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고상하고 품위 있었다. 바래고 바란 누런 셔츠와 닳아 반질거리는 바지를 몸에 걸치고 흐느적 복도를 지나갈 때에, 그의 어느 몸 한 곳에 은닉되어 있는 고상과 품위는 둘 곳 없는 나의 시선을 잡아채 끝까지 놔주질 않았다. 이런 나의 끈질긴 욕망의 시선을 의식하고, 오만하게 날 내려다보는 그의 붉게 달아오른 눈가에선 늘 낯설고 수상한 냄새가 났다. 밤을 지배하는 그 과시적인 보름달 같은 그의 눈동자는 형형하게 빛나고, 그 생채기와 같은 눈가의 붉은 기미가 달무리라 생각했던 그 때 난 교회 뒤편에 있는 야산에서 그와 섹스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서슬 퍼런 아버지의 눈길을 피해 도망칠 수 있었을까? 아버지의 불결한 숨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그 집을 뛰쳐나와 언제나 그러했듯 고개를 숙이고 되는 대로 초조히 발걸음을 옮기는 날, 우연히 잡아챈 것 일까? 아무리 돌이켜 보아도 기억나지 않는다. 순서는 흐려진 것이 아니라, 제거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는 야산에 놓여있었다. 지우래야 지울 수 없는 그 장면. 내 머릿속에 아직도 기생하며 나의 뇌를 갉아먹으며, 혈관을 돌아다니는 발화하기 직전의 그 세포. 나는 그 장면을 외면하려 하루를 다 쓰곤 했다. 벗어나려고 할 때, 그 장면을 의식하게 됨을. 남은 건 극복 뿐이라는 걸 알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기에. 나는 지연되며, 내 목덜미에 묻고 잠든 형의 숨결을 따라 막힌 숨을 고른다. 다정다감한 형의 온기에 점차 손끝과 발끝이 따뜻해진다. 예민한 형은 곧 이런 나의 기색에 몸을 껴안는다. 감싼 두 팔은 불안에 더 단단해진다.



 아버지는 늘 이웃을 조심하라고 했다. 그러나 난 아버지를 조심하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방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 조차도 몸을 잔뜩 웅크리고 쪽잠을 잤다. 한번 씩 잠을 깨려 연거푸 세수를 하고 비치는 거울 속의 피폐한 내가 가여워, 뜨거운 눈시울을 식히기 위해 또 연거푸 세수를 하면, 온 몸이 울고 있음을 깨달았을 뿐이다. 시골 동네의 입소문은 저질적이고 천박하게 왜곡 되었다. 젖은 채 더러운 세면대에 두 손을 짚고 있는 소문의 당사자인 나를 두고도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날 창녀 취급하곤 했다. 그 비릿한 타일의 더러운 물기와 같이 아이의 시선이 내 목덜미에 묻을 때,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반쯤 잠이 깨어 있는 형은 내 목덜미가 외설적이라 했다. 그냥, 싸보이는 거지. 라고 답하면 형의 눈은 단번에 험악해졌다. ‘경수야, 넌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

 어머니가 도망쳤던 그 날은 안개가 잔뜩 껴 있었다. 유난히 발목이 가늘었던 어머니의 뒷모습은 휘청 휘청댔다. 흐려졌다, 사라졌다, 다시 보이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 날 어머니의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에 잠을 깼다. 그 소리는 너무나 컸고 차가웠다.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을 만큼 어머니를 팼던 아빠의 짐승 같던 억센 신음과 둔탁한 소리보다 더 컸다. 어머니는 내가 깨어 있는 걸 알고 있었고, 힘겹게 침을 삼키며 말했다. 어머니의 숨은 울기를 내뱉으려 무섭게 역류하고 있었지만 말투는 단조로웠다. 경수야, 그 사람은 날 불쌍하게 여겨. 날 사랑하지 않지…… 그래서 그 사람과 같이 갈 거야. 어머니는 끝내 내게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게 유언을 남기고 끝내 사라져버렸다. 



 잠에 취해 어지럽고 몽롱한 시야 속으로 그가 뚜벅뚜벅 들어온다. 안이함, 나른함, 달콤함…… 나는 어느덧 그의 기운에 취해 아무런 경계심 없이 그를 담았다. 따스한 봄날의 기운이었을까? 잠 때문이었을까? 나는 뜬 눈으로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일까? 교단에 서 있던 그는 팔짱을 끼고 신경질적이게 교실을 둘러보았고, 곧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나는 지금까지 바다를 본 적이 없다.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산으로 둘러싸인 이 폐쇄적인 곳에서 살아왔다. 그의 눈동자와 마주하자 나는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사해가 떠올랐다. ‘죽음의 바다’ 그 바다엔 선과 악의 경계가 없다.

 처음으로 의식 저변에서 숨어 있던 도망이라는 단어가 불쑥 치솟았다. 휘청 거리며 안개에 빨려 들어갔던 어머니를 목격했음에도 나는 다른 곳을 상상할 수 없었다. 날 다른 곳으로 데려다 주리라. 선과 악의 경계가 없는 그가.


 뜬소문을 공장의 굴뚝 연기처럼 내뿜던 아이들의 말이 내 귓가에 들이찬다. ‘야, 박찬열 그 새끼. 뽕쟁이래. 씨발 얼굴도 귀티 쩌는 게 딱 봐도 있는 집 자식인데 저 반쯤 허물어진 교회에서 사는 이유가 그 새끼 아비가 빡쳐서 거기서 좀 치료 받으라고…… 있잖아, 하나님의 성령으로 누운 사람 두고 주여! 주여! 외치는 그런 병신 같은 치료. 내가 딱 알아봤어. 눈이 흐물흐물 풀려서는 아무튼 그 새끼 눈만 마주쳐도 존나 소름이 끼쳐. 만날 수업 제끼고 창고에서 담배나 뻑뻑 피고 있는 거 봐주는 것도 학교에 돈 찔러주고 그저 졸업만 시켜달라고 해서 그냥 두는 거래. 씨발 이 새끼, 어디서 뽕하고 있는 거 아냐?’

 

 여름이 깊어가고 있었다. 숨쉬기가 버거울 정도의 더위였다. 아버지가 그 열에 점점 더 돌기 시작했다. 나는 목욕을 하지 못했다. 문고리를 잡고 잠이 들고 깨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 문득 잠에서 깼을 때 방문이 열려 있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문고리를 잡았다. 문고리엔 비릿한 체온이 묻어 있었다. 숨이 멈춰졌다. 저 어둠 구석에서 악귀 같은 아버지가 이런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소리 없이 방문을 닫으려는 차에 어느 늙은 짐승의 헉헉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한쪽 날개 죽지를 다른 날개 죽지에 비벼대는 매미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악귀를 향해 빌었다.

 허리와 어깨를 스치는 아이들의 손길은 점점 더 뻔뻔해져 갔다. 힐끗대는 그들의 시선은 더 불결해져만 갔다. 더위에 윗옷을 벗어젖히고 망아지처럼 뛰고 소리 지르는 그들의 시선은 더욱 더 농밀해져 갔다. 나는 학교에서도 잠을 잘 수 없었다. 나는 반쯤 살아있고 죽어가고 있었다.

 누군가 나의 목덜미에 손을 댄다. 나는 경기를 일으키듯 일어났다. 주위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인다. 그저 흥미에 데굴데굴 굴러가는 눈동자의 소리와 세차게 떨어지는 빗소리만이 나의 고막을 날카롭게 쑤셔댔다.


 그리고…… 그 비릿한 비 냄새.
 토악질은 멈추지 않았다. 멀건 침만 줄줄 새어나왔다. 입 안이 비렸다. 그들은 웅성대기 시작한다. 그들이 다시 내 몸에 손을 대면 혀를 깨물고 죽어버리겠다고 다짐했다. 시야가 점멸한다. 동시에 벌레가 내 몸 속을 기어 다니는 듯한 그 끔찍한…….

 ‘좆같은 새끼들!! 다 죽여 버릴 거야!!! 나한테 왜 이래!! 왜 날 이렇게 만들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쓰레기 같은 새끼들…… 차라리 다리 벌려주라고 말해봐. 그럼 귀여워하며 다리 벌려줄게. 그럴 용기도 없는 새끼들이…… 우스운 새끼들……’


…… 그가 피우고 있는 담배 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반쯤은 망가지고 반쯤은 부서지고 반쯤은 낡아버린 책상과 의자들이 쌓여있었다. 그는 성한 의자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죽었어?’ 그가 말했다.
‘멀리서 보니 내던진 시체처럼 보였어.’ 그는 담배 연기를 내뿜고 느릿하게 일어나 담배 한 개비를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곤 담배를 꺾어 내 앞에 떨어뜨렸다. 다시 담배를 불씨가 튕겨진다. 한참동안 타고 있는 담배를 내려다보던 그는 이내 실내화로 비벼 끈다. 그의 이 모든 행동은 악의가 없었다. 위악이 아니다. 

 그는 벽에 세운 철재 캐비넷의 문은 열었다. 그리곤 이어 내 앞에 서 은색 케이스를 열었다. 하얗고 파란 알약과 주사기가 그득했다. 그는 여름이 되어서 누렇게 변색되어 버린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나는 그의 푸르른 정맥 주위에 멍이 들어 있는 그 참혹한 팔을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아껴두었던 거야…… 견딜 수 없을 때가 있지. 아주 지랄 맞게……’

 

 한순간 그 정지된 사해와 같던 눈동자가 한 여인을 탐내고 싶은 쾌락으로 인해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나는 벗어나고 싶은 동시에 그를 유혹하고 싶었다. 아찔했다.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한다. 도망이라는 관념이 실체가 되어가고 있다. 그는 파란 알약을 혀 위에 놓는다. 그리곤 무심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은색 케이스를 케비넷에 던지곤 한동안 그 공간을 주시한다. 어떤 물체가 내 앞에 떨어진다. …… 그것은 총이었다.


 ‘죽여.’
 그는 냉정하고 엄정한 재판관 같았다.

 ‘…… 누구든지 죽여 버려.’
 ‘……’
 ‘…… 살아야 할 거 아니야.’


 그가 참고 있던 웃음을 터트린다.

 ‘…… 널 죽일 수도 있어.’
 ‘날?’
 ‘……’
 ‘넌 나약해.’

 나의 손은 벌벌 떨리고 있었다. 빗물에 젖은 몸에 갑자기 한기가 끼쳤다. 나를 지배하고 있는 아버지의 시선이 점멸하기 시작한다.

 ‘나한테 왜 이래.’
 ‘……’
 ‘내가 우스워?’
 ‘아니, 그냥 불쌍해.’
 ‘……’
 ‘너는 네 자신을 혐오하는 짓을 그만두어야 해.’

 그는 이윽고 그 총을 익숙하게 손에 쥐고 다시 캐비넷에 넣는다.

 ‘너는 탈출구가 필요해.’
 ‘……’
 ‘그게 나야.’

그가 내 목덜미에 입 맞춘다.



 * * *


 그는 고상하고 품위 있었다. 바래고 바란 누런 셔츠와 닳아 반질거리는 바지를 몸에 걸치고 흐느적 복도를 지나갈 때에, 그의 어느 몸 한 곳에 은닉되어 있는 고상과 품위는 둘 곳 없는 나의 시선을 잡아채 끝까지 놔주질 않았다. 이런 나의 끈질긴 욕망의 시선을 의식하고, 오만하게 날 내려다보는 그의 붉게 달아오른 눈가에선 늘 낯설고 수상한 냄새가 났다. 밤을 지배하는 그 과시적인 보름달 같은 그의 눈동자는 형형하게 빛나고, 그 생채기와 같은 눈가의 붉은 기미가 달무리라 생각했던 그 때 난 교회 뒤편에 있는 야산에서 그와 섹스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서슬 퍼런 아버지의 눈길을 피해 도망 칠 수 있었을까? 아버지의 불결한 숨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그 집을 뛰쳐나와 언제나 그러했듯 고개를 숙이고 되는 대로 초조히 발걸음을 옮기는 날, 우연히 잡아챈 것 일까? 아무리 돌이켜 보아도 기억나지 않는다. 순서는 흐려진 것이 아니라, 제거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는 야산에 놓여있었다.



 * * *

 형은 침대에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주위엔 술병과 구겨진 맥주캔이 널려 있다. “어디 갔다 왔어.” 초췌하고 퀭한 눈이 치밀어 오르는 화를 담은 채 매섭게 묻는다. “…… 바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형은 맞잡는다. “항상 네 멋대로지.” “……” “그러곤 미안해서 한동안 내 눈 못 마주칠테고”  “…… 다시는 그러지 마. 난 네가 내 눈 못 마주치고 미안해하는 게 끔찍해.” 형은 일어나 두꺼운 커튼을 걷는다. 다시 뜨거운 여름의 볕에 내 망막을 찢는다.


 그 날 나는 헉헉대며 그에게 말했다. “날 바다로 데려가줘……”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나는 조급해지고 초조해진다. “날… 날… 바다로 데려가줘.”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의 약에 취한 눈동자는 나를 바라보면서 그 너머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내 몸에 올라탄 몸에서 땀방울만이 내 얼굴이 떨어질 뿐이었다. “박찬열…… 날 바다로 데려가줘…… 제발!!!” 그의 눈은 오직 쾌락만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푸흐흐 웃는다.

 그리고 강한 빛. 손전등의 강한 불빛. “…… 세상에. 하나님……” 그 불빛은 내 얼굴에서 흔들리고 또 흔들린다. 그는 나의 어깨에 입 맞춘다. “다 끝났어…… 잘했어……” “……” “난 이곳을 벗어나게 될 거야. 그건 너도 마찬가지고…… 돈은 그 캐비넷에 넣어두었어. 그 돈을 챙기고 넌 지금 당장 저 여자처럼 나에게서 도망치면 되는 거야.” “…… 날 바다로 데려가줘” 나는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흐느꼈다. “……제발, 응…… 제발…” “우리는 탈출했어!! 탈출했다구!!!!” “……” “씨발, 지긋지긋 했잖아. 난 네가 불쌍했고, 넌 나를 도구로 이용했을 뿐이야. 이 얼마나 멋진 결말이냐고. 왜 그래? 좋아서 그래? 그만 울고 …… 도망쳐. 이 나약한 년아.”




* * *

“날 사랑해?”
“……”
“아니면 내가 불쌍해?”
“……”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그 장면을 얼려 놓은 빙하가 금이 가는 것에 대한 고통이었다. 형은 내 발작을 잠재우려 껴안고 애원한다.

“…… 사랑해.”
“죽여 버릴 거야.”
“…… 그래도 사랑해.”
“내가 못 할 줄 알아? 죽여 버릴 거야!!!!”
“……”
“…… 숨 쉬어 경수야. 제발…… 미안해, 형이 다 미안해……”

 

목덜미가 젖는다. 뜨거운 형의 눈물에

몸이 허물어진다.


 “바다에…… 갈려고 했어. 그런데, 갈 수가 없었어. 하루 종일 터미널에 앉아서 떠나가는 버스만 봤어.”
 “……”
 “…… 형, 바다에 데려줄래?……”
 “……”
 “사해 같은 죽은 바다 말고"

 “……”

 "따뜻한 그 바다로 함께 가줘……”






됴른을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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