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리즈으으으으...!

그는 바쁜 사람이었다. 경찰이었을 때부터 검사가 된 지금까지 성질이 급해서인지 제 자리에 앉아 가만히 기다리는 것을 못하는 스타일이었다. 어딜 가든 직접 가야야하고, 누굴 잡든 직접 잡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나온 것을 조금은 후회하고 있었지만. 

놈이 숨어있다고 신고가 들어온 클럽은 금요일 저녁이라는 시간적 특수성과 맞물려 사람이 차고 넘쳤다. 한 발 내딛을 때 두 사람과 부딪히니, 그의 신경도 어지간히 날카로워져 있었고. 게다가 담배까지 다 떨어져서, 지금 정신이 온전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화장실에서 나올 때 부딪힌 여자가 그의 손목을 시덥잖은 이유로 세 번이나 붙들었을 때, 그게 생물학적으로 남성에 비해 체력과 근력이 떨어지는 XX염색채가 아니었으면 어디를 치든 한번은 쳤을거였다. 

"저기 저 사람."

그 XX염색채가 기어이 무슨 쓸모있는 말을 뱉어냈을때야, 그는 겨우겨우 자신의 멱살을 붙들고 있는 여자를 제대로 쳐다보았다. 

눈이 컸다. 화장이 조금 엉망이라고 부를 스타일이긴 했지만. 조금 어려보이는게 문제라면 문제일까. 이런 데 들어와도 돼요? 라고 물어보고 싶은 것은 그는 꾹 눌러 참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무사히 범인을 때려잡았고, 반쯤은 충동적으로 자신의 번호를 여자에게 건넸다. 핸드폰을 받아들고 멍하니 서있는 얼굴에 형형색색의 조명이 스쳤고, 그는 그것을 보며 피식 웃었다.

놈의 뒷덜미를 잡고 밖으로 나오자, 그제서야 새까만 밤하늘의 공기가 폐를 채웠다. 그는 습관적으로 안주머니를 뒤졌지만, 떨어진 지 오래인 담배는 나오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는 별로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빈 종이곽을 구겨 던졌다.  

담배 한 개피 정도는 미뤄도 될 것 같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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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이름이 뭐에요?"

"이지은이요. 알 지(知)에 은혜 은(恩)."

"내는 우장훈. 알지요?"

"네, 뭐..."

두 사람은 지금 검찰청에서 멀지 않은 설렁탕집을 찾아가고 있었다. 자신을 이지은이라고 소개한 여자는 어제의 모습과는 달랐다. 묶어올렸었던 긴 머리는 풀어내려 허리께에 닿았고, 진한 화장도 없이 청량한 느낌이 흘렀다. 옷도, 젊은 애들이 입을 유행타는 옷을 입고 있었고. 뭣보다 성격이 다르달까. 어제는 취해있어서 그런걸테지. 

"이지은씨는 몇 살이에요?"

"저는, 스물 여섯...이요."

스물 여섯으로 안 보였다. 그래도 설마 거짓말을 칠까. 클럽에 들어도 갔으니 스물 여섯 맞겠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는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라믄, 대학생이에요?"

"대학원생이요. 석사과정 밟느라."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가 대답하자 그는 아아, 하고 짧은 단말마를 흘렸다. 

"어제랑은 많이 다르네예."

"네, 네?"

당황해 더듬거리는 여자를 흘깃 쳐다보고, 그는 웃었다. 놀라는 얼굴이 재미있어, 한마디 더 던져본다.

"어제는 막 사람 멱살 붙잡고 그러더니."

"아, 아니! 그거는! 죄송한데, 그...!"

"그 뭐요?"

"그으으...."

일단 말을 멈추기는 했는데, 그 뒤를 이을 것은 찾지 못한 모양이다.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 옷자락을 붙잡고 몽그라뜨리는 것을 보고, 장훈은 잠시 속으로 웃었다가, 이번엔 그냥 보내주기로 한다.

"장난이고, 저쪽에서 꺾어요."

"아, 네!"

넘어가서 다행이다, 라는 얼굴로 여자는 발걸음을 빨리한다. 장훈도 아무 말 없이 뒤를 따랐다. 큰 길을 지나, 왼쪽으로 꺾으면 작은 골목 한쪽에 자리한 가게가 나온다. 오래된 가게였다. 그가 경찰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다녔던 집이다.

"이기 설렁탕이 요 주위에서는 최고거든. 설렁탕 좋아한다 그랬죠?"

"네, 엄청 좋아해요."

벌써 가게는 사람이 많다. 우글거리는 인파를 피해 안쪽 비어있는 테이블로 들어가 두 사람은 자리를 잡았다. 

"사장님, 요 설렁탕 두개요!"

그가 옆의 의자에 양복 마이를 던지듯 걸치며 주문했다. 그녀도 매고 있던 가방을 벗어 고이 걸어놓았다. 그리고 익숙한 손짓으로 수저와 젓가락을 꺼내 세팅한다. 그 모습을 본 장훈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갑작스러운 웃음에 놀랐는지, 여자는 땡그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장훈은 손을 내저으며 부정했다.

"아아, 아니. 익숙한가보네 싶어서."

"아, 이거요?"

그녀가 수저통 뚜껑을 닫으며 설명했다. 제가 막내라서요. 수저 놓는건 다 제가 했어요.

"검사님은 형제 있으세요?"

"내는 외동이라. 앞뒤 안보고 컸제."

"헤에... 좋았겠다."

그녀는 그의 말에 반응하더니, 턱을 괴고 꿍얼거린다. 저도 외동이었으면 했는데. 오빠들이 너무 못됐어요. 낯을 가리는가 싶더니, 또 할 말은 잘한다. 밑반찬이 오는 것을 보면서, 그는 말했다.

"오빠들이 어떻게 못됐는데요?"

"그냥, 막 장난치고. 먹을거 뺏어먹고. 남친 있냐고 물어보고, 있다 그러면 막 화내고..."

"그거이, 여동생이 귀엽으니까 그르는 거 아이에요."

"귀엽기는, 맨날 못생겼다고 그러는걸요."

충분히 귀여운데, 그는 표면에 물방울이 맺힌 물컵을 입가에 가져다대며 생각했다. 물론 입 밖으로 낼 생각은 없었다. 그저 그도 가까운 사촌 여동생이 하나 있어서 그 기분은 잘 안다며, 부루퉁한 여자를 달랠 뿐이었다. 

"설렁탕 두 그릇 나왔습니다-"

두 사람의 앞에 때마침 설렁탕이 놓인다. 뜨거운 김이 몽몽하게 솟아 순간 앞을 가린다. 그녀는 가볍게 '잘먹겠습니다'하고 인사하고는, 숟가락을 들었다. 그도 오랜만에 먹는 설렁탕을 잠시 즐기기로 했다. 다행히 조금 상기된 여자의 얼굴을 보니, 설렁탕을 좋아하기는 좋아하는 모양이다.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근데 아가씨를 내 뭐라 부르까요?"

잠시동안 아무 말 없다, 장훈은 문득 물었다. 그의 질문에 입 안의 것을 넘긴 여자가 한 발짝 늦게 되물었다.

"저요?"

"예. 그냥 아가씨라고 부르기에는 좀 그러니까."

"음, 그냥 마음에 드시는 대로? 지은 씨, 지은 양, 지은아..."

"그럼, 지은 씨. 이래 부르면 되나?"

"네, 그렇게 불러주세요. 저는, 검사님이라고 부르면 되죠?"

"이름 불러도 개안은데."

그렇게 말하자, 여자는 그리 버릇없게는 못한다고 손사래를 친다. 그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여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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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검사님. 잘 먹었습니다. 감사했어요."

검찰청에 다 와서, 고개를 꾸벅 숙이는 여자를 그는 손짓을 한다. 한 손에는 아이스 커피를 고이 들고. 괜찮다는 것을, '밥 사주셨으면 커피는 제가 내야죠!' 하고 우겨 아메리카노 한잔씩 손에 들고 들어가기로 했다. 학생이 무슨 돈이 있을까 싶었지만. 

"별 거 아닌데, 뭐. 그럼, 내는 들어갑니다. 다음에 봐요, 지은 씨."

"네, 다음에는 제가 살게요."

"진짜지요? 나 비싼거 묵을건데."

"알바 열심히 해야겠네요, 그럼."

여자가 웃는다. 남자도 우섰다. 여자는 말한다.

"저 가볼게요, 검사님."

그는 대답대신 손을 흔들어준다. 총총걸음으로 큰 길가로 나가는 여자를 잠시 지켜보다가, 그는 커피의 빨대를 쪽 빨았다. 그리고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어우, 쓰브라."

요즘 애들 커피는 원래 이런가? 야근 할 때, 컵라면과 함께 믹스커피만 줄창 타다먹는 장훈은, 미심쩍게 손에 든 어두운 색 음료를 두어 번 흔들어보았다. 아무래도 너무 썼다.

글러지만 글러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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