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 네. 그… 저……."


  습한 손이 작게 떨려 휴대폰이 미끄러졌다. 가까스로 놓치는 것만은 면한 휴대전화를 힘주어 고쳐 쥐며 말했다.


"…실종 신고를 하려고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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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9일, 딸아이가 사라졌다. 평소와 달리 자그마한 신발이 널브러져 있지 않은 현관을 맞닥뜨린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컴컴한 집으로 들어서 몇 번이나 딸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집안은 고요했다. 담임과 딸아이의 친구 집에 죄다 전화를 돌리고 수십 번이나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혹시 A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A 학교 마치고 어디로 갔는지 아시나요?' 앵무새처럼 수십 번이나 같은 질문을 반복했고, 같은 질문을 반복할수록 불안은 커졌다. 하얀 화면을 내려다보던 손이 느리게 움직여 애써 외면하고 싶던 현실을 받아들였다. 입이 떨어지지 않아 한참이나 숨을 고른다. '저… 실종 신고를 하려고 하는데요.'


  성명 A. 9살. 신장 132cm. 검은 고무줄로 묶은 포니테일, 하얀 원피스, 연분홍 운동화. 실종 신고서에 작성한 딸의 신상 정보는 고작 이걸로 딸을 찾을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조촐했다. 딸아이의 사진을 제출하는 손이 머뭇거렸다. 이 정도 정보로 찾을 수 있었으면 찾지 못할 실종 아동이 있을까. 넋 나간 눈은 초점을 잃었다. 그러나 경찰서에서 뜬눈으로 크리티컬 아워를 넘기고도 한참이 지나서는 주변인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차분해졌다. 아내를 먼저 보낸 8년 전 분만실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병원으로 출근하자마자 나는 곧장 사표를 냈고, 원장님은 교수직과 의료진을 모두 사퇴하는 데에는 보름이 걸린다고 했다. 나는 죽은 눈으로도 일했다. 수년간 해내던 일과는 별생각을 깊이 하지 않더라도 습관적으로 해낼 수 있었다. 진작부터 잡혀있던 외과 수술을 집도하고 환자를 회진하는 일과는 숨 쉬는 것처럼 익숙했다.


  어느 날부터 병원 사람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다. X 교수가 사표를 냈다고, 곧잘 인자하게 굴던 교수가 그날부터는 겉치레로도 웃지 않는다고, 혹은 딸 생사도 모르는 아버지가 저렇게 일을 멀쩡히 할 수 없다든지, 사실은 딸이 실종된 것이 다 주작일 거라든지 하는 뜬소문까지 돌았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아니, 그런 데에 쓸 여력은 애초에 낭비였다. 지도 위 딸아이의 학교를 중심으로 그어진 수십 갈래의 빨간 선들은 도보로 가능한 모든 길목을 나타냈고, 퇴근하는 대로 하굣길 주변에 달린 CCTV들을 하나하나 체크하고 확인 요청을 보내는 일은 매일 밤 반복되었다. 밤새도록 저화질의 영상들을 식별하기 위해 눈 찡그려가며 반복해서 돌려보았으나 이렇다 할 소득은 없다. 검열된 CCTV가 설치된 길목은 x 표시를 해두어, 지도는 x 표시로 가득하다. 유일하게 동그라미로 이어진 길목의 끝에서 마커가 머리를 둔 채 갈 곳을 잃었다. 지도 위로 시뻘건 마커가 번져나간다. 딸은 이 골목에서부터 사라졌다.


  나는 사퇴하는 대로 교외의 부지와 컨테이너 건물을 매입했다. 업자를 불러 건물을 보수하고 그 외엔 딸이 사라진 길목을 몇 번이고 오르내렸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그 좁은 틈에도 난잡하게 주차된 차들 탓에 안 그래도 좁은 길목이 더욱 좁게 되었다. 나는 그 길을 수십 수백 번은 더 오가고서야 검은 차량 앞에 멈춘다. 차는 사용감 없이 전면 유리에 낀 먼지가 수더분한 채로, 한결같은 위치에 주차되어있었다. 그저 언제까지고 세워두는 차량 주제에 측면에서 자세히 들여다봐야 간신히 보이는, 다 죽어가는 블랙박스 불빛을 희미하게 껌뻑였다. 먼지 끼어 뿌연 영상 속 훤칠한 키에 마른 체격의 남자는 허리께 밖에 오지 않는 여자아이와 함께 있다. 아이의 밝은 성격이 그제야 안타까웠다. 그때쯤이었다. 경찰이 딸의 시신을 찾았다고 했다.


  나는 끝까지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시신이 딸아이가 아니길 바랐다. 그놈이 몹시 나쁜 놈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지만, 그래도 사랑스러운 여자아이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나쁜 놈은 아니길 바랐다. 밤낮으로 믿지도 않는 신을 애타게 찾으며 아니길 기도했는데, 현실은 내 바람을 쉽게 저버렸다. 유전자 검사의 결과는 99% 일치로 판명 났다. 소중한 하나뿐인 유일한 혈육, 내 사랑스러운 딸은, 죽었다.


  상주가 되어 딸의 장례를 치르고도 나는 그날의 자취 향한 방향을 끝없이 추적했다. 야산으로 이어지는 자취를 좇는 내내 남자의 얼굴을 오래도록 응시하자면 묘하게 어딘가 익숙했다. 아는 사람도 아닌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며칠씩이나 흐린 기억을 더듬고서야 나는 그 기시감의 원인을 알아냈다. 병원에서의 마지막 날, X-ray 실의 선팅 된 작은 사무실에서 본, 기계나 끌어안고 미친놈마냥 실실 쪼개던 그 새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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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겨운 새끼답게 음습한 길만 골라 나다니는 놈은 어느 날 갑자기 오간 데 없이 사라져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였다. 나는 놈이 틈을 보이는 즉시 야구 배트를 쥐고 내심 이대로 목덜미가 부러지길 바라며 세게 내려쳤다. 놈을 들쳐메고 차 트렁크에 욱여넣고서야 내려다본 사내놈의 반반한 낯짝은 아무리 봐도 메스껍다. 놈의 생포는 꼬박 한 달 가까이를 그놈 뒤꽁무니만 쫓아다니고서야 이룬 성과였다.


  곧장 교외지로 향해 트렁크에 실린 놈을 질질 끌어 외딴 컨테이너 건물의 지하실로 향했고, 지하실 벽에 박힌 말뚝에 대고 놈의 손발을 묶어놓았다. 놈은 깨어나지 못해 축축 처지는 몸이 벽에 고정된 채 고개를 떨구었다. 오래전 학생 때나 보던, 사지가 핀에 꽂힌 개구리를 닮아있었다. 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향한 X는 Y를 지하실에 혼자 둔다. 콘크리트벽과 바닥에 듬성듬성 박힌 말뚝, 지하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의자 하나, 바닥에 난 서너 개의 손바닥만한 배수구, 칸막이 없이 간이로 설치된 화장실과 수도꼭지 하나가 고작인 지하실은 전등마저 천장에 건성으로 달린 백열등 세 개가 다였다. 일반적인 오피스텔과 유사한 일 층의 카우치에 앉아 숨을 돌렸다. 놈을 드디어 잡았다, 안도하기도 전에 속에서 화가 끓었다. 당장에라도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동시에 죽이고 싶지 않았다. 죽음은 너무 쉬웠다. 재갈과 야구 배트, 날 선 과도를 들고 다시 지하실로 향했다. 다시 마주한 놈은 깨어있었다.


"팔자 좋게 잠이나 처자지 왜 깼어."


  의자 위에 과도와 재갈을 내려놓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바닥에 질질 끌리는 야구 배트가 쇳소리를 냈다.






잘 짖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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