쑈님@tensai_SHO께서 올리신 사진과 썰이 너무 좋아서 허락을 구하고 짧게 씁니다



히카루 술루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캡틴 제임스 T. 커크는 이제 괜찮은 조타수를 어디서 픽업해 와야하나 물어보다가 일은 계속 할 것이라는 답을 듣고 재빨리 잊어버렸다. 그래서 본즈가 '넌 뭘 줄거야?'라고 물었을 때  커크는 사탕같은 눈을 껌뻑거리면서 '진실한 우정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아끼는 티셔츠를 하나 줄게.'라고 말해버린 것이다. 본즈는, 늘 그렇듯, 그를 미친 놈 보듯 쳐다보았고 커크는 맘에 들지 않냐고 심각하게 물어보다가 술루의 결혼식 이야기를 듣고서야 다시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결혼식은 바로 그 주 토요일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모든 크루가 엔터프라이즈를 떠나 지구에서 상륙휴가중인 바로 그 시점에.

다들 언제 그렇게 선물을 준비했을까. 커크는 배신감을 느꼈다. 본즈는 가정용 트라이코더를 준비했고 스코티는 집에 놓으면 좋을 전자 수조를 준비했다. 우후라와 스팍은 무려 '함께' 선물을 준비했는데, 커크는 이들에게 제일 배신감을 느꼈고,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가정용 정원 만들기 키트'였다. 정말 이게 미스터 술루한테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 이런것쯤이야 3살때 다해봤을텐데. 커크가 투덜거리자 우후라가 말했다. 남편하고 해보라는 거죠, 같이요.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은데요? 좋은 시간은 무슨. 커크는 계속 투덜거렸지만 쉽게 잊어버리는 다른 것들에 비해 그런 것은 잘 잊혀지지 않았다. 술병을 끌어안고 슬피우는 체콥을 스카티에게 떠넘기고 돌아오는 길에 지구의 밤공기는 지나치게 따뜻했고 커크는 우주를 그리워하면서 술루가 결혼한다는 것을 다시 떠올렸다. 히카루 술루가 결혼한다.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말하기엔 애매하다. 직함이 그랬고 장소가 그랬다. 함선 밖에는 우주 뿐이었고 그들은 우주 어디든 갈 수 있었지만 직접 숨쉬면서 갈 수 있는 곳은, 함선 뿐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그들은 자랑스러운 엔터프라이즈에서 보냈고 몇 번의 위기와 몇 번의 영광을 지나 굴곡을 함께했다. 술루는 쉽게 동요하지 않고 신중한 협박을 할 수도 있는 사람이었지만 가끔 무모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그의 상관인 함장과 이유없이 눈을 마주친다든지, 아이오와의 햇살같은 금방 머리를 툭툭 털어준다든지 하는 일들. 뭔가 있어. 본즈는 그렇게 말했다. 여기 이 브릿지에 뭔가 있다고! 그러나 감만 좋고 눈은 어두운 본즈는 그것이 함장과 조타수 사이의 어떤 기류때문인줄은 몰랐다. 사실 커크도 잘 몰랐다. 다만 그 검은 눈과 마주칠 때엔 뜨끔했다. 쳐다보는 줄 몰랐는데, 꼭 돌아볼 때가 있다. 단정한 어깨가 궁금해서 팔을 둘러보면 아무렇지 않게 머리를 툭툭 헤집어 주고 갔다. 왜 뜨끔하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쳐다본 것 뿐이고 눈이 마주친 것 뿐인데. 시선을 들키면 어때 나는 거기 앉아서 볼 게 노란 셔츠 입은 조타수와 항법사 뿐인데. 하지만 그래도 뜨끔했다. 마주치는 검은 눈은 하지 말라고도 안 했고, 그렇다고 계속 하라고도 안 했다. 그저 대답했을 뿐이다. 나도 당신을 보고 있다고. 그런 식의 시간들이 많이 흘러갔다. 어떤 선 혹은 얇은 벽을 더듬거리고 건너편에 서 있는 사람의 손바닥을 찾으려는 시간들이. 때로 무모해지는 술루는 아마 더 나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벽을 기어 올라 기어코 건너편 사람을 만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커크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무엇도 확신할 필요가 없다고 자신감있게 말하고 다니면서, 결국 확신하지 못한 건 본인이었는지, 아니면 식어가는 돌처럼 서서히 관심이 식었는지 커크 본인도 구분하지 못했다. 다시 직함과 장소가 문제가 된다. 그것들은 늘 문제가 된다. 시선이 돌아올 때 커크는 시선을 돌려 술루의 눈처럼 검은 우주를 쳐다보았다. 우주는 때때로 찬란한 색을 뿜어냈는데 그마저도 커크는 술루의 눈같다고, 낯간지러운 생각을 했지만 절대 술루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곧 그 시선은 사라졌다. 완벽한 3년간의 침묵 속으로.


그리고 이제 히카루 술루 대위는 결혼을 한다. 몇 년 사이 누굴 어떻게 만났는지도 듣지 못한 커크는 뒤늦게 그가 결혼할 상대가 의사이며 스타플릿과는 관계가 없지만 몇 번이나 지구 권역 밖으로 파견을 나간 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륙 휴가 내내 술루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는데 밀린 결혼 준비로 너무 바쁘다는 것이 이유였다. 커크도 커크대로 바빴다. 참여해야 할 행사도 많았고 그만큼의 시간동안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어야 하는 일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명색이 캡틴인데 아무 것도 안 줄 순 없잖아. 커크는 거울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머리를 반듯하게 빗어 넘기면서 별일 아닌 듯이 말을 툭툭 흘렸다. 하지만 뭘 줄 거냐고.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멋지고 단번에 눈에 띄는, 그런 걸 준비해야 하는데. 아무나 가질 수 없고 아무도 가져서는 안되는 그런 거 말이야. 그러니 23세기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버튼만 누르면 모든 것이 작동하는 세상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그 전에 걸 주면 되잖아. 커크는 자신의 정리되지 않은 짐을 뒤지고 또 뒤져서 카메라를 한대 찾아냈다. 이 모델이 처음 나왔을 때는 최신식 모델이었겠지만 지금은 건드리면 필름도 부서져 버릴 정도로 오래된 카메라였다. 곧바로 커크는 술루에게 전화했다. 사진 기사 필요하지? 내가 완전 구식으로 찍어줄게. 아니 그러니까 구식 카메라로, 직접 손에 쥐어주겠다고. 술루는 10분뒤 전화를 걸어왔고, 허락했다.






결혼식은 생각보다는 단촐하지 않았다. 신랑들과 서서 자그마한 예식을 치르고 소규모로 모여 식사를 하고 나면 그게 결혼식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 아시아인이 결혼하자 결혼식은 친척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애초에 두 사람은 그에 맞춰서 결혼식을 준비했고 초대받고 찾아온 엔터프라이즈 크루들만 입을 떡 벌렸다가 닫으려고 노력해야 했다. 본의 아니게 커크는 매우 바빠졌다. 친척들도 찍어야 하고 크루들도 찍어야 했다. 거의 모든 사람이 벤과 술루를 둘러 싸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찍는 것은 힘이 들었다. 어릴 적 아이오와를 달려 나갈 때 이곳 저곳에서 사진을 많이 찍어본 것이 오늘날 도움이 되었다. 끝없는 평야를 찍던 날과 달리 이제는 그 옥수수갯수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을 찍어내야 했다. 커크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막 도착해서 신랑과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찍어주고 있었다. 술루는 특유의 약간 난감한 듯 하지만 결코 자신감을 잃지 않는 표정으로 멋지게 웃고 있었다. 눈꼬리를 한껏 내리면서, 잘 다린 흰색 와이셔츠가 팽팽하게 보이도록, 한번도 다른 이에게 굽혀 본 적이 없을 것 같은 검은 눈동자까지.

커크는 자신이 줌을 당겼다는 사실을 몰랐다. 화면 한가득 술루의 얼굴이 잡히고야 알았다. 그는 행복해보였고 여전히 신중하게 킬킬거리고 웃었다. 그의 옆에는 그보다 키도 덩치도 더 큰 남자가 서서 그와 말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예복을 입고 있어서 누가 봐도 그들이 오늘의 주인공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커크는 줌을 조금 빼고 그들의 모습을 찍었다. 인파 사이에서 편안하게 이야기 중인 모습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찍혔다. 한번 더 셔터를 누르려는데 술루가 웃었다. 한번도 본적 없는 얼굴로, 너무나 무방비하게 활짝 웃어버렸다. 커크는 타이밍을 놓친 채 술루의 얼굴이 흐리게 날아가 버린 사진을 찍었다. 그 순간에는 똑바로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조금 더 가도 됐었잖아. 우주를 여행하는 사람이 두려워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잖아. 커크는 다시 줌을 당겼다. 술루는 이제 거의 뒷통수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셔터를 눌렀다.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을 후회할 수 있는 것도,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벽 너머에 대해 궁금해할 수 있는 것도 모두 밤에 이루어졌다. 커크는 셔터를 누르면서 숨을 참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 일어나 술루의 손을 잡고 이 멋진 결혼식장에서 뛰쳐 나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침묵 속에 지나가버린 옛 추억을 떠올리며 커크는 파인더로 술루의 눈을 본다. 가만히 검은 눈. 내가 널 이렇게 좋아했었는데 나는 왜. 네가 날 그렇게 보고 있었는데 나는 왜 그랬을까.

커크는 결혼식 내내 그런 소리는 한 마디로 하지 않았지만 사진을 무려 출력까지 해서 술루에게 보냈다.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진, 익살스런 손님들의 사진이 꽤 훌륭하게 찍혀 있었고 술루는 고맙다는 메세지를 따로 보냈다. 그러나 실은 사진 중에 몇 장을 간추려 빼냈다. 특히 술루의 얼굴에 핀트가 나간 사진이 있었다. 벤이 뒤에서 불러 돌아보는 순간 찍힌 술루였다. 핀트는 나갔고 원근감은 엉망이었지만 마치 나를 돌아보고 있는 것 같은 사진. 나는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더 잘 해야 했었는데, 사랑할까봐 겁을 먹는 바보같은 짓을 안했어야 했는데. 커크는 그 사진을 몇 번이나 꺼내 보았고 또 후회할 것을 남겨둔 채 지구를 떠날 때에도 소중히 품에 넣고 갔다.





~ 하는 걔 /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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