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38자. 


 


 






마계에는 마왕이 살고 있다 했다. 마왕. 마족의 수장.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고, 경계하고, 그런 주제에 온갖 환상을 심어내며 동경하는, 존재는 확실하나 그 실체를 제대로 봤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미지의 존재. 사람들은 제멋대로의 상상력을 덧붙여 마족과 마왕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었고, 이야기는 다시 상상력이 덧대어져 마족에 관한 공포를 키워갔다.아이들은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무시무시한 괴물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부모에게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마족의 이야기를 듣다 인형을 꼭 움켜쥐고 잠들곤 했다.

 

마계는 그렇게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생겨났다. 마계. 죽음이 도사리는 곳. 마왕이 산다. 그곳에 간 인간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마계와 마왕을 본 이가 아무도 없는 것은 그래서라고, 사람들은 편하게도 떠들어댔다.


그런 마왕의 실체가 드러난 건 몇 년 전. 망각의 강 너머를 개척하기 위해 떠났던 모험가가 잇따라 실종되면서부터다. 떠난 모험가는 한 명부터 많게는 다섯까지. 대체로 소규모 집단이었고, 강을 건너는 데에 성공한 이들 모두 그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 완전히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 돌아오지 않았으니, 그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선 소문이 돌았다. 마왕은 실존한다고. 동화에서나 들었던 마계는 바로 망각의 강 건너편에 있다고.


인간은 본디 미지의 땅을 개척해 자신의 깃발을 세우고, 자신들을 위협하는 존재는 토벌하여 승리를 거머쥐고자 하는 호전적인 종족이었다. 이들은 곧 그들 스스로 만든 마족과 마왕을 토벌할 계획을 세운다. 수많은 모험가를 보냈고, 때로는 원정대를 보냈으나 모두 실패에 그쳤다. 대부분은 강을 건너지도 못했고, 강을 건너는 데에 성공한 것은 네 명 이하의 소수정예뿐이었으며, 그들은 또다시 실종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래도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강을 건너는 데에는 소수정예가 성공률이 높았으니, 예산이 많이 투입되고 성공률도 낮은 원정대 구성은 포기했다. 대신 유능한 모험가를 색출하고, 그에게 강 너머에 대한 모든 정보를 넘긴 뒤 철저한 전략을 세워 한 명씩 모험가를 보냈다.


그들의 최종 목적은 마왕을 토벌하는 것. 그러나 혼자서는 아직 미지의 영역인 마계의 수장을 토벌할 수 있을 리 없으니 최소한 강 건너의 세계에 관한 정보는 얻어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성공해서 돌아오는 모험가에겐 막대한 돈, 명예, 권력을 하사하겠다고 대대적인 공고가 온 마을에 나붙었다.

 

망각의 강 너머에 관한 정보는 턱없이 부족했다. 사람들은 근거 없는 뜬소문에도 목숨을 걸며 악착같이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누구든 강 너머에 관한, 최소한 강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면 모험가가 따라붙었다. 망각의 강 주변에서 산다는 신관, 츠키시마 아키테루는 정보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하기 가장 적합한 자였다.

 


그것이 올해 열한 번째 원정 대상자로 뽑힌 모험가 카게야마 토비오가 츠키시마 아키테루와 독대하게 된 짧은 배경이다.

 


 

* * *

 



어느 모험가의 ‘시작’에 관한 회고

카게야마 x 츠키시마

SUB : 쿠로오 x 츠키시마

 *

원작 FHQ 기반

페르세포네와 하데스 신화 모티프

 


 

* * *

 



“네가 벌써 올해 열한 번째야.”

“압니다.”

“난 올해만 같은 이야기를 열한 번째 하고 있고. 그중에 다섯은 강 근처에 가기도 전에 내가 못 가게 막았고, 여섯은 그대로 실종됐지.”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난 대체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매번 반복하는지 모르겠어.”

“어쩔 수 없죠. 마왕 토벌은 황제의 제1과제라고들 하니까. 저야 잘 모르는 이야기지만.”

“네가 앞선 열한 명과 다른 점이 뭐야? 뭐, 가지도 못한 다섯보다는 나아 보이지만.”

 

열한 번째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단 소린, 아마 앞선 모험가 모두가 츠키시마 아키테루에게 조언을 구하러 왔었다는 이야기일 거다. 강에 관한 이야기를 제대로 아는 자는 현재 그가 유일했으니 정보 하나하나가 급한 모험가의 처지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그건 카게야마 역시 마찬가지고.

 

츠키시마 아키테루는 이젠 관상만 보아도 그가 강을 건널 수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모험가를 보는 데에 도가 튼 모양이었다. 그는 마치 면접관이라도 된 것처럼 팔짱을 끼고 앉아 품평하듯 카게야마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저를 찾아온 카게야마에게 의자에 앉으라 권하기도 전이었으니 그 태도가 얼마나 거만했는지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카게야마는 이곳에 오기 전, 강을 건너지도 못했다던 다섯 명의 모험가를 만나 츠키시마 아키테루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섯 모두 우락부락 까무잡잡해서 힘깨나 쓸 법한 자들이었고, 츠키시마 아키테루의 거만한 태도에 대해 쉼 없이 욕지기를 늘어놨었다. 그 외엔 연신 카게야마를 빈정대기만 할 뿐 이렇다 할 정보를 단 한 개도 넘기지 않는 통에 불쾌하기 짝이 없던 만남이었지만. 젠장. 아마 자신들이 강을 넘지도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자격지심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 남자의 고압적인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미리 들어놓은 것은 의외로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갑작스럽게 시작된 이 면접 같은 분위기에 적잖이 당황했을 테니까. 그러나 열한 번째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렇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 것도 이해가 가긴 했다.

 

이게 올해 이야기일 뿐이지, 츠키시마 아키테루의 명성이 막 알려지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따진다면 횟수는 훨씬 많을 거다. 게다가 모험가라는 작자들은 대체로 대단한 숙명이라도 지닌 사람처럼 허세에 가득 차거나 죽음을 각오하고 쓸데없이 진지하고 위축되어 있거나, 자신의 힘을 내세우며 고압적인 자가 많았으니 질릴 법도 하다.

 

그래서 카게야마는 일단 잠자코 그의 기분에 맞춰주기로 했다. 카게야마 역시 성격 이상하고 눈치 없다고 유명하긴 마찬가지였으나, ‘그분의 기분을 거스르면 강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라는 투덜거림을 익히 들은 바 있으니 선택한 전략이다. 다행히 츠키시마 아키테루는 카게야마의 얌전한 태도를 보고 기분이 많이 누그러진 듯 보였다.

 

“앞선 다른 사람들이 어땠는지는 저야 잘 모르겠지만, 실력으론 자신 있습니다.”

“어떤 실력?”

“체력이나 기술적인 면으론 누구한테 져본 적 없어요.”

“... 너 이름이 뭐랬지?”

“카게야마 토비오입니다.”

“그래. 나도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아.”

 

모험가와의 만남이 잦아진 츠키시마 아키테루 역시 일찍이 모험가의 길로 발을 들인 이들에 관한 소식엔 빨랐다. 대체로 시큰둥하게 반응했었지만, 몇 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신동이라던 카게야마 토비오에 관한 소식은 그 역시 주의 깊게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다.

 

뛰어난 실력, 상황을 파악하는 정확한 눈을 가진, 얼마 전 왕궁에서 열린 검술 대회에서 월등한 실력 차로 당당히 우승을 거머쥔 검사. 그러나 상황 잴 줄 모르고 오로지 정론만 추구하는 눈치 없는 성격 탓에 커뮤니티에서 소외된 것이 유일한 단점이라는 험담 섞인 소문도 그와 함께 따라다녔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실력은 우수한데 정치질을 못 해서 따돌려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왕궁의 기사단에서도 넘보고 있다던 인재다. 기사의 길을 걷나 했더니 어리석게도 모험가 쪽으로 빠졌나. 그러나 허세에 가득 들어찬 다른 놈들과 달리 올곧은 눈을 한 이 모험가를 보며, 츠키시마 아키테루는 어떠한 가능성을 본다.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 녀석이라면. 강을 무사히 건너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하나뿐인 염원까지 들어줄지도 몰라. 실패한다고 한들 그저 조언자에 불과한 그의 처지에선 딱히 손해 볼 것도 없었다. 잔인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는 모르지만, 그저 장래 유망한 인재 하나만 애꿎게 희생될 뿐 그것이 츠키시마 아키테루에게 해악을 끼칠만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와서 앉아봐. 중요하게 할 말이 있으니까.”

 

마침내 츠키시마 아키테루가 의자를 권했다. 카게야마는 너무 오래 서 있어서 뻣뻣해진 다리를 툭툭 털어내며 의자에 앉았다. 팔짱을 풀고 꼭 모아쥔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 그는 조금 전의 건방진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이것이 오히려 긴장되어 카게야마는 자기도 모르게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너라면 강을 건너는 것쯤은 일도 아닐 거야. 강은 스스로 길을 열어줄 테니까.”

“스스로 길을 연다니…. 그럼 이제까지 강을 건너는 것도 실패했다는 사람들은 뭡니까?”

“망각의 강은 마계 관할 구역이야. 그쪽의 허가 없이는 애초에 건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허가요? 애초에 자기들 땅을 토벌하러 온 자들을 대체 어떤 멍청이가 들어오라고 허락하겠어요?”

“그러니까 너무 한 번에 많이 오거나 기준에 맞지 않는 놈은 애초에 강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얘기야. 그건 망각의 강이야. 닿는 순간 자기 이름 외엔 모든 걸 다 잊게 돼. 길이 열리지 않으면 섣불리 건널 수 없어.”

 

그것은 카게야마 역시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망각의 강 주변에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 것은 그것 때문이기도 했다. 물에 닿지 않고 강을 건너기 위해선 강의 표면이 잔잔할 때를 노려야 했으나, 망각의 강을 건넌 일부 모험가가 다가섰을 때를 제외하곤 강물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휘몰아쳤다. 그래서 강을 건너지도 못하고 돌아온 자들은 그것을 죽음의 강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래. 다 알고 있다. 이는 사실 카게야마가 아닌 모두가 알고 있는 강에 관한 아주 기본적인 상식에 불과하다. 그래서 궁금해지는 거다. 츠키시마 아키테루는 왜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홀로 살고 있는가. 그는 왜 이렇게 강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는가. 잔뜩 질린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강 너머로 갈 모험가를 선별하는 일에 왜 나서고 있는가.

 

“그럼 대체 허가받는 사람들은 기준이 뭔데요? 저는 왜 된다는 겁니까?”

“너, 얼굴은 쓸만하게 생겼으니까.”

 

얼굴? 얼굴이 왜? 갑자기 하등 관계없어 보이는 다른 말을 늘어놓기 시작한 그의 얼굴을 카게야마는 한없이 바보 같은 얼굴로 바라보며 눈만 끔뻑댔다. 농담인가? 그러나 그의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해서, 아무리 눈치 없는 카게야마라도 “농담인가요?”하고 묻는 순간 그의 화만 돋울 거란 사실은 알 정도였다.

 

“나도 기준은 확실하게 몰라. 이제까지 강이 길을 열어준 놈들은 하나같이 얼굴은 쓸만했었거든. 이런 취향인가? 할 뿐이지. 넌 이제까지 마계로 가겠다는 놈 중에서도 잘생긴 편이고.”

 

잘생겼다는 말은 칭찬이긴 하니까 듣고 기분이 좋아져야 맞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 망할 고양이 새끼”하는 살벌한 욕 때문에 섣불리 반응할 수가 없었다. 그저 놀라서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봐, 카게야마. 마왕은 실존해.”

“그렇겠죠. 그러니까 마왕 토벌에 그렇게 혈안이 든 걸 테고.”

“그리고 아주, 파렴치하고 양심도 없는 새끼야.”

 

이 말에 카게야마는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온 얼굴 가득 의문만 띄운 채 그를 바라봐야 했다. 마왕에 대한 평가는 물론 인간들 사이에선 전혀 좋지 못했지만, 츠키시마 아키테루가 말하는 것은 그것과는 조금 결이 달랐다. 대체로 마왕에 관한 이야기는 잔혹하다거나 두렵다는 막연한 공포를 담은 평가였지만, 그의 말엔 뭐랄까…. 개인적인 감정이 다분해 보였기 때문이다.

 

파렴치하고 양심도 없다는 건 개인적으로 뭔가 당하거나 원한이 있을 때 하는 말 아닌가? 카게야마는 용케도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거기까지 의심을 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츠키시마 아키테루의 눈에는 이글거리는 분노가 차오르고 있었다.

 

“그 자식이 내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납치해갔어.”

 

그리고 그다음 이어진 말 덕분에, 카게야마는 그의 개인적 원한, 이곳에 홀로 사는 이유, 모험가를 끝도 없이 마계로 보내는 데에 동조하는 이유를 모조리 알 수 있었다.

 


* * *

 


츠키시마 아키테루는 자나 깨나 그 치욕스럽고 분했던 그 날을 떠올리며 분노했다. 하나뿐인 동생, 츠키시마 케이가 마계로 끌려가던 바로 그 순간을.

 

츠키시마 가문은 대대로 달의 동태를 읽고 달과 대지의 신을 모시며 제를 지내는 신관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었다. 그 대가로 신의 축복을 받은 가문의 일원은 망각의 강에 영향을 받지 않았고, 그래서 넓디넓은 망각의 강은 이들에게만큼은 생명의 강과 같았다. 그래서 츠키시마 가문은 마을과 떨어진 망각의 강 인근에 신전을 짓고, 그곳에 머물며 신을 위해 제를 올리고, 작은 텃밭에서 스스로 일궈낸 작물로 매일을 살았다. 풍족한 것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모자랄 것도 없는 삶이 이어졌다.

 

이번 대의 제1 신관인 츠키시마 아키테루는 애초에 욕심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으므로 이 생활에 대단히 만족하며 살았다. 대지는 노력한 만큼의 소박한 대가를 주었고, 마을과 떨어져 있는 덕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았으며, 유일한 가족인 제 동생은 누구와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단 한 가지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동생인 츠키시마 케이가 이 생활을 몹시도 따분해했다는 점이다. 제 형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나이. 한창 호기심이 왕성한 그로서는 좀 더 다양한 것을 보고 즐기고픈 열망이 상당했을 것이다. 츠키시마 아키테루 역시 이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는 동생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마을로 내려가 동생이 흥미로워할 만한 책이나 장난감을 한 아름 구해 돌아오곤 했다.


동생을 마을에 함께 데려가지 않은 이유는 하나다. 타인이 이 어린 것을 어떤 시선으로 볼지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츠키시마 케이는 츠키시마 가문에게 신이 내린 은총의 산물인 것처럼 아름다웠다. 같은 핏줄임이 분명한데도 하얀 피부와 빛나는 금발은 가문 그 누구에게도 볼 수 없었던 고귀한 품위를 뿜어냈다. 그래서 츠키시마 아키테루는 속세에 찌든 더러운 세계에 제 귀한 동생을 털끝만큼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 나름의 보호책이었던 셈이다. 그래도 동생은 제 형의 뜻을 잘 알아주는 기특한 아이였기 때문에 제 형이 가져오는 것들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받아들었고, 마을에 나가겠다 보채지도 않았다.

 

그래서 츠키시마 아키테루는 더 열심히 마을에서 동생을 위한 것들을 구해다 바쳤다. 덕분에 츠키시마 케이가 자라 철이 들 무렵부턴 마을로 내려가 머무는 시간이 짧게는 3일, 길게는 일주일로 길어지곤 했다. 모두 동생을 위한 거였다. 그것이 마을 인간보다 더 악랄한 놈에게 동생을 먹잇감으로 내어주는 일이 될 거라곤 정말이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츠키시마 아키테루는 그날을 잊지 못한다. 마을에서 귀한 책과 외국에서 건너왔다는 장난감을 한 아름 안아 들고 일주일 만에 돌아왔던 그 날을. 홀로 있을 동생이 걱정되어 급히 돌아온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생전 처음 보는 이의 품에 반쯤 헐벗은 채로 안겨있는 동생의 뒷모습이었다.

 

힘없이 늘어진 동생의 몸을 들쳐메듯 끌어안고 있던 것은 검은 머리에 붉은 눈동자가 날카로웠던 마족이다. 머리 양쪽에 기세등등하게 솟은 뿔이 그가 인간이 아님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동생의 목덜미에 제 이를 박아넣고 있던 그 마족은 츠키시마 아키테루를 발견한 순간 곤란하다는 듯 웃어 보이며 동생의 몸을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나머지 츠키시마 아키테루는 아무 짓도 하지 못하고 그저 멍청하게 그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당장 달려가 동생을 내려놓으라며 손에 든 것을 집어 던지며 덤벼들었어야 했는데. 이글이글 차오르는 분노와 당혹감에도 몸이 굳은 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 마족의 눈을 바라본 순간 그가 속박 주문을 걸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츠키시마 아키테루는 그렇게 어이없이 제 동생을 한순간에 빼앗기고 말았다. 그 검은 머리의 마족은 동생의 몸을 그대로 둘러업고 망각의 강으로 다가갔고, 그 순간 강물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생전 보지도 못한 길을 만들어냈다. 펄럭이는 붉은 로브에 수놓아진 화려한 금색의 문양. 기세등등한 뿔.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길을 내어주는 망각의 강. 그 모든 것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 작자가 그 소문으로만 듣던, 마왕이라고.

 

“그쪽이 형님 쪽이지? 미안한데, 동생은 데려갈게. 손에 물 하나 안 묻히고 잘 키울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웃…. 기지마. 케이를 돌려줘.”

 

간신히 목소리를 내뱉는 그 순간에도 츠키시마 아키테루는 손가락 하나 달싹이지 못하고 마왕이 강이 내어준 길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망연히 바라보아야만 했었다.

 

“아. 쿠로오 테츠로야. 내 이름 말이야. 아마 알고 싶어 할 것 같아서.”

 

쿠로오 테츠로. 그는 제 이름만을 알려준 채로, 그대로 사라져갔다. 망각의 강은 동생과 원수를 집어삼키듯 빠르게 길을 닫았다. 그제야 무릎이 꺾이고, 흙바닥 위로 털썩 엎어질 수 있었다. 츠키시마 아키테루의 주변엔 제 동생을 위해 구해온 책과 장난감들이 부질없이 나동그라졌다.

 

그래. 그 치욕스러웠던 날. 동생을 빼앗기고 원수의 이름만을 알게 되었던 그 날부터. 츠키시마 아키테루는 저 대신 마왕의 손에서 동생을 꺼내올 모험가를 숱하게 망각의 강으로 보내고, 또 보냈다.

 


* * *

 

“잘 알겠습니다. 그 사연은요. 그런데 몇 가지만 물어봐도 됩니까?”

“그래.”

“그... 왜 직접 가지는 않으신 건가요? 그야 신관이시니 전투에 능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정찰 정도는 할 수 있었을 텐데.”

“말했잖아. 강이 길을 내어주면 다가갈 수가 없다고. 너희들이 향해야 할 곳은 강 너머가 아니야. 강의 아래지. 난 강물을 뒤집어쓴다고 기억을 잃거나 하진 않지만, 그래도 강바닥 아래까지 헤엄쳐서 들어갈 수는 없어.”

 

강은 나에겐 길을 내어주지 않아. 마지막 말은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안타까웠는지, 카게야마는 다시 입을 다물고 잠자코 그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동생을 잃은 상실감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카게야마는 그의 얼굴과 목소리에서 그가 얼마나 동생을 아꼈고, 사랑했고, 그래서 그를 데려간 마왕을 얼마나 증오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넌 강 아래로 갈 수는 있을 거야. 내 눈은 정확해. 몇 가지 주의할 점을 알려줄게. 그것만 똑바로 지키면서 내부를 살펴. 절대 마왕을 토벌한 생각 따윈 하지 마. 일단 돌아오는 게 최우선이야.”

“네. 저도 첫 원정부터 토벌까지 바라고 있진 않아요.”

“그래. 그리고…. 가서 동생을 찾아줘.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그리고 동생에게 이걸 전해줘.”

 

츠키시마 아키테루는 품에서 편지 봉투를 꺼내 카게야마에게 건넸다. 상당히 두툼한 걸 보아하니 꽤 긴 편지가 안에 담겨있는 것 같았다.

 

“데려오는 게 아니라요?”

“나도 마음 같아선 쿠로오인지 뭔지 하는 망할 새끼를 당장 때려눕히고 동생을 데려오라고 하고 싶은데…. 그랬다간 돌아오긴 힘들겠지. 그냥…. 동생한테 그걸 전해주고, 소식만 들려줘.”

 

그러면 돼. 초반의 거만하던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그는 한없이 쓸쓸한 얼굴로 시선을 테이블 위로 멍하니 떨구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품 안에 건네받은 편지를 소중히 집어넣었다. 그의 사연을 듣고 나니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올랐다.

 



* * *

 


츠키시마 아키테루의 정보는 정확했다. 카게야마가 망각의 강으로 다가서 강물 한가운데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강물은 너무나 쉽게 길을 열어주었다. 이렇게나 쉽다면 이제껏 강을 건너지도 못했다는 자들이 왜 그리 속출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갈라진 강물 사이로 펼쳐진 길은 끝도 알 수 없이 길게 펼쳐져 있었고, 마치 카게야마에게 어서 들어오라는 듯 강한 위압감을 풍겼다. 카게야마는 제 장비의 상태를 다시 확인하고, 그대로 강의 길 안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강은 카게야마 외엔 그 어떤 이도 안에 들이지 않겠다는 듯, 카게야마가 지나온 길을 무섭도록 빠르게 닫았다.

 

발 뒤부터 빠르게 강물이 차오른다. 차오른다기보단, 정확히 말하자면 문자 그대로 닫힌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터였다.카게야마는 츠키시마 아키테루가 당부한 첫 번째 주의사항을 상기한다. ‘강은 들어선 순간부터 닫히기 시작한다. 그때부턴 강의 길을 벗어날 때까지 절대 뒤를 돌아보아선 안 된다. 들어서는 이에게 조금의 망설임이라도 남아있다는 것을 들킨 순간 강은 곧바로 너를 집어삼킬 것이다.’ 그래서 카게야마는 오로지 앞만 바라보며 똑바로 길을 걸었다.

 

한없이 긴 길을 따라 걷다가 마침내 길의 끝에 다다른 순간, 안쪽엔 드넓은 지하 공간이 펼쳐졌다. 거대한 동굴 같은 그곳엔 스산한 적막이 감돌았다. 오로지 카게야마의 발소리만이 어두운 공간에 가득 울려 퍼질 뿐, 동화에서 나오던 마계의 파수꾼이나 흉측한 괴물 따위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명색이 원정이고 모험인데 이래도 되는 거야? 카게야마는 여전히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미지의 적을 경계하며 제 허리춤에 찬 칼 손잡이에서 손을 떼지 않고는 있었지만, 지나친 고요함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기나긴 발걸음. 카게야마는 마침내 굳게 닫힌 성문을 마주하게 된다. 그 앞을 지키고 있는 머리가 셋 달린 흉측한 개와 함께.

 

마침내 모험가 카게야마의 첫 전투가 시작되어 버린 거다. 저게 그 유명한 마계 문을 지키는 파수꾼인지 뭔지 인가 보지? 카게야마는 검을 빼 들고 전투태세를 갖추며 개의 동태를 살폈다. 카게야마의 모습을 발견한 개는 늘어져 있던 몸을 일으켜 세우고 한없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카게야마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 이상 공격하거나 다가서려는 기색을 보이진 않는다. 카게야마가 조심스레 가까이 발걸음을 옮겨도 마찬가지였다.

 

“어허. 손님이야. 그렇게 무례하게 굴지 말랬지?”

 

그 순간,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에 하얀 로브를 걸친, 금발의, 하얀 옷과 마찬가지로 새하얀 피부를 가진 남자. 그가 부드럽게 나무라자 흉악해 보이던 머리 셋 달린 개는 꼬리까지 흔들어대며 그 남자의 앞에 납작 엎드렸다.

 

“당신, 형이 보낸 사람이죠?”

 

얼굴 한가득 아름다운 미소를 피어 올리며 자연스레 인사를 건넨다. 카게야마는 그렇게 아주 갑작스러운 순간에 그가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던 남자, 츠키시마 케이를 만나게 되었다.

 


* * *

 


카게야마 토비오는 어릴 때부터 모험가의 꿈을 키워왔었다. 어린 시절부터 마족과 맞서 싸우는 용사의 일화를 그린 동화를 듣고 자라나며 반드시 나도 멋진 용사가 되어 이름을 떨치겠다고 다짐했다. 다행히 카게야마는 특유의 좋은 신체조건과 제 신체를 다룰 줄 아는 센스를 타고났고, 처음 목검을 쥐었을 때부터 뛰어난 검술 재능을 드러냈다.

 

왕궁 기사단부터 암흑가에서 유명한 조직까지 카게야마의 재능을 탐내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 모든 곳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고 카게야마는 모험가의 길을 택하고 만다.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기 위함이다. 그리고 카게야마는 그 꿈을 이루기에 능력적으론 전혀 모자란 것이 없었다.

 

그렇다. 모험이 동화에서 나오던, 동료들과 함께 괴물과 싸우고 새로운 땅을 개척하고, 납치당한 공주를 구하고, 영웅으로서 명성을 떨치는 그런 종류였다면 카게야마는 아주 젊은 나이에 진즉 왕국 전역에 이름을 떨치는 용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고, 모험은 동화 속 이야기와는 상당 부분이 달랐다. 카게야마는 동료를 모을 수도 없었고, 괴물과 싸울 필요도 없었으며, 개척해야 한다는 새로운 땅은 생각한 것과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무엇 보다 잡혀갔다던 사람은 이야기와 달리 저를 무슨 오랜만에 온 손님 대하듯 퍽 마계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이 사람을 데리고 나가는 것이 과연 ‘구출’이 맞는지 의심해야 했다.

 

자신의 첫 전투 상태가 될 거로 생각했던 머리 셋 달린 개는 무례하게 굴지 말라는 남자의 한마디에 순한 개가 되어 카게야마에게까지 꼬리를 흔들어댔다. 결국, 카게야마는 빼 들었던 자신의 검을 아주 머쓱한 얼굴로 도로 집어넣는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아주 자연스레 육중한 문을 열고 안으로 손짓하며 카게야마를 안내했다. 긴 로브 자락을 나풀대며 걷는 모습은 꽤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저기….”

“네?”

“당신이 츠키시마 케이…. 맞죠?”

“맞아요. 아마 날 찾으란 말을 듣고 왔을 텐데? 아닌가요?”

“맞습니다. 저어, 당신의 형님이….”

“그건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하죠. 걷는 중에 할 얘긴 아닌 것 같으니까.”

“네에….”

 

너무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흐름에 카게야마는 미처 어떤 반박도 하지 못하고 남자의 뒤만 졸졸 따라갔다. 문 너머는 거대한 성처럼 보였고, 긴 복도를 지나는 동안 카게야마는 그 누구도 마주치지 못했다. 한참을 걷던 츠키시마는 고급스러운 장식이 돋보이는 문을 비집어 열고 다시 안으로 카게야마를 안내했다. 뒤따라 들어간 그곳은 아마 응접실 용도로 사용되는 곳인 것 같았다. 츠키시마는 테이블의 의자를 빼내어 카게야마를 앉힌 뒤 제법 능숙하게 차를 우려내어왔다. 능숙하게…. 그래. 그는 꼭 자기 집에서 행동하듯 자연스러웠다.


아주 좋은 찻잎을 쓴 듯, 코끝을 간질이는 좋은 향기가 은은하게 퍼졌다. 카게야마는 무심코 찻잔을 향해 손을 뻗다가 아주 잠깐 멈칫하더니 곧바로 손을 물렸다. 츠키시마 아키테루의 두 번째 당부를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마계에서 나는 그 어떤 음식도 먹어선 안 돼. 마계에서 나는 모든 작물은 마계 여왕의 소유라서, 그걸 먹은 자 역시도 여왕에게 귀속된다고 하더라고.”

 

그땐 팔자 좋게 먹을 거나 얻어먹으러 가는 것이 아니었으니 참 부질없는 조언이라고 생각했었다. 배고파서 그곳에서 나는 아무것이나 주워 먹는 것이 아니라면 마계의 음식을 받아먹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카게야마는 지금 분위기 좋은 응접실에 앉아 팔자 좋게 음식이나 얻어먹고 있는 형편이었다. 카게야마는 왜 마시지 않냐는 듯 한없이 천진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츠키시마 케이의 얼굴을 곤혹스럽다는 얼굴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기껏 생각해서 대접해주고 있는데, 남이 먹지 말래서 먹을 수 없다는 대답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요?”

“카게야마 토비오…. 입니다.”

“호오. 그 카게야마인가?”

“절 아십니까?”

“뭐어. 이쪽에도 위의 소식은 종종 들려오거든요. 그쪽의 명성이 아주 자자하다고 들었어요. 차기 제왕의 재목으로 꼽힐 정도로 인재라던데.”


자신에 대한 소문이 꽤 이곳저곳 퍼져있다는 것 정도는 대강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퍼질 정도였던가? 카게야마는 의구심을 가지고 차를 한 모금 마시려다가 찻잔을 들어 올린 순간 다시 정신을 차리고 도로 내려놓았다. 그것을 바라보던 츠키시마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할 얘기가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 네. 당신 형님이 이걸 당신에게 전해주라고 하더라고요.”

 

카게야마는 당황스러운 전개의 연속에 아주 잠시 잊고 있었던 제 본분을 상기하고, 품에서 아키테루의 편지를 꺼내 츠키시마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잠시 두툼한 편지 봉투를 이리저리 바라보는가 싶더니 그 자리에서 열어보지 않고 그대로 테이블 옆쪽에 내려두었다.

 

“편지는 고마워요. 손님들은 매번 이걸 제일 먼저 전해주더라고요.”

“네에….”

 

아주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츠키시마는 또 할 말이 없냐는 듯 말갛게 뜬 눈으로 카게야마를 바라보았고, 이런저런 말을 고르던 카게야마는 어쩐지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기가 힘들어 입술만 비죽 내밀고 잠시 그의 시선을 피했다. 목이 바싹 말라오는 듯한 느낌에 이번에야말로 차를 마실 듯 잔을 들어 올려 입술 근처까지 가져왔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도로 내려놓았다. 이번엔 츠키시마의 얼굴이 상당히 불만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 내 정신 좀 봐. 다과를 같이 내왔어야 했는데.”

“아, 아뇨. 그러실 필요는 없….”

“잠시만요.”

 

카게야마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츠키시마는 카게야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곧 창가에 놓인 바구니에서 이런저런 과일이며 쿠키를 담아왔다. 향긋한 차 향기에 과일의 단내와 쿠키의 고소한 향기까지 함께 섞여들어 카게야마의 코끝을 자극했다. 그러고 보니 한참을 걸어왔던지라 좀 출출하긴 했다.


미리 챙겨온 식량 정도야 있기는 했지만, 기껏 정성 들여 대접해주는 것을 거절하고 그 앞에서 제가 챙겨온 것을 꺼내 먹는다는 것은 상당히 무례한 데다 볼품없었기 때문에 먹을 수는 없었다. 곤란하네…. 카게야마는 애꿎은 테이블 위만 손끝으로 톡톡 치며 인내해야 했다. 츠키시마의 미간이 다시 불만스럽게 꿈틀댔다.

 

“저어…. 뭐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말씀하세요.”

“여기가 대체 어디…. 인가요?”

“쿠로오의 성이에요. 당신들이 마왕이라고 부르는.”

 

대답을 들은 순간, 카게야마는 너무 놀라 딸꾹질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설마설마했는데 자신은 지금 너무나도 쉽고 갑작스럽게 적의 본거지에 들어와 있는 거다. 진짜 이래도 돼? 당황스러움에 너무 놀라 다시 찻잔에 손을 대려다 다시 손을 꾹 말아쥐었다. 츠키시마는 이제 카게야마의 행동을 대단히 흥미롭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납치….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데리고 와야 한다고….”

“누가요? 형이?”

“네.”

“하하! 그건 확실히 납치긴 했죠.”

 

츠키시마는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태연하게 굴었다. 재미있다는 듯 웃는 목소리가 청아하게 울린다. 찻잔을 들어 올릴 때 맑게 울리는 다기의 달그락거림처럼. 그는 제법 기품있는 손짓으로 찻잔을 들어 올려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기품있는 몸짓으로 잔을 내려놓았다. 촉촉하게 젖은 입술을 혀끝으로 슬쩍 훑어내고 카게야마를 다시 바라보는 눈은 어딘가 고혹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카게야마는 다시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목이 탔다.

 

“자, 그럼. 당신의 방문 목적은?”

“마계를 정찰…. 하러 왔습니다. 당신 형님에게는 동생을 구해오… 아니. 편지를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편지는 받았고. 그럼 이제 날 데려가 줄 건가요?”

“만난 이상 그럴 목적으로 온 겁니다만….”


그 순간 츠키시마는 아주 야릇하게 눈웃음을 치더니 테이블에 턱을 괴고 카게야마의 얼굴을 아주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매혹적인 시선을 고스란히 받는 통에 카게야마는 이제 진짜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동공을 떨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래. 그렇구나? 츠키시마는 알 수 없는 말을 조용히 중얼거리며 카게야마를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형이 몇 가지를 당부하지 않던가요? 여기에 오면 뭘 조심하라든가 그런 거.”

“하셨죠.”

“어떤 거였어요?”

“망각의 강 길을 지나올 땐 뒤를 돌아보지 말라던가….”

“그래요. 그건 잘 지켰으니 이곳에 있겠죠. 또?”

 

테이블을 반 바퀴 돌아 천천히 걸어온 츠키시마는 어느새 카게야마의 바로 옆에 다가와 섰다. 태연하게 몸을 기울여 테이블 중앙에 놓인 과일 바구니를 뒤적이던 그는 자그마한 딸기 한 알을 집어 들어 제 입에 쏙 집어넣는다. 아주 느리고….뭐랄까, 대단히 유혹적인 움직임이었다.

 

카게야마는 바로 옆에 선 츠키시마를 저도 모르게 넋 놓고 바라보며, 그의 몸이 대단히 말랐고, 아주 유려한 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체는 몸에 딱 맞게 디자인된 하얀 로브가 그의 허리와 어깨, 가슴의 윤곽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하얀 옷과 하얀 몸. 그가 베어 무는 딸기의 붉은색은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이질적인 느낌이 났다. 정확히 무엇이 이질적인지 카게야마의 부족한 어휘력으로는 도무지 표현할 방도가 없었지만.

 

츠키시마는 저를 바라보는 카게야마의 눈을 마주하며 살포시 미소짓더니 몸을 돌려 그대로 테이블 위에 걸터앉았다. 또? 재차 묻는 말에 그제야 카게야마는 그의 질문을 다시금 상기한다.

 

“마계에서 나는 음식은 절대…. 받아먹지 말라고….”

“그래. 그것도 아주 잘 지키고 있고.”

 

소문으로만 듣던 토비오 군은 아주 말을 잘 듣는 아이였네? 츠키시마는 다리를 꼬고 거만하게 앉아 조롱하듯 속삭이더니, 딸기 과즙이 묻은 손끝을 입술로 쪽 빨아냈다. 그 순간, 카게야마는 어쩐지 주변이 더워진 것 같은 열감에 휩싸였다. 이제 진짜로 목이 말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츠키시마는 다시 손을 뻗어 과일 바구니를 뒤지더니, 다시 딸기 한 알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츠키시마는 몸을 숙여 카게야마의 코앞까지 다가와 빤히 눈을 들여다보았다. 츠키시마는 그저 호기심 많은 고양이처럼 굴 뿐이었는데, 왜 자꾸만 몸이 굳고 숨이 가빠오는지 알 길이 없었다. 츠키시마가 딸기를 제 입까지 들어 올리자 달콤한 향기가 코끝에 훅 끼쳤다. 카게야마는 그가 들고 있는 딸기를 집어삼키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아내야 했다. 츠키시마는 카게야마의 인내심을 시험하듯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딸기를 베어 물었다. 서로의 거리가 어찌나 가까웠는지 과육이 씹히는 소리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섣불리 마왕을 건드리지 말고…. 어떤 회유에도 넘어가지 말라고….”

 

마왕. 그 단어가 카게야마의 입에서 튀어나온 순간, 츠키시마는 다시 눈을 휘어가며 예쁘게 웃었다. 그가 다시 제 손끝을 빨아낸다. 이번엔 더 바짝 몸을 기울여 이마와 코끝까지 맞대고서. 딸기향이 풍기는 달콤한 숨결이 바로 앞에서 풍겨온다. 그 향에 취하듯, 카게야마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반쯤 감고 가만히 츠키시마가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쿠로오씨는 마침 성에 없으니 건드릴 수야 없겠고. 마지막이 문제네.”

 

참으로 이상한 모험이다. 수많은 모험가가 행방불명이 될 정도로 위험한 모험이라고 알고 있었고, 나름대로 각오하고 왔는데 일이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쉽게 풀렸다.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해봐야 자꾸만 갈증이 나는 것을 참아가며 음식에 손을 대지 않는 것 정도였고, 그마저도 지금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생각도 나지 않았다. 조금 전의 허기는 갑작스레 풍기는 야릇한 분위기에 금세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고 보니 실종된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분위기에 취해 몽롱해진 머리로 카게야마는 진작 품었어야 할 의문을 뒤늦게 품기 시작한다. 츠키시마는 이제까지 망각의 강을 건너다 실종된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는 것처럼 말했다. 그들은 모두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도 카게야마처럼 이 이상야릇한 다과를 대접받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곤혹스러워하다가 분위기에 취해 몽롱한 머리로 츠키시마와 이마를 맞댔을까?


카게야마는 정말이지 궁금한 게 많았다. 궁금증을 해결해줄 수 있는 건 츠키시마가 유일했고, 그는 바로 눈앞에 있으니 어서 물어봐야 했는데, 입은 애타게 달싹거리기만 할 뿐 도무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목이 말라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한참 전부터 몸이 갈증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수분섭취를 하지 못했으니까.


목이 마르다. 무언가를 마셔야만 했다. 마셔야만….

 

“나를 구해줄래요?”


그 순간 츠키시마는 한없이 나른한 목소리로 카게야마의 귓가에 속삭였다. 자신의 본분에 대해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카게야마는 마계를 정찰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고,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했으며, 츠키시마에게 편지를 전해주고, 할 수만 있다면 그를 구출해내기 위해 이곳에 온 거였다. 이곳에 온 뒤로 어찌 된 일인지 카게야마는 자신의 목적과 츠키시마 아키테루가 전한 당부를 자꾸만 깜박깜박 잊게 되었다. 구해달라는 그의 말에 카게야마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눈을 떠 츠키시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느새 손을 뻗어 반으로 쪼개져 보석 같은 과육을 알알이 드러내던 석류를 움켜쥐고 손바닥 가득 석류알을 집어 들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물 흐르듯 자연스레 카게야마의 허벅지에 걸터앉는다. 당황할 새도 없이 품에 폭 안긴 그는 조금 전까지의 느른한 분위기는 싹 거둔 채 한없이 가녀리고 불쌍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동안 모험가라는 사람들이 몇 차례 오긴 했는데, 하나같이 저를 모험의 전리품 정도로만 생각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더라고요.”

“아, 아…. 그랬습니까.”

“구해달라고 했는데, 그것도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앞선 모험가들 역시 츠키시마에게 구해달라는 요청을 들었던 모양이다.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면 역시 마왕에게 당한 건가? 애석한 노릇이다. 그렇다면 그를 구할 절호의 기회는 마왕이 성을 비웠다는 바로 지금 이때일 터였다. 카게야마는 다시 가슴 속에 싹트는 사명감을 느낀다.

 

“쿠로오씨는 다정한 편이지만, 그래도 그가 없으면 이곳은 너무 조용하고, 쓸쓸하고….”

 

구해달라는 이유가 좀 이상하긴 했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드디어 모험가로서 제대로 된 임무를 하나 받은 셈이었다. 반드시 성공할 의무가 있었다.

 

게다가 츠키시마의 목소리는 아주 슬펐고, 그의 말 만큼이나 쓸쓸하게 들렸다. 아이처럼 몸을 동글게 말고 카게야마의 품에 폭 안긴 채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볼 수 없었지만, 목소리에 미묘한 울먹임이 섞여든 것을 보니 분명 표정은 그리 좋지 못하리라. 카게야마는 저도 모르게 품 안의 마른 몸을 부드럽게 끌어안고 어깨를 조심스레 쓸어내렸다. 서툴긴 해도, 나름의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자그마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도와줄 거죠?”

 

츠키시마는 마침내 고개를 들어 저를 바라보는 카게야마와 눈을 마주했다. 동그랗고 커다란 눈. 그 안에 박힌 노란 눈동자는 퍽 애틋하고 절실해서, 카게야마는 그와 오늘 처음 만났다는 사실도 잊은 채 무엇이든 부탁은 다 들어주겠다며 책임감 없는 다짐을 건넬뻔했다. 다행히 그것만은 피했으나, 저를 바라보는 눈동자에선 시선을 뗄 수가 없다. 카게야마는 조금씩 가까워지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주겠다는 무언의 다짐이며, 약속이었다.

 

석류의 과즙이 잔뜩 묻은 손가락이 카게야마의 턱을 지그시 눌러온다. 어느새 다시금 서로의 호흡이 얽힐 만큼 가까워진다. 가느다란 손끝이 노크하듯 입술을 톡, 톡 두들기는 통에 카게야마는 자연스레 닫힌 입술을 벌리고 단내가 나는 호흡을 받아들였다. 부드러운 입술이 겹치고 자연스레 서로의 몸을 끌어안는다. 입안엔 딸기와 석류의 향이 섞인 달콤한 내음이 가득 풍겼다.

 

그래. 언젠가 보았던 동화 속의 용사와 공주 이야기처럼. 어쩐지 급전개 같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퍽 달콤하고 설레는 그런 장면. 그 장면의 한가운데엔 카게야마와 츠키시마가 있었다.

 

여기까진 좋았다. 일은 너무나 쉽게 풀렸고, 카게야마는 너무나 손쉽게 모험가로서의 소명을 받들게 되었다. 이제 행동만 하면 된다. 그러면 됐는데.

 

“우, 읍…! 큭!”

 

목구멍 안쪽으로 작은 알맹이 하나가 굴러떨어진다. 카게야마가 이것이 대체 무엇인지 파악도 하기 전에, 츠키시마가 그의 목을 끌어안고 대뜸 고개를 꺾어가며 더 깊이 입술을 파고들었다. 혀가 얽힌다. 미처 대처할 틈도 없이 알맹이는 질척한 타액에 뒤엉켜 식도 너머로 삼켜졌다. 카게야마가 황급히 츠키시마의 몸을 떼어내곤 제 목을 부여잡고 콜록대보았지만 한 번 넘어간 것은 도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삼켰지?”

“뭐, 뭐야…?”

“삼켰잖아. 그렇지? 하하! 그거, 성 뒤쪽 나무에서 따온 석류야.”

 

키득키득 장난스레 웃는 츠키시마는 새빨간 과즙이 눌어붙은 제 손가락을 핥아대며 잔뜩 조롱하는 얼굴로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의 애틋함은 온데간데없는, 악마 같기도 하고 천진한 아이 같기도 한 얼굴. 그는 당황스레 저를 바라보는 카게야마의 턱을 움켜쥐고 강압적으로 제 쪽으로 끌어당겨 은밀하게 속삭였다.


“마계에서 나는 음식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지? 마계의 여왕에게 귀속되는 거야. 이곳은 내 관할 구역이니까.”

 

순간 츠키시마의 노란 눈동자가 밝게 빛났다. 가뜩이나 색소가 옅었던 눈동자는 마치 노란 색소를 머금은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빛나며 카게야마를 매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눈동자를 바라본 순간, 카게야마의 머릿속이 제 의지와 상관없이 강하게 외치기 시작했다.

 

여왕의 명령을 따라. 나는 여왕에게 귀속된 장난감이다. 그에게 복종해.

 

생전 느껴본 적 없는 내면의 외침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도 강렬해서, 츠키시마가 무슨 말을 하든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이상한 사명감이 내면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었다. 미쳤어? 왜 이래? 저 자신에게 물어보아도, 그 순간 강렬한 두통이 보복하듯 밀려올 뿐이다. 카게야마는 간신히 두통을 견디고 마지막의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어이없다는 듯 츠키시마를 쏘아보며 제 안의 마지막 의문을 던졌다.

 

“여왕…. 이라고?”

“응. 그렇게 됐어.”

 

이 망할 곳은 마왕의 반려를 여왕이라는 호칭으로 퉁 치고 있나 보다. 제기랄. 호칭 좀 바꿔라. 여왕이 남자일지 누가 알았겠냐고. 카게야마는 몰려오는 두통에 이를 짓씹고 숨을 씩씩대며 제 안에서 몰아치는 명령들을 떨쳐내려 애썼다. 츠키시마는 가만히 그 모습을 가엾고 딱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츠키시마는 다시 창가로 다가간다. 창밖은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여기 지하 아니었나? 노을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는 사이, 츠키시마는 한 편에 놓여있던 물 주전자를 들고 카게야마에게로 다시 다가온다. 그는 여전히 즐거운 듯 야릇한 눈웃음을 눈에 한가득 걸고 있었다.

 

“형이 이번엔 기대를 좀 했을 법하네. 너 의지가 굉장한가 봐. 반항심이 아주 끈질겨.”

“뭘 어쩌려고?”

“도와줄게. 편해지는 거.”

 

주전자를 들고 천천히 다가오는 그는 대단히 위험해 보였지만, 그런데도 반항은커녕 피할 수조차 없었다. 몸은 강렬한 두통 때문에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카게야마는 그저 눈에 한가득 경계를 담아 그를 노려볼 수밖에 없다.

 

“망각의 강에서 길어온 거야. 머리를 식히는 데엔 이만한 게 없을걸?”

 

키득키득 웃는 웃음소리가 소름 돋는다. 츠키시마는 상체를 깊이 숙이고 씩씩대는 모험가의 까만 머리칼 위로 주전자의 물을 천천히 부었다. 잘 우려낸 홍자를 따르듯 섬세한 손길. 그의 흑발과 옷자락이 온통 젖어 드는 것을 보며 츠키시마는 말을 이었다.


“앞에 온 놈들은 너무 재미없게 굴어서, 가지고 놀다가 금방 버렸거든. 싫증 난 장난감은 필요 없으니까.”

 

그는 카게야마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앞선 모험가들의 행방에 대해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었지만, 카게야마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머릿속은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하나둘 무언가 씻겨 내려간다.

 

“너는 생긴 것도 쓸만하니까. 나도 기대를 좀 해볼게. 이번엔 오래 가지고 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

 

츠키시마는 물을 모조리 쏟아낸 물 주전자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역시나 섬세하고 우아한 손길로 제 몸에 걸친 옷가지를 하나둘 풀어 내리기 시작했다. 하얗고 치렁치렁한 옷은 그의 손길을 따라 안의 투명하도록 하얀 속살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다. 카게야마는 그제야 고개를 들 수 있었다. 까만 눈동자는 제 눈앞에 서 있는 여왕의 하얀 나신 외엔 아무것도 비추지 못했다.

 

“그이가 돌아올 때까지 즐겁게 해줘, 토비오.”

 

첫 번째 명령이 떨어진다. 그 순간 카게야마는 제 품에 안겨오는 마른 몸을 강하게 끌어안고 붉은 혀를 품은 입술 안으로 파고들었다. 혀가 뒤엉키는 물소리와 함께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모험이라거나, 동화 속 이야기 같은 부질없는 단어들이 하나둘 씻겨 내려간다.

 


* * *

 




임징징이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