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c0mTON9tjd8&t=2168s 

들으면서 읽으시면 좋아요.



담홍은 종종 파괴적인 욕구에 시달렸다. 기실 '시달린다'라는 표현을 쓸 만큼 그를 귀찮게 만드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달린다'고 말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무언가를 파괴하고 싶다는 욕망이 자신을 향하는 것이 아닌 타인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심도 없는 이를 향할 리는 없으니 대상은 당연히 한정되어 있었는데, 첫 번째는 가장 친밀한 이요, 두 번째는 사랑이라 이름 붙인 이였다. 쉽게 말하자면, '도원이'라는 의미와 같았다.


종잡을 수 없는 변덕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그가 가장 잘하는 일로, 이제는 무언가 한다고 말할 필요도 없이 습관과 같았다. 그러니까 변덕스러운 욕망에 몸을 맡기는 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을 일로, 그렇게 하고 싶다면 어떻게든 해내면 끝. 지금껏 여담홍에게 의미라고 부를 만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았으므로 잘라내고 싶다면 그대로 행하면 되었고, 사랑하고 싶다면 그러면 되었다. 그 사랑 역시 지금의 것과는 많이 다른 모양이었지만 어쨌건. 그렇다면 애초에 사랑이라는 것이 문제일까. 담홍은 무대에 오를 때마다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망치는지 생각하곤 했는데, 그것은 종잡을 수 없이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극이란 애초에 과장된 것이므로 현실의 것과는 거리가 있겠지만 방향이란 대체로 유사했으므로. 사랑에 빠진 이들은 대체로 오만하고 멍청했을 뿐만 아니라 무모하고 감정적으로 변했다. 그리고 여담홍은 그런 이들을 어렵잖게 비웃었다. 적어도 나는,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서 바보처럼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세상은 생각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그가 처음 이질감을 깨닫게 된 것은 언제더라. 아마도 원이의 무대를 감상하던 때. 어두운 장내에서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물처럼 흐르는 멜로디와 그것을 연주하는 도원이 뿐으로 느껴지던, 바로 그때.


여담홍은 매사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잘났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던 사람이었던 만큼 자신보다 잘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쉽사리 인정하지 않았지만 무언가를 보거나 듣고, 혹은 읽거나 느끼고 좋다고 표현하는 것에는 스스럼없었다. 그것은 모든 예술에 동일했다. 그러니 원이의 연주도 좋다고 말했던 것이었겠지. 그러나 지금은 무언가 달랐다.


친숙하고 부드러운 멜로디가 흐르는데, 분명 그것은 이미 지나버린 봄날의 것을 닮았는데. 이내는 극적으로 치달았다가 춤추는 시골 처녀의 치마자락처럼 사뿐히 내려 앉는 것을. 상냥한 얼굴을 한 곡조가 서글프게 속살거리는 것을. 그것을 연주하는 원이의 옆모습을. 내리깐 속눈썹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피아노와 자신밖에 없는 것처럼 열중하는 그를 바라보면서…


불현듯 자신이 너무나 작은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갑작스럽고 당혹스러운 추락이었다. 심지어 그것을 선사한 것은 의도했든 아니든 도원이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재하는 추락도 아니건만 그렇게 속이 비틀리더라. 당장이라도 자리를 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는 교양있는 현대인으로서 연주가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추락하는 것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느라 연주는 귀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정말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면 해낸 셈이지만.


이질감과 기시감이 동시에 찾아오는 것은 무척이나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 익숙한 모양을 어디서 보았는지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나, 그것을 확신하자 담홍은 기분이 진창으로 처박히려는 것을 애써 참아냈다. 그래, 이것은 사랑에 빠져 무모하고 멍청해진 자의 말로와 유사했다.


담홍은 도원이의 행동을 눈으로 좇다가도, 그를 바라보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왜 무대에서 그렇게 빛나고 있니. 묻고 싶었으나 물을 수 없었다. 이런 의문과 감정을 느끼는 것이 짜증 났다. 그 순간을 만드는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가도 이내는, 방향을 돌려 원이에게 짜증이 쏠렸다.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랬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비참하고, 화가 나다가…




화가 났다. 원이가 그 아름다운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아무도 보지 못했으면 했다. 자신 역시도 다시는 보지 못하는 모습이 되어 사장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럴 수 없던 것은 분명 후회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파괴적인 욕구란 이런 것이었다. 여담홍은 도원이가 빛나게 만드는 것들을 전부 사라지게 하고 싶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 역시 사라지기를 바랐고, 그것을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면 도원이를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


아, 이 얼마나 비참한 말로인가.


여담홍은 소리 없이 탄식했다. 사랑 앞에 눈이 멀어 곧 떨어져 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게 지금의 자신이라니.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 비소를 짓던 날들이 무색한 순간이었다. 원이가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볼 때면, 그 역시 연극에 지겹도록 나오는 사랑에 빠진 멍청이가 되는 기분이었다. 무엇이든 해줄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빛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양극을 오가다가, 뚝. 메트로놈의 소리가 멎듯 이대로 멈추기를. 눈이 먼 사람이 되어 별을 찾듯 영원을 바랐다.


나만 네가 욕심나니? 세상 모두가 너와 나를 욕심 내는데 어째서 너는 나를 욕심 내지 않니. 나만 멍청하고 욕심 많은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져. 그런 게 사랑이라면, 이런 게 사랑의 본질이라면 너는 왜 그러지 않아? 네가 말하는 사랑은 방종이니? 왜 내게 간섭하지 않아? 왜 흘러가도록 둬? 왜 나한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니? 나는 네 사랑을 이해할 수 없어, 원이야. 나만 욕심쟁이로 만들지 마. 나를 욕심 내고, 탐욕스럽게 굴어. 옛 시인들이 예찬하던 사랑의 바닥을 보여줘. 네가 집어삼킨다고 삼켜질 사람이 아니니까. 나를 양껏 욕심내고 추하게 굴어줘. 너는 왜 항상 무대 위에서 학처럼 나를 바라보니. 그렇게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는 것처럼 굴지 마. 정말 내가 아무래도 좋으면 나도, 내 마음도 더는 원하지 마. 아무것도 탐내지 말고, 내가 떠나도 날 찾지 마. 그러면 나도 영영 떠날 테니까.


충동적으로 쏟아낸 말은 실은 전부 자신을 향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사랑의 바닥을 보여주며 내가 이토록 너를 사랑하는 것이 억울하다고 말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해가 짧아진 계절의 저녁에 뛰쳐나와 나한테 와, 내게로 와. 나를 찾으러 와…, 하고 보내지도 못할 문자를 몇 번이고 지우느니 그러지 않는 게 나았다.


사랑은 사람을 아둔하게 만드는 병이다. 담홍은 이제 더는 자신이 아프지 않다고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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