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노라님이 쓰신 <삼국지연의_교>의 후기입니다. 제가 삼국지 여주물 리스트를 만든다고 찾으니 보라고 주셨었는데, 저는 이제야 읽고 후기를 쓰네요... 이번에도 작품을 읽고 후기를 봐달라고 하고 싶은데, 여러분과 작품을 공유할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공개사이트에 올리신 게 아니라...)


강동이교라고 불리는 자매 중 여동생 시점의 이야기. 삼국지 2차창작(?)에서 강동이교가 인기가 많네요, 그나마 역사에 언급된 여성들이라서 그런지...?(맞는 듯...)


이 작품을 읽으면서 중국 옛 건물의 규방(?)에 대한 묘사가 떠올랐어요... 그 시대 사람들 평균 키로는, 그냥 엄청나게 높고 크고...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다는 좌절감을 느낄만한 구조로 되어있다고 하던가요. 여자들의 구역은 집의 아주 안쪽에 있고요. 거기에 살았을 여자들의 기분이 상상이 가는 듯한 글이에요. 아마 그걸 일부러 의도하셨지 싶고.

그리고 그 시대에 사는, "여자"에게 학대당한 남아도... 어린 시절에는 그런 기분을 느껴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비틀려 자란 거겠지요. 그렇다고는 해도 다들 정말 (우리 소소 빼고) 뒤틀림의 극치다, 싶기는 하지만 말이에요... 현실감을 살린 동양시대물의 여자들의 이야기는, 정말 그런 중국 규방이 생각납니다. 


사람이 쉽게 죽는 시대, 여자가 그 시대에 사랑하고 평범하게 사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인공의 언니 채교는 말했지만... "여자로 태어난 게 한이 되지는 않지마는"이라고 몇 번이고 다짐하듯 말한다는 것, 그리고 "이 시절에 여자가 사랑받으며 사는 건 불가능하다"고- 자꾸만 말한다는 것은 "그럼에도 놓지 못한 자신의 욕망과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겠지요. 사람이기 때문에, 밟아 죽이려고 해도 완전히 죽이지는 못했을 마음과 욕망들.

아무리 어른스러운 사람이라도, "내가 갖지 못한 행운을 가진 사람"에 대한 질시와 미움은 놓기 어렵겠죠. 그런 의미에서 작중에서는 내내 "어른스럽고 멋진 여성"으로 칭송되고, 주인공인 소소의 시점에서도 "이상적이며 우미한 여성"으로 보이는 채교가... 사실은 소소가 이런 시대에 마음이 통하는 이에게 손을 뻗을 수 있는 걸 질투하고, "너같은 철없는 어린아이가 그런 분과 잘 될 리 없잖니"라고 계속해서 이야기한 건... 너무나 인간적이죠. 누구보다 완벽해보이는 여성의, 아무도 모르는 질투... 아무도 모를 질투.

"너같은 어린아이"라고 계속 이야기한 것도, 사실은 나이의 문제도 아니고 "철이 들라"고 동생을 온전히 생각해 충고한 것 또한 아니었죠. 소소는 이 시대 기준으로는 충분히 혼담도 오가고, 시집갈 수 있는 16살이고... 채교는 소소가 "철이 들어서 좋은 분을 보필할 수 있는 여자가 되길" 바란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는 <나처럼> 이어질 수 없기를" 바란 것...이라는 점은 사실 충격적이긴 해요.

그렇지만 언니 채교가 소소를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인생이 망했으면 좋겠다거나, 생각까지는 하지 않겠지요. 그저 자신처럼 사랑하고 사랑받는 걸 포기하고, 그런 행운도 "나처럼" 없고, 그냥 "나처럼" 그럭저럭 살아가길 바랐을 뿐... 이야 이렇게 쓰고보니 은근 소름돋네요. 그러나, 채교는 자신이 그런 행운을 쥘 수 있었다면 소소를 질투하지도 않았겠지요. 역시 시대의 비극이기도 하고...

그러나 어른스러운 언니의, 운 좋은 여동생에 대한 질투... 이제 질투하고 정표를 돌려주지 않아봤자 아무 소용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는데, 그럼에도 정표를 돌려주지 않는 건 그냥 자기 마음의 문제인 거겠지요. 채교는 소소를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끝내 놓지 못했다는 것, 끝끝내 "모든 걸 이해하고 스스로 꽁한 마음을 풀어낸, 진정으로 어른스러운 언니"가 되지는 못했다는 것... 채교도 그저 "어른스러운 여자"를 평생 연기할 뿐인 인물이며, 그리고 그 모든 걸 내심 "이게 모두 (나 대신 어른노릇을 하지 못하는) 너 때문이야"라고 홀로 어린 여동생을 원망하며 탓하는 어른으로 남았다는 증명이죠...

채교의 상황은 바뀔 길 없으니, 채교가 행복해져서 더 나은 인간이 될 길도 없겠네요. 그래도 이렇게 결함있는 어른-여성인물의 조명은 반갑기도 하고, 규중에 갇힌 듯 숨막힌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왜 채교는 이렇게, 여동생의 행운을 그저 질투하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선택지가 없었는지 말이에요.



그러고보면 남주인 주유가 어린 시절 학대받아 감정이 없는 듯, 욕망이 없는 듯한 인물이 되었는데- 주인공의 언니인 채교가 그와 자신이 "닮은 사람이다"라고 하죠. 그렇다면 (당연하지만) 그 언니도 감당하지 못할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는 것...인데 다만 그 시대 여성에게는 그런 교육과 규제가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여겨져서, "어머니/아버지의 유별난 학대가 있었다"는 정도로도 이야기되지 않은 거겠지요. 사실 10살도 안 된 어린 아이에게 안주인 일을 맡기는 건... 학대잖아요?

20살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 그 일을 맡고있다는 건데, 그 어린 아이가 "좋은 안주인"(사실 좋은 여아)이라는 얘기를 듣기 위해 얼마나... 자기 자신을 죽이고 누르고 살아왔을지. 거기다 계속해서 외모품평도 당하고, 여자는 경국지색이란 말이나 듣고살고 말이에요. 동생인 소소가 그와 반대로 (초반에) 철없고 활발했던 건, 그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그 역시 어떤.. 짐을 떠맡았던 건 나중에 밝혀졌지만. 결국 모두가 모두를 학대하는 사회가 아닌가...?

유독 등장인물들이 여자에게 무례하고, 외모를 칭찬한답시고 모욕하는 말이 많고... 동양시대물 치고도 그랬던 걸 보면 그 사회와 인물들의 (수동-공격적) 폭력성 자체가 글의 주제였던 건 맞는 거 같아요. 제가 본 호노라 님의 다른 동양풍 시대물들에서도 작중인물들이 이 정도까지 수동-공격적이지는 않았던 거 같으니까요... 거기다 좋아하는 여자를 포기할 수 없다고 상대를 "다른 남자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후려치기도 하고, 살해시도까지 하는 (이전까지는 멀쩡해 보였던) 남자의 존재까지... 등장인물들 다 미쳤거나 미쳐가네요...


개중에 그나마 멀쩡해보이는 사람은 오히려 주인공들의 아버지인데, 그 역시 10살도 안 된 여자아이에게 안주인 일이라는 중책을 맡긴다거나 했던 점에서 답이 없고요. (딸에게 화났다고 뺨을 때리는 거라든가) 정말 동양인간들 답이 없다... 주인공 언니의 남편이 되는 사람은 그나마 여자에게 품는 마음을 하찮은 것 취급하고, 아내를 관리 뽑듯이 하는 인간이지만...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 그나마 폭력적인- 미친 인간같은 면모를 덜 보여줬죠. 여자와 사랑을 참 멸시하지만...... (이 세계에는 답이 없다 소소야 다 죽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소소만은... 주유와 잠시나마 행복할 수 있었을 거란 게 참 다행이다 싶은데... 제가 알기론 대교와 소교의 미래 모두 밝지 않다고 들었는데 (크흐흙) 정인과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게 이 시대 여성으로서는 드문 행운이다 싶고. 그냥 전쟁이 일상적인 시대의 사람들은 신분이 낮건 높건 참 (자신과 친인의) 죽음과 가깝고, 특히 여자의 인생은 참... 아니 근데 결국 저렇게 질투 많은 채교는 끝내 행복하지도 못하고 남편마저 먼저 잃었다 이거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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