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네임버스란?

태어날 때 신체 부위의 일부에 소울메이트의 이름이 적혀져 태어남. 주로 손목, 손등. 처음부터 이름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도 존재함. 이 경우에는 나중에 이름이 나타남. 이름이 적혀있는 걸 수치스럽게 생각해 숨기는 경우도 다반사. 적혀진 글씨를 보며 소울 메이트를 찾는데, 가까이 있는 경우는 선명해지고 심박수가 빨라지는 등의 신체 변화가 일어남. 반짝이는 경우도 있다고. 상대가 멀리 있거나 죽은 경우는 글씨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함. 

- 네이버 블로그 퍼옴 








욕탕 안의 용왕











요새 들어 자꾸 쇄골 부분이 뜨끈뜨끈거린다. 그런 기분 있지 않은가. 피부 위에 커다란 여드름이 난 것처럼 빨갛게 물들어서 그 부위가 욱신욱신 쑤시고 아픈 거. 처음에는 모기 물린 줄 알고 벅벅 긁어도 보고 약도 발라봤는데 이상하게 낫질 않는다. 약 한 달 전부터 이런 아픔이 지속되고 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이유를 모르겠다. 심지어는 이러다가 죽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된 나머지 대학병원까지 다녀왔으면 말 다했지.


내가 모르는 새에 내 쇄골뼈를 부러트린 건 아닌가 싶어 정밀검사까지 받아봤지만 그때마다 나오는 결과는 정상. 즉 내 쇄골이 불타오르고 있는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정말 특이한 일이다. 내 몸에는 그 어떠한 문제도 없는데 존나 아파 뒤지겠다고. 설마 이 세상에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질병이 내게서 나타난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이러다 나 죽는거 아니야? 싶다가도 난 강인하니까 이런거에 절대 지지 않지를 반복했다. 아직 쇄골 밑 부분이 뜨끈뜨끈거리고 가끔 아려오는걸 제외하면 내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큰 문제는 없을 듯싶어서 잠시 관심을 꺼두기로 했다. 결국 그렇게 질질 끌어 온 지 어언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이때까지 버티고 있는 나도 참 대단하고 또 대단하다.


아, 자꾸 쇄골 밑부분 있는 곳이 쑤시네. 나는 잠에서 덜 깬 얼굴로 목을 벅벅 긁으며 욕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인간이란 적응의 동물이라고 이러한 통증도 한 달 동안 계속 반복되다 보니 그러려니 하게 되더라. 오랜만에 시간도 많은데 목욕이나 해볼까 하고 욕조에 뜨거운 물과 입욕제를 풀었다. 아침부터 웬 목욕이냐 개 뜬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상하게 오늘따라 새벽부터 쇄골이 녹는 것처럼 온 몸이 뜨거워지는 바람에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 여태껏 별 생각 없이 지내왔는데 조금 심각성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쇄골만 아프던 게 곧장 열병으로도 이어지는구나.


한탄한다. 어차피 잠도 못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난 거 목욕으로 아픈 것들을 깨끗이 훌훌 털어버리자는 이유를 붙여 나는 지금 당장 아침 목욕재계를 시작했다. 오늘 깨끗이 목욕하고 다시 병원에 가봐야지 싶다. 그래도 가느다란 내 목숨은 소중하게 잘 유지해야 하지 않은가. 20년 동안 열심히 살아온 소중한 목숨인데 이렇게 모르는 병으로 인해 목숨 아웃 되는 것은 사절이다.








"이게 뭐냐. 글자인가."









옷을 훌러덩 벗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안에 비친 내 모습 중에 이질적인 것이 하나 포착되었다. 한 달째 항상 붉게 물들어있던 쇄골 밑에 무언가 희미한 글자 같은 것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실 이게 글자인 건지도 잘 모르겠다. 꼬부랑꼬부랑 흘려서 선이 막 그려져 있는데, 뭔가 자세히 보니 글자 같았다는 말이다.


거울 가까이에 쇄골을 가져다 대고 꼬부랑거리는 선들을 내 머리를 싸매가면서까지 해석했다. 희미하게 보이던 선이 자세히 보니 읽히는 것도 같다. 에... 그러니까, 이거 뭔가 정 같은데. 그래. 앞 글자 이거 정 같아. 눈은 왜 이렇게 침침한지. 정..... 정...재....재 맞나? 음...혀...혀언......현......?






"정재현?"







아니 이거 누가 봐도 사람 이름 아닌가? 나는 내가 모르는 새에 몽유병에 걸려 혼자 밤마다 문신을 새겼던가 하는 생각까지 들어왔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쇄골 밑에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던 글자가 왜 떡하니 생겼냐고. 나는 혹시나 해서 쇄골 밑 부분을 벅벅 손으로 문질러봤다. 에이 설마. 설마 진짜인 거야? 어쩐지 내 거친 손길에 피부는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이상하게도 꼬부랑글씨는 지워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염병할. 나는 머리를 쥐어 잡고 끙끙거렸다. 이거 대체 뭐야. 이제껏 내가 병원을 잘못 찾아간 건가. 정신병원으로 갔어야 했나. 어느새 상황 파악을 하는 내 입에서는 깊은 한숨이 터져 나온다. 모르겠다. 일단 씻고 보자. 씻으면 사라졌을지도 몰라. 이태리타월 어뒷써!!! 싹 다 밀어버릴랑께. 때밀이로 밀면 싹 다 지워진다 이거야. 나는 두 팔을 걷어 올리고 불안에 찬 나를 애써 위로하며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몸으로 욕조 안에 들어갔다.






"아아악-!"









욕조 안에 들어가자마자 웬일인지 내 머리 위로 물이 쏟아져 내렸다. 푸허, 나는 물미역처럼 내려앉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숨을 급하게 들이쉰다. 뭐야. 무슨 목욕하는데 물 한 바가지가 천장에서 쏟아지냐. 나는 놀란 마음에 급하게 천장을 바라본다. 그리고 발견한다. 욕실 천장 끝까지 솟아올라서는 나를 금방이라도 덮칠 것 같은 거대한 파도가 내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을 말이다.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급하게 내 입을 양손으로 덮으며 두 눈을 크게 뜬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우리 집 작은 욕실에 거대한 파도가 밀려들어 오고 있다. 말이 되냐고!!!! 아아아아아악-! 씨발 저게 뭐야아아아!!!!!!!! 욕탕 안으로 밀려들어 오는 파도를 마주 본 채 나는 한 번 더 목청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파도/밀려들어오는중)


"꺄아아악-!!!!!!!!!!!"

(김여주/20세/목욕탕 안/파도와 마주보는 중/엄마야/누가 나 좀 살려줘)







내 위에서 웅장하게 크기를 뽐내던 파도는 결국 그대로 밀려와 나를 덮쳤다. 꼬르륵 거리는 공기 방울 소리와 함께 나는 파도 안 깊숙이 빨려 들어간다. 이게 말이 되냐고? 씨발 나도 몰라. 말이 안 되는데 진짜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인데.......


그 믿기지 않는 일이 지금 내 눈앞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다. 꿈인가. 정녕 이건 꿈인 건가. 이렇게 생생한 꿈도 다 있나. 나는 숨을 꾹 참으며 두 눈을 깜빡인다. 더 이상 숨의 한계점을 느낀 나는 입을 열었다. 물이 잔뜩 내 입으로 들어와 가글을 시도한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물만 잔뜩 삼켜댔다. 아, 신이시여, 저는 이렇게 허무하게 죽나요. 욕탕에서 빨가벗고 이렇게 죽는 거예요?


나는 어떻게든 이 파도에서 나가보려 애를 써보지만, 돌아오는 건 똑같은 그 자리, 그 곳이었다. 게다가 계속 둥둥 떠 있는듯한 이 안 좋은 공중 부양 느낌과 물가글까지. 포기는 빨랐다. 나는 이 파도 속에 갇혀 나가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 어차피 갇혀버린 거 걍 이렇게 뒤져버리지 싶다. 아. 짧은 내 20년 인생, 아듀. 즐거웠다. 생을 이렇게 마감하나 싶어 두 눈을 감으려고 할 때, 무슨 일인지 갑자기 내 눈앞에 듣도 보도 못한 생물이 나타났다.








"헐, 용이다."








나는 밀려들어 온 깊숙한 파도 속에서 용을 마주 본다. 그것도 어딘가 잔뜩 몸이 불편해 보기는 용을 말이다. 뭐야. 이거 꿈인가. 나 기절한 거야? 아님..... 설마 천국?













욕탕 안의 용왕











끔뻑 끔뻑. 나는 두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여기 어디? 난 누구? 나는 무거운 몸을 끙차 소리를 내며 반쯤 일으켰다. 그렇게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잠시, 나는 내 눈 앞에 펼쳐진 환경에 감탄했다. 우와 예쁘다. 물고기가 하늘을 둥둥 떠다녀. 막 내 앞에서도 돌아다니네. 진짜 무슨 바닷속 안에 들어온 거 같다. 한참을 감탄하던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 바닷속 말이지. 맞아.... 바...닷....속...... 그래..... 그 바다.... 물고기 헤엄치고 거북이 날아다니는 언더 더 씨라고. 지금 여기 바닷속이라는거지?


응? 언더 더 씨? 해저? 잠시만, 지금 왜 내 옆, 앞, 뒤로 물고기들이 와장창 떠다니는거지? 저거 진짜야? 진짜 맞냐고. 나는 기겁을 하며 한껏 동공지진의 상태로 주변을 빠르게 둘러본다. 뭐야, 진짜 바닷 속이야. 제주도에서 스노우 쿨링 했을때 봤던 풍경이랑 완전 비슷하다고. 나는 잔뜩 겁을 먹는다. 나 숨 쉬는거 가능? 급하게 손을 코에 가져다대고 습습훕훕 쉼호흡을 내쉬어 보는데 숨이 쉬어진다. 나는 감탄했다. 설마 나에게 또 다른 재능이 있었던건가? 예를 들면 아가미라던가.......


아악-! 순간 내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터져나왔다. 갑자기 쇄골 부분이 불에 데인듯 뜨거워진 까닭이었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 쇄골 밑 부분을 살살 문지른다. 아, 아파. 갑자기 왜 이렇게 아프지? 여기 혹시 거울 같은거 없나. 나는 거울을 찾으려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가 내가 방금까지만 해도 누워있던 이 곳이 침대 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 나 방금 침대에서 자고 있었구나. 신기하게 바다에 침대도 있네. 바다에 침대가 있으면 매트리스가 물을 다 먹으니 장수 돌침대 뭐 이런건가? 쓸데 없는 생각으로 잠시동안 시간을 보내다가 나는 문뜩 또 다시 깨닫는다. 나... 방금 내 맨 살을 만진거 맞지? 쇄골 만질때 그 주변에 뭐 걸리적거리는게 없었는데. 나는 가만히 내 바디를 내려다봤다. 그러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채 완전히 빨개 벗고 있는 내 몸이 정확히 내 눈에 박혀왔다. 시발. 이게 뭐야. 나는 가만히 내 몸을 내려다보던 시선을 슬쩍 돌려 옆을 바라봤다. 그리고 마주하게 된.....






와.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내 옆에 방금 눈을 뜬 남자도 맨 몸이야. 눈 돌아가겄네 진심. 환장하겄다.







"흫흫흫흐......누구세요......"







나는 곧장 남자를 위 아래로 훑다가 음흉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물었다. 저기 당신은 뉘신데 나랑 같이 홀벗고 여기에 누워있습니까? 나는 멍청히 두 눈을 꿈뻑였다. 솔직히 엄청 놀랄만 했는데 남자가 넘나도 핫바디에 얼굴까지 완벽해서인지 놀라려던 마음도 진정되고 딱히 놀라진 않더라. 남자의 얼굴만 봤는데 뭔가 세계평화가 찾아왔다. 그래, 저렇게 잘생긴 남자가 내 옆에 누워있는걸 보니 이건 꿈이 확실해. 설마 나 목욕탕에서 졸고 있는건가. 참 상상력도 풍부하지. 이렇게 모르는 잘생긴 남자를 상상해내고 말이야. 아주 칭찬해 김여주.


아예 쇄골이 뜨끈뜨끈 아프다는 것을 잊어버릴 만큼 잘생긴 남자를 내 앞에 두고 헤실헤실 웃고있을 때었다. 남자가 몸을 일으켜 내게 가까이 몸을 붙여왔다. 어머어머, 웬일이래. 이렇게 야한 꿈 있어? 개이득인데? 어차피 이 모든게 꿈이라고 생각한 나는 다가오는 남자를 막지 않았다.


이 드넓은 침대에 나는 남자와 알몸을 벗은 채 가까이서 마주봤다. 아, 쫌 부끄럽긴 하다. 남자의 알몸을 본 게 전 남자친구 놈인데 그것도 어언 네달 전...... 오랜만에 마주하는 남자의 알몸은 나를 생기돌게 만들었다. 아, 변태냐고? 맞다. 나 완전 변태다. 나는 갑자기 빠르게 움직이는 헤모글로빈을 느끼고 침을 꿀떡 삼킨다. 뭐야, 혈액순환 오지구요. 전남자친구는 무슨 씨발 비교도 안 돼 걍 존나 좋아 큐울-








"찾았다 내 운명."








남자는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입꼬리를 올려 웃는 가벼운 미소에 나는 넋이라도 나간듯 멍해진다. 이것이 정녕 닝겐의 피사체인것인가. 아니지, 내가 만들어낸 피사체이지. 내 상상 속 인물이니깐. 내가 남자의 눈을 마주본 채 두 눈을 꿈뻑거리고 있으면 그는 손을 올려 내 쇄골 밑을 쓸어내린다. 어쩐지 이상하게도 남자의 손이 닿자 마자 내 쇄골 밑이 미친듯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핫 뜨거 뜨거 핫 뜨거 뜨거 핫. 비정상적으로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헤모글로빈이 개썅 난리를 친다. 사실을 말하자면, 남자를 보고 두근거리는 느낌 때문이 아니라 정말 몸 전체가 반응하는 것 처럼 막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 너무나도 생경하고 처음 겪어보는 느낌에 이게 정말 꿈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왔다. 설마 천국? 나 뒤진건가. 아니, 그건 아닐거다. 난 확신했다. 이상하게도 배경, 남자, 상황, 다 비정상적인데 반해, 내 몸만은 이곳이 지금 현실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도 그럴게, 내 몸속을 빠르게 도는 헤모글로빈이 열심히 자기주장을 해왔기 때문이다. 얌마, 김여주. 너 지금 살아있어 이것아.









"김여주."







남자가 어떻게 안 것인지 방금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러니까. 방금 이 남자 내 이름 불렀어. 시발. 이거 뭐야? 근데 그 순간 남자의 쇄골 밑에서 무언가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남자의 쇄골 밑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김. 여. 주. 짙게 문신처럼 박힌 내 이름이 그 남자의 부름에 응답하는 듯이 그의 몸에서 반짝거렸다. 오 쉣, 나는 입을 틀어막고 슬쩍 내 쇄골 밑을 내려다봤다.


설마, 설마...... 내 쇄골 밑에 글씨가 아까 욕실에서 거울에 비춰봤을 때보다 훨씬 더 짙어졌다. 아니, 짙어진 수준이 아니라 거의 문신 수준이다. 나는 멘탈의 붕괴가 오고 있는 정신줄 하나를 붙잡고 아까 내 쇄골 밑에 써져있었던 글씨를 입 밖으로 조심스럽게 내뱄었다. 혹시, 님이 그..... 정..재..현....? 남자의 이름을 부르기가 무섭게 내 쇄골이 빛이 나기 시작한다. 마치 정답입니다!를 외치듯이.








"응, 맞아. 나 정재현."










네 운명이 될 사람. 말도 안되는 그의 말에 나는 두 손으로 머리털을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씨발, 이게 뭐야. 이런 말도 안되는 판타지가 어딨어.













욕탕 안의 용왕












"......제가 결혼을 하는건가요?"


"네! 용궁의 안주인이 되시는거죠! 오늘 부인께서는 최고로 아름답고 행복한 여인이 되실거에요."


".........행복.... 행복이라......"


"정말 부럽습니다. 서로의 몸에 이름이 새겨져 운명처럼 용궁의 안주인이 되시다니, 이 얼마나 부러운 일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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