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오왕은 이전만큼 저를 피하지 않았다. 한 주에 한두 번은 함께 밥도 먹고 티비도 본다. 시시껄렁한 프로그램을 보며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잘자- 라는 말로 하루를 마무리하곤 한다. 


오늘은 그가 꽤 늦은 밤에 돌아왔다. 거실에서 티비를 보다 11시가 다 되어서야 들어오는 그를 반겼다. 


"늦게 왔네." 


"응.. 야근했어." 


야근했다는 그에게선, 가끔 늦은 밤 돌아올 때 나던 샴푸 향이 났다. 그 남자 만났구나.. 


"… 맥주 마실래?" 


"아니. 피곤해. 그냥 잘래." 


오늘따라 유독 저를 쳐다보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는 그를 유심히 보다가 입술 끝이 빨갛게 터진 걸 발견했다. 


"야오왕.. 너 입술.." 


"넘어졌어." 


그가 다급하게 대답하며 헤실헤실 웃었다. 넘어졌다는 그의 손바닥은 멀쩡했다. 하물며 옷도 멀쩡해 보였다. 어떻게 넘어지면 입술이 터질 수 있는 건데.. 설마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때 그 남자를 만날 리 없다고 생각했다. 야오왕의 말마따나 단순히 넘어진 거길 바랐다. 


"멍청하긴. 

약발라 줄게. 이리 와." 


약을 꺼내 환부 위에 발랐다. 따가운지 그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정신 좀 차리고 다니지. 

멍청하게 넘어지고 그러냐." 


그가 아련하게 미소 지었다.











외근 나가 거래처를 돌았더니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있었다. 일단 선배에게 전화해 회사에 들르지 않고 바로 퇴근하겠다고 전했다. 


── ? 


'그때 그 남자..' 


전화를 끊고 제 시선이 마주한 곳에는 지난번 식당에서 야오왕을 차에 태우고 사라졌던 남자가 보였다. 어떤 여자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이야기 중이었다. 누가 봐도 둘은 연인 사이 같았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앞뒤 생각 않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퍽─ 


제게 얼굴을 맞은 그가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야! 이 미친놈아!!" 


그가 욕지거리하며 되받아쳤다. 그에게 맞은 얼굴이 욱신거렸다. 입가를 훑은 손등에 피가 묻어났다. 그의 옆에 있던 여자의 꺅꺅거리는 소리가 귀에 시끄럽게 울렸다. 주위에 사람들이 저희를 둘러쌓고 몰리기 시작했다. 그런 건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 다시 달려가 멱살을 잡았다. 


"너.. 

야오왕은 어쩌고.." 


'야오왕'이라는 단어에 그가 반응했다. 


"야오왕? 

너 왕이 친구야?" 


"너 뭐 하는 거야! 양예밍!!" 


입을 떼려는 데 뒤쪽에서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야오왕이 커피 컵 트레이에 세 잔의 커피잔을 들고 서 있었다.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걸 보니 화가 많이 난 듯했다. 


"야오왕.. 너.. 여기서 뭐 하ㄴ- " 


"넌 뭐 하는 거야!!!" 


잔뜩 격양된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저놈이 여자 만나는 걸 알면서.. 그것도 커피를 세 잔씩이나 사서 나타나..? 정신이 없어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성큼성큼 걸어와 커피 트레이를 여자에게 건넸다. 그러고는 긴 한숨을 내뱉더니 남자에게 사과하기 시작했다.


"샤오란 괜찮아? 미안. 

여기 내 하우스 메이튼데.. 뭔가 오해가 있었나 봐. 

황루 씨 괜찮아요?" 


옆에 놀란 여자까지 챙겼다. 데이트를 망쳐서 미안하다며 야오왕이 곤란해했다. 보는 눈도 많고 당장은 설명하기 뭐하다며, 지금은 이 커피로 참아달라고 했다. 샤오란이라는 남자가 분이 풀리지 않는지, '이 자식 저 자식' 찾으며 저에게 삿대질하기 바빴다. 사고 친 저만 멀뚱멀뚱 그 상황을 지켜볼 뿐, 연신 사과하는 건 야오왕이었다. 


"진짜 미안.. 다음에 밥 살게. 

황루 씨 미안해요. 샤오란 좀 챙겨주세요." 


말을 마친 야오왕이 저를 날카롭게 째려보고는 제 팔목을 세게 부여잡고 끌었다. 뒤에서 샤오란이 '너 그 집에서 당장 나와!'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뒤돌아보는 건 저뿐이었다. 야오왕은 제 팔목을 잡은 손에 더 힘을 줄 뿐, 대꾸 없이 앞만 보고 걸었다. 우릴 에워싸고 있던 구경꾼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졌다. 저 남자가 여자랑 있는 것도, 그 사이에 야오왕이 아무렇지 않게 있는 것도, 야오왕이 사과하는 이유도, 그리고 그가 그렇게 화내는 이유도 전혀 모르겠다.. 


큰 길가에 다다라서야 택시를 잡고 야오왕이 저를 우악스럽게 밀어 넣었다.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집에 들어와서는 둘 다 말이 없었다. 저는 상황이 계속 이해되지 않았고, 야오왕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해 보려는 듯 보였다. 그 조용한 정적을 이기지 못하고 저가 먼저 말을 걸었다. 


"─ 여자 만나는 데 왜 가만히 있어." 


어이가 없다는 듯 야오왕이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너 무슨 오해 하는 거야?" 


".. 남자친구 아니야? 

너 그 사람 차 타고 가는 거 봤어." 


"─ ?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불가리아 음식점에서 같이 있는 거 봤다고."


── !!


야오왕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여렸다. 놀라 숨이 가빠진 듯 그의 가슴이 빠르게 오르락내리락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눈을 굴리더니 바닥을 내려다보고는, 


"... 언제부터.. 

나.. 나, 거기 있는 거 알.. 고 있었어..?" 


"몰랐어. 

너가 그 사람 차 타는 것만 봤으니까." 


하- 하고 안도한 듯 그가 짧은 숨을 내쉬었다. 부동자세로 또 아무 말도 않기에 다시 물었다. 


"이제 너 차례야. 왜 가만히 있었어? 

그 사람이지? 너 새로 생겼다는 애인." 


"걘 그냥 대학 동기야. 

여자친구 생겼다고 해서 축하해주려고 만났어." 


놀라 바라본 야오왕의 눈에는 거짓도, 망설임도 없었다. 이번엔 정말 저가 실수한 거였다. 그제야 그 여자가 꺅꺅거리며 눈물을 글썽인 이유가 설명되었다. 야오왕이 저에게 화낸 이유가 설명이 된다.. 


"하- 진짜 미쳤다 양예밍.." 


저가 자조적인 목소리로 자신을 탓했다. 소파에 쓰러지듯 앉아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바닥으로 떨군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저가 저지른 짓 때문에, 그에게 가서 해명해야 할 야오왕에게 미안해 그를 쳐다볼 수 없었다. 샤오란이란 남자에게 추궁당할 걸 생각하니 제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야오왕이 잠시 서 있다가 방으로 돌아가는 듯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미안해 야오왕.." 


" ─ 알면.. 

신경 꺼줘. 부탁할게." 


" …… " 


평소라면 하지도 않을 말을 차갑게 내뱉었다. 놀라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지만, 저를 거부하는 듯 등만 보일 뿐이었다. 곧 그가 방안으로 사라지고 방문이 닫혔다. 닫히는 문소리가 제 마음에 고통스럽게 울렸다. 


방문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다 해가 뜨는 걸 보고 선잠이 들었다. 워낙 기본 체력도 부족한데 요즘 수면 부족으로 몸이 천근만근이다. 결국 두통까지 와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진통제라도 먹어두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아.. 약 식탁 위에 있지..' 방을 나서려는데 양예밍과 마주하는 게 무서웠다. 저가 내뱉은 모진 말에 이제 저를 차가운 눈으로 볼까 봐, 그를 차마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왜 하필이면 오늘이 토요일인 건지, 회사라도 가면 양예밍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됐을 텐데.. 혹시나 거실에 나와 있을까 싶어 문고리만 붙잡고 그렇게 서 있었다. 


문고리를 잡았다 놓기를 수차례, 심호흡 두어 번 하고 문을 열었다. 다행히 거실에 그는 없었다. 몸을 돌려 식탁으로 향하는데, 


── … 


".. 양예밍..." 


그가 식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도대체 몇 캔이나 마신 건지, 식탁 위에 맥주캔이 잔뜩 있었다. 발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그에게 다가갔다. 


"나하고 싸운 게.. 

너한테 이렇게 힘든 일이었어..?" 


듣지도 못할 그에게 나직이 웅얼거렸다. 샤오란에게 맞아 터진 입술이 보였다. 엄살도 심하면서.. 아파할 걸 생각하니 되려 제 인상이 써졌다. 자는 그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머리를 쓰다듬고 싶었다. 저가 키스할 때나 헤집었던 그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싶었다. 손을 천천히 들어 그의 머리에 가져다 대었다. 


"야오왕.." 


── !! 


언제부터 깨어있던 건지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놀라 빠르게 손을 거뒀다. 


"계속해 줘." 


그가 움직이지 않은 채 눈을 감을 상태로 말을 이었다. 


"머리. 

머리 쓰다듬어 줘." 


다시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안도한 듯 기분이 좋은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천천히 내뱉었다. 그게 꼭 엄마한테 혼났다가, 화가 풀린 엄마를 보고 기분 좋아진 아이 같았다. 여전히 눈은 뜨지 않았지만 그의 입술이 살짝 미소 짓고 있었다.


'다행이다..' 


좀 더 쓰다듬다가 마구 헝클어뜨리며, 술주정뱅이. 했더니 제 손목을 잡아 왔다. 그제야 눈을 뜨고 저와 눈을 마주쳤다. 


"힘들어." 


" ……? " 


"너랑 싸우는 거, 

너한테 미움받는 거 나 힘들어.. 

그러니까 화 풀어라, 왕아." 


엄마 잘못했어요. 같은 눈으로 저를 바라보며 하는 말에 눈물이 날 거 같아 고개를 돌렸다. 


"화, 안 났어.. 내가 널 왜 미워해. 

나도 어제 심한 말 해서 미안." 


참던 눈물이 기어코 떨어졌다. 고개 돌리길 잘 했다. 우는 모습 보이기 싫어..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다시 친구로 지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양예밍이 제 손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내 얼굴 보고 얘기해.. 

얼굴 보고 싶어." 


"지금 못 생겨서 안 돼." 


밤새 울었으니 퉁퉁 부은 복어 같을 거다. 보여주기 싫었다. 대충 넘기려고, 무슨 술을 이렇게 마셨어? 하며 고개를 숙인 채 맥주캔을 치우려는데 그가 일어나 잡고 있던 손으로 저를 잡아끌었다. 오랜만이다, 그의 품에 안기는 거. 그의 숨에 맞춰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안도감이 몰려왔다. 따뜻하다. 


"미안해, 왕아."











그 설마는 사실이었던 거 같다. 야오왕의 몸에 다시 멍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는 필사적으로 가렸다고 생각했겠지만 눈 밑에 난 미미한 멍 자국은 숨기지 못했다. 팔뚝에 한두 군데 멍이 눈에 띄더니 긴 팔을 입기 시작했다. 집 안에선 불편하다며 긴 팔 티를 잘 입지 않던 그가 말이다. 넘어져서 생겼다는 그의 입술 상처도 하루가 멀다 하고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늦은 밤 돌아오는 날에는 예의 그 샴푸 향이 났다. 


오늘도 11시가 넘어 돌아온 그의 눈 옆엔 못 보던 생채기가 나 있었다. 무척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먼저 잘게. 하고 말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주먹을 꼭 쥐었다. 화가 났지만 저가 나설 수는 없었다. 신경 꺼달라고, 그가.. 


부탁했으니까. 


야오왕이 그 샴푸 향을 달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저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일주일에 단 하루였던 날이 이틀이 되어도 그저, 늦은 밤 불안한 마음으로 그를 기다리는 게 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제법 일찍 들어온 야오왕과 오랜만에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피자가 먹고 싶다더니 결국은 내가 좋아하는 걸 선택했다. 토마토 토핑이 잔뜩인 거. 여전히 그는 습관처럼 저한테 맞춘다. 


앞 접시에 잔뜩 토마토 빼놓은 걸 보고 피식- 웃었다. 예전처럼 저를 째려보며, 너가 먹어. 하고 내 앞 접시에 토마토를 죄다 옮겨 부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거 같았다. 우리가 겪었던 지난 몇 달이 없었던 일인 것처럼, 그때로 다시 돌아간 거 같았다. 


적당히 배가 부르게 먹고 함께 티비를 봤다. 한창 재밌는 게 끝나고 다른 채널로 돌리려고 리모컨을 찾았다. 야오왕과 가깝게 있었는지 그가 리모컨을 집어 저에게 건넸다. 소파에 야오왕의 팔이 스치면서 그의 소매가 살짝 들렸다. 


── … !!


"뭐해, 안 받고?" 


제 시선이 그의 팔목에서 벗어나지 않자 그제야 옷 끝자락을 잡아 내리며 팔을 숨겼다. 그의 손목에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하얀 그의 피부가 시퍼렇다 못해 검붉게 변해 있었다. 숨이 가빠졌다. 또 그에게 화를 낼 것만 같았다. 아무리 심호흡을 해도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가 미간을 구긴 채 제 눈치를 보고 있었다. 뭔가 일어나기 전의 기운을 감지한 듯 벌써 울 듯한 표정으로. 손을 뻗어 그의 팔목을 확 잡아챘다. 하지 말라고 버둥거리는 걸 힘으로 눌러버렸다. 다른 한 손으로 소매를 걷었다. 


" …… " 


손목에 난 자국은 분명 밧줄 자국이었다. 팔목 위로도 잔뜩 멍투성이였다. 억지로 멍든 부분을 세게 잡았다. 


"앗, " 


"이렇게 아픈데.. 

계속 참고 있었어..?" 


제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는지, 아파 양예밍. 하고 그가 말했다. 간섭하지 말라 했는데.. 더는 너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너가 만난다는 사람, 

그 새디스트야?" 


" …… " 


"벗어." 


"왜.. 그러는데.." 


울기 직전의 얼굴로 저한테 대항한다. 나 왜 이렇게 분노 조절이 안 되는 건데.. 왜 니 일만 되면 이렇게 화가 가라앉지 않는 건데!! 왜! 


야오왕이 입고 있던 긴 티를 억지로 벗겨버렸다. 싫다고 있는 힘을 다해 버둥거렸지만 이미 반쯤 돈 저를 제지할 수는 없었다. 온몸이 붉은 상처들과 검은 멍으로 덮여있었다. 이성이 마비될 거 같았다. 


"그 자식이 그렇게 좋았어!!? 

그래서 다시 만나는 거야?"


야오왕이 대답 없이 고개를 숙였다. 무서운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울지 않으려고 참는 거 같았다. 


"대답해 야오왕!!!" 


왜 이렇게 미치겠는 건데!!! 왜 하필 그 자식인 건데!!! 왜 널 아프게 하는 놈인 거냐고!!! 


한참 뒤에야 그가 고개를 들더니 입술을 꽉 깨물고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좋아했어... 그 남자..? 

내가 헤어지라고 해서.. 그래서 헤어졌던 거였어?" 


울컥하며 제 눈에 눈물이 찼다. 더는 그를 보고 있을 수 없어 방에 들어가 지갑만 들고 밖으로 나왔다. 


"젠장.." 











그날 양예밍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거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그의 방문만 쳐다봤다. 가끔 창밖도 보다가, 밖에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 혹여나 그일까 봐 문 앞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다음 날도 그리고 그 다음 날도 돌아오지 않았다.











야오왕과 대판 싸운, 아니 내가 일방적으로 화낸 거였지. 언제나 늘 화내는 건 저였다. 


"완전히 미움받았겠네, 이젠." 


그날 이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선배 집에서 쫓겨나 돌아오는 길에 다 떨어진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들렸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고 깊게 빨아드렸다. 선배가 해 준 말을 곱씹으며 허공에 연기를 내뱉었다. 


선배 집에서 삼일 정도 신세 졌다. 저와 체격도 비슷해서 그의 양복을 빌려 입고 출근했다. 제 집 놔두고 자기 집에서 자는 건 허락 못 한다며 바락바락 우기는 선배 때문에 야오왕과의 관계를 모두 말해버렸다. 그가 겪었던 일들과 아플 텐데도 참는 그 때문에 화가 나는 것까지 전부 털어놓았다. 처음엔 놀란 듯했던 선배도 제 이야기를 다 듣고는 사뭇 진지해졌다. 


'내가 너였으면 야오왕이랑 안 잤어.' 


'네?' 


'너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드냐?' 


'이해 못 하겠어요.' 


담배를 태우던 그가 허공에 담배 연기를 화악- 내뿜고는 저를 쳐다보며, 이 등신 새끼. 라고 말했다. 


'너, 내가 그 새디스트 자식한테 맞고 들어오면 나랑 잘 수 있어?' 


'… 무리일 거 같은데요.' 


'그럼 야오왕은 왜 되는데?' 


쿵── 


심장이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나도 야오왕 아끼지만, 난 걔랑 못 잘 거 같다. 

물론 그 새디스트 자식한테는 화나지. 내 소중한 후배를 만신창이 만들어 놨는데. 그 새끼를 반 죽여놓긴 하겠지만, 난 야오왕이랑 안 자. 아니, 못 자.'


' …… '


'같은 거 달린 남자 알몸 보고도 흥분하고, 걔 아프면 걱정하고 화내고. 

이 정도면 벌써 말 다 한 거 아니야? 

내가 여기까지 말하는데도 못 알아 들었으면 나가 죽어라 새끼야.' 


그가 그렇게 말하고 제 머리를 한 대 쳤다. 이제 가라, 너랑 더 얘기했다간 내 연애 세포도 죽겠다. 하고 저를 억지로 내쫓았다. 






'그럼 야오왕은 왜 되는데?' 


선배의 말이 자꾸 맴돌았다. 


집에 도착할 즈음, 아파트 입구에서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 야오왕 목소리다. 


"여기까지 따라오면 어떡해요. 돌아가세요. 

사생활엔 간섭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야오왕 씨. 당신 내 거로 하고 싶어요. 

내 거 해요, 그냥." 


탁─ 


야오왕의 팔목을 잡으려던 그의 팔을 낚아채 잡았다. 


"당신 뭡니까?" 


그가 저를 흘기며 제 손을 쳐버렸다. 


" ─ !! 예밍아." 


그제야 절 본 야오왕이 놀란 듯 제 이름을 불렀다. 


"아── 

이 사람입니까? 당신이 ㅈ- " 


"그만해!!!"


이름을 듣자 뭔가 안다는 듯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러자 당황한 듯 야오왕이 소리쳤다. 상대 남자는 기가 찬 듯 웃을 뿐이었다. 얼빠진 소리로 한참 웃던 그가, 


"이제 알겠네요. 마조도 아니면서 내 옆에 있으려 했던 이유." 


'마조'라는 단어에 이 남자가 그놈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간신히 참고 있던 화가 또 올라왔다. 멱살을 쥐어 잡고, 너야? 왕이 몸에 상처 내는 새끼가? 라고 물었더니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그의 팔을 확 낚아채 꺾어 버렸다. 아프긴 했는지 악! 하며 괴성을 질렀다. 놀란 야오왕이 제 이름을 부르며 제 팔을 뜯어내려 했지만, 그의 힘으론 역부족이었다. 


"잘 보라고 당신!!! 

날 보면 생각나는 사람 없어??" 


"그만해!! 그만 해요! 

돌아가.. 제발 돌아가요! 

예밍아, 이제 그만해. 들어가자, 응?" 


야오왕이 제 팔을 잡아채며 다급하게 가자고 보챘다. 그만하고 돌아가자고 거의 울 듯한 목소리로 저를 끌었다. 


"잘 봐. 잘 보라고!! 체격이며, 인상착의 전부!" 


"제발 그만 해요!!!" 


"당신 나랑 닮았잖아!" 


쿵─ 


쿵─ 


쿵─ 


야오왕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그가 외쳤다. 그 말이 너무 선명하게 귀에 꽂혔다. 남자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빠졌다. 돌아가자고 제 팔을 붙들고 애쓰던 야오왕도 제게서 손을 뗐다. 그가 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로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저와 눈이 마주친 야오왕의 눈에서 후두둑하고 눈물이 떨어졌다. 


"미안해.. 미안해..." 


야오왕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 남자의 멱살을 다시 쥐고 살기 띤 얼굴로 경고했다. 


"꺼져. 

다시 쟤 몸에 손대면 남자 구실도 못하게 잘라버릴 거야."


손을 놓자마자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 달렸다. 우는 야오왕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그는 가는 내내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울음이 나는 걸 자꾸 참으려고 하니 숨도 잘 쉬지 못했다. 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뚝- 뚝- 흘리는 야오왕을 달래는 게 먼저였다. 소파에 앉히고 부엌에 가 컵에 물을 따르는데, 야오왕이 후다닥 제 방으로 뛰어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의 방 앞에 달려가 방문을 두드렸다. 


"문 열어 야오왕.. 

제발... 부탁이야." 


방안에선 흐느끼며 미안하다는 소리만 들렸다. 


"젠장!! 문 열라고.. 제발!!!" 


궁지로 몰린 건 넌데.. 왜 이렇게... 

내 가슴이 아픈 건데, 왜... 











밤새 야오왕의 방에선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 밤을 꼬박 새우고 소파에 앉아 야오왕의 방문만 계속 바라봤다. 해가 조금씩 뜨기 시작하면서 어스름한 새벽이 되었다. 그때 야오왕의 방문이 조용히 열렸다. 그가 한 손에 짐가방을 들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나한테서 또 도망가게?" 


── !! 


인기척에 놀란 그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에게 다가가 짐가방을 빼앗아 들고 제 방에 가져다 두었다. 그리곤 다시 돌아와 주저앉아있는 야오왕을 일으켰다.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너 지금 완전 못생긴 복어 같아."


그가 고갤 살짝 들어 저를 바라봤다. 작은 소리로 '너도 다크써클 엄청나..' 라며 웅얼거렸다. 안절부절못하는 그를 욕실로 밀어 넣으며 '씻고 나와. 어디 좀 가자.' 라고 말하니 그가 머뭇거렸다. 


"왜? 같이 씻을까?" 


제 말에 당황한 듯 후다닥 욕실로 뛰어들어가 딸깍- 하고 문을 잠갔다. 저도 대충 옷을 갈아입고 모자를 눌러썼다. 얼마 후 나온 그를 다신 도망가지 못하게 손을 꼭 잡고 함께 집을 나왔다. 






야오왕을 조수석에 태우고 한참을 달렸다. 점점 익숙한 풍경이 나오자 야오왕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한 마디도 없던 그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여기..." 


"맞아." 


조금 더 달려 도착한 곳은 우리가 다니던 고등학교였다. 주말이라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교내 주위를 걸으며 옛 생각에 잠겼다. 야오왕이 그립다며 핸드폰을 꺼내 여기저기 사진을 찍었다. 저와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라 저를 피하려고 그랬던 거겠지만. 내내 긴장하던 야오왕의 얼굴에 조금씩 편안한 기색이 보였다. 저 때문에 많이 무서웠을 터였다. 그런 야오왕의 손을 잡고 강당 뒤편으로 갔다. 그를 제 앞에 서게 하고 마주 보았다. 


"여기 기억나?" 


'예밍아, 

나 너랑 떨어지기 싫어. 

대학 들어가도 나 만나 줄 거지..?' 


'어차피 같은 대학 가는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당연한 걸 왜 물어?' 


기억나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 고등학생 때 어땠어?" 


"─ 못된 남자였지.." 


"그치?" 


저가 너무 순수하게 수긍하자 의아한 눈빛으로 저를 올려다봤다. 


"나 감정에 문제 있다는 말 엄청 들었잖아. 

사실 잘 이해 못 했거든. 

근데 나 지난 몇 달 동안 너 때문에 엄청 힘들었어.

너 상처난 거 보면 피가 거꾸로 솟아. 

그 형태가 어떻든 내가 모르는 곳에서 맞고 다니는 거 싫어."


야오왕의 얼굴이 딱, 도대체 무슨 소릴 하려고 저러나 하는 얼굴이었다.


"… 졸업식 날 여기서.

너 그거 고백이었지?"


놀란 듯 야오왕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내 마구 도리질했다. 


"진짜 아니야?

나 그 대답 제대로 하려고 여기 온 건데.

드디어 확실해졌는데..

정말, 고백 아니었어?"


왜 이렇게까지 저를 몰아세우나 싶은지 눈에 눈물이 그렁해졌다.


"말해 야오왕..

대답해줄게."


결국 그렁그렁한 눈물이 마구 떨어졌다. 야오왕의 양손을 잡고 그를 향해 볼우물 핀 미소를 지었다.


" ── … 

좋아해.

니가 좋아.. 양예밍.

계속 옆에 있어 줬으면.. 흐윽.. 좋겠어."


그를 확 끌어안고 등을 쓸었다. 


"밤새 그렇게 울고 또 우네."


"너.. 흑, 때문이잖아.."


"야오왕."


잠시 품에서 그를 떼어내고 다정하게 그의 이름을 부르자 눈물이 또 떨어졌다. 촉촉해진 눈이 햇빛 때문에 반짝거렸다. 


"─ 우리 연애하자." 


그의 눈썹이 심하게 찡그려지더니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하염없이 눈물이 주룩주룩─ 그를 제 품에 폭- 감싸고 말을 이었다.


"오는 내내 불안했어. 

짐까지 싸 들고 도망가려 할 줄 몰랐단 말이야. 

너가 예전처럼 친구로 돌아가자고 해도 내가 싫다고 할 참이었어." 


그가 안고 있던 등을 마구 때렸다. 이젠 아이처럼 으아아앙 하며 울었다. 


"흐윽.. 나 진짜 힘들었어.. 아팠어. 흑, 나쁜 놈아.." 


미안해, 미안해 왕아- 하고 그를 달랬다. 제 품에서 한참을 울던 야오왕이, 고마워. 하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의 귀에 대고 고맙다는 말에 대답했다. 


"행복하게 해줄게, 야오왕." 






이제 너가 나만 봤으면 좋겠어. 

나랑만 행복했으면 좋겠어. 

더는 그렇게 울지 않았으면 좋겠어. 

좋아해, 야오왕. 






행복하자, 우리─






우리 밍이 성격 파탄자처럼 나와서(오열.. 누나가 미아내!!!(흑 

나만 모르고(양예밍만 모르는 이야기), 내 맘 모르고(야오왕 마음 모르는 양예밍), 우리만 모르고(엇갈림), 슬픔 모르고(행복하자) 

네 편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ㅎㅎ '- 모르고 시리즈'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도 마무리 지었으니 이제 '남신'에 집중할게요!! ('백별'은 도대체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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