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time to lov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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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아침부터 왜 난리야."창욱

"아침이라니 시간 좀 볼래?"


  위현이 턱끝으로 벽면에 놓은 시계를 가리켰지만 창욱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파에 누워있는 위현을 꼴사납다는 듯 그리고 가엽다는 듯 바라봤다.


  "왜 이 꼴이냐고. 안 잤어?"창욱

"못 잤어. 잠이 안 와."

"미쳤어? 지금까지 안 잔 거야?"창욱

"못 잔 거라니까아."

"미쳤네 미쳤어. 너 밤새 뭐 했는데?"창욱

"너 들어가고 나서 영화보다가, 누웠다가, 테라스에 있다가, 누웠다가, 핸드폰 좀 보다가, 유태오한테 시달리다가, 책도 보다가, 누웠다ㄱ… ."



 "너 진짜 약 처방해줘?"창욱

"사양할래."

"그러다 죽는다니까."창욱

"나 죽어도 이 집 너 안 줄 거야. 우리 엄마 명의로 돌릴 거야."

"욕심도 안 내. 밥은?"창욱

"안 먹을래. 아! 너 요리할 거야?"

"응."창욱

"그럼 먹을래. 네가 하는 거 맛있어."

"밥에 수면제를 타든가 해야지."창욱

"그거 약물 남용으로 신고하면, 너 장기 휴가가 아니라 잘리는 거지? 평생 휴가?"

"그럼 나 여기서 진짜 평생 살 거야."창욱

"나쁜 놈. 일어나자마자 막말하다니."


 위현이 눈을 감았다. 어릴 때부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지만 근래에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진짜 병원이라도 가야 하나. 근데 병원은 싫어, 싫단 말이야. 소름이 돋는 것만 같은 기분에 위현이 진저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오늘 어디가?"창욱

"응. 저녁에 인터뷰."

"팩 좀 해. 냉장고에 지금 이게 다 몇 개야. 너 사놓고 안 하지?"창욱

"거기서 걔네끼리 종족번식했나보지. 귀찮아, 그냥 갈 거야."

"나중에 고화질 티비 화면에 네 피부가 어떻게 나오는지 눈으로 또 확인하고 싶어?"창욱

"아 요즘 진짜 티비 기술 너무 좋아. 모공까지 다 보이잖아, 미쳤나봐. 완전 부담 스러워."

"내가 네 모공 캡처해서 유포하고 다닐 거야."창욱

"너 고소하고 합의 안 하는 수가 있어."

"어쭈?"창욱

"어쭈는 무슨 어쭈야, 팍씨."


 창욱을 향해 발길질하며 위현이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방송에 출연한 뒤 충격을 받고 산 팩들이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무슨 먹을 거 보다 팩이 더 많아. 다시 진저리치며 위현이 냉장고를 닫았다.


 "냉장고에 먹을게 하나도 없어."

"네 냉장고에 뭘 바라. 그래서 난 오늘 너 어디 안 나가면 같이 장 보러 가려 했는데."창욱

"여기 근처에 마트 없는데? 아! 방송국 근처엔 있다."

"몇시에 끝나? 이번에도 안 길지?"창욱

"그치. 9시 뉴스니까 아마 9시 30이면 충분히 끝날 걸."

"데리러 갈게, 그럼."창욱

"오냐. 그래서 없는 냉장고에서 선택한 재료는 뭐야?

"양심이 있으면 기대하는 그 목소리 치워."창욱


 치이, 아이 같은 소리를 내며 위현이 조리대 위로 올려지는 재료들을 유심히 바라봤다. 김치에 계란이면 지창욱표 김치볶음밥이네. 얘랑 같이 살아서 좋은 점을 하나 찾았다. 위현이 그렇게 생각하며 군침을 삼켰다.

 

*


 "고로 현재 고고도 미사일 사드의 배치가 얼마나 기만적 행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인터뷰의 마지막 대본을 리딩을 끝낸 위현이 아까부터 신나게 울려대던 핸드폰을 그제야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태오의 카톡과 전화도 많이 있었지만, 예상밖인 인물이 있어서 대본을 내려놨다.


 왜 전화를 했을까. 부재중으로 뜬 '빌'이란 이름을 보며 위현이 망설였다. 실수겠지, 그렇겠지. 그리고는 이내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대본을 들었다.

 

*


 

 "안녕하세요."재욱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재욱의 모습에 위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헐 김재욱이다, 득템. 당황함과 설렘에 굳었으면서도, 창욱의 말대로 팩이라도 할 걸 후회하며 위현이 괜히 입술을 만지작만지작 거렸다.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어요?"재욱

"네! 전 잘 지냈어요, 김기자님은요?"

"저도요. 아, 저번 일은 다시 한번 사과드릴게요. 약속 취소 한 거요. 계속 마음에 걸렸어요."재욱

"그 날 저녁에 국무총리 리베이트 터진 뉴스봤어요. 김기자님이 취재하고 쓰신 거요. 그거 보고 이해했어요."

"그래주시니 고마워요. 오늘 촬영 있으시죠?"재욱

"네!"

"잘 해요. 가보겠습니다."재욱


 미련없이 돌아서는 재욱의 모습에도 위현은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미안했으니 새로 약속 잡는 건 어떠냐고, 오늘 끝나고 뭐하냐고 물어봐 주지.


 재욱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위현은 긴 한숨을 내쉰 뒤 걸어갔다.

 

*


  "그러면 지금 소위현씨의 생각은 사드 배치가 기만적 행위라는 건데, 중요한 부분은 사실 안보거든요. 이게 절차가 어떻든 결과적으로는 필요한 거란 말이죠."


 거참 요즘 공영이든 민영이든 편파적인 건 알지만, 이건 편파적이어도 너무 편파적인 논조네. 찌푸려질 뻔한 미간의 주름을 애써 피며 위현이 메인 카메라를 바라봤다.


 "소위 '안보'를 가지고 사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네 그렇죠."

"사실 그건 지식이 얕아서 일어난 과오라고 할 수 있어요. 사드의 필요를 논하기 전에 한반도는 고고도 미사일이 필요한 지형적 조건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약 십년 가까이 국방부에서 한국형 사드인 KAMD와 Kill Chain의 개발을 고려한다는 점을 아셔야 하거든요. 진정 안보와 국익을 생각한다면, 미 정부의 아시아 회귀정책과 중국 봉쇄에 휘둘리지 않게 한국형 사드를 고려하는 게 우선이죠."

"아, 한국형 사드요?"

"모르시는 것 같아서 유감이네요."


 진행자가 당황한듯 대본을 뒤적거렸다. 그는 사드 배치의 반대론자인 위현을 자리에 두고도, 결국 '안보'를 명목으로 배치 필요성을 주장하며 클로징하려 했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에서 클로징할 멘트는 없었다.


 카메라 감독의 표정이 초 단위로 흘러가는 시계를 가리키며 초조한 표정을 보였다.


 "따라서 국민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촉구되는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2항이죠.

 저번 방송에서 제가 말씀드린 엘리트 민주주의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길 바라며, 제가 국민 모두가 엘리트가 될 수 있음을 말한 것 역시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결정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그 결정을 내리기 위해 저희는 다각적 시선으로 사드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의 국익을 위해서인가,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나아가 왜 자주적이지 못하고 누구의 편에 서야하는가. 제가 오늘 말씀드린 한국형 사드와 Kill Chain 시스템에도 관심을 가져 주시길 바라며, 대한민국이 그저 대한민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바랍니다.

 이상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위현이 말을 끝냄과 동시에 뉴스는 9시 30분 정각에 끝날 수 있었다. 스튜디오에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들이 웅성웅성 퍼졌고, 위현은 밑에서 기다릴 창욱에 흩어진 대본을 주워들었다.


 "소위현씨."

"네?"

"너무 무례한 거 알죠? 우린 우리대로 끝내야 하는 방식이 있어요. 마음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그렇ㄱ..."

"그럼 자료 준비를 철저히 하시든가 대본을 아예 주시지 그러셨어요. 적힌 말만 하라고. 죄송한데, 그쪽 지금 토론 코너 진행하셨거든요. 토론이 뭔지 아시죠?"

"이 여자 봐라."

"마음껏 보시면 좋겠지만 제가 바빠서요. 그럼 이만."


 내가 지금 절대 김재욱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무능에 예민한 거야. 스스로를 그렇게 위안하며 위현이 가방을 챙겼다.

 

*


 "미쳤나봐!"창욱

"깜짝이야, 왜 난리야?"

"너 예쁘단 댓글이 베스트길래 내가 실물 보면 아니라니까 다 나 욕해!"창욱

"너 나한테 죽고 싶냐?"

"이거 너지? 네가 방송국 직원들 잡고 협박했지?"창욱

"기분 안 좋으니까 시비 걸지 말고 운전이나 할래?"

"기분 안 좋아? 그럼 또 내가 입 다물어야지."창욱


 창욱이 곁눈질로 두 눈을 감은 위현을 살피며 핸들을 움직였다.


 방송은 문제 없었고, 메인 뉴스에도 위현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인 기사들이 나와 있었다. 뭐가 문제지. 묻고 싶었지만, 원하지 않는다면 절대 대답하지 않을 위현을 알기 때문에 창욱은 다문 입을 유지했다.


 그러나 라디오 소리마저 줄인 조용한 차 안은 이내 위현의 핸드폰이 내는 진동소리에 다시 시끄러워졌다.


 "전화 온 거 아니야?"창욱

"또 유태오겠지. 귀찮아."

"유태오 바쁘다는 거 거짓말인가 봐."창욱

"내 말이. 걔 한국에 있는 것 같아."


 진동 소리가 끊기고 진동을 무음설정으로 바꾸려던 위현의 손이 멈칫했다.


 "왜?"창욱

"있잖아, 아까부터 빌이 전화 온다?"

"그 새끼가 돌았나."창욱

"그치? 그 반응이 정상이지? 나 받으면 안 되는 거 맞지?"

"받으면 넌 멍청이 인증이지. 차단 안 하고 뭐 했어?!"창욱

"몰라아."

"내가 이따가 차단할 거야."창욱

"내 폰 지문으로 열리는 건 알고 있지?"

"네 지문이 곳곳에 퍼진 집에 나도 사는 거 알고 있지?"창욱

"와 겁나 못됐어. 사기꾼 못된 기질이 아주 팍팍 나타나네."



 "그니까 그 새끼 번호를 지우든 차단하든, 네 번호를 바꾸든 하라고."창욱


 꽤나 단호하게 말하는 창욱의 목소리를 들으며 위현이 다시 눈을 감았다. 김재욱이 아니라 빌 때문에 예민한 거였나 봐. 나 어떡해.




+

 2016년의 글이라 뉴스 토론의 안건이 사드 배치네요.

까마득한 옛날😂


 사실 저때만해도 전공을 국가 안보로 하려했었는데,

지금은 유럽의 극우정당을 전공으로 하고 있다는 TMI를 드리며 

저는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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