정가운데에 루비가 있었고 12시 방향의 다이아몬드부터 시계 방향으로 진주, 산호, 가넷, 블루 사파이어, 캣츠아이, 옐로 사파이어, 에메랄드가 가지런히 세공되어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여일고여덟 역시 ㅋㅋ 자, 다들 뭘해야 할지 알겠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보석의 수를 세어본 성우가 아이들을 향해 물었다.....가 후회했다.

다니엘이 곧바로 이렇게 질문했기 때문이다. "으.. 응? 뭘 하는데 .ㅇ_ㅇ??"

재환은 다니엘이 간만에(?) 선보이는 댕청함을 참지 못하고 버럭했다. "야!!! 뭐긴 뭐야! 팔괘잖아 팔괘!!" 

순간 욱해서 한마디 한 재환은 다음 순간 쫄았다. 지훈이 가만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만다행이게도 지훈은 계단 쪽에 결계를 펼치느라 이쪽에 신경쓰고 있지 않았다.

"응, 내 생각도 그래. 얘들아, 얼른 힘을 부어보자!"

"내가 알기로 저건 우주를 나타내. 그러니까 우리도 우주의 이치를 상징하는 선천팔괘 방위로 가자!" 성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민현이 재빠르게 덧붙였다. 민현의 설명처럼 아이들이 보고 있는 나브라트나 문양은 태양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고대 인도인의 우주관과 천체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이번엔 지성이 다니엘에게 곧바로 어느 보석을 향해 힘을 부을지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재환의 혈압이 올라갈 일은 없었다. 

선천팔괘의 방위에 따라 곤괘인 다니엘이 북쪽, 진괘인 이우진이 동북쪽, 리괘인 박우진이 동쪽, 태괘인 민현이 동남쪽, 건괘인 지훈이 남쪽, 손괘인 진영이 서남쪽, 감괘인 성우가 서쪽,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괘인 재환이 서북쪽의 보석을 향해 영력을 내뿜었다.

그러자 아이들의 예상대로 정가운데의 루비색 보석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          *          *



빛이 거두어지자 나브라트나 문양의 보석은 그 힘을 다했는지 색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눈부심에 앞을 가리던 아이들이 다시 눈을 떴을 때엔 배경이 바뀌어 있었다.

"와~ 여긴 또 어디래?" 성운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른 아이들도 주변을 둘러 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이들이 서 있는 곳은 석굴 한가운데의 회랑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양 옆으로는 굴을 지탱하고 있는 커다란 돌기둥이 쭉 뻗어 있었는데 기둥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는 정교한 조각의 보존 상태가 훌륭했다. 

또한 둥근 아치형의 천장, 사방으로 길게 뻗은 석굴, 벽마다 보이는 프레스코 벽화까지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민현과 재환은 방금 전까지 쫓기던 상황이었다는 것도 잊고는 데이트하는 기분으로 벽화를 감상했다. 이곳의 벽화는 그려진지 수천년이 지났을 텐데도 그 영롱한 색감이 살아있어 고고학에 심취한 두 사람으로 하여금 찬사를 자아내게 했다. 

"대박! 재환아, 여기 거기야. 아잔타 석굴(Ajanta Caves)!"

"응! 나도 공부한 적 있어! 저기 저 연꽃을 든 보살이 섬세하게 잘 묘사가 됐는데 그 옅은 미소가 일본 법륭사(法隆寺)에 있는 금당 벽화의 관음 보살하고 정말 비슷하다면서?"

"맞아! 우리 나중에 법륭사도 꼭 가보자."

"응! 당연히 가야지 ㅎㅎ"

"그나저나 여기를 오게 될 줄은 몰랐네? 난 인도로 순간이동 한다면 당연히 타지마할(Taj Mahal)로 가게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러게 나도 나도 ㅎㅎ"

"그래도 여기라서 다행이다. 너 이런 거 좋아하잖아~❤️"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민현의 심쿵 멘트에 홀릭한 재환은 두 볼 가득 홍조를 띈 채, 민현의 입술에 베이비 키스를 하고 떨어졌다. "으.. 으응//" 

"에이 감질맛 나게 그러지 말고 기왕 하려면 혀도 좀 쓰자~" 

"뭐.. 뭐래! 이 변태 아저씨가!!" 끊임 없이 진화하는 민현 때문에 놀란 재환은 앙탈을 부리며 민현을 향해 솜주먹을 휘둘렀다. 아니 근데 너 조금 전까지 '공수전환' 계획 세우고 있었던 걸로 아는데 ㅋㅋㅋㅋㅋ  

민현은 재환의 그런 모습도 사랑스러운지 새빨간 혀를 내밀며 입맛을 다셨다. 뭔가 딥키스가 이뤄질 것 같은 분위기라 다 듣고 있던 다니엘은 슬쩍 자리를 피해주려고 했다. 괜시리 지훈이가 보고 싶기도 했고 말이지 ㅋㅋㅋ

다만, 아쉽게도 민현과 재환의 즐거운 한 때는 오래가지 못했다.

갑자기 무언가 물레방아나 맷돌 같은 장치가 작동하는 것처럼 커다란 바위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엄청난 속도로 어두워졌다. 천장에서 돌판이 하나하나 내려와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점점 차단했기 때문이다. 

"뭐.. 뭐지?!"

입술 도킹을 앞두고 있던 두 사람의 머리 위로도 돌판 하나가 무서운 속도로 내려오고 있었다. 아 키스 하는데 좀 냅두지 ㅠㅠㅠㅠㅠ 

"위험해!!" 다니엘이 몸을 던져서 문화재 감상에 심취한 재환과 민현을 구했다. 쓰러진 세 사람 뒤로 돌판이 쿵 소리를 내며 아슬아슬하게 떨어졌다. 

재환은 이런 일이 생길 때는 주로 다니엘이 고양이 조각상을 건드려서 그랬기 때문에 보지도 않고 다니엘이 뭔가를 했으리라고 짐작했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모두들 눈으로만 감상했지 무언가를 터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니엘은 문화재엔 관심도 없었고 민현-재환의 꽁냥꽁냥한 연애를 바로 앞에서 직관하고 있었으니 뭐. 결정적으로 고양이 비슷한 것도 없었고 ㅋㅋㅋㅋㅋ

한숨 돌렸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다니엘이 고개를 들어 보니 지훈이 돌판 밑에 깔린 무언가를 빼내려고 낑낑대고 있었는데 그런 지훈의 위로도 돌판 하나가 내려오고 있었다.

"지훈아!!!!!!! 피해!!!!!!!!!!" 

녤른! 특히 윙녤에 환장하고 워너원 고루 아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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