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움을 트기엔 다소 이른 날씨였다. 오히려 구름이 조금 끼어 흐린 하늘은 기분을 오묘하게 만들었다. 졸업식이란 그런 것이었다. 아직 쌀쌀한 초봄의 바람이 코끝을 스쳤고, 카게야마는 우두커니 서서 누군가를 바라보다 이내 인파 속에 떠밀려 사라지는 남자를 조심히 따라나섰다. 까만 가쿠란은 이곳과 다소 어울리지 않는 교복이었기에 카게야마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꽤나 부단히 애를 썼다. 그 결과 이방인인 카게야마를 알아차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카라스노의 졸업식은 불과 어제였기에 오늘 연습은 없었지만 언제나 매는 스포츠백에는 유니폼과 타올이 정갈하게 들어 있었다. 카게야마는 졸업식을 굳이 두번 씩 오가는 제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몸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카게야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시간을 확인하고 아오바죠사이로 가게 되었다. 

또래 중에서도 훤칠하게 큰 키. 다부진 체격. 상대편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눈빛. 공을 빨리 빼낼 수 있는 날렵한 손짓. 오이카와는 현내에서 익히 알려진대로 우수한 선수였기에 배구에 적합한 여러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또 코트 안에서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은 매우 큰 오이카와의 장점이었다. 그런 오이카와의 후배인 카게야마는 유스 합숙에 다녀오고 봄고에 출장한, 마찬가지로 우수한 세터였다. 하지만 카게야마는 지금까지 있었던 오이카와와의 경기에서는 답지 않게 초조함을 느꼈다. 

둘을 이어주는 건 어찌 되었건 배구라는 공통 분모가 있기 때문이었다. 카게야마는 배구를 통해 오이카와를 만났다. 그렇기 때문에 카게야마는 멀끔한 뒤통수를 바라보다 늘상 비슷하게 배구 생각을 했고, 또 계속해서 그의 뒤를 밟으며 보름 전의 경기를 떠올렸다. 


“어택 커버!”

3세트 중반 긴 랠리가 이어지는 와중 몸을 날린 리베로가 세터를 향해 공을 띄웠다. 세터는 자신이 생각한 최적의 세트업을 해야만 한다. 오이카와 씨였더라면 분명 블로커를 따돌린 후 공격수가 치기 쉽도록 원 블록인 상태에서 공을 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코트 반대편의 있는 세터는 오이카와가 아니었기에 전위에 있던 카게야마는 그대로 공을 눈으로 쫓은 후 따라 뛰었다. 아주 순식간이었다. 카게야마의 손에 맞은 공이 세이죠의 코트 안으로 빠르게 셧아웃 되었다. 그 후로 분위기를 잡은 카라스노는 손쉽게 마지막 세트까지 따냈다. 

그리고 허전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카게야마는 아쉬움에 몇 번이고 세이죠의 웜업존을 바라보았다. 입시가 모두 끝나 홀가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3학년들은 경기 내내 저마다 감탄사를 내뱉으며 환호하기도 하고 후배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카게야마는 그 중에서도 오이카와만을 찾았다. 그가 같은 포지션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경기 후 땀을 닦고 가쁜 숨을 내뱉어도 보지만 차분해지지 않았다. 치열하게 머리를 쓰지 않아도, 그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경기였는데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그 날도 경기에 한 번도 들어오지 않은 오이카와에게 결국 한 마디도 말을 붙이지 못했다. 


사부작 사부작 바람에 나부끼는 발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이와이즈미와 헤어진 후 티가 날 정도로 신경을 긁는 소리는 어느새 더 커져있었다. 별안간 바짝 붙어있다는 뜻이다. 오이카와는 집과 반대 방향인 오른쪽 귀퉁이로 꺾는 척을 하다 완전히 몸을 뒤로 돌았다. 여전히 잠행에는 소질이 없었다. 기둥 뒤에 숨은 까만 형상이 움찔거리다 포기했다는 듯이 완전히 밖으로 삐져나왔다. 까만 가쿠란이 잘 어울렸다. 

“도대체 아까부터 왜 도둑 고양이처럼 나를 쫓아오는 거야.”

“고양이가 어디 있는데요.”

“너 말이야. 옷도 새까맣게 입고 와서 처음엔 놀랐다고. 졸업하는 마당에 스토커가 붙은 줄 알고.”

“그건 좀 지나친 상상 같은데요.”

카게야마는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아무래도 고양이 같은 건 없었다. 바보 아니야? 오이카와는 장갑을 쓴 카게야마의 손을 내려보다가 다시 앞으로 걸었다. 들킨 건 이제 아무 상관 없는지 말하지 않아도 카게야마가 옆에 붙어 왔다. 오이카와는 왜 미행을 했냐는 물음보다는 카게야마를 골려주는 질문을 하고 싶었다. 

“시험은 잘 봤어, 토비오?”

3학년을 제외한 1, 2학년들은 졸업식 직전 학년말고사가 있었다. 오이카와는 점점 미간이 구겨지는 카게야마의 얼굴을 구경하며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카게야마의 성적은 중학교 때부터 뻔히 알고 있었다. 카라스노와 연습 경기를 할 때면 사와무라에게 골치 아픈 콤비의 낙제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다. 카게야마는 잔뜩 찌푸린 인상을 풀지 않고 오이카와를 노려보기만 했다. 이 녀석은 아직 1학년이면서 표정이 왜 이렇게 험악한 거야. 배구할 때는 대체로 표정이 온순하지 않나. 오이카와는 체육관 안에서 땀을 흘리며 뛰어다니는 카게야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동글동글한 머리통은 여전히 배구공으로 가득 차있는지 성적에 대한 얘기만 하면 묵묵부답이었다. 

“몰라요. 아직 성적은 안 나왔으니까.”

카게야마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올려다보는 오이카와의 키가 조금 더 자란 것 같았다. 


주택가의 낮은 담장과 가로수길을 계속해서 걷고 걸었다. 앙상한 나뭇가지는 그늘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바람에 흔들리기만 했다. 오이카와의 집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가까워질 수록 무슨 말을 해야할 것 같아서 속이 울렁거렸다. 카게야마는 꾹꾹 참고 눌러왔던 말을 내뱉었다. 배구에 관한 말이라는 걸 아는데도 묻기가 힘들었다. 

“왜 지난 번 연습 경기에는 주전으로 안 나오셨어요?”

봤어요.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웜업존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모습을 떠올렸다. 누군가 서브 범실을 하거나 이제 주전 세터가 된 야하바가 토스를 잘못 올리고 작전 타임에 돌아오면 그는 목청껏 그들을 직접 지도했다. 오이카와는 아오바죠사이의 주전 세터였으나 이제는 코트를 퇴장하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세이죠의 레귤러들을 격려하는 소리를 얼핏 들으며 오이카와에 대한 생각을 떨치고 또 떨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작전타임 내내 바로 코 앞에서 우카이 코치가 하는 지시가 들리지 않았다. 나쁜 사람. 나한테는 그렇게 해준 적 없으면서. 카게야마는 코끝이 찡해져 오이카와의 시선을 피했다.  

카게야마가 어떤 의미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오이카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오이카와도 그 정도의 대답을 해주기로 했다.

“이제는 1, 2학들의 경기니까. 아, 이제 2, 3학년이라고 해야 하나. 또 봄에 1학년이 들어오면 새로운 아오바죠사이가 되겠지.”

카게야마는 이제 2학년이 되고, 아오바죠사이에는 오이카와가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이 완전히 익숙해질 쯤이면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거리에도 벚꽃이 만개할 것이다. 

그렇지만, 토비오 너. 나 없다고 방심하면 안 될 걸. 내가 몇 번이나 일러뒀거든. 네가 있는 카라스노는 꼭 꺾으라고 말이야. 그 말에 카게야마가 무슨 표정을 짓는지 오이카와는 자세히 보지 않았다. 왠지 서운함을 표현하는 토비오는 상상이 잘 되지 않았으니까. 서브 토스하는 법을 처음으로 물어봤던 날 바로 거절당한 후에는 그런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속상함을 토로하는 앳된 얼굴. 발갛게 상기된 뺨. 툭 튀어나온 입술. 그 후로는 자주 놀려서 분하고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러고보니 토비오는 중학교 1학년 때, 나를 조금은 좋아했던 걸까. 쫓아가고 싶은 실력의 소유자나 배구 스킬을 알려주길 바라는 3학년 선배 쯤으로. 여전히 알려줄 생각도 없지만. 아마도 지금의 토비오에겐 알려줄 게 없을 것이다.


강한 햇빛이 내리쬐던 여름과 눈이 새하얗게 쌓이던 지난 겨울에 배구를 하던 게 아주 오래전의 기억 같았다. 오이카와는 뒤에서 따라오는 차소리를 들으며 카게야마의 팔을 잡아 당겼다. 그 순간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물론 졸업식 날에 졸업 축하를 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으레 카게야마에게는 당연한 것을 기대하면 번번히 으스러지곤 했기 때문이다. 

“졸업 축하드립니다.”

“꽃은 없어? 보통 졸업하면 꽃다발 주잖아.”

꽃다발을 샀다가 버렸다는 얘기를 어떻게 해. 카게야마는 그 말이 농담이라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 입을 다물었다. 경적을 울리는 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카게야마가 애써 시선을 돌리며 말을 했다. 

“제가 뭐라고 오이카와 씨 졸업식에 나타납니까. 카라스노 선배들도 있는데요.”

그럼 어땠어. 카라스노 선배들 졸업식 때 찾아간 소감은. 오이카와는 유독 말이 많았다. 또 그는 즐거운 듯 했다. 아직 고등학교 졸업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본 적 없다. 대학도 진로도 정해져서 저런 여유로움이 나오는 걸까. 카게야마는 아직 배구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누구와 달리 잘해주던 선배들이라서요. 아쉬웠어요.”

“너 지금 내가 괴롭혔다고 말하는 거지.”

카게야마는 감정에 잘 휘둘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추위를 막아보려 옷깃을 여밀 때마다 오이카와의 말이 속을 파고 들었다. 그럼, 나는. 이어진 오이카와의 말에 카게야마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선배, 라는 말을 할 때 누구보다 당신이 먼저 떠올랐노라고 말할 수 없었으니까. 

“난 중학교 선배 아니야?”

동경. 분할 정도로 뻗어만 가던 그 감정은 분명히 동경이었다. 그 이상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갈라지는 거리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내가 동경하는 사람이에요. 


동경, 이라는 말에 오이카와를 향한 모든 감정을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외에 무슨 말을 해야할 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뛰어넘고 싶은 사람이요.”

“알아.”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당사자에게 직접 들으니 새로웠다. 오이카와는 한숨과 같은 웃음을 지으며 입술로 호선을 그렸다. 쫓아온다는데 안심이 되는 건 나밖에 없을 거야. 카게야마는 자신의 머리를 툭 치는 오이카와가 무슨 말이라도 할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는 별달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이상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게 많았다. 오이카와는 배구 대신 평범한 말을 꺼냈다. 

너희 집까지 가려면 버스 타야하지 않아? 조금 있으면 해도 지는데. 이 정도 거리는 걸어서 자주 다니니까 괜찮습니다.

아주 무난하고 굴곡 없는 대화였다. 오이카와는 심술을 부리지 않았고, 카게야마도 엉뚱한 말을 늘어놓지 않았다. 다만 가끔 장난스럽게 그는 너도 졸업까지 이제 멀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난 고등학교를 영영 졸업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 오늘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그 날이 안 올 줄 알았다니까? 그렇습니까. 카게야마와의 대화는 바보같이 빙빙 돌았다. 오이카와는 졸업장과 받은 선물을 다시 고쳐 쥐다 카게야마에게 짐을 나눠주었다.  

“조금만 들어줘.”

오이카와가 팔목을 뻗자 매끈한 팔선이 보였다. 교복을 입은 오이카와의 모습을 많이 본 건 아니었어도 어쩐지 허전해보였다. 

“나 셔츠 단추까지 뜯겼어.”

블레이저 자켓의 앞 단추는 물론이고 손목에도 남아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는 연보라색의 셔츠 단추 몇 개도 뜯겨 오이카와의 살결이 비치기도 했다. 카게야마는 알록달록한 쇼핑백을 건네 받으며 다른 손으로 앞머리를 조금 쓸어넘겼다. 오이카와가 혼자 들고 있을 땐 와르르 쏟아질 것 같았는데 그의 짐을 나눠서 드니 그럭저럭 괜찮은 것도 같았다. 

“이제 2년 동안은 같이 경기 못하겠네, 토비오.”

“…….”

왜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지 모르겠다. 중학교 졸업 후에는 가끔 마주칠 때라도 있었는데 이 사람이 이제 대학에 입학하면 몇 년 간은 보지 못한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그런 사람이었다. 언제나 앞에 있던 사람. 

“그래도 가끔 OB로 세이죠에 오실 거죠? 제가 정찰할 때 와주세요.”

“봄고 예선 전에 나한테 걸린 주제에 또 뻔뻔하게 그 말을 하네? 그리고 네가 왜 와.”

“구경이라도 하게요. 대학 배구도 궁금하니까요.”

하하. 오이카와가 그 말에 크게 웃었다. 제 마음은 엉망진창인데 오이카와는 속 편한 소리를 했다. 킨다이치가 눈물을 흘렸다는 말이나 쿠니미쨩이 고생하셨다고 캬라멜을 던져줬다는 이야기, 또 졸업식 때 받은 선물이 너무 많아 곤란했다는 말들. 마지막엔 오이카와가 아직 날씨가 쌀쌀하다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교복은 이제 마지막이었다. 

“너도 뭐라도 받아갈래?”

“…….”

“넥타이도 없는데 토비오 너한텐 뭘 줘야 할까.”

안 줘도 된다는 말은 하기 싫었다. 오이카와한테 지금까지 받은 게 한번도 없었으니까. 카게야마는 입술을 달싹였다. 

그리고 그 순간, 볕을 바른 것 같은 목소리와 함께 카게야마의 뺨에 오이카와의 살결이 스쳤다. 나지막하게 오이카와가 속삭였다. 추운 날씨에도 뒷목과 귓볼이 뜨끈하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키스해본 적 있어?”

“아니요.”

“그럴 것 같았어.”

“왜 물어보신 겁니까.”


이유를 묻는 표정이 중학교 때와 똑같이 여전히 바보 같아서 오이카와는 웃었다. 


그런 걸 물어보는 이유는 당연하잖아. 


“그럼 첫키스를 줄게.”


으슥한 골목에 들어가서 하는 키스는 다분히 멋없고 초라했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아래 입술을 살짝 문 뒤, 천천히 입술을 핥았다. 차렷 자세라도 하는 걸까. 오이카와는 옴짝달싹 서있는 카게야마의 뒤통수를 왼손으로 조금 더 끌어 당기며 오른손으로 카게야마의 손등을 잡았다. 그리고 서둘러 그의 장갑을 벗기고 손을 마주잡았다. 

오래 공을 들여 관리하여 맨들맨들한 살결이었다. ‘세터는 손이 중요하니까.’ 오이카와는 중학교 때 카게야마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너는 그 말을 기억하고 있을까. 오이카와는 자신의 손을 매만질 때마다 가끔씩 카게야마를 떠올렸다. 우리는 같은 코트에 있지 않더라도 손을 보호하기 위해 똑같이 크림을 펴발랐을 것이고, 줄톱으로 손톱을 다듬었을 것이고, 손가락 단련을 위한 트레이닝도 했을 것이다. 너와 나. 똑같이. 

한 겨울에도 부드러운 카게야마의 손을 오이카와는 보다 꽉 쥐었다. 오이카와는 살짝 입술을 떼고 숨을 골랐다. 조금만 숨을 내뱉어도 하얀 입김이 되어 카게야마의 붉어진 뺨 부근에 흩어졌다. 그리고 다시 입을 맞추는 순간, 이번에는 카게야마가 오이카와의 어깨 위로 손을 올리며 조심스레 혀를 움직였다. 엉키는 시선이 무척이나 위태로웠다. 

힘이 들어 간 손으로 깍지를 끼자 카게야마의 단단한 손가락 마디가 느껴졌다. 오이카와는 손가락으로 천천히 카게야마의 손톱을 문질렀다. 배구를 잘하고 싶었다. 누군가를 간절히 뛰어넘고 싶은 시기에, 그리고 네가 나타났을 때, 나는 네 손을 보며 내 손과 무엇이 다른지 수없이 고민해야 했다. 


토비오. 나는 이제 너와 뭐가 다른지 안다. 


“우린 1년씩만 보네.”

오이카와는 눈시울이 붉어진 카게야마를 빤히 바라보았다.

올해는 너와 코트를 마주보고 경기를 했다. 네가 고등학교에 올라오기를 바라면서 하루종일 연습하던 때도 있었어. 그리고 한 여름, 네 손이 내 등에 닿은 날. 나는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했다. 너와는 수없이 선두를 다투며 앞으로 나아가야한다는 것을. 아주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나는 뒤처지겠지. 하지만 토비오. 이건 불쾌한 감정이 아니야. 


사랑. 아직 너에게 전할 수 없는 이 감정은 오랫동안 용서하지 못한 나의 사랑이었다. 


“배구를 계속 한다면 너와 나는 계속 마주칠 거야.”


그러니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자. 


“그때까지 잘 있어.”


카게야마에게 또박또박 말을 건 오이카와가 먼저 다시 뒤를 돌았다. 다시 만날 때까지 또 같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불확실한 확률 속에서 한 가지 확실한 건 세터라는 똑같은 포지션으로 너와 내가 변함없이 코트를 마주보고 만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토비오.


그리고 그 때에 나는 너에게 사랑에 빠질 순간이 아직 남아있냐고 물을 것이다. 

욕조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