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화창한 날이었다. 사와무라는 콧노래를 부르며 트럭에서 짐을 내려 집 앞에 쌓아놓았다. 미유키는 사와무라가 내려놓은 짐을 현관 안쪽으로 옮기면서 쉴 새 없이 투덜거렸다. 날씨는 덥고, 햇빛은 따가우며, 짐은 많고 무거워서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사와무라는 애인의 투덜거림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짐을 나르며 하얗게 칠해진 1층 집을 바라보았다. 좁은 자취방을 벗어나 새롭게 살게 될, 두 명의 보금자리였다.


 "남자가 뭘 그렇게 투덜거려요? 이 정도 짐이야 별 거 아니잖아요."

 "별 거 아니긴? 엄청 많잖아. 사람 부르면 되는걸 가지고 꼭 자기가 하겠다고……."

 "우리가 하면 더 좋잖아요? 집 사느라 돈도 많이 썼으니까 절약도 할 겸."


돈 절약도 있었지만, 새 집에 제일 먼저 발을 들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미유키와 처음으로 같이 살게 되는 집이었다. 신혼집이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붙일 만한 집이었다. 그러니까 기왕이면 이삿짐을 옮기는 것도, 청소를 하는 것도 둘이 같이. 물론, 그런 말을 하는 건 창피하다고 생각한 탓에 그런 생각들은 사와무라의 입속에만 꼭꼭 숨겨져 있었다.

불평을 터트리긴 했지만 미유키도 꼼꼼하게 짐을 살피며 박스들을 안쪽에 들여놓고 있었다. 서로의 자취방을 돌아보며 가져갈 물건과 두고 갈 물건을 정리했을 때는 별 거 없겠구나 싶었는데, 막상 짐을 옮기러 오고 보니 산더미 같았다. 지출이 컸던 게 사실이라 돈을 아끼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 알았다면 그냥 조금 더 돈을 쓰고 말았을 것이다. 미유키는 입을 쭉 내밀고 짐을 옮겼다.

일이 고되니 입도 움직이지 않았다. 두 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짐만 열심히 날랐다. 트럭에서 짐을 다 내린 후에는 집 안으로 들어가 거실에 늘어놓은 박스 중에서 당장 필요한 것들만 열었다. 밥솥이나 밥그릇, 젓가락, 이불이나 베개 같은 것들.


 "이거 안방에 갖다놓는다?"

 "네, 네. 저는 이거 정리하고 있겠슴다."


미유키가 이불을 들고 일어나자, 사와무라는 옆에 있던 박스를 두들기며 말했다. 미유키는 안방으로 들어가 더블침대 위에 이불을 깔다가, 괜히 뿌듯한 기분이 들어 침대 위에 앉아도 보고 뒹굴어도 보았다. 이제부터 후배와 같이 산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지면서 들떴다. 침대는 하나, 베개는 두 개. 그게 왜 그리 설레는지. 이불을 다 깔아놓은 후에도 그는 침대를 떠나지 못했다. 이 침대에서 잠들고 나서 깨어나면 사와무라가 옆에 누워 있을 거라는 게 꿈만 같았다.


 "선배, 선배!"


침대에 엎드려 단꿈을 꾸고 있다가 사와무라의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미유키는 급하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왜, 왜? 무슨 일이야?"

 "이것 좀 보십쇼!"


사와무라가 벽걸이 시계 뒷면을 보여주며 호들갑을 떨었다. 사와무라의 자취방에 걸려 있던 동그란 시계였다. 미유키는 그게 뭐, 라고 대꾸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설마. 그는 애써 직감을 부정했다. 그럴 리가.


 "시계 안쪽에요! 돈이 들어있슴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 미유키는 약한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사와무라는 애인의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계 안에 들어 있던 봉투를 열어 돈 액수를 셌다. 돈을 다 센 사와무라의 표정이 밝아졌다.


 "와, 십만엔이나 있슴다! 땡 잡았네요!"

 "아, 그. 사와무라. 그거……."

 "이 시계, 한 달쯤 전에 중고가게에서 산 거거든요. 맡긴 지 얼마 안 돼서 건전지 남아 있다길래, 열어볼 생각도 안 했는데 완전 횡재했슴다. 파는 사람이 넣어놨다가 깜박 잊어버렸나봐요!"


사와무라가 돈을 흔들며 헤벌쭉 웃었다. 동시에 미유키의 표정이 죽상으로 일그러졌다. 그건 시계를 판 사람이 남겨둔 것이 아니라 미유키의 비상금이었다. 원래는 다른 곳에 숨겨두고 있었지만, 이사 전에 자취방을 둘러볼 때 들통이 날까 무서워서 몸에 몰래 숨겨두고 있었는데, 어디 둘 곳이 없어 사와무라의 자취방을 둘러보러 갔을 때 급하게 시계에 숨긴 것이었다. 어차피 이사할 집에 들고 갈 물건이고, 자신이 먼저 열어서 다시 숨기면 되니까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게 화근이었다.


 "아내 몰래 숨겨둔 비상금 같은 거였으려나?"


아내 몰래 숨긴 비상금이라.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미유키는 울상이 된 얼굴로 이걸로 새 가구를 사자며 웃는 사와무라를 쳐다보았다. 새 가구도 좋지만 그건 너한테 반지를 사주려고 숨겨 놓은 돈인데. 그런데 대체 뭐라고 변명해서 돌려받아야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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