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찬의 여자친구는 같은 학교였다. 디테일하게 알고 싶지는 않아도 그의 연애에 대해 묻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 학교라는 것도 한국무용을 전공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나이는 성찬보다 한살 어리고, 어쨌든 찬영보다는 누나였다. 성찬의 연애는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하긴, 원채 다정함이 깔려있는 그가 여자친구와 싸우는 건 찬영조차도 본 적이 드물었으니 이번 연애는 또 얼마나 가려나 벌써부터 마음이 착잡했다. 

성찬을 좋아하는 마음은 진작에 알아차렸고 그와의 사랑을 꿈꾸는 것도 진작에 포기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숨통이 조여왔다. 성찬과 여자친구가 통화를 하는 건 몇번이나 들은 적 있어도 그의 말에서 사랑해라는 말이 나온 건 들은 적이 없으니, 참으로 간사했다. 연인이라면 사랑을 속삭이는 건 당연할텐데 그부분을 간과한게 문제였다. 


"애기도 갈 거지?"


당연하다는 듯 묻는 성찬 때문에 순간 고개를 끄덕일뻔 했다. 여자친구를 소개 해 주는 자리에 나를 부르는 성찬에게 괜시리 서운함이 밀렸지만 이건 그 빌어먹은 짝사랑 때문이라는 걸 찬영도 알고있다. 저 과제때문에... 말 끝을 흐리자 아쉽다는 표정을 짓던 성찬이 어깨에 얼굴을 부벼온다. 이따 형이 맛있는 거 사갈까? 하는 말에 찬영은 어색하게 웃었다. 어차피 오지 않을 거면서, 하는 볼멘소리가 나올 뻔 했다. 여자친구가 생긴 이후로 자취방에 성찬의 발길이 뜸해진 건 사실이었으니까. 

헤어지는 와중에도 밥은 챙겨 먹어야 한다며 혹시 과제 끝나면 언제든지 오라고 기다리겠다며 붙잡은 팔을 놔주지 않던 성찬은 결국 은석에게 끌려가다시피 멀어졌다. 다시 혼자가 되니 코끝에 시큰함이 몰려와 재빠르게 코를 비볐다. 이렇게 하면 나오려던 눈물도 멈춘 다는 걸 얼마전에 깨달은 짝사랑에 비애였다. 지이잉- 짧게 울리는 진동에 핸드폰을 꺼내들자 성찬에게 짧은 메세지가 도착했다. 벌써 보고싶다. 봐봐 이러니까 내가 눈물이 안나오고 베기냐고, 이건 정성찬이 문제야.

과제는 핑계였지만 아무것도 안하는 것 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에 노트북을 펼치고 이것저것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핸드폰은 짧게 짧게 울렸다. 다들 술 마시러 가서는 뭐가 그렇게도 할 말이 많은지 울려대는 단톡방에 알림음을 꺼놓자 잠시 뒤, 전화가 울렸다. 성찬이형


"여보세요?"

- 애기야... 왜 카톡 안봐?

"과제중이라서요."

- 아직두? 하...

"... 술 많이 마셨어요?"

- 아니... 응... 조금


여자친구랑 같이 있는 거 아니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미 취한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괜찮은 척 하고 싶지 않아서 아무 말을 하지 않으니 상대도 아무 말이 없다. 침묵이 길어진다고 해서 성찬과 저의 사이에 어색함이 감도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핸드폰을 붙들고 있는 것 보다는 끊어버리는 게 나을 거 같아서 그만 들어가라 얘기하려던 순간 수화기 너머로 잔뜩 취한 성찬이 저를 불렀다.

찬영아...

보고싶다. 형 좀 보러 와주라.




"어때? 우리 애기 귀엽지?"

빌어먹게도 짝사랑은 약자였다. 제발 와달라고 부탁하는 말을 차마 거절하지 못한 찬영이 술집에 들어서자 성찬이 그런 저를 옆에 끌어 앉혀서는 연신 볼을 부비며 제 여자친구에게 소개한다. 귀엽네. 여자의 말에 그저 짧은 목례를 건넨 찬영이 성찬을 밀어냈다. 왜케 취해써요. 우리 애기가 안와서 속상해서 쫌 마셔찌.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에 눈치가 보이는 건 찬영이었다. 혹여나 여자친구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힐끔 거렸지만 성찬의 여자친구 윤아는 별 생각이 없는지 앞에 앉은 다른이들과 떠들기 바빴다. 이러니 꼭 제발 저린 거 같잖아. 


"애기. 형아가 과제 도와줄까?"

"됐어요... 다 했어요."

"진짜? 오구 똑똑해라. 오구 성실해라."


진짜 예뻐죽겠다. 이건 성찬이 육성으로 내뱉은 말이었고 그와 동시에 붉어진 뺨에 입을 맞춘 건 순식간이었다. 테이블에 있던 아는 사람들이야 또 지랄이라며 티슈를 던져댔지만 쪽- 소리가 나는 순간, 찬영은 성찬의 여자친구와 눈이 마주쳤고 윤아의 표정을 정면으로 봤다. 형 취했어요?! 그래서 그랬나 저도 모르게 큰소리가 났다. 괜히 볼을 벅벅 닦으며 오바스럽게 펄쩍 뛰는 거 역시 제 발 저린 행동이었지만 그래야만 할 거 같아서 찬영은 먼저 가겠다며 가게를 빠져나왔다. 


"찬영아! 찬영아!"


저를 붙잡는 손에 돌아서니 잔뜩 상기된 표정의 성찬이 보였다. 미안해 화났어? 그 말에 찬영은 한숨을 내뱉었다. 고개를 푹 숙이는 모습에 급한 건 성찬이었다. 내가 잘못했다고 그랬으면 안되는건데 그랬다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찬영의 기분을 풀어주겠다고 한 말이 오히려 독이되었다. 찬영에겐 지금 성찬이 내뱉는 말은 둘의 사이가 이이상 진전 될 수 없다는 걸 확인시켜 주는 말 같아서, 그러니 더이상 욕심내지 말고 현실을 살라고 말하는 거 같아서 잡힌 손을 뿌리치고 돌아섰다. 몇번이나 저를 붙잡는 손에도 돌아보지 않던 찬영은 또 다시 붙드려는 손을 피하며 달리고 또 달렸다. 취한 성찬이 저를 붙잡지 못하게 그렇게, 도망쳤다. 




끈질기게 울리던 진동이 꺼지자 화면에 알림이 떠오른다.

부재중전화 12통 

성찬이형

아예 뒤집어 버리려 들어올린 핸드폰이 또 다시 울린다. 이번에도 발신인은 성찬이형  매정하게 뒤집어 버리는 손과 다르게 찬영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저를 쳐다보던 윤아의 얼굴이 떠오르자 이대론 위험 할 수도 있단 생각이 정성찬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누구 하나 시키지 않았지만 그렇게 해야만 찬영은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정성찬은 그 조금의 숨통 조차도 허락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필사적으로 피해다니고 연락을 피하기 고작 이틀. 주인 없는 집 앞에 정성찬은 커다란 몸을 구기고 앉아 저를 반긴다. 늦었네. 혹여 왜 연락을 피하냐고 쏘아 붙일까 걱정했는데 평소와 다를바 없는 모습에 찬영은 성찬을 지나쳐 도어락을 열었다. 


"밥은 먹었어?"

"....네."

"근데 왜 이렇게 야위었어."


볼을 쓰다듬는 손을 피해 고개를 돌리자 허공에 멈춘 손이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애써 돌아서 가방을 내려 놓은 찬영이 냉장고를 열어 음료수 하나를 건네주었지만 저를 안아오는 몸에 음료수는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바닥에 떨어졌다. 미안해. 무엇이 미안하다고 하는 걸까. 잘못한게 없는 성찬이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하는데 찬영은 그 이유를 찾지 못해서 괜찮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이제 나 안 볼 거야?"


물기 가득한  말에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한 찬영이 제가 왜 형을 안봐요. 하며 태연히 웃어보였다. 나한테 화난 거 있어? 역시 아무것도 모르고 내뱉었던 사과에 허탈함이 일렁인다. 형은 여자친구가 있잖아요. 근데 왜 여자친구 앞에서 저한테 애기라고 불러요? 왜 저한테 뽀뽀해요? 왜왜왜... 묻지 못한 질문들 대신 성찬의 품에서 빠져나온 찬영이 찬장을 열어 라면을 꺼내들었다. 


"형은 밥 먹었어요? 안 먹었으면 라면 끓여줄까요?"


평소처럼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성찬을 향해 말했지만 성찬은 대답 대신 그런 찬영을 빤히 바라봤다. 어쩐지 피할 수 없는 집요한 시선에 마른 침이 넘어가는 목구멍이 따끔했다. 아니야, 나 이만 가봐야 돼. 목적지 없는 말에 찬영의 심장이 쿵. 또 다시 어딘가로 곤두박질 친다. 


"그래요 그럼."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현관 밖으로 밀어버리고 싶었지만 그조차도 성찬은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한 손으로는 운동화를 고쳐 신으면서도 남은 한 손으로는 제 손을 움켜 잡고 있는 꼴에 웃음이 나온다. 이제 나가기만 하면 되는 성찬이 또 다시 찬영을 불렀다. 

전화할게, 받을 거지?

... 당연하죠. 



그 날 정성찬에겐 2통의 전화가 왔고 당연하다는 대답과는 다르게 찬영은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학교에서 피치 못하게 마주치는 순간에는 찬영은 누구보다 빠르게 전화 하는 척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찬영아. 어디선가 성찬이 저를 부르면 죄송해요 교수님이 찾아서요. 집에 일이 생겨서요. 엄마 전화요. 등등 매번 다른 이유로 피했고 그건 제법 티가 났는지 옆에 있던 은석이 너네 싸웠냐 묻기까지 했었다. 

애도 아니고 뭘 싸워요. 그 말에 은석은 더이상 묻지 않았다. 하루 이틀 그렇게 피하고 나니 이제 정성찬은 저와 마주치면 찬영아 하고 부르는 대신에 앞에 서서 찬영이 피할 때까지 기다렸다. 마치 어디까지 하는지 지켜보는 사람처럼.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정성찬의 여자친구 인스타에는 둘 사진이 끊임 없이 올라왔다. 내가 걱정된다고 제발 전화 좀 받아달라고 카톡에 디엠에 문자까지 보냈던 사람 치고 사진속 정성찬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성찬을 피하게 되니 자연스레 찬영은 혼자가 되었다. 같이 밥을 먹었던 것도 다음 강의까지 뜬 시간에도 모두 성찬과 함께하거나 과방에서 시간을 떼웠던 그에게는 어쩐지 당연한 결과였다. 가끔 은석을 마주칠때면 어깨를 두드리는 묵직한 손길에 눈물이 날 뻔도 하는 걸 참은지 오래였다. 습관처럼 들어가는 윤아의 인스타에는 여전히 성찬의 사진으로 가득했다. 빌어먹을 짝사랑이 만든 습관은 미치도록 해로웠다. 

그래서였을까 며칠내내 지끈거리던 두통은 결국 몸살로 옮겨졌다. 너무 아파서 한동안은 일어나지도 못하고 잠만 자던 찬영은 끈질기게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가 잔뜩 갈라진 제 목소리에 제가 놀래 눈을 뜨였다. 


- 너 아파?

"... 은석이형?"

- 병원은 갔냐?

"... 아니요. 형 저 너무 아파요."

- 약은? 약이라도 사다줄까?


잘래요. 필요하면 전화하라는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와중에도 정성찬이 보고 싶어서 혹시나 은석이 성찬에게 내가 아프다고 말하지 않을까 그럼 달려올까? 아니다. 그동안 내가 자신을 피해다녔으니 저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며 넘기려나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땅속으로 꺼져들어가게 만들었다. 자는 동안 너무 아파서 119와 정성찬의 번호 사이에서 갈등했지만 그 사이 걸려 온 동기 전화에 집주소를 읊어줬다. 

고맙게도 한걸음에 달려와준 동기 덕에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고 나서야 다리에 힘이 붙었다. 서 있을 힘도 없어서 자신보다 큰 나를 업고 온 동기가 고마워 밥이라도 사겠다니 얼른 나아서 술을 사라는 말에 웃을 힘도 생겼다. 정말 혼자 갈 수 있겠냐는 말에 괜찮다고 하니 아프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며 끝까지 당부하다 멀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몇번이나 성찬과 나눈 카톡방을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택시를 내리고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엘리베이터에 내리는 순간에도 혹여나 성찬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까봐 기대했고 또 실망했다. 스스로가 원했던 일임에도 마치 그런 적 없다는 듯 두눈엔 눈물이 차올랐다. 


성찬과 다시 마주친건 응급실을 다녀오고 3일이 더 지난 후였다. 저 멀리서 학식을 먹으러 들어오던 성찬과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돌렸지만 어쩐일인지 그동안 아는채 하지 않았던 성찬이 성큼성큼 찬영의 앞으로 다가와 섰다. 아팠다며. 괜찮아? 고작 두마디에 눈물이 차올라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자 잠시만 하는 말과 함께 커다란 손이 평소와 다르게 아주 조심스레 이마와 목덜미를 차례로 짚더니 아프지말라는 소리와 함께 멀어졌다.


"그 혹시 성찬이형이랑 싸웠어?"


아픈 날 응급실에 찾아왔던 동기 말에 황급히 차오른 눈물을 닦고는 그런거 아니라며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보였다. 그게 형이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 끝을 흐리는 동기를 보자 아무래도 말은 해야 할 거 같다고 하며 찬영이 몰랐던 지난 밤 일들을 꺼내었다. 


사실 그 날, 성찬이 형이랑 마주쳤는데 형이 부탁하더라

자기 대신에 너한테 약 좀 가져다 줄 수 있냐고

그래서 전화했는데 너가 갑자기 와달라고 그래서... 

병원에 성찬이형도 있었어. 근데 형이 자기 보면 너가 불편 할 거라고

대신 옆에 있어 줄 수 있냐고 부탁해서, 


하루종일 동기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아직 성찬에게 나의 존재가 남아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그래봤자, 카페로 들어가는 정성찬과 여자친구를 보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집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술을 마셨다. 혼자 마실 배포가 없어서 은석이형을 불러냈다. 연거푸 들이키는 술잔에도 말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맞아 정성찬이 없는데 말릴이가 있을리가 없지. 씁쓸한 마음이 입안까지 헤집었는지 잔뜩 써진 입에 더이상 술도 먹고 싶지 않아 멍하니 앉아있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누가 그랬는가. 성찬과 멀어진지 2주가 넘어감에도 찬영의 상태는 오히려 더 안좋아졌다. 강의가 끝났음에도 멍하니 앉아있기 일쑤였고 뜨거운 커피를 시켜 놓고는 그냥 들이키는 바람에 혀가 데여 고생하기도 했다. 어디 하나 나사빠진 사람처럼 다니는 찬영 옆에는 어느새 은석이 자리잡았지만 그렇다고 그가 해결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언제까지 피할거야."


참다 못한 은석이 꺼낸 말에 찬영은 그저 고개만 푹 숙였다. 제 3자가 끼어 들 일은 아닌 거 같아 그저 지켜만 봤는데 찬영이나 성찬이나 나사하나 빠진 놈들 처럼 다니는게 답답했다. 누구하나 발 뻗고 자지 못하는 지금 이 상황이 의미가 있는건지, 도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궁금했지만 거기까진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은석은 찬영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고작 3년 더 살아서 뱉는 꼰대력이 아니라 더이상 둘 사이에 어느 누구하나라도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이왕이면 그게 어린 찬영이었으면 좋겠어서.


"그렇게 힘들면 차라리 고백해."

"끝을 봐야 끝나는 경우도 있는거야."


은석의 말에 어떻게 알았냐 묻지는 않았다. 아마 제가 하는 행동에서 티가 났을테고 눈치 빠른 은석은 그걸 알아차린 거겠지. 끝을 봐야 끝이난다. 사실 찬영도 알고 있었다. 지금 피하는 건 끝을 내고 싶으면서도 완전히 끝날까봐 두려운 비겁함이 낳은 행동이라는 걸. 근데 정말 우리에게 끝이 있을까? 끝이 나면, 그 다음은...


"이제 와?"


현관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성찬이 손을 뻗었다. 나 좀 일으켜주라, 다리가 너무 저려. 마치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불쑥 나타난 성찬은 일으켜 주지 않는 매정함에 혼자 일어나 찬영의 손을 잡곤 제 집마냥 비밀번호를 눌러 도어락을 열었다. 좁은 현관 안으로 찬영을 끌어 당긴 성찬이 단번에 그를 품에 가뒀다. 

보고 싶었어.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는 행동을 밀어내지 못했다. 몇번이나 보고싶었다고 속삭이는 목소리에 대답하지도 못했다. 내가 지금 끝을 낸다면 정성찬은 무슨 표정을 지을까, 정말 우리가 끝이 날 수 있을까? 알고 싶다. 우리의 끝이 어떤 모습일지.


"좋아해요."

"....."

"내가 형을 좋아해요."


품에서 떨어진 성찬을 똑바로 들여다봤다. 그동안 꾹꾹 감췄던 마음을 터트리자 저 밑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그게 너무 뜨거워서 좋아한다고 내뱉는 말이 목구멍을 태우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다 타들어 간 목에선 더이상 소리가 나오지 않을 거 같았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번 뱉었다. 내가 형을 좋아한다고.


"나도."

"....네?"

"나도 당연히 찬영이 좋아하지."


환하게 웃는 성찬의 얼굴에 남은 소리가 모두 타들어갔다.

우리의 끝이 아닌 나만의 끝이었다.

빌어먹을 짝사랑의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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