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킨x오비완

+스튜존인에 대한 내 맘대로 설정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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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살의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코러산트에서 맞는 첫 가을이었다. 자연물이 드문 코러산트였지만 계절의 변화만큼은 명확했고, 제다이 사원 내에 자리한 정원들은 착실히 잎사귀를 물들이며 서늘한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더위가 한 풀 꺾인 아침, 아나킨은 수업을 듣고 느릿한 걸음으로 쿼터로 돌아가다 잠을 깨고자 야외정원을 지났다. 졸린 눈을 비비며 입을 쭉 벌리고 하품을 하던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살랑한 바람에 흔들리는, 눈 앞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나뭇잎에 거의 기절할 뻔했다. 꼭 쥐고 있던 교과패드가 툭 떨어져 풀밭을 뒹굴었지만 아나킨은 정신을 온통 빼앗겨 눈을 떼지 못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며, 노을의 적색이 섞인 주황빛 하늘에 온갖 색으로 물든 나무들, 한결 서늘해진 바람끝에 흔들리며 부딪히는 나뭇가지들은 아나킨의 작은 심장을 거세게 두드리고도 남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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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완!"

한달음에 쿼터로 달려온 아나킨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스승을 불렀다. 오비완 역시 막 쿼터에 들어온건지 평소와 달리 로브를 입은 채였다. 

"아나킨, 마스터라고 해야지"

대수롭지 않은 톤으로 말을 고쳐준 오비완은 아나킨의 흐트러진 머리를 쓰다듬었다. 복슬강아지마냥 어디서 놀다 온건지 흙먼지들이 잔뜩 붙어있었다. 물론 얼굴도 풀쪼가리와 흙투성이였기에 오비완은 한쪽 무릎을 꿇은 뒤 로브의 소매로 아나킨의 볼과 콧등을 훔쳐주었다. 아나킨은 잉잉 거리며 내 말 좀 들어보라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으나 꼼짝없이 전부 닦인 후에야 입을 열 수 있었다.

"정원에 있는 나무들이 죄다 빨갛고 노랗고 파랗고 이상하단 말이에요! 마스터, 못봤어요?"

별을 박은 듯 반짝이는 눈동자에 열기가 가득했다. 오비완은 그제서야 아나킨에게 가을이 난생 처음 맞는 계절이란것을 깨달았다. 그래, 아나킨은 타투인에서만 자랐으니... 오비완은 씩 웃으며 아나킨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약간의 과장을 섞어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이야기를 해주니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무척 꿈결같았다. 

"....가을.... 너무 예쁜거같아요 마스터, 마스터도 가을 좋아하죠?"

순수한 물음에 오비완은 그저 담담히 웃는다. 예쁘고 말고. 어느새 정신없이 기후도감을 읽는 아나킨에게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비완은 입고있는 로브를 조금 더 여미며 불편한 몸을 추스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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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은 깊어갔다. 오색으로 물들었던 나무들은 허물을 벗듯 낙화했고 그새 계절에 익숙해진 아나킨은 아쉬운 마음과 쌀쌀한 날씨 탓에 코를 훌쩍였다. 하지만 스러지는 가을보다 걱정이 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오비완, 바로 자신의 스승이다. 아나킨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소파에 앉아 보고서를 쓰고 있는 오비완의 뒷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다 손을 내밀어 도드라진 목의 뼈를 콕 찔렀다. 손길에 놀란 오비완이 뒤를 돌아보며 뒷목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아나킨? 갑자기 무슨..."

말끝을 흐리는 오비완의 어깨 위로 아나킨의 양손이 불쑥 올라왔다. 작은 손바닥으로 주물주물 거리다 더욱 미심쩍은 눈초리로 오비완을 바라보았다. 오비완은 점점 더 영문을 알수 없어 아나킨의 행태를 가만두었고, 마침내 어린 제자가 입을 열었다.

"오비완 살 빠졌어요"

몹시 뜬금없는 말을 아나킨은 인사하듯 던졌다. 오비완은 갑작스러운 아나킨의 트집에 헛기침을 하고 말았다. 

"상당히... 엉뚱한 소리를 하는구나. 흠, 아나킨 심심하면 명상이라도 하지 그러니"

오비완의 반응에도 아나킨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되려 더욱 집중적으로 오비완을 훑기 시작했다. 

"진짜예요 마스터. 이거봐요"

맹랑한 제자가 오비완의 손을 덥석 잡아 끌어 옷에 덮혀있던 손목을 쑥 드러나게 했다. 이것 보라는 듯 통통한 손으로 오비완의 팔을 흔들어댔다.

"며칠 전보다 더 빠졌는데. 저 이런건 정확해요. 노예에게 병원은 사치라 눈으로 살피는건 진짜 잘했거든요. 그러니까 오비완, 정말로 많이 야윈거 맞아요"

확신에 찬 아홉살이 오비완에게 흔들림 하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비완은 아나킨의 순수한 눈빛에 괜히 정곡이 찔런 것 마냥 난처해졌다. 아이가 이리 눈치가 빠를 줄은 몰랐기에 오비완은 눈을 피하며 아나킨의 손에서 팔을 뺏다. 

"그래 그래 감기라도 걸린 모양이지. 나중에 힐러에게 가볼 생각이란다"

아나킨의 입술이 댓 발 튀어나왔다. 지금 당장 달려가도 모자랄 망정 나중이라니! 아나킨은 홱 고개를 돌리곤 한껏 토라진 티를 냈다. 

"아 몰라요. 마스터가 알아서 해요!"

걱정을 해준건데 제 마음을 몰라주는 스승이 얄미워서 일부러 쿵쿵 소리를 내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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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개에 파묻힌 작은 머리에서 커다란 한숨이 튀어나왔다. 아나킨은 답답한 숨을 몰아쉬며 양 손으로 베갯잇을 콱 쥐어뜯고, 뒤집어쓴 이불을 뒤꿈치로 팡팡차며 짜증을 부렸다. 그러기를 몇 분, 결국 팔꿈치에 힘이 주어 벌떡 몸을 일으켰다. 확 접힌 눈썹과 말랑한 볼에 빵빵한 바람이 들어찼으나 곧 스르르 흝어졌다. 내가 참아야지 뭐. 오비완은 은근히 고집이 세니까. 정말 바보야. 마스터는 남의 맘도 모르고. 아나킨은 어둑한 방에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모른 척하고 싶어도 그게 되야 말이지.

 아나킨은 어렸으나 척박한 사막에서 노예로 자라며 온갖 병자들을 보았다. 병원이나 의사를 찾아볼수 없는 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고 이는 곧 치명적인 사태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러니 매일같이 살이 내리는 오비완을 보며 불안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늘상 단단했던 오비완의 등이나 어깨의 굴곡도 어쩐지 둥그스름해져서 어딘가 좋지 않은게 분명한데, 스승은 고집불통인지 본인이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나킨은 가슴 속이 답답해 쌓이는 한숨만 푹푹 쉬었다. 밤은 깊었고 잠은 오지 않았다. 차가운 물로 마음을 달랠 겸 방을 빠져나왔다.

거실을 가로지르던 아나킨의 눈에 수면등의 주홍빛이 발을 멈추게 했다. 덜 닫힌 오비완의 방문 틈 사이로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조명을 보아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일을 하던 스승이 불을 끄는 것을 깜빡한게 분명했다. 아나킨은 고개를 저으며 그곳으로 향했다. 

역시나 오비완은 잔뜩 찡그린채 잠들어 있었다. 아나킨은 이불 위에 놓인 디지털패드를 치워 협탁에 올려두고 주름이 진 오비완의 눈썹사이를 장난스레 꾹 눌렀다. 오비완과 함께 한지 몇달이 흘렀고 새삼 자신의 스승이 사원에서 제법 어린 편에 속한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아나킨이 보기엔 어른이었지만, 연륜이 가득해보이는 다른 마스터들과 달리 오비와은 이제 이십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엄청나게 위대해 보였던 마스터 콰이곤과 반대로 매끈하고 어린 얼굴의 오비완은 미션 중 종종 얕보이곤 했는데, 그럴때마다 오비완은 그들을 자신의 장기인 '말'로 쓰러뜨려주었다. 아나킨에게 그 모습을 우러러보았으나 때론 무척 답답하다 느낀다는 것은 작은 비밀이었다. 그냥 때려주면 될텐데! 오비완은 너무 마음이 약해서 탈이야 라며 불만을 삼키기도 하였다.

만약 스승과 제자가 아니었다면 분명 아나킨은 그를 형이라고 불렀을 지도 모른다. '형, 형아' 아나킨은 입 안으로 조용히 중얼거리다 혼자 키득거렸다. 형이라니, 오비완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멋적어할 것이 눈에 훤했다. 잠든 스승의 얼굴을 감상하며 아나킨은 이런저런 상상들을 했다. 마스터 오비완이 마스터 콰이곤처럼 수염을 기른다면 어떨까? 어울릴까? 아니면.... 상상은 금방 깨어지고 말았다. 오비완이 몸을 뒤채며 얉게 신음했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시끄러웠나? 아나킨은 제 입을 두손으로 턱 막으며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하지만 곧 심각해졌다. 몸을 움직이자 드러난 오비완의 수면복 사이로 척척한 식은땀이 보였기 때문이다. 방 온도는 결코 덥지 않았다. 이리 땀을 흘릴리가 없었다. 아나킨은 장난을 치다 미처 보지 못한 오비완의 축축한 머리카락을 눈치채곤 사색이 되었다. 마스터가 아프다. 손발이 차게 식고 가슴속이 마구 조여들었다. 눈물이 왈칵 터질 것만 같아 입술을 깨물었다. 당장 힐러가 필요했다.







 24시간 운영되는 제다이 사원 메디컬센터의 당직 힐러는 갑자기 들이닥친 어린 파다완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런 야밤에? 벌컥 열어젖힌 문 사이로 조그마한 파다완이 쓰러지듯 소리쳤다. 

"마스터가 아파요!"

두 눈에 주먹만한 물방울을 데롱데롱 달고 입술을 바르르 떠는 어린아이의 말에 힐러는 빠르게 메디컬키트를 챙겼다.

아이를 따라 허겁지겁 달려간 힐러는 쿼터의 벽에 붙은 문패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오비완 케노비' 그 이름은 어쩌면 제다이힐러에게 가장 익숙한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파다완은 몇 달전에 제자로 들였다던 아나킨 스카이워커 일테고. 힐러는 새삼스레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오비완을 자주 만나게 될 시기가 오면 겨울이 가까워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울음이 가득한 파다완에게 별 일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는 법이라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따라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스승의 품을 파고 들며 그를 흔들었고, 갑작스런 진동에 오비완이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아..아나킨?"

잠에 취한 오비완은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아나킨을 확인했고, 곧이어 힐러와 눈을 마주쳤다. 이제 엉엉 울기 시작한 파다완과 머쓱하게 서있는 힐러를 번갈아 보던 오비완은 아나킨의 등을 토닥이며 무슨 일이느냐 눈짓을 했다. 힐러는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다.

"오비완, 파다완에게 '그걸' 얘기해주지 않았습니까?"

'그것' 오비완은 서서히 상황을 파악했다. 평소보다 가늘어진 턱선을 난감한듯 매만지며 힐러에게 고개짓을 했다.

"...설명하기 좀 복잡해서, 한다는게 그만 너무 오래 끌었나 봅니다."

울며불며 오비완에게 매달리던 아나킨은 코를 킁 먹으며 머리를 불쑥 들었다.

"....무슨 얘기요...?"

그렁그렁 맺힌 눈물과 빨개진 코에 오비완은 죄책감이 몰려들었다. 미리 말을 해줬어야 했는데. 아나킨이 어찌 받아들일지 감이 오지 않아 차일피일했다. 오비완은 힐러에게 도움을 청하며 아나킨을 무릎에 앉혔고, 그들은 함께 이야기를 시작했다.







 스튜존인들은 모행성의 특이한 기후와 타고나는 기질로 은하계에서 특수한 종족으로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휴머노이드이긴 했으나 그들은 인구를 유지하기 몹시 힘든 환경에서 태어난다. 그것은 스튜존인들의 어떤한 '진화'를 야기했고, 이는 종족보존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배태와 연관된다.
 
스튜존의 혹독한 기후는 극렬한 여름과 극성맞은 겨울의 격변을 겪었다. 오래전부터 많은 생명들이 이런 환경에 버티지 못하고 수없이 죽어나갔다. 평균수명은 극단적으로 낮으며 태어나는 이들도 극도로 적으니 진화는 필수적이었다. 기록에도 남지 않을 오랜 과거부터 비롯된 진화는 스튜존인들의 태생적 성별을 중립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일년 중 특정 기간을 탄생한 성별과 반대의 성으로 살아간다. 남성체와 여성체의 유의미한 구분은 사라졌고 누구나 특정 시기에 생명을 배태할 수 있는 육체로 변모하는 것이다. 스튜존에서 종족을 보존하고 살아남기 위한 변화였다. 여성체로 태어났다면 남성체로, 남성체로 태어났다면 여성체로 주기가 돌아올 때마다 변이했다. 그것은 더는 스튜존에서 거주하지 않더라도 나타나는 선천적인 체질이었다. 

오비완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아시절부터 코러산트에서 자라 스튜존 땅을 밟아본 적도 없는 그였으나 유전자의 발현은 멈출 수가 없었다. 머리도 채 못가누는 아기 때부터 오비완은 매년 변화를 겪었다. 그 시기가 찾아오면 아기 오비완은 자지러져라 울며 보육담당 제다이에게 매달리곤 했다. 내부의 장기가 찢겨나가고 재배열되며 근육과 뼈가 완전히 변태하는 과정은 아이가 견디기엔 너무도 혹독했다. 코러산트에서 오비완의 그 시기는 늘 겨울이었다. 가을이 찾아오면 오비완은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체중이 줄며 직각으로 떨어지는 어깨가 둥그러지며 곡선이 되어갔다. 여성체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늘 괴로웠지만, 어느덧 익숙해지기에 이른다. 성장통과 비슷하지만 몸살감기를 앓는 듯 살이 따갑고 트며 열에 시달렸다. 그는 겨울이 되면 완연한 여성이 되었고 새싹이 돋을 때쯤 다시 뼈가 늘어났다. 개인적으로 오비완은 겨울보다 봄이 힘들었다. 줄어드는 것보다 커지는 것이 더 아파서, 그는 고된 열병 끝에 다시 남성체가 되었다. 이것을 20년이 넘게 해왔으니 오비완 본인을 포함해서 다른 제다이들에겐 몹시 익숙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비완은 아나킨이 이런 변화를 쉬이 받아들일지 확신할 수 없었다. 비록 아나킨이 어리고 자유로운 사고의 소년이었으나 스튜존인들은 우주에 널리 퍼져있지 않았고 아우터림에 살았던 아나킨이 그들을 만나거나 깊이 알았을 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혹여 이런 마스터는 싫다며 도망치기라도 할까 두렵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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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완은 아나킨에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설명을 끝냈다. 지금 자신의 몸이 아픈 이유는 변이를 거치고 있기 때문이니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달래려 했다. 힐러 역시 오비완의 상태에 대해 첨언했으며, 조금 있어 변이가 끝나면 건강해질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아나킨을 다독였다.

 힐러가 나갈 때까지 아나킨은 조용했다. 하도 울어 빨개진 눈으로 오비완을 빤히 보며 입도 벙긋하지 않아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수가 없었다. 오비완은 불안한 손끝을 매만졌다. 아나킨이 징그럽다고, 무서워 할지도 몰랐다. 

날이 갈수록 왜소해지는 체격을 숨기기 위해(많은 차이가 나지는 않으나 아무래도 근육의 형태에 차이가 있었기에) 로브를 두텁게 여몄지만 눈썰미가 좋은 제자는 스승의 변화를 쉽게 눈치챘다. 당연히 계속 숨기지 못할 것은 알았지만... 겨울이 되면 완전히 여성이 될테니, 아나킨이 눈이 달렸다면 알 수 밖에 없었다. 미리 말해줬어야 한다는 후회가 엄습했다. 오비완은 고개를 숙이며 아나킨의 시선을 피했고, 순간 따뜻한 손이 오비완의 볼을 잡아왔다. 

"...그래도...그래도, 아프건 아픈거잖아요"

아나킨의 짧은 팔이 오비완의 머리를 폭 감싸안았다. 어린아이의 말랑한 살이 닿았다. 얼마나 울었는지 팅팅 부어서 빨갛게 부은 얼굴이 오비완과 눈을 마주쳤다. 무엇이 그리 안타깝고 슬픈지 아나킨의 눈동자엔 서러움이 가득했다. 

 오비완은 매년 이것을 겪었다. 횃수로만 따지면 기억하지 못하는 영아시절부터 현재 나이만큼 겪었다는 소리다. 영링일때도, 파다완일때도 오비완에겐 당연히 자리한 고통이었다. 성장통과 비슷하지만 온몸의 근육과 장기가 비틀리고 재배열되는 과정이 아프지 않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고통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아프다고 제다이로써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건 옳지 못하니까. 어차피 조금만 참으면 아픔은 사라지니까. 다른 영링들을 보며 오비완은 통증으로 낭비되는 시간이 아까웠다. 모두들 나날이 성장해 가는데, 나는 이 따위 아픔을 못참아서 시간을 낭비하다니. 오비완은 고집스레 수업에 참석했다. 친우들이 걱정스레 건내는 손길에도 오비완은 고개를 저었다. 식은땀을 훔치며 '하나도 안아파' 라고 씩 웃어보였다. 그는 숨기는 것에 재능이 있었다. 

오비완은 떨어질듯한 아나킨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는 이렇게 착한 아이를 믿지 못했던 거구나. 도토리같이 삐죽삐죽 선 머리와 달랑이는 파다완 브레이드를 살포시 매만지며 오비완은 웃었다. 

"아나킨, 겨울이 되면 마스터랑 눈을 보러가자꾸나. 하얗게 내리는 얼음꽃들 말이야. 그때는 나도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너도 처음보는 걸테니 꼭 함께 보면 좋겠어."

아나킨이 다문 입술을 파르르 떨며 머리를 끄덕였다. 생에 처음으로, 오비완은 다가올 겨울이 기다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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