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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겨울안개









그런 소동을 겪고 사람이 이렇게 피곤할 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을 때, 시계를 보며 더욱 허탈감에 빠져야 했다. 집을 나선지 고작 두어 시간이 지나 있을 뿐이었다. 세훈은 어지러운 머리를 쉬게 하려 옷도 벗지 않고 침대에 모로 누웠다. 슈트의 재킷과 타이가 답답했지만, 손가락 하나조차 움직이기 싫을 정도의 무기력함이 온몸과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민석의 집에서 소동을 치르고 나온 후로는 다시 본적도 없었던 얼굴. 앞으론 두 번 다시 보지 못하리라 생각한 그 얼굴을 의외의 장소에서 마주 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그 ‘최건형’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또 약에 절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한숨을 내쉰다.




혹시 그 옛날 세훈이 그랬던 것처럼 가세가 기울어 험한 일을 하고 다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민석을 챙기러 온 학생 중 하나가 유명 대학의 마크가 박힌 점퍼를 입고 있었다는 점에서 묘하게 안도하게 된다. 사람을 시켜 뒷조사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고 어지러웠다.






“딱 부러지는 새끼가 왜 그런 꼴로 다니고 지랄이야. 재수 없게.”






벌떡 일어나 앉아서 왁스로 애써 스타일링 했던 머리를 헝클이고 타이를 풀어 던졌다. 그와 함께 들어와 지낼 거라 생각했던 커다란 방안이 휑하다. 또 짜증이 난다.

















오세훈 X 김민석





탈출 08 : 과거 회상 上








오랜만에 용돈을 두둑이 받았다. 회색 투피스를 입은 여자의 늙은 손이 세훈의 허벅지 사이를 만졌고, 다른 손이 벨트를 풀었다. 누워있던 세훈의 위에서 내려찧으며 흔들리는 몸뚱어리. 세훈은 온몸이 축축한 곳에 갇힌 기분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감는다. 그는 종종 이런 식으로 돈을 번다.






“너 여기서 여자들 등쳐먹으면 얼마나 버니?”






여자를 처음 본 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등쳐먹는다고. 화대를 받으며 몸을 팔았다 정도까진 사실이니까 이해를 할 수 있었다만, 사기를 치진 않았음에도 등쳐먹는다는 소리를 들으니 아주 기분이 고깝다.






“사모님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벌겠죠, 뭐.”






깍듯이 사모님이라 칭하며 대답한 말 치고는 건방진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화는커녕 세훈을 바라보며 웃었다.






“더럽게 재수 없네, 너.”


“사모님도 재수가 많아 보이진 않아요.”


“그래도 좀 고분고분해져봐.”


“저 지금 엄청 고분고분한데?”


“이런 걸 돈 주고 사는 사람이 있다니. 놀랍다.”


“그 놀라운 사연의 주인공이 되어보세요.”






여자가 마시던 술을 자신의 글라스에 채워 들고 허공에서 한번 흔들었다. 눈썹을 까딱거리고, 입속으로 술을 털어 넣었다. 식도를 태우는 독주의 맛을 느끼며 오늘 장사는 공 쳤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세훈을 샀다.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들을 계산하는 것처럼 평범했고, 자연스러웠다.




그녀는 세훈의 계좌로 제법 큰 금액을 입금했고, 그의 입속으론 잘 정제된 알약을 넣었다. 우위에 놓인 그녀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 목구멍으로 들어온 알약을 삼켰다. 불타버린 집에 우두커니 서서 찬바람을 맞던 때가 떠올랐다. 여자와 행위를 하고 있음에도 자꾸만 그때의 바람이 불었다. 그녀의 살에 코를 파묻고, 미친 듯이 허리를 움직여도 바람은 멎을 줄을 몰랐다. 그렇게 희뿌옇게 새벽이 밝아 올 때까지 짐승처럼 울어 제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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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하는 여름의 태양 볕 아래. 시커멓게 이글거리던 거대한 문은 마치 지옥의 문을 연상케 했다. 여기저기 검댕이가 묻고, 피부가 녹아버린 부모가 그 곁에 서있다. 마치 수문장 같은 모습이다. 아들의 죽음을 기다리며 아가리를 벌려 집어삼키길 고대하는 것도 같다. 그로테스크한 그 광경에 세훈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직도 약기운이 남은 뇌가 환각을 만들어냈다. 담배를 들고 있는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누가 보았다면 부모의 모습을 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했겠지만, 세훈은 그렇게 보이는 게 싫어 짜증을 내며 타다만 담배꽁초를 내던졌다. 부모의 몸을 통과한 담배꽁초가 붉은 불씨를 터트리며 문에 부딪힌다. 집에 불을 지르고 자살한 부모는 애초부터 세훈에게 해를 끼칠 생각이 없었던 사람이다. 오히려 그들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 셈이었는데, 오늘의 모습은 어쩐지 불길했다.




어젯밤 약을 삼키고 밤새 엄마를 찾아 외로움에 떨고야 말았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기도 했지만, 못마땅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새 담배를 꺼내 잇새에 물고 라이터의 부싯돌을 돌리는 동안에도 그들의 눈은 세훈을 향해 있었다. 시선을 느끼며 초조해진 세훈의 손에 힘이 빠진다. 꼭 손가락의 끝부터 먼지가 되어 허공에 흩어지는 기분이다.




그때, 그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가 있다. 부모를 지나쳐 한걸음씩 내 디딜 때 마다 질척거리는 땅에서 오물이 튀어 올랐지만, 그의 몸은 새하얗게 빛이 날뿐 더러워 질 줄을 몰랐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 마다 옮겨간 자리엔 하얗게 빛나는 궤적이 남아있었다. 세훈의 눈이 신기한 듯 궤적을 따라 움직이다가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피곤해 보이는 그의 눈엔 어젯밤 자신을 부르던 여자의 오만함이 담겨있어 웃음이 난다.






“진짜 병신이야?”






여자에게 하고 싶었던 것들을 괜히 아이에게 퍼부었더니, 쪼끄만한게 대답도 않고 집안으로 홀랑 들어가 버린다. 그 모습에 짜증은 나지 않고 웃음이 난다. 새벽까지 흔들었던 <삭제> 살갗이 벗겨지기라도 한건지 갑갑한 청바지 속에 갇힌 사타구니가 얼얼하게 달아오른다. 아이의 그 시선을 떠올리며 불룩한 아래를 만지고 수음이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담배나 하나 더 태우는 걸로 결론을 짓는다. 세훈의 눈이 아직도 멍하게 풀려있다.





돈을 먹고 자라난 사람들은 원래 이렇게 성격이 재수 없는 건지 두 사람은 한 몸처럼 짜증스러웠다. 하나는 약을 처먹고 욕을 하고, 하나는 세훈에게 듣기만 해도 진절머리 나는 호칭으로 부른다. ‘아빠’소리와 함께 벌어진 다리 사이에서 약에 취한 사람처럼 몸을 흔드는 자신의 모습도 기괴하다. 약을 먹은 여자의 두 눈동자가 점점 빛을 잃어 갈 때쯤부턴 세훈의 허리짓도 천천히 멎어갔다. 여자의 축축한 내부가 순식간에 말라드는 것이 느껴진다. 뻑뻑해진 곳에서 <삭제> 꺼내자 안쪽에서 <삭제>. 침대에 드러누워 허연 몸뚱이를 혹사시킨 여자가 꺽꺽거리며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세훈은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그녀에게로 다가간다. 그녀의 목에 손을 얹고, 잠깐 힘을 줘본다.




‘너만 없으면.’




이 여자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깜짝 놀란 그가 손을 물리고 다시 필터를 빨아 당겼다. 이 여자가 사라지면.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시 가만히 필터를 빨고, 연기를 뿜으며 한숨을 쉰다. 먹지도 않은 약은 혈관을 따라 흐르며 온몸을 뱅글뱅글 돌다가, 어느 순간 뇌 속으로 흘러 들어가 모든 것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문을 열고 여자가 있는 공간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빗소리는 크고, 이따금 전광이 번쩍 거리며 실내를 비춘다. 여자가 죽으면 소파에 앉아 손장난을 하는 아이는 어떻게 될까. 그를 감히 자신이 가질 수나 있을까.






“좀 더 해봐.”






생각은 지우고 미처 갈무리 하지 못한 <삭제> 민석의 손장난을 종용한다. 세훈을 아빠라 부르며 벌어지는 입속으로 <삭제>






“넌 이거 빨 때가 제일 예뻐.”






세훈의 젖은 손이 민석의 마른 머리카락을 쓸었다. 머리칼에 진득한 액체를 묻힌 채로 <삭제>. 머리가 쪼개질 듯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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