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킨 스카이워커x오비완 케노비 

+오타많고 비문 많음 주의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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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사로운 봄볕이 창을 통해 들어와 내부를 포근하게 데웠다.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종이 책을 읽던 남자는 눈을 찌푸리며 자세를 고쳤다. 날이 갈수록 볕이 강해지는 것을 보아 여름이 다가오고 있는 모양이다. 더는 책 읽기에 어울리는 장소가 아니게 될 듯 싶어 그는 조금 아쉬워졌다.


 

덜그럭 대는 번잡한 소음이 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혼자 쓰는 방치고 무척 광활한 방의 중앙에 놓인 티테이블 앞에, 남자보다 젊은 사내가 허둥대고 있었다. 남자의 눈빛을 느낀 건지 청년의 얼굴이 불긋해진다. 입술을 깨물고 볼을 잠깐 부풀리더니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테이블에 놓인 찻주전자를 기울여 붉은기가 도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차 한잔을 조르륵 따라냈다. 고작 그것 하나 하겠다고 소란을 피운 이는 어찌나 뿌듯한지 남자를 향해 큼직한 미소를 지었다. 깨끗한 흰빛에 금테가 둘러진 찻잔을 작은 트레이에 옮기며


 

"한 잔 마셔봐요. 이거 좋아했잖아요" 재잘거린다.


 

그가 남자에게 다가왔다. 검정색으로 물들인듯한 옷차림으로 긴 다리를 뻗었다. 하지만 몇 발자국 떼지 않아서, 곱게 담겨있던 액체는 새된 비명과 함께 젊은이의 손 위로 왈칵 넘쳐버렸다. 그리도 섬세하게 움직이던 몸짓이었으나 투박한 발걸음과 삐걱대는 균형으로 인해 참사가 벌어지고 말았다. 키가 훤칠하고 어깨가 넓직한, 근육으로 잘 다져진 몸은 이런 사소한 일을 도통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그리 뜨겁지 않았는지 고통을 호소하기 보단 울상을 지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애써 만든 차가 낭비된 것도 속상하고, 그것 하나 못하고 엎지른 자신이 창피한지 사내는 입술을 툭 내밀고 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사탕을 빼앗긴 꼬마처럼 벌개진 볼이 장미빛이다.


 

그리고, 남자가 웃었다. '오비완'이 소리를 내어 웃은 것이다. 시무룩했던 아나킨의 머리가 번쩍 들렸다. 무척 오랜만에 보는 오비완의 웃는 모습에 아나킨의 입술이 스륵- 벌어졌다. 그는 멍하니 서있는 아나킨을 보며 작게 키득 거리며 중얼거렸다.


 

"....여전하구나 너는"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는 작았지만 부드러웠다. 오비완은 다시 한번 자조적으로 읊조렸다. -정말이지 여전해... 부드럽게 올라간 입꼬리는 오늘 따라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오비완은 아나킨의 얼빠진 모습을 보며 그를 빤히 보았다. 마치 아주 오래전 일을 기억하듯이 오비완은 기억의 페이지를 뒤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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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 짧은 비명소리에 오비완은 화들짝 놀라 거실로 뛰쳐나갔다. 작디작은 파다완이 두 손을 부여잡고 끙끙 앓는 모습이 보였다. 카펫을 구르는 컵과 흥건한 물기를 확인하자 대충 무슨 일인지 예상이 갔다. 오비완은 곧장 아나킨의 앞으로 다가갔다.


 

"괜찮으냐 아나킨?"


 

갑자기 나타난 스승에 아나킨은 아픈 손을 다급히 뒤로 숨겼다. 눈을 피하며 입술을 안으로 쏙 말아넣는다. 입안으로 웅얼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변명도 되지 않았다. 오비완은 아나킨의 손을 억지로 끌어와 유심히 살폈다. 다행히 많이 뜨거운 온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울긋불긋한 붉은기를 제외하곤 살갗이 벗겨지거나 물집이 잡히지 않았다. 후... 안도의 숨을 내쉬자 아나킨이 크게 움찔거렸다. 머리를 움츠리며


 

"죄송해요... 그냥 따뜻한 코코아가 마시고 싶었어요" 힘없이 중얼거렸다.


 

"아나킨 넌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단다. 하지만 다음부턴 마스터에게 말해주겠니? 얼마든지 네게 마실 것을 주마"


 

부드럽게 타이르자 아나킨이 처진 머리를 들어 눈을 마주했다. 초롱초롱 빛나는 두 눈동자가 아이답게 반짝였다.


 

"일단 약부터 바르고 코코아를 마시자꾸나"


 

아이의 얼굴에 함박 웃음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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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킨은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오비완의 다리에나 오던 키가 몇 달 사이 훌쩍 자라 스승의 가슴팍 까지 왔고, 짤막했던 브레이드도 먹는 만큼 길어지는지 이젠 어깨에서 데롱거렸다. 실력도 뛰어나게 성장했다. 영링들보다 못하던 포스 운용능력도 어느새 다른 파다완들 만큼 해내었고, 그리도 귀찮아 하던 명상도 그럭저럭 해내는 것이 퍽 대견했다. 그런 기특함이 마음 속을 채울 때면 오비완은 아나킨의 브레이드 끝을 장난스레 슬쩍 당기며 '잘했다 나의 파다완' 이라 칭찬하곤 하였다. 아나킨 역시 그것이 나쁘지 않은지 툴툴 대면서도 거부하진 않았다.


 

하지만 아나킨은 이런 비약적인 성장들과 정반대로 여전히 사소한 일상활동에 서툴었다. 드로이드 수백대를 너끈히 고쳐내는 십대는 드물어도 제 다리에 걸려 넘어지고, 찬장에서 접시를 꺼내다 깨뜨리고, 음식을 받아오다 죄다 엎어 버리는 십대는 더 드물 것이다. 아나킨은 바로 그런 드문 케이스에 모두 속했다.


 

오비완은 내심 아나킨의 성장이 너무 빨라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도 했으나 곧 일상에 있어 선천적으로 집중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려야했다. 덕분에 오비완은 보통 영링담당 보육 제다이들이 할법한 일들을 제법 오랜시간 동안 이어가야 했다. 아나킨이 깨먹을 것 같은 컵들은 모조리 교체했고, 혹 넘어져 무릎이라도 까질까 걱정돼 쿼터 전역에 푹신한 카페트로 도배를 했다. 내심 내가 아기를 키우는 건가?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아나킨이 테이블에 정강이를 찧고 혼자 낑낑대는 것을 본 뒤로 모서리 보호대를 주문해 뾰족한 부분에 모조리 둘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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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킨이 조금 더 자라자 그런 면들은 많이 사라졌다. 더는 혼자 넘어지지 않았고 불안한 팔다리를 곧게 펴고 다녔다. 가늘었던 뼈대가 단단해지자 어깨는 넓어지고 안정적인 신체의 균형이 생겼다. 성격도 제법 어른스러워져 차분해졌다.(남들이 보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 할지 모르나) 오비완은 조금씩 변화하는 아나킨을 보며 걸음마를 뗀 아기를 보는 듯한 뿌듯함을 느꼈다. 물론 아나킨의 나이가 이제는 17살을 넘었고 성인에 가까웠으나 당장 며칠 전만해도 제 침대에서 올라가다 굴러 떨어진게 바로 아나킨이었다. 오비완은 고단한 육아가 머지 않아 끝날거라 믿으며 미소지었다.


 

 제자의 서투름은 정식기사로 승급하고 나서도 끝나지 않았다. 미션 중에 그런 실수를 하는 법은 없었으나 오비완과 함께 있으면 늘상 그 시절의 파다완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행동하곤 했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걸까? 오비완은 아나킨이 제게 줄 차를 직접 공수해왔다며 자랑하는 모습에 참으로 고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나킨은 옛 스승의 가벼운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벌떡 일어나 찻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휘파람을 불며 이 차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기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비완이 좋아할 거라고 확신해요. 내가 마스터 취향은 훤히 꿰고 있으니까"


 

은근슬쩍 장난을 걸어오는 아나킨에 오비완은 낮게 웃는다. -어찌나 스승을 생각하는지 갸륵하다며 칭찬이라도 해달라는거니? 라고 받아치자 아나킨은 어깨를 으쓱하며 신중히 잔에 물을 부었다. 맑고 향긋한 기운이 확 풍겨 나왔다. 노을처럼 붉은 차가 가지런히 담기자 아나킨은 무척 조심스레 트레이에 두 잔을 올려놓고 걸어왔다. 살금살금, 종종 걸음으로 아주 느릿하고 차분하게 발을 옮겼다.

그럼에도 오비완은 아나킨의 찻잔이 얼마나 흔들리고 있을지 훤히 보였다. 그리고 역시나, 으앗- 외마디 신음과 함께 아나킨의 걸음이 뚝 멈춘다. 오비완은 데이터패드를 들여다 보고 있던 시선을 올려 아나킨의 황망한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트레이에 엎질러진 차가 방울져 바닥으로 똑똑 떨어졌다. 아나킨의 고개가 푹 떨어졌다. 얼마나 속상한 얼굴일지 상상이 되어 오비완은 가만히 손을 들었다. 포스로 넘어진 찻잔을 세우고 흐르는 찻물을 하나로 뭉쳐 싱크대 위로 살포시 떨어 뜨렸다. 아나킨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충격을 받은듯 입을 떡 벌렸다.


 

"저한테는 포스를 사사로이 남용하지 말라면서요!"


 

억울한 목소리가 짜증을 내자 오비완은 아나킨이 들고 있던 트레이를 받아들었다.


 

"이게 어떻게 사사로운 일이니? 아나킨, 네가 다칠 수도 있는데"


 

아나킨은 잠시 감동 받은 표정을 지었다가 무언가 깨달은듯 다시 와락 미간을 구겼다.


 

"...그게 말이 돼요? 이미 엎질러졌는데...?"


 

눈치가 없지 않은 아나킨은 오비완의 장난에 쉬이 말려들지 않았다. 또다시 웃기 시작한 오비완의 밝은 목소리에 아나킨이 제 머리카락을 흐트리며 어이가 없다는듯 눈을 굴린다. -마스터, 진짜..! 하지만 아나킨은 이러한 순간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비완의 놀림감이 되는, 어찌보면 서운할지도 모르는 순간인데 그는 여전히 오비완에게 뭐든 해주려고 하였다. 


 
 

....그랬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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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 케노비의 미소는 무척 귀했다. 

 

베이더는 그것이 사라질까 두려워 어깨에 매단 애꿎은 망토자락만 쥐었다 폈다. 다시 쓰고 나가야 되는 반질한 헬멧도 차마 집어들 수 가 없었다. 오비완은, 이제는 벤 케노비가 된 그는 더이상 베이더에게 일말의 감정조차 내보이지 않기에. 희귀하기 짝이 없는 이 순간을 도저히 망치고 싶지 않았다. 바라건데 시간 속에 그의 미소를 영원히 박제할 수만 있다면.... 그의 이루어지지 않는 소망처럼 벤의 미소가 점차 사그라들었다. 찰나에 돌아왔던 생기가 모래알처럼 흝어지고, 안개처럼 흐려졌다. 베이더를 향했던 시선이 다시금 종이로 내려갔다. 낱 장을 손끝으로 훑으며 벤은 오비완과 아나킨의 기억을 다시 묻었다.


 

그랬었지 그때는. 지금처럼 서투르고.... 그래 지금처럼.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목소리는 공허히 그 자리에 남겨졌다.

썰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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