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때 케이아 알베리히는 사막에 파묻혀 있었다. 


마지막 기억은 운 나쁘게 모래폭풍에 휘말려버린 시점에서 끊겨있다. 시야는 한 치 앞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난잡했으며, 모래에 파묻혀 숨이 막혀갈 때쯤,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아, 이번 생은 여기서 끝이구나. 그러나 케이아는 지금 이렇게 입에 가득한 모래를 뱉어내며 격렬하게 숨을 터뜨리고 있다. 비록 배낭은 어디 갔는지 찾을 수도 없고, 허리춤에 맨 물병 속 물은 눈과 입을 씻어내느라 낭비해야 했지만, 조난자의 결말치곤 그리 나쁘지 않았다. 


허기와 갈증에 시달려가며 케이아는 사막을 헤맸다. 세 번의 밤이 지나고 세 번의 낮이 지났다. 슬슬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해버린 눈으론 별자리조차 읽기 힘들었다. 어쩌면 같은 장소를 계속 빙빙 돌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그는 예사롭게 생각했다. 


사실 이 상황에서 위기감을 느끼기도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자신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자연이 험악한 이빨을 들이밀고 운명이 화살을 겨눠도 두렵지 않았다. 그의 유일한 두려움이 있다면 그의 다이루크를 만나지 못하는 일이겠지만, 수천번 동안 반복된 만남은 두려움을 사막의 모래알처럼 희석시킨 지 오래다.


꽃으로 태어난 그를 화분에 옮겨심고, 나비로 태어난 그를 위해 꽃을 길렀다. 기억이 없는 나를 네 신도로 만들어 품고, 사형수로 몰린 나를 위해 손수 도끼를 갈아온 게 너였다. 


케이아는 가장 최근의 인생 중 하나를 떠올렸다. 두 사람 다 운 좋게 인간의 형상으로 태어난 회차였다. 수천 번의 삶 중에서도 그토록 빛나는 인생은 손에 꼽았기에 한동안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첫사랑의 쌉쓸함, 가슴 떨리는 고백의 말들. 서로 기억이 없었음에도 여전히 서로를 향해 몸을 던져댔다. 우습고 유치했지만, 그만큼 특별한 기억들이었다. 보통 그들은 스러져가는 잔열처럼 미지근하고 온유하게, 불타오르는 노을이 아니라 그 노을에 비추어 물든 호수의 윤슬처럼 사랑을 하던 이들이었으므로. 케이아는 메마른 흙냄새 속에서 포도밭의 향기를 맡았다. 그때 와인을 좋아한 건 자신이었다. 반대로 다이루크는 와인을 싫어했다. 


그때의 삶은 특히나 꼬여있었다. 우선 그가 오백년이나 먼저 태어나버린 것부터가 문제였다. 별 이상한 왕국의 멸망사에 엮인 것도 문제였고. 다음생에서 찾은 그에게 바로 지난일을 사과했지만, 수정나비로부터 돌아온 것은 시끄러운 타박 뿐이었다. 그러니까 왜 먼저 죽어버리고 난리야. 툭하면 다음번을 외치고 뒤지니까 매번 나만 고생이잖아.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 수천 번의 인생을 함께 살아왔지만, 그 동안 남겨지는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건 상대쪽이다. 미안하게 여겨야 할 일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너를 찾아헤매고 있다. 


우리의 시간은 늘 이런 식이었다. 남들이 벽에 걸린 시계, 하늘에 걸린 해와 달과 별을 보며 시간을 가늠할 동안, 우리는 우리의 눈동자 속에 켜켜이 쌓여가는 반석을 보며 함께 지내온 세월을 헤아렸다. 


우리의 삶은 늘 이런 식이었다. 서로 흘러가는 상대방을 붙잡기 위해 끊임 없이 물장구치는 삶. 따라잡았다 싶으면 놓치고, 잡혔다 싶으면 사라지니, 스칠 뿐인 인연을 야속하게 느낀지가 마지막으로 언제인지도 이제는 까마득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서로를 찾는 건, 우리가 함께 날아오를 순 없어도 함께 추락하고 익사할 순 있기 때문이겠지. 이미 그 바다는 우리의 해골로 메워져있다. 저금통에 동전을 집어넣듯 끝 모를 대양 속으로 서로를 던졌다. 이것도 시체 한 구를 더 추가할 뿐인 일이다. 


마지막 발걸음을 딛었다. 언덕 너머로 금모래빛 사막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알베리히는 그의 오아시스를 발견했다. 


"안녕, 라겐펜더."


그는 몸을 숙이고 달콤한 수면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죽음처럼 그 안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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