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아닙니다 

*안 사귑니다

 *짝사랑물





“태워나!”

송태원은 대문을 열자마자 아장아장 제게 걸어오는 아이의 몸을 안아 들었다. 겨드랑이 밑을 안아 올려 아이가 아프지 않게 안아주는 모습이 꽤나 능숙했다. 송태원은 아이의 등을 살살 토닥였다. 큰손이 등을 토닥일 때마다 아이의 눈가가 유려하게 휘었다. 그를 닮은 금빛 눈동자가 창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에 비춰 반짝거렸다. 아이는 태언아, 태언아, 어물어진 발음으로 송태원을 부르며 꺄르르 웃음을 뱉었다.

“아빠는 어디 있어요, 화은아.”

송태원이 부드러이 아이의 뺨을 쓸었다. 아이는 송태원의 손길이 퍽 마음에 드는지 그의 검은 눈을 들여다보며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압빠가 밥 먹으라구, 저기!”

아이는 송태원의 품에 자연스럽게 안겨 자신의 일과를 쫑알거렸다. 제게 있었던 아주 사소한 일들까지 모두 알려주겠다는 듯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송태원은 그런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개미가 지나간다거나, 바람에서 달콤한 냄새가 난다거나 하는 사소한 이야기임에도 처음 듣는다는 듯이, 무척이나 흥미롭다는 듯이. 송태원은 조잘거리는 그 소리가 작은 종달새가 울듯 듣기에 참 귀여운 목소리라 생각했다. 아이의 말에 이따금 네, 응, 그랬구나, 하는 짧은 감탄사만을 내뱉었음에도 아이는 볼까지 발갛게 변해 말하기에 집중했다. 아이는 아마 송태원이 자신을 싫어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걸지도 몰랐다. 자신의 금빛 눈동자와 빛이 비출 때면 연한 밀빛으로 반짝거리는 그 머리칼을 평생토록 사랑하리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듯 굴었으니까. 송태원은 아이의 작은 몸이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안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이가 열심히 말을 지어낼 때마다 빵긋빵긋 움직이는 하얀 볼이 귀여워 송태원의 표정이 허물어졌다.

몹시도, 사랑스러운 아이다.

“조금 있으면 송 실장이 올 텐데.”

주방 쪽에선 작은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태생적으로 타고난 능력은 송태원이 원하든 원치 않든 많은 정보와 소리를 가져왔다. 송태원은 머뭇거리며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을 향했다가도 입꼬리를 굳혔다. 성현제의 모든 것들은 그를 풀어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를 똑 닮은 이 아이가 제 마음을 이렇게 말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이는 송태원이 지긋이 저를 보는 시선에 고사리 같은 손을 뻗어 송태원의 뺨을 서툴게 매만졌다.

“태어니 아파?”

송태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이는 저가 던진 질문에 이미 흥미가 떨어졌는지 의외로 보드라운 뺨을 쭈물거리기 바빴다.

송태원은 반쯤 열려 있는 현관문을 열고 아이의 신발과 제 신발을 가지런히 놓았다.

송태원이 천천히 아이의 몸을 안고 주방으로 향했다. 하얀 대리석 식탁은 주방과 조금 떨어져 있었다. 송태원의 발걸음이 멈췄다. 송태원은 잠시 숨을 고르고, 한 손으로 제 얼굴을 마르게 쓸었다.

“....”

아이가 언제부터 송태원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송태원의 눈이 잠시 떨렸다. 그 진동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아이가 한참 그의 눈을 쫓았다.

“태어나.”
“네.”
“아프지 마.”

아이는 이따금 성현제를 닮은 부분이 있었다. 단지 외형뿐만 아니라 송태원의 모든 것을 쿵 내려앉게 만들거나 행복하게 만들거나 하는 것들이 특히 그랬다. 뺨을 쓸어내는 아이의 통통한 손이 왠지 그를 위로하는 듯 느리게 움직였다. 송태원이 흐리게 웃었다.

“...괜찮습니다.”

송태원이 아이의 손을 천천히 떼어냈다. 고개를 들자 성현제와 시선을 마주쳤다. 성현제의 옆에 서 있던 이가 그의 입맞춤을 받는 중이었는지 성현제의 어깨를 약하게 밀었다. 성현제가 자연스럽게 그의 얼굴을 끌어와 뺨에 입술을 맞췄다.

“자네 왔나?”
“현제씨 실장님 오셨잖아요…. 이제 그만….”
“아쉬워서 말이지.”

굽이굽이 파도치듯 결 좋은 머리칼을 묶어오려 드러난 목덜미가 희었다. 그의 귓가가 새빨갛게 붉어졌다. 성현제를 올려보는 검은 눈동자엔 부정할 수 없는 애정이 흩뿌려져 있었다. 성현제는 말없이 그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으나 송태원은 그 안에서 흘러내리는 사랑을 느꼈다. 송태원의 시선이 허공을 헛돌았다. 아이가 반쯤 몸을 돌려 손을 붕붕 흔들었다.

“엄마아! 화은이 태어니랑 와써!”
“성화은. 엄마가 어른 이름 그렇게 부르는 거 아니랬지.”
“화은이는 태어니가 조아.”

아이가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며 송태원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얇고 부드러운 머리칼이 목덜미를 스쳤다. 송태원은, 여전히 성현제의 눈을 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성현제의 부드러운 금안이 제게 머무를 때마다, 시선 한 톨을 마지못해 내어줄 때마다 송태원은 온 세상을 뒤로한 채 그 눈을 마주했다. 저를 보며 느릿하게 휘어지는 눈꼬리가, 가볍게 입은 듯 화사한 옷차림이, 그가 자주 마시던 원두 향도 모두 송태원에게 스며들었다. 아니, 새겨들었다.

빌어먹을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

저주와도 같은 맥이 그의 온몸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천사의 날개에서 깃털을 뽑아와 간질이듯 가슴께가 간지러웠다.

“어서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실장님.”

송태원은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에 그제야 제가 무엇을 탐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송태원은 급히 시선을 낮추고 안고 있던 아이를 식탁 앞, 어린이용 의자에 내려놓았다.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처럼 방금까지 거칠게 박동하던 심장이 한순간에 싸늘하게 변해 천천히 그의 심장을 옥조이기 시작했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하지만 오늘은 함께 식사하진 못할 것 같습니다. 식사하기엔 시간이 부족해서 직접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성현제의 배우자는 상냥하며, 그와 어울릴 만큼 아름다운 이다. 성품조차 훌륭해 송태원 자신 따위보다 성현제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 집 안은 분명 고소하고 담백한, 송태원의 입맛을 돋굴만한 냄새들로 가득 차 있었다. 분명,

“어제도 내 아내와 식사했다고 들었는데, 송 실장의 그 비싼 시간은 나한테만 없나 보지?"

성현제가 그 모든 것을 지휘했을 것이 분명했다. 성현제의 눈동자가 송태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내렸다. 싸늘한 시선임에도 송태원의 멋모르는 가슴은 그의 관심을 끌었음에 환호하고 있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꽉 쥐어 생살 위로 손톱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고통은 때로 현실을 자극하는 촉진제가 된다. 송태원은 흔들리지 않고 그의 눈을 마주했다.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성현제가 눈가를 찡그렸다. 희고 길쭉한 손이 입가를 가렸다. 성현제의 표정을 알 수 없어졌다. 송태원은 고개를 숙였다. 성현제의 시선 하나에 기뻐했던 것이 언제였냐는 듯 두려워졌다. 송태원은 제 소매를 붙든 아이의 이마를 조심스럽게 쓸어줬다.

“내일 또 오겠습니다.”
“태어니 가?”
“네. 오늘은 바쁩니다. 편식하지 말고 드세요.”
“응!”

송태원이 성현제 쪽으로 고개를 한번, 성현제의 배우자에게 한번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송태원의 말에 성현제가 헛웃음을 뱉었다. 하,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음에도 송태원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이곳은 송태원이 있어선 안 되는 곳이었다 성현제가 한국을 떠 있던 2년간 너무 제멋대로 방문했던 것이 화였다. 그의 얼굴을 한 번 볼 수 있을까 싶어서, 그의 눈을 다시 한 번 맞출 수 있을까 싶어서. 모두 제 욕심 탓에 들락거린 시간이었다. 아이의 얼굴이 성현제와 닮지만 않았어도, 아니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덜 닮았어도 송태원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가 성현제를 닮아 너무도 사랑스러운 탓이다.

송태원은 도망을 치듯 빠르게 넓은 집 안을 벗어났다. 성현제의 시선이 송태원이 집 안을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끈질기게 쫓았다. 집 안의 분위기가 차갑게 변했다. 화목한 가족을 연기하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이것 저것 좋아하는 걸 쓰며 살아요

시우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