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사라진 지 벌써 몇 달이 지난 걸까.

오키나와에서 돌아온다는 날, 너는 돌연 이곳에서 모습을 감추었지.

난 네가 사라졌다는 말, 절대 믿지 않아.

넌 분명 어딘가에 살아 있어. 단지 터무니없는 일이 생겨버려 돌아오지 못하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계절이 바뀌고,

첫눈이 내리고,

새로운 해가 뜨고,

너와 처음 만났던 봄이 다시 오더라도

나는 네가 돌아오길 기다릴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여느 때와 같이 나는 조깅으로 하천가 근처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길가에는 막 터지기 시작한 꽃망울이 여러 맺힌 나무들이 줄을 지어 서 있고, 하늘은 아직 해가 완전히 고개를 들지 않아 검푸른 빛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곧 새 학년이 시작돼. 며칠 후면 1년간 쓰던 교실을 뒤로하고 다른 곳에서 수업을 듣게 돼. 반 친구들도 바뀌겠지. 하지만 그 녀석들과는 같은 반이 될 거야. 다음 연도까지 그 녀석들을 상대해야 한다니 갑자기 피곤해지는걸. 축구부에도 분명 신입 부원들이 들어올 거야. 우린 홀리로드에서 우승한 학교니까 아마 입부 희망자가 많이 몰리겠지? 감독님이 전원 합격이다! 란 소리를 하신다면 분명 곤란해질 거야.

나는 조금씩 올라오는 태양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디 있을지 모르는 너에게 닿을지 모르는 말들을 전부 입 안에 머금었다가 내뱉었다.

이제 너만 있으면 돼.

이제 너만 돌아오면 돼.

너만 이 자리에 있으면 된다고,

그렇게 중얼거리던 때였다.

“……저건…?”

하천가의 그라운드. 그곳에 있는 벤치에 나는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했다. 나와 같은 져지를 입고 있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색의 천연파마를 가진 소년.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래 라이몬 중학교에 저런 머리를 한 사람은 한 명 말고는 없다. 지금 내 머릿속에서 떠오른 그 녀석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한달음에 벤치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동안 부르지 못했던, 그리웠던 이름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텐마.”

그러자 소년이, 텐마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울기라도 했던 듯 눈 주위가 촉촉하게 붉어져 있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텐마는 돌연 볼을 부풀리며 한껏 삐진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이지. 늦었잖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답이었다. 내가 늦다니? 진짜 늦은 건 바로 너잖아. 그런 생각에 나는 어이없다는 듯 텐마에게 답했다.

“늦었다니… 그건 내가 할 소리라고. 그동안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건데?”

“어? 그게 무슨 소리야? 난 계속 여기 있었는데?”

텐마는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태도에 나는 짜증이 조금 올라왔다.

“여기 있었다니… 몇 달간 없어졌던 주제에 무슨 소리를 하는 건데?”

내 말이 끝나자 내 앞에 있는 바보 녀석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츠루기 이상해. 그 말이 튀어나오자 나는 내 답답함을 참을 수 없어 표출하려 했다. 그러나 그 감정은 곧이어 나온 텐마의 말에 가로막혔다.

“어제 만났었잖아? 어제 축구부의 연습이 끝난 뒤 같이 하교했었는데…”

"같이 갔다니… 난 어제 분명 혼자서…"

그때 불현듯 스쳐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마츠카제 텐마는 실종되었다.」란 이야기는 내가 꿨던 긴 허상이 아니었을까. 너무나도 현실과 닮았기에 내가 그 꿈을 현실이라고 착각하고 있던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니까 조금 전 자신의 행동이 우습게 느껴졌다.

이 말이 거짓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텐마는 축구 이외의 이야기는 잘 만들질 못하면서도 거짓말은 더더욱 하지 않는 녀석이니까. 너는 정말 단순해서 금방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녀석이니까.

"아니, 미안…. 잊어버렸어. 너와 했던 약속…"

이렇게 말하면 넌 분명 화를 버럭 내겠지. 어째서 잊은 거야!? 츠루기 너무해! 큰소리로 외치겠지. 그런 너를 달래기 위해 나는 네가 좋아하는 말을 하겠지.

"괜찮아. 잊어버렸어도 이렇게 제대로 너와 만났는걸."

"어…?"

"그렇게 서있지 말고 같이 축구하자!"

이상했다. 넌 원래 이런 녀석이었던가?

달라진 건 없다. 머리 위에 있는 하늘도, 길가에 서 있는 나무도, 눈 앞에 있는 그라운드도, 그리고 너의 그 웃는 얼굴도 어느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너를 보는 이 감정만이 달라졌다. 돌연히 든, 정체 모를 불안감만이 너를 보는 나를 가득 채웠다.



"하아. 역시 기분 좋네. 이렇게 너와 달리는 거."

"이제 좀 쉬는 게 어때? 아침부터 그렇게 무리하면 안 된다고."

아주 환하게 웃고 있는 텐마에게 나는 얼굴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나는 거친 숨이 목까지 올라와 조금 숨을 돌리기 위해 그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러다 문득 위를 바라봤다. 너무 달리는 데에 정신이 팔려있었나, 언제부터 하늘이 밝은 푸른 빛을 머금고 우릴 내려다보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뭐 어때, 오늘은 쉬는 날이잖아."

텐마는 아직 더 달릴 수 있다고 몸짓과 함께 말했다. 지친 기색도 전혀 없이 흐르는 땀을 닦고 있는 녀석을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조금 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항상 그런 녀석이니까 이런 건 당연한 일이겠지.

"정말이지…, 너란 녀석은…."

저 녀석에게 따라가 줄 수밖에, 나는 그런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텐마, 다시… 응?"

다시 달리자고, 다시 한번 가자고 말하려고 텐마를 봤을 때 텐마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자신의 두 손을 쳐다보고 있는 텐마의 눈은 이미 이곳을 보고 있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 안에 불안감이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 이 불안감은….

"텐마. 괜찮은 거야?"

나는 텐마에게 다가가 그의 작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텐마의 몸이 살짝 움직였다. 내가 다가왔다는 걸 방금 알았다는 듯 그는 나를 쳐다보다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응, 난 괜찮아."

그렇게 말하는 텐마는 양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무언가 놓지 않으려는 것처럼 작은 주먹이 떨리고 있었다. 이 녀석 정말로 괜찮은 건가. 갑자기 쓰러지면 곤란한데. 역시 좀 쉬게 하는 게 낫겠어.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좀 쉬는 게…"

"츠루기, 오랜만에 그 기술 쓰자!"

"그 기술이라면…"

파이어 토네이도 더블 드라이브. 고엔지 씨로부터 전수 받은 우리 두 사람의 유대로 완성된 기술.

어째서 지금인 걸까? 다음에도 기회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고 내 마음속에서 그렇게 외치고 있다.

"그래, 알았어. 대신 쓴 뒤엔 제대로 쉬는 거다?"

텐마는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 둘은 다시 달려나갔다.



"파이어 토네이도 더블 드라이브!"

나와 텐마가 만들어 낸 불꽃의 슛은 가볍게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그라운드에 착지한 나는 기쁜 마음으로 텐마를 바라봤다. 여전히 호흡이 잘 맞는다고, 쭉 이 상태로 괜찮겠다고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텐마는 착지에 실패한 듯 그라운드 위에 엎어져 있었다. 텐마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일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역시 쉬게 해야 했는데, 조금의 후회를 가진 채 나는 텐마에게 달려가 그를 일으켜줬다.

"그러니까 내가 쉬자고 했잖아!"

텐마는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자기는 괜찮다면서 억지로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 일그러진 얼굴을 억지로 미소를 지으려 하는 그를 보자 나는 그만 화가 치밀어 올라 언성을 높이려 했다.

그때, 어디선가 자명종 소리가 들렸다. 정말 익숙한 소리였다. 아침마다 나를 꿈에서 깨워주는 자명종 소리.

자명종 소리? 그렇다면 이건 꿈인 건가?

그렇게 된다면 내 앞에 있는 텐마는,

"츠루기."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불안감이, 네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이제 한계인 것 같아."

하지 마, 하지 말아 줘, 그런 말은 절대 하지 말아줘.

"미안해. 꼭 돌아올 거라고 다짐했는데 이렇게 되어버려서."

가지 마, 여기 있어 줘, 제발 내 곁에 있어 줘.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려 했다. 너를 붙잡으려고 필사적으로 손을 뻗으려 했다. 그러나 내 몸은 그대로 굳어버려 그 어떤 행동도 하지 못했다.

"이제 작별이야. 츠루기."

"텐마…."

내 입이 겨우 움직였다. 그러나 나는 네 이름을 부르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우리 두 사람의 기술, 마지막으로 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하천가의 그라운드는 순식간에 빛으로 휩싸였다. 그리고 빛은 조금씩 강하게, 주변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정말 미안해…."

텐마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하천가에서 텐마를 만났을 때와 같은 표정이었다.

그렇구나, 넌 이미 예상했구나. 이 상황을….

"……"

빛이 우릴 삼키려는 순간 텐마의 입이 움직이는 걸 보았다.

하지만 나한테 그 녀석의 마지막 말은 들리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자 나는 내 방 침대에 누워있었다.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는 여기가 현실이라는 걸 일깨워주고 있었다.

"텐마…."

자명종의 알람을 끄면서 나는 네 이름을 불러 본다.

네가 사라지고 나는 다시 돌아온 봄을 맞이한다.

나는 네가 언젠가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너를 놓아줘야겠지.

더이상 너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마지막으로 들은 너의 그 목소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거짓말을 하는

네가 했던 말 중 무엇보다 진실된

이젠 더는 들을 일이 없을

가냘프고 애처로운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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