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설정을 일부 차용했습니다.

- 스파이더맨 파프롬 홈 이후의 이야기. 파프롬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오타, 비문 주의

- 파프롬에서 시간이 더 지나 피터는 갓 성인이 된 설정입니다.






피터 파커는 여느 때처럼 패트롤을 돌았다. 하지만 지금 세상에서 피터는 영웅이 아니라 영웅을 죽인 죄인이었다. 뉴욕 시내를 활강하는 스파이더맨을 보고 사람들은 욕을 했고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그를 향해 던졌다. 스파이더맨이 지나가던 자전거 도둑을 잡고 자전거를 되돌려 줘도 그는 감사 인사보다는 병이 옮을 것 마냥 진저리치는 얼굴을 하고 멀어졌고, 자주 들리던 달마르 샌드위치 가게에 가서 주문을 하면 주인은 들리지 않는 것마냥 무시를 했다. 피터가 아무리 올바른 일을 해도 사람들은 좋게 보지 않았고, 오히려 배신당한 상처를 단 눈동자와 원망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렇다고 피터가 스파이더맨의 가면을 벗을 수는 없었다. 왜냐면 스파이더맨이 누구인지 이름뿐만 아니라 얼굴까지도 다 미스테리오가 까발렸기 때문이다. 피터는 학교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가 살던 퀸즈의 메이 숙모의 집 담벼락에는 [살인자] [영웅을 죽인 죄인] [미스테리오를 살려내라] [기만자 스파이더맨] [악당] 등등의 글귀부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까지 스프레이로 적혔다. 피터는 메이가 기다리는 집으로도 돌아갈 수 없었다. 피터는 철저하게 가면 속으로 숨어야 했고, 피터 파커가 아닌 척해야 했다. 어벤져스에서 그를 돕자니 아직 그쪽도 상태를 재정비 하느라 바빴다. 해피를 비롯한 스타크 인더스트리에서 피터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전적으로 나서줬지만 그게 피터의 마음을 달래준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큰 폐를 끼치게 됐다는 생각에 우울할 뿐이었다. 

그래도 피터는 패트롤을 그만둘 수 없었다. 착한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이렇게 계속 좋은 일을 하다보면 언젠가 제 진심을 알아줄 날이 오리라는 낙관적인 방관이라도 해야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건 선택지에 없었다. 왜냐면 이곳은 토니가 목숨을 바쳐 지킨 세계였으니까.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구하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매일매일을 숨막힐 것 같은 외면과 원망속에서 캐런만이 대화상대가 되어버린 피터의 말수는 점점 줄어갔다. 어느샌가 하는 말이라곤 도와줬는데 감사받지 못했다. 다들 너무 무서운 시선으로 쳐다본다. 그런 부정적인 것들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내일은 괜찮을 거야. 힘내야지.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말도 하다보니 더 지치기만 했다. 말하지 못하는 것은 있어도 거짓말을 하지는 않던 삶이 거짓말 투성이가 되어갔다. 

어느날 습관처럼 패트롤을 돌던 피터는 건물이 붕괴하는 순간에 맞닥뜨렸다. 피터는 무너지던 무거운 돌덩이들이 최대한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거미줄을 치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뒤통수 너머로 건물을 무너뜨린 게 바로 스파이더맨이라는 비난을 들은 것도 같지만, 무시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피터는 사람을 구하는 게 더 중요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그래야만 했다. 왜냐고? 그게 스파이더맨이 할 일이었고, 그걸 무엇보다 바란 사람이 있었으니까. 

피터는 잔해에 깔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이럴 때 초인의 힘은 적잖이 도움이 많이 됐다. 다만 자기를 구하려는 게 스파이더맨인 걸 알고 꼭 해를 당할 것 마냥 겁먹은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피터의 손을 거부하려드는 건 좀 곤란했다. 결국 피터는 그가 더 깔리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게 하나 둘 잔해 속에서 구해내고 난 뒤 피터가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지반이 갑자기 울렁이면서 발 밑이 흔들렸다. 지반이 흔들린 탓에 기껏 해 놓은 조치가 도리어 다른 의도로 움직이려 하는 것을 본 피터가 깜짝놀라 웹슈터를 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건물은 2차 붕괴를 맞이했고, 그 속에 휘말린 피해자 중에 스파이더맨이 한명 더 추가되었다. 그 와중에도 피터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피터 찌리릿에 뒷골이 서늘했다. 하지만 지금 움직이면 눈앞의 사람이 죽을 지도 모른다. 결국 사람을 구하는 것을 선택한 피터는 콘크리트 덩어리가 머리에 떨어지면서 강한 충격을 받고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나. 피터가 눈을 떴을 때 주위는 깜깜했다. 피터는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썼다. 캐런이 [머리에 상처를 입었어. 흔들면 위험해] 하고 경고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피터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캐런.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거죠?”

[원인불명의 지진이 발생한 뒤, 2차 붕괴가 일어났어. 그리고 강력한 전파간섭을 받고, 난 잠시 기동을 멈춘 채였지. 재부팅 후 너의 상태를 스캔했어. 너는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고 상처를 입었지만, 그 외 다른 곳은 멀쩡해]

“여기는,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요?”

피터는 어깨가 으슬했다. 자신이 그들을 위해 했던 모든 일들이 2차 붕괴로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피터는 두려웠지만, 그래도 외면할 수 없었다. 

[너를 기준으로 생체 반응은 한 사람 밖에 없어. 네 바로 곁에]

“다 죽었다는 소리예요?”

피터가 울먹였다.

[아니. 그 외에는 사람의 형체를 한 물체가 없다는 뜻이야]

이상한 소리였다. 자기가 구하려 간섭한 사람들만 최소 열 명이 넘었다. 그런데 사람의 흔적조차 없다니 무슨 소리일까. 피터는 캐런이 말한 네 옆에 있다는 한 사람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캐런이 미리 적외선 모드로 변경해준 덕분에 어둠 속에서도 시야가 뚜렷했다. 캐런이 말했던대로 피터의 옆에는 의식 없는 남자가 잔해에 기댄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넥타이까지 갖춘 쓰리 수트의 양복을 입은 남자는 머리에서 흐른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다리 한 쪽은 잔해에 파묻힌 채였다.

“저기, 이보세요? 신사분?”

피터가 묻기도 전에 캐런이 생명에는 '아직' 지장이 없다고 알려줬다. 그나마 다행이다. 피터는 조심스레 의식이 없는 남자의 어깨를 잡았다. 

“저기, 저기요?”

피터의 손이 살짝 미끄러졌다. 그러면서 남자의 자세도 흐트러졌다. 옆으로 쓰러지려는 남자의 양 어깨를 피터가 재빨리 잡았다. 바닥에 쓰러지기 전에 잡아서 다행이었다. 안그래도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데 잘못하면 더 크게 다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피터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그게 채 다 나오기도 전에 피터는 눈을 크게 홉 떴다. 피터가 남자의 자세를 바로 잡아주면서 가려져 있던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토니……?”

남자는 토니 스타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캐런!”

피터가 울부짖었다. 그럴 리 없었다. 토니일리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온 몸의 모든 감각세포가 눈앞의 그가 토니라고 외치고 있었다. 캐런은 피터의 시선을 따라 토니로 보이는 남자의 분석을 했다. 

[오, 이런. 피터. 네 말이 맞아. 그는 스타크 씨야]

피터는 지금 상황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의식이 없었고, 머리에는 피가 흐르고, 다리는 잔해에 깔려……. 

피터는 우선 토니의 다리를 짓누르고 있는 잔해를 들어올려 그 안에서 다리를 꺼냈다. 잔해 아래에 있던 오른쪽 다리가 이상한 각도로 돌아가 있었다. 그 다음 피터는 토니의 심장 소리와 숨 소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머리의 상처를 캐런에게 부탁해 한번 더 상태를 확인했다. [의식은 없지만, 괜찮아. 피부가 찢어져서 피가 좀 났을 뿐이야] 가슴이 뜨거웠다. 아직은 생명에 지장이 없다던 캐런의 말이 새롭게 다가왔다. 피터는 그와 제 머리 위를 감싸고 있는 잔해를 두 손으로 짚어가며 어떻게 하면 문제 없이 그를 여기서 꺼낼 수 있을 지 고민했다. 캐런이 피터가 원하는 점을 집어 분석해줬고, 그 데이터와 피터 자신의 손에 느껴지는 감각을 동원해 피터는 붕괴의 위험이 없는 부분을 하나씩 치워갔다. 왜 토니가 여기 있는지 왜 자기가 여기 있는지 모르겠지만 빨리 구조해야 했다. 이대로 그가 잘못되면 안 된다. 그렇게 둘 수 없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두 번씩이나 그럴 수는 없었다. 

피터는 필사적이었다. 토니를 등에 짊어지고 조금씩이지만 잔해를 치워가며 공간을 만들고 이동했다. 스파이더맨 슈트 안이 땀으로 가득찼다. 땀을 제거하는 기능은 예전에 망가졌다. 영웅을 죽인 범죄자로 지명수배된 피터는 슈트를 고칠만한 공간도 기구도 확보할 수 없었다. 거미줄 용액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하는데만도 버거웠다. 

얼마간 그렇게 이동하자 바깥 공기가 느껴졌다. 토니가 갇혀있던 곳은 지하였고, 그곳을 벗어나자 다행히 두 사람이 움직이는데는 큰 무리 없을 정도의 공간이 나타났다. 무너진 건물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검었다. 헬리콥터의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요란한 소리도 들린다. 피터는 하늘이 보이는 최대한 가까운 기둥에 거미줄을 날렸다. 두 사람 분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지 붙은 거미줄을 잡아당겨 확인한 피터는 곧 힘차게 날아올랐다. 천장이었을 콘크리트를 집은 피터가 쑤욱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자 강한 불빛이 눈을 찔렀다. 헬리콥터에서 내리쬐는 빛과 갖은 조명. 카메라의 시선. 구조원 뿐만이 아닌 다른 목적을 지닌 사람들 모두의 눈동자가 피터를 향했다.

마이크를 들고 있던 아니운서가 입을 열었다. 그는 피터와 그의 등에 엎힌 토니를 손짓하며 우람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기 토니 스타크씨입니다! 의식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드디어 스타크 씨의 구조에 성공한——.”

그의 한 마디를 계기로 모여있던 매스컴은 앞다투어 소식을 전했다.

“금일 오후 스타크 공장에서 발생한 대형 사고는——.”

“행방불명 상태였던 토니 스타크씨의 구조가 지금 막——.”

“……캐런…….”

[응, 피터]

“저 사람들 다 이상해요. 나도 이상해. 내 등에 엎힌 이 사람도. 왜 다들 이 사람을 토니라고 부르는 걸까요?”

[……그건 나도 모르겠어, 피터]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스파이더맨 가면 속에서 피터가 소리 없이 울었다. 그냥 다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토니가 죽지 않아서. 토니를 구할 수 있어서. 토니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이게 지금 꿈이라도 좋았다.

“스파이더맨?”

피터를 알아본 구조원들이 멈칫했다. 피터는 한탄했다. 스파이더맨은 지금 세상의 영원한 악역이었다. 이런 것까지 현실을 반영해 줄 필요는 없는데. 하지만 꿈은 무의식의 결정체라지. 현실에 기반할 수밖에 없었다. 피터는 머뭇머뭇 해하려던 게 아니라 구하고 있었다는 변명을 정말 오랜만에 하며 토니를 살며시 내려놨다. 구조대가 토니를 들것에 실어 옮겼다. 피터는 그들을 따라가고 싶었다. 몸이 움찔했다.

“세상에, 당신 살아 있었어요?”

“네?”

“———저기 보십시오! 스파이더맨입니다! 새로운 스파이더맨이 나타나기라도 한 걸까요?”

“스파이더맨! 당신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나요?!”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다니! 본인 맞으신가요?”

“얼마 전 사망소식을 전해드린 스파이더맨이 나타나 토니 스타크를 구출———.”

주춤 주춤, 피터는 뒤로 물러났다. 죽어? 누가? 내가? 죽었다고? 그리고 다시 살아나? 

“스파이더맨!”

당혹스러웠다. 왜 저런 표정을 하고 저에게 다가오는 지 모르겠다. 얼굴에 핀 웃음이 기괴한 가면처럼 보였다. 피터는 몇 발자국 더 뒤로 물러서다 거미줄을 발사해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오가며 어딜 가는 건지도 모른채 그저 끊임없이 거미줄을 탔다. 

스파이더맨이 환영받고 토니 스타크가 살아있는 세상. 그런 꿈같은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니. 부푸는 풍선마냥 뒤죽박죽 섞인 감정이 벅차오른다. 과하게 부푼 풍선은 한계치를 넘어가면 터질 뿐이다. 가면 속에서 피터가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얼굴은 가려져 아무도 보지 못했다. 피터 자신 조차도. 캐런만이 그 얼굴을 인식할 수 있었다. 캐런의 메모리에 기록된 표정은 피터가 본 가면을 닮아 있었다. 






피터는 얼굴을 꼬집어도 봤고, 때려도 봤다. 꿈이라면 정말 아쉽지만 깨야 했으니까. 현실세계에서 피터는 도망자 신세였고, 미스테리오 살인 건으로 수배도 된 상태였다. 미스테리오는 죽었지만 또 누가 그와 같은 일을 벌릴 지도 모를 일이다. 뭐가 됐든 피터는 세상을 지키는 수호자여야 했고 그러려면 아무리 달콤한 꿈이라도 깨야했다.

하지만 피터는 무슨 짓을 해도 꿈에서 깨지 못했다.

[꿈이 아니야, 피터]

“말도 안돼. 그럴리 없어요.”

[네 뇌파는 의식이 있는 상태의 정상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어. 각성상태지. 나도 왜 이런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꿈은 아니야, 피터]

이런 꿈같은 세상이 꿈이 아니라니. 그럼 환상인가. 그럴 지도 모른다. 실제로 미스테리오가 구현한 환상은 실제처럼 느껴지지 않았던가. 같은 수법을 쓰는 빌런이 새로 나타났다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피터는 눈을 감고 스스로의 감각에 집중했다. 환상 속에서 시각은 방해만 된다.

“캐런.”

피터는 눈을 감은 채 캐런에게 조사를 부탁했다. 왜 스파이더맨이 죽었다고 하는 건지, 토니는 왜 살아있는 지. 하나도 남김없이 다. 정보가 필요했다. 이게 만약 환상이 아니라면, 캐런이 충분한 자료를 챙겨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 또한 왜곡된 청각이라면, 피터는 충분한 소재를 가지고 감각을 총동원해 판단해야 했다. 

캐런은 피터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피터는 캐런이 읊어주는 정보를 들으면서 그가 진짜 제가 알던 그 캐런이 맞는지 되묻고 또 되물었다. 육감은 오감을 능가한다. 편리 속에 집단을 이루며 사는 인간은 잊어버렸지만, 아직 약육강식의 생태계에 던져진 생명체들은 본능적인 위협을 안다. 거미가 가져다 준 동물적인 감각은 그 무엇보다 신뢰가 된다. 피터는 그 감각을 통해 캐런의 목소리가 거짓으로 점철된 위협이 아님을 알았다. 피터는 가벼운 숨소리를 뱉어 긴장을 지웠다.

[퀸즈의 새 영웅? 거미줄을 타고 다니는 히어로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의 선행. 길을 잃은 노파는 스파이더맨 덕분에 딸의 집을 찾아 갈 수 있었다고 감사해 했으며, 가방을 도둑맞은 회사원 A씨는 스파이더맨이 도둑을 잡아준 덕분에 계약금이 들었던 가방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고……]

[뉴욕을 뒤흔든 테러집단의 폭발사고를 스파이더맨이 막아……]

[2023년 X월 X일. 스파이더맨이 시체로 발견되었다. 가슴에 큰 상처를 입은 채였다. 그가 죽음으로써 그의 정체가 컬럼비아 대학원에 재학중이던 피터 파커(26세) 씨라는 것이 밝혀졌다. 스파이더맨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히어로였으며……]

[스파이더맨이 피터 파커 씨가 아니라는 의혹도 제기되었으나, 피터 파커 씨가 사망 후 스파이더맨의 활동이 사라졌으며……]

[스파이더맨은 8년전부터 뉴욕을 지켜주던 히어로로써……]

[스파이더맨의 죽음으로 그를 좋아하던 추모의 물결이 이어져, 피터 파커의 숙모인 메이 파커(65세) 씨는……]

[스파이더맨 살아 있었다?! 스타크 사의 공장폭발 사고에서 토니 스타크를 구출한 것이 다름아닌 스파이더맨으로 밝혀져……]

스파이더맨의 흔적은 피터가 알고 있던 제 행적과는 사뭇 달랐다. 무엇보다 나이가 달랐다. 피터는 이제 갓 성인이 된 나이다. 이곳의 스파이더맨의 나이는 블립을 격지 않았다면 먹었을 제 나이였다.

“스타크 씨에 관한 건?”

[스타크가 피랍?! 무기 시연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했던 토니 스타크(38세) 씨가 무장 세력의 공격을 받고 실종되었다. 범인들로부터 연락은 없으며……]

[3달간 행방불명 상태였던 토니 스타크가 돌아왔다. 팔에 기브스를 하고 휠체어를 탄 토니 스타크 씨가 무사히 귀환하는 모습이 포착되었고……]

[스타크 인더스트리에서 제조한 무기를 테러 집단에게 빼돌려 개인적 수익을 챙긴 사람은 토니 스타크의 대부이자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이사인 오베디아 스탠으로 밝혀져……]

[토니 스타크(39세) 씨가 발명한 아크 원자로는 신소재 공학에 혁신적인 발전을 가져왔으며, 스타크 사는 이를 바탕으로 한 발전소 사업에 한 발짝 내딛었다. ……]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토니 스타크(42세) 씨가 범죄 조직의 피해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위한 자선행사에 나서……]

[토니 스타크의 열애설? 이번 상대는 10살 아래의 모델 A씨로 그녀는 토니 스타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스타크 사 소속 공장에 시찰 중이던 토니 스타크(48세) 씨가 폭발사고에 휘말려 생존확인이 불가능하다. 이는 스타크 사의 주식에 곧바로 영향을 미쳤으며……]

토니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피터가 알고 있던 토니의 행적과 달랐으며, 나이도 달랐다. 이곳의 토니는 제 세계의 토니보다 더 어렸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가장 있어야 할 기록이 없었다.

“어이언맨은? 왜 아무데도 아이언맨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하지?”

[토니 스타크는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CEO 겸 기술고문이자 과학자이며, 사업가이다. 그 외 별명을 제외한 다른 호칭은 나타나지 않아. 아이언맨에 대한 정보도 존재하지 않는 걸로 확인 돼]

“그럴리가……. 그럴리가 없어. 그, 그럼 어벤져스는?”

[어벤져스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야. 기록에 없어, 피터]

피터는 이어 캐런에게 정보를 요청했다. 다른 어벤져들. 캡틴 아메리카나 토르, 블랙 위도우, 호크아이…….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그런 기록은 존재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캡틴 아메리카만이 세계대전에서 미국을 구하고 목숨을 잃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그는 다시 발견된 적이 없으며 따라서 그 시절에 죽은 그 상태로 변함이 없다. 구국영웅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이었다. 

우주로부터 침공해 온 흔적도 없었다. 뉴욕 사태도, 피터가 블립을 겪은 타노스와의 전투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스파이더맨이 환영받고, 토니 스타크가 살아있는 세상. 그리고 어벤져스가 없고, 아이언맨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왜 제가 이런 곳으로 오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 세계에는 토니가 살아 있다. 살아 있었다.

그렇지만 피터는 알 수 없었다. 꿈이든 아니든 이 세계에 제가 존재하게 된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이걸 기뻐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마냥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세상에서 피터는 그저 제가 이방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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