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스마트 워치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이유로 스마트 폰을 아예 무음으로 해놓는 나에게 스마트 워치는 스마트 폰을 갖고 있을 때나, 떨어져 있을 때 연락을 놓치지 않도록 알려줄 것 같았다. 물론, 이외에도 다른 기능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처음이라 잘 알지 못해서 제대로 알지도 쓰지도 못할 게 분명했다. 


 마침 구매한 기종을 전부터 꽤 유용하게 사용하는 지인이 떠올랐다. 스마트 워치를 구매하기로 마음 먹은 날 바로 전화를 걸어서 만나자고 했다. 내가 산 커피를 들이키며 그는 자신이 어떻게 이 비싼 스마트 워치를 뽕 뽑아 사용했는지 주야장천 늘어놓았다. 그 말에 빨려 들어갔지만, 마지막에 했던 말만큼은 왼쪽 귀를 타고 들어와 오른쪽 귀로 빠져 나갔다. 


 '야, 근데 말이지. 스마트 워치 이거, 줄질에 맛 들이면 못 헤어 나와. 지름신 오지 않게 조심해라.'


 그의 말은 이랬다. '스마트 워치는 시계 줄을 바꾸면 아예 다른 시계 같이 보이는데, 그 이유로 자꾸 시계 줄을 구매하게 된다'는 말이었다. 앞서 말했듯, 나는 '에이, 무슨. 무난한 거 하나 사서 잘 쓰면 되겠지' 생각했다. 그 생각으로 아무 옷에나 잘 어울리는 무난한 메탈 스트랩이 동봉된 제품으로 구매했다. 


 들은 말이 생각나서 일부러 다른 사람들은 어떤 줄을 사용하는지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런데, 그놈의 알고리즘. 유튜브 알고리즘 때문에 내 굳은 결심이 깨져버렸다. ‘00워치 스트랩 추천’이라는 영상에 나는 그만 홀리고 말았고 거기 나온 시계 줄 중에 뭐가 어울릴지, 후기는 어떤지 주야장천 검색을 시작했다.


 "어라, 이것만 뜨네?"


 그러자 이번에는 SNS가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검색한 키워드를 따라서 스마트 워치 스트랩을 종류별로 광고하는 게시글들이 뜨기 시작한 거다. 결과는 어땠냐고? 안타깝게도 지금 내 왼쪽 손목을 감싸 있는 건 차가운 메탈 스트랩이 아니라 가죽 스트랩이다. '그래, 이제 날도 추워졌으니까 가죽 스트랩 하나 사지 뭐' 결국 나는 지름신에게 졌다.


 어떻게 SNS가 나를 알고 온갖 스마트 워치 스트랩을 추천했을까? 그게 정말 나를 알았을 리는 없다. 다만 내가 구글에서 뭘 검색했는지 파악한 뒤, 나와 동일한 연령대의 남성들이 어떤 스마트 워치 스트랩을 많이 구매했는지 분석해서 그걸 추천 광고로 띄운 거다. 


 그래, 사실 ‘빅데이터’는 생각보다 생활에 더 밀접하게 다가와 있다. 소비자들의 연령과 선호하는 제품을 분석해서 그걸 토대로 같은 연령의 잠재적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추천한다. 이런 일들은 ‘데이터베이스’가 없으면 불가능한 기술이다. 그런데 당신은 아는지, 지금 이야기한 '데이터베이스'는 현재 뿐만 아니라 과거부터 널리 쓰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혹시 ‘주역’이라고 들어봤는지? 적어도 ‘점’이라는 건 아실 터. 아, 나는 지금 피부에 까맣게 올라온 그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점 본다’ 할 때 점이다. 갑자기 점 이야기를 왜 하냐고? 지금 말하려고 하는 ‘주역’은 중국 왕조 중 ‘주나라의 점책’이라는 뜻이거든. ‘점’이라고 하면 필자에게 '당신 지금 미신 이야기를 하는 거냐?'며 따질 분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주역이 말하는 미래 예측의 힘은 '신통력'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데이터베이스’다.


역(易)은 지나간 것을 밝게 드러내고 미래를 살피며, 그 은밀한 것을 드러나게 하고 멀고 아득함을 밝히며, 그 이름에 마땅하게 사물을 분별하며, 말을 바르게 하고 의미를 올바르게 판단함이니, 이는 빠짐없이 갖춰 둠이다. 


<공자 계사전 해석 하편>


 주역은 우리가 생각하는 ‘점’과는 거리가 멀다. 주역의 핵심은 지나간 것을 분명히 드러내는 데 있다. 이미 있었던 과거의 사건들을 꼼꼼히 살피고, 사건들의 원인과 결과가 어떤 흐름으로 펼쳐졌는지 파악하고 정리한 내용이 주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책을 ‘미신‘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고대의 데이터베이스’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생각해보라, 과거에나 지금도, 미래에도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반복되었고, 앞으로도 반복 될 것은 분명하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무수한 사건들이 일어난다. 그것들 역시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인생 역시 ‘데이터 베이스화’가 가능해진다는 거다. 주역은 쌀 따위를 던져 미래를 점치는 책이 아니다. 과거로부터 쌓인 자료들을 통해 가능성을 열어두고 오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있는 책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런 자료들을 통해 '완벽하게' 인간과 삶에 대해 예측할 수는 없다. 그것이 주역의 한계고, 한편으로는 삶이 보여주는 다양성이다. 예를 들어볼까? 여기 결혼한 두 사람이 있다. 아내는 줄곧 아무 말 없이 국수를 잘 먹었다. 


 십 오 년 쯤 지났을까? 아내가 말을 뗀다. ‘나 사실 국수 안 좋아해’ 그녀가 국수를 말없이 먹은 것은 기호가 아니라 넉넉찮은 형편을 생각한 까닭이었다. 과거에나 지금 뭔가를 잘 먹는다고 해서 그것을 토대로 ‘이 사람은 그걸 좋아해’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 사람이란 입체적이다. 


 굳이 '90년대생이 온다'와 같은 책을 몰라도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다 알 수 없다는 사실, 예측 불가능하다는 사실쯤은 다 안다. 아무리 부하직원이라 하더라도, 그는 내 손 안에 있는 손오공이 아니며, 당신이 부처가 아니라는 사실은 더욱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인류는 오래 전부터 '예측할 수 없는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해왔다. 


 어느 작은 연못에 엄마 청개구리와 아기 청개구리가 살고 있었다. 아기 청개구리는 얼마나 엄마 말을 안 듣는지, 엄마 청개구리는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늘 엄마 개구리가 시키는 반대로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엄마 개구리는 아기 청개구리에게 노래 연습을 시켰다. 엄마가 "개굴개굴"하면 아기는 "굴개굴개"했다. 엄마는 계속해서 "개굴개굴" 가르쳤지만 아기는 끝까지 반대로 따라 했다. 엄마 청개구리는 어떻게든 아기 청개구리의 버릇을 고쳐 보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아기 청개구리는 나아지질 않았다. 


 결국 엄마는 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 엄마 청개구리는 아기 청개구리에게 ‘나를 냇가 옆에 묻어달라’고 말했다. 만약 산속에 묻어 달라고 말하면, 또 반대로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어렸지만, 아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가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 엄마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아기 청개구리는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 그러면서 ‘아, 엄마의 마지막 말은 꼭 그대로 해야지’ 생각했다. 


 어느 날 비가 내리자 아기는 엄마가 생각났다. 마지막 말대로 냇가에 묻은 엄마의 묘가 떠내려가지는 않을까? 슬픈 예감은 늘 틀린 적이 없고, 엄마의 무덤은 이미 저 멀리 떠내려갔다. 그때로부터 청개구리는 비가 올 것 같기만 해도 크게 ‘개굴개굴’하며 울어댄다고 한다. 


- 10세기 후반 중국 송나라 서적 <태평광기> 중 청개구리 설화 -


 이상의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아는 우화다. 절대로 말을 듣지 않는 철없는 아기와 그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엄마의 모습은 다른 우화와 마찬가지로 퍽 인간적이며, 누구나 지나왔을 철 없을 시절을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가 어린 시절을 지나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은 어른이 되는 것처럼, 아기 청개구리도 엄마의 죽음 앞에서 철이 들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부모에게 자식은 평생 애’라고 했던가? 여전히 반대로만 할 줄 아는 철없는 자식이라고 생각했을 터. '나를 냇가 옆에 묻어 달라'고 굳이 이야기했던 이유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엄마에게 쌓인 '데이터베이스'는 소용 없었다. 어쩌면 ‘다 안다’고 생각했던 품 안의 자식은 이제 훌쩍 커버린 탓일까?


 차라리 ‘얘야, 이제 나는 곧 죽으니 마지막으로 내 말 좀 들어라. 나를 꼭 산에 묻어주렴’ 말했다면 어땠을까? ‘말하지 않아도 나는 다 알아’ 생각한다면, 틀렸다. 데이터베이스, 경험이 신뢰 할 만해도, 언제나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지금 내 옆에 있는 이를 다 안다고 생각하는 그대여, ‘나 때’가 ‘지금’과는 다르다는 것을 모르고 저 어린 아기 개구리를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그대여, 혹시 빗속에서 개구리울음 소리가 들린다면 깨달아라. 인생은 다양하고, 당신의 경험은 늘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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