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행을 혼자 다니는 것보다 뉴트와 다니는 게 익숙해진 민호는 어디를 가려고 할 때마다 뉴트에게 연락했다. 어디를 나가거나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은 민호는 매일 밖으로 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온종일 집에 박혀있는 것도 지루한 모양인지 민호는 하루에 몇 시간은 밖에 나가 있었다. 그때마다 민호는 뉴트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뉴트는 민호의 시간에 맞춰줄 정도로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리 휴가를 받고 쉬고 있다고 한들, 그도 친구를 만나거나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거나 그동안 밀어둔 일을 처리할 것들이 수두룩했다. 대부분의 시간은 친구를 만나거나 늦잠을 자거나 그동안 보지 못한 영화를 보는 데 시간을 사용했다. 


 어느 날, 뉴트의 핸드폰에 문자로 가득 찬 날이 있었다. 그 날은 뉴트가 감기에 걸린 탓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날이었다. 이전 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탓에 뉴트는 심한 몸살에 걸렸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 끝없이 들어간 술 때문에 몸이 엉망진창이 된 뉴트는 비를 홀딱 맞고 집에 도착했다. 비가 시도 때도 없이 온다는 걸 알면서도 뉴트는 우산을 챙겨오지 않았다. 술에 너무 취한 탓일까, 비가 왔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으윽."


  술 때문인지, 감기 때문인지 어질어질 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뉴트는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며 침대에서 꾸물거렸다. 정신이 조금 든 뉴트는 아프다는 것 외엔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했다. 울리는 머리와 침대에 딱 붙은 몸은 살짝만 움직여도 찌릿찌릿한 통증이 신경을 찔렀다. 무거움에 깬 모양인지 뉴트는 앓는 소리만 냈다. 


"뭐야."


 그렇게 움직이는 것조차 힘겨워하던 뉴트는 침대 옆에 있는 선반 위에서 우렁찬 소리를 내는 핸드폰에 눈살을 찌푸렸다.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던 뉴트의 목소리는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와 같았다. 고막을 통해 들어오는 소리는 평소엔 아름다워서 오히려 오랫동안 듣고 나서 전화 버튼을 누르게 하는 노래였지만 지금은 신경을 긁는 소리에 불과했다. 


  뉴트는 아름다우면서도 머리를 아프게 하는 노랫소리를 어서 없애고 싶어서 손을 쭉 뻗었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핸드폰에 닿는 순간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돌멩이들이 손가락마다 걸린 것처럼 뉴트는 온몸이 무거웠다. 손가락조차도 무거웠던 모양인지 움직이는 속도가 평상시보다 현저히 떨어졌다. 겨우 손을 뻗은 뉴트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핸드폰 액정에 보이는 글자를 보기 위해 이불 속으로 꾸물꾸물 집어넣었다.



끝없는 길


13



"여보세요."

[뭐야, 왜 이렇게 늦게 받아? 그리고 목소리가 왜 그래?]


 뉴트가 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로 질문이 쏟아졌다. 


"누구?"

[나야, 민호. 어디 아파?]



 고래고래 지르던 목소리가 뉴트의 앓는 소리에 금세 조용해졌다. 뉴트는 쏟아지는 질문에 하나도 답변하지 못하고 그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민호의 목소리를 들었다. 어째서 인지 그의 목소리를 듣자 무겁던 몸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다. 


"응, 좀."

[어디 아픈 거야?]

"온몸이."



 어디가 아프다고 딱 집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든 게 아닌 뉴트는 그저 온몸이 아프다고 대답했다. 몸살인 것 같지만, 몸살이라고 말할 힘도 없었던 탓에 뉴트는 간단한 답변만 늘어놨다. 그 대답을 듣던 민호는 혀를 차며 그 이상 물어보진 않았다. 아무리 질문을 해도 뉴트는 단답형으로 대답할 것이고, 아픈 사람을 붙잡고 이것저것 묻는 것도 영 불편한 민호는 알겠다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뉴트는 생각보다 빨리 전화가 끊겨 조금 당황한 눈으로 핸드폰 액정을 다시 쳐다봤다. 끊었다. 어디가 아프냐는 질문 이외의 질문은 하지 않고 그대로 끊었다. 괜찮으냐는 말조차 안 하자, 뉴트는 내심 서운함을 들어냈다. 왜? 어째서 서운하지? 뉴트는 자신이 왜 민호의 반응에 시무룩하는지 본인도 이해하지 못하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저 아파서 누군가에게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었던 걸까. 뉴트는 울컥 치솟는 눈물을 이불 속에 쑤셔 넣고 다시 눈을 감았다. 아니, 눈을 감으려고 했다. 눈을 감고 이불 속에 머리를 쏙 집어넣으려던 뉴트는 쾅쾅 문을 치는 소리에 밖으로 다시 얼굴을 뺐다.



"뉴트!"

"뭐야."



 뉴트는 무거운 몸을 비틀어 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누구인지 확인하려고 상체를 살짝 들었다.


"안에 있지? 나야, 민호. 문 열. 아, 아픈 애가 나오긴 힘드려나."


 바로 옆집인 탓에 민호는 망설임 없이 바로 뉴트의 집으로 향했다. 혼자 사는 걸 알고 있어 뉴트가 혹시 잘못이라도 될까봐 바로 달려온 건데, 문은 잠겨있고 아픈 사람은 방 안에 있어 민호가 뉴트의 집에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민호는 큰소리를 내며 문을 두들겼다. 이게 뉴트에게 좋지 않다는 건 알지만, 억지로 문을 따고 들어갈 순 없었기에 민호는 할 수 없이 뉴트를 깨웠다. 큰소리가 울리는 문을 통해 전해지는 진동에 뉴트는 큰 눈을 깜박거렸다. 민호? 왜 그가 왔지? 뉴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을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어떻게 들어가지."


 민호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방까지 들린다. 집이 그리 크지 않은 탓에 민호의 목소리가 다 들렸다. 민호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가 조용조용 말하는 성격이 아닌 탓도 컸다. 결국, 뉴트는 침대에서 일어나 민호를 집에 들이기 위해 천천히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무슨 일."

"괜찮아? 아파? 움직일 수 있어?"

"무슨."



 문이 열리자마자 민호는 멍하니 서 있는 뉴트에게 온갖 질문을 퍼부으며 뉴트의 상태를 확인했다. 얇은 잠옷을 입은 뉴트는 감기에 정신이 멍한 듯, 허둥지둥거리는 민호를 보고 아무 생각도 안 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보고 있던 민호는 다시 그를 침대에 눕히기 위해 뉴트의 어깨를 붙잡았다. 덥석 뜨거운 체온이 어깨를 통해 들어오자, 뉴트는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민호를 쳐다봤다. 


"아픈 사람이 이렇게 오래 서 있으면 안 되지."

"왜 왔어?"

"혼자 있는데 아프면 서러워."

"아니, 그게 아니라."


 민호의 반응에 놀란 뉴트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민호를 계속 쳐다봤다. 뉴트는 왜 왔느냐는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민호는 뉴트의 질문에 어떤 대답조차 하지 않고 그를 침대에 끌고 갔다. 


"일단 누워있어. 약은 먹었어? 아, 밥은 아직 안 먹었지?"

"민호."

"왜? 아파? 추워?"



 걱정스러운 눈으로 계속 질문하는 민호를 진정시키기 위해 뉴트는 그의 이름을 불렀는데 그는 더 호들갑을 떨며 주방 쪽으로 이동했다. 


"그냥 몸살이야. 민호, 잠깐만 있어봐."

"그런 것 같네. 독감인가 봐?"

"아니, 일단 내 말부터 듣지?"


 갑자기 찾아와서 방 수색을 하는 민호에게 잠시만 가만히 있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 부탁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민호는 내 말을 들으라는 뉴트의 말에 잠시 움직이던 몸을 멈췄다.


"뭐야. 왜 왔어?"

"아프다며."

"그래."

"그래서 왔어."



 뉴트는 단호하게 대답하는 민호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프니 왔다? 민호의 표정은 장난기도 없었고 그저 아프다는 이유로 걱정되서 왔다는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그 표정에 뉴트는 심장이 덜컹거렸다. 아파서 그냥 왔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친구가 아프니 당연히 올 만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아직 절친한 친구 사이라고 하기엔 안지도 얼마 안 됐고 친해진지도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다. 


"민호?"

"너도 혼자 런던에 살잖아. 그럴 때 아프기까지 해봐. 얼마나 서러워. 가족도 없고 친구들도 다 일하러 갔고."


 민호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이 도와야지, 란 말을 남기곤 다시 주방으로 사라졌다. 뉴트는 그의 반응이 이상하다는 듯 생각했으나 그를 말리고 싶진 않았다. 그는 그저 아픈 친구를 돕기 위해 왔을지 몰라도 뉴트는 그렇게 보이진 않았다. 그동안 아프다고 해서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뉴트가 아픈 적이 있는지도 알까. 아무리 이웃인 알비라도 뉴트가 아팠던 적이 있었다는 걸 전혀 모를 것이다. 그건 뉴트가 그들에게 말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뉴트에게 전화로 연락한다든가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먼저 찾아오라는 연락을 주기 전까진 아무리 이웃이라도 그에게 연락이나 방문은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뉴트가 아파도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런 생활을 해온 뉴트는 민호의 반응은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아무 일도 없는 데 매일같이 연락하고, 아프다는 말만으로 동의조차 하지 않았는데 집에 찾아왔다. 그런 그의 행동은 뉴트에겐 평범함이 아니었다. 



"부엌 좀 쓸게."

"어? 응."
 


 동의를 구하기 전에 이미 부엌에 들어가 놓고 한참 후 요리가 시작될 때, 민호는 뉴트에게 부엌을 쓰겠다는 말을 했다. 이게 민호의 방식일까? 아니면 그가 사는 미국은 원래 이러는 걸까? 뉴트는 그 생각까지 미치기엔 몸이 너무 무거웠다. 아픔으로 둔해진 머리와 몸은 민호의 충격적인 행동에 잠시 움직였으나 다시 그의 목소리에 해롱해롱한 정신으로 돌아갔다. 
 


 아무리 그의 행동이 놀라웠어도 뉴트는 나직한 민호의 목소리에 안정을 취하며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민트 소설 연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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