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우x유한양























"야, 얜 왜 자꾸 여깄냐?"

준호가 제혁의 연습장 한 구석에 쭈구리 처럼 앉아있는 한양을 보며 물었다.

"유대위랑 한 바탕 했대. 같이 두기에 분위기가 험악해서 데리고 나왔어."
"뭐 땜에 싸운건대? 웬만큼 큰 잘못 아니고서야 쟤가 풀 죽을 애가 아닌데.."
"그러게."

제혁은 준호의 말에 동의했다.
저렇게 얌전히 우울을 파며 앉아있는 한양의 모습은 정말 낯설고 신기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누구든 아무리 그에게 갈굼질을 해도 콧방귀 한 번 뀌고 더 약올리는 한양이었는데, 저렇게나 풀이 죽다니.
제혁은 그런 한양이 안쓰러웠는지 준호가 저 먹으라고 사 온 콘 아이스크림을 한양에게 주었다.

"고마워 형. 준호형이 사온거지? 저 형은 참 센스가 이써."
"그래. 고맙게 먹어."
"웅.."

그래놓고는 또 껍데기만 잘근잘근 씹으며 멍을 때려, 결국 제혁이 포장까지 뜯어 쥐어주고 그 옆에 앉았다.
준호는 그를 보며 쯧쯧 혀를 찼지만, 저 또한 호기심이 일어 제혁의 반대편에 앉았다.

"한양아, 정우랑 왜 싸웠는데 그래?"
"형 너무 가까이 앉지 마."
"응?"
"형도."
"어?"

한양은 갑자기 제혁에게 거리를 두었다.
정우가 없을 때나 청소를 할 땐 항상 제혁의 다리를 베고 눕고, 기대어 있었는데 웬일인가 싶었다.

"정우가 시러해. 사실 나 형 땜에 정우랑 싸워써. 그래서 여기 온 것도 시러할껄 아마?"
"나, 나 때문에?"
"웅.."

한양은 우울하게 대답하며 아이스크림을 크게 베어물어 우물우물 씹었다.

"저버네 나 아팠을 때.. 형 무릎에 눕고, 형이 나 안아서 옮겨줬자나?"
"응.. 그랬지?"
"그 날 밤에 정우가 내 얼굴도 안쳐다봐써"

준호와 제혁은 한양의 혼잣말 같은 그 말에 기분이 묘해졌다.
이 둘 뭐지?
제혁은 철두가 흥얼거리던 노래가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이거시 바도 타당, 타당 타당이야~'
그리고 그 묘한 기분에 한양은 결정타를 날려줬다.

"뽀뽀도 안해주구.. 그니까 형은 이제 접근금지야"
"? 뽀.. 뭐?"
"아이 참, 뽀뽀 !! 어? 아.. 말해버렸네."

한양이 제 입을 살짝 가리며 아차한 듯 눈을 크게 떠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정우한테 걸리면 또 더 화낼텐데..
한양은 그렇게 생각하며 에라 모르겠다는 맘으로 말했다.

"형 지원이 알지?"
"어, 어.. 한양이 네 여자친구?"
"지원이 남자야. 그리고 걔한테 차이구 정우랑 사겨."

이에 준호는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떨러트릴 뻔 했다.
그리고 제혁은 방금보다 더 멍청해진 표정으로 한양을 쳐다봤다.
폭탄을 터뜨린 한양은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물고 작게 한 숨을 쉬었다.

"아, 말하고나니 일케 시원한걸.. 속이 다 시원하다! 서로 퉁친거다? 두 사람 절친인거 나도 모른 척 해 줬으니까, 둘도 모른척 해줘."
"..."
"..."

한양은 서로 눈치만 보는 둘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며 말했다.

"해주세요."

준호와 제혁의 사고회로가 잠시 정지되어 무슨 말을 해야할지 정리를 하고 있었다.
정우와의 관계도 그렇고, 그렇게 말하던 애인이 남자였다니..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되는건지 정리가 안 됐다.
그런 둘을 보며 한양은 또 다시 한 숨을 쉬었다.

"에휴.. 형들 마니 놀랫구나? 대써.. 하튼 그런주리나 아러.. 나 여기 넘 오래이쓰면 정우 더 화나게찌? 준호형 나 방에 돌아갈래."
".. 어, 어?? 그래.."
"모른 척 해조야대!!"
"으, 응.. 그럼그럼!"

한양은 제혁의 무한 끄덕임이 맘에 들었는지 보조개가 깊게 패이도록 웃어보였다.
뭐, 잘 하겠지.


-


"한양이 왔나? 니도 커피 한 잔 물래?"
"웅."
"정우야, 한 잔만 더 타도라."
".. 알아서 타 먹으라 하십시오."

방으로 돌아온 한양을 반기는 건 민철 뿐이었다.
갑작스런 철두의 이감으로 방엔 다섯 명 만 있었고, 오늘의 연습엔 한양과 동호만 따라갔었으니 방에는 민철과 정우 둘 이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정우와는 냉전 중이니, 저를 반겨 줄 이는 민철 뿐이라는 것이다.
한양은 오자마자 정우의 쌩한 반응에 잠시 움츠러들었다.

"너들 아까 싸워가 이러는기가? 요새 사이 좋다 싶더니만, 와 또 이라노"
".. 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정우는 대답을 회피하고 민철에게 커피잔을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화장실로 휙 들어가버린다.

"씨잉.."

한양은 미간을 구기며 구석에 철푸덕 앉아 담요를 꽁꽁 여민 채 앉아있었다.
가을 바람이 점점 차가워져가는데, 정우의 옆구리에 안겨있고 싶은 맘 뿐이었다.

"민철씨, 잠깐 나와봐요."
"예? 와, 뭔 일 있습니꺼? 와예, 가석방 심사가 혹시.."
"아니이- 그런 거 아니니까,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빨리 나와요."
"알겠심다. 마, 니들 또 싸우지 말고 있으라이,"

다 늦은 밤, 무슨 얘기를 하려는건지 민철이 팽부장의 부름에 방을 나갔다.
둘 뿐이었다.
마침 정우가 화장실에서 나와 한양 쪽은 쳐다도 보지 않으며 선반에서 책을 꺼내고 있었다.
한양은 슬금슬금 기어 다가가 정우의 옆에 웅크리고 앉아 눈치를 봤다.
정우는 그런 한양을 못 본 채 하며 책에 시선을 꽂은 채 거두지 않았다.

"정우야"

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양은 그에 입을 삐죽이며 중얼거렸다.

"둘 뿐인데.. 뽀뽀하면 안 돼?"
"... 큭.."

진짜 졌다 졌어.
정우는 우물쭈물 거리는 한양에 결국 터졌고, 복도 쪽을 한 번 보곤 손을 뻗아 한양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를 감싸 안으며 입을 맞췄다.
그에 한양의 광대가 올라가고, 정우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정우의 혀를 빨아들인다.
그러나 다른 이가 언제 올지 모르니 금방 서로의 타액만 교환하고 입을 떼는 둘이다.

"나 이제 제혁이 형 근처에도 안 갈꺼야"
"정말이지?"
"웅. 그니까 정우 니가 옆에 꼭 이써야대."
"그래."

한양은 정우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키득대며 그의 품에 더 파고들었다.

=철컥,
"오늘 푹 쉬고, 내일 다.."
"..?!"
"형들 와써?"

그리고 그 때 문이 열리며 제혁이 들어오고, 그 뒤로 준호가 보였다.
두 사람은 정우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자신들을 올려다보는 한양을 발견하고 멈칫 했다.
정우 또한 그들이 오는 걸 왜 알지 못 했는지 속으로 자책하며 정색한 채 옆에 던져 둔 책을 후다닥 집었다.

"으, 응.. 화해했니?"

준호가 어색하게 물었다.

"웅, 걱정마~ 우리 싸움은 칼로 물 베기야"

한양은 뻔뻔스런 말투로 대답하고 정우의 다리를 베개삼아 퍽! 드러눕더니 꼼지락대며 눈을 감았다.
사실 한양도 너무 적나라한 장면을 들켜 당황하긴 했지만 센 척을 하는 중이었다.

준호는 뻘쭘함에 뒤 따라 온 동호를 방에 밀어 넣고, 얼른 문을 걸어잠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제혁은 어색해하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한양의 커밍아웃 당시 열심히 공을 정리하느라 이야기를 못 들었던 동호는 그에 별생각 없는 듯 뚱한 표정으로 수건을 꺼내 팔에 걸쳐 화장실 앞에 대기를 했다.

'정우야 나 이제 진짜 제혀기형 옆에 안 갈꺼야'

한양은 화장실 쪽을 한 번 보곤 고개를 살짝 들어 정우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책을 읽던 정우는 그에 다시 피식 웃고 말았지만, 얼른 다시 무심한 척을 했다.

혼란스러우면서도 나름대로 평화로운 밤이었다.


오랜만에 뭐 먹음. 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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