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공룡이 지구상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가장 아름다운 동물이라 말하곤 했다. 어릴 적 당신께서 보여주신 <쥬라기 공원> 씨리즈와 각종 다큐멘터리는 작고 동그란 나의 머리로부터 영혼을 쏙 빼어버리기에 충분히 매혹적이었다. 인간이 얼마나 오만한 동물인지 깨달은 것도 모두 공룡 덕택이었다. 그들 앞에 선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기에는 너무나 초라했기에.


  두 살 터울의 우리 남매는 언제나 다양한 장난감들을 끼고 살았다. 그것은 오빠와 내가 각자의 취향을 스스로 찾아내고 즐기기를 바란 엄마의 육아 방식이었을 테다. 공주를 구하는 백마 탄 왕자님에 관심이 없던 일곱 살의 나는 갖가지 작은 빵 모형이 딸린 분홍색 집과 바비 인형보다는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담긴 공룡 피규어들을 좋아했다. 어느 가을날, 영어 학원에서 열린 조악한 할로윈 파티에 입고 가야 했던 반들반들 빛이 나는 연보라색 치파오는 내게 굴욕감만을 안겨주었다. 손톱을 우물거리며 뚫어져라 쳐다본 바닥에는 거미 모양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그것이 흐려질 즈음 노란 탁구공을 눈에 박아 넣은 티라노사우루스가 머릿속을 마구 헤집고 뛰어다녔다.


  아파토사우루스의 기다란 목이 그리는 매끈한 곡선에, 벨로시랩터의 날쌘 몸놀림에, 기가노토사우루스의 우렁찬 포효에 푹 빠진 나는 한참을 그 너른 수면에 표류했다. 이제는 발밑에 파묻혀버린 그들이었으나, 땅을 파내면 드러나는 늑골마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 커다란 뼛조각들 사이에 낀 흙먼지를 조심스레 털어내는 상상을 하며 누런 켄트지가 헤지도록 붓질을 해댔었지. 겨우 발굴해낸 것은 내 밑바닥뿐이었다만, 창문을 죄다 막아 환기가 되지 않던 화실의 뿌연 공기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가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엘라스모사우루스가 되지 못 했다.


  시간이 흘러 흘러 인간인 나는 어른이 되어 세상에 나와버렸다. 어른이라 해봤자 여전히 공룡에 끈끈한 애정을 지닌 십수 년 전의 나와 다름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스무 살이 되었으니 자유를 만끽해야했고, 동시에 제가 벌인 일에 책임을 다해야 했으며, 많은 것들을 보고 들으며 직접 겪어봐야 했고, 그러면서도 멍청한 일을 함으로써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으로, 앞가림을 해야 했고 체면을 차려야 했다. 어리고 또 아둔한 나는 주변 사람들을 흉내 내며 어른인 양 행동하였다.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끊임없이 눈치 보고, 따라 하고, 또 후회하면서.


그러자 주위에서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야, 우리도 이제 화석이야."


  그치만 엊그제만 해도 우리는 그저 어린애일 뿐이었는걸. 울상이 된 나는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푸르른 캠퍼스에는 갓 스물이 된 아이들이 재잘대며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래봐야 몇 살 차이 난다고, 그렇게 생각해 보아도 왠지 모를 불안감이 그림자가 되어 따라붙어 어디든 함께하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머리카락이 볏짚처럼 말라버리고 손등은 갈라지기 시작했다.


  부스러지는 피부를 손톱으로 긁적이며 나의 존재에 대하여 물었다. 나의 미래, 나의 능력, 나의 쓸모에 대하여 묻고 또 물었다. 저는 아직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는데, 어찌 살아가면 좋을까요. 그러면 모두가 웃으며 답하기를, 아직 어리니까 괜찮아. 조급해하지 말아. 그러더라. 맞는 말씀이다. 요즘은 백세 시대, 아니, 백이십세 시대라던데. 스물여섯이야 뭐, 어린 애지. 그리 생각하며 떠먹여주는 밥을 받아 처먹던 나는 다시 주변을 훑어보았다. 여전히 제자리를 찾아가는 사람들뿐이었다.


  쌀알이 으깨어져 은은한 단맛이 입안에 퍼질 즈음에 꿀꺽 삼키자, 더 이상 배가 고프지 않게 되었다. 나의 침대는 납작하고 딱딱하며 또 차디차다. 그 위에 누인 나의 몸은 점점 수분을 잃고 풍화되어간다. 나의 지난날의 영광을 여적 반찬 삼아 쉰 밥을 꾸역꾸역 삼키는 엄마의 뒷모습은 가시가 되어 나의 눈물샘을 쿡쿡 찔러댄다. 굳어가는 눈물샘에 작은 구멍이 여러 개 뚫리자 눈물 한 방울이 겨우 비집고 나왔지만, 흘러내리기도 전에 그대로 눈가에 흡수되어버린다.


  방 이곳저곳에 널린 공룡의 모습을 한 솜뭉치와 플라스틱 조각들은 가짜 눈알을 달고 나를 쏘아본다. 동그랗고 반짝이는 가짜 눈알들, 그들을 피해 시선을 돌릴수록 모래 한 움큼을 쑤셔 넣은 듯 아프다. 탁한 흰자는 붉게 물들고 통증이 온몸으로 퍼지며 손등에 힘이 들어가 핏줄이 울룩불룩 솟는다. 살려달라 외치려 입을 벌리면 완전히 굳어버린 혀가 쩍쩍 갈라지며 석회가루가 일어난다. 그것은 기도를 타고 폐 속에 깊이 맴돌며 기침을 유발한다. 온몸이 격하게 흔들릴 때마다 온 방안에 흙먼지가 날린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의 작은 몸을 온 힘을 다해 품속에 담을 때면 뜨뜻한 숨결에 맺힌 물기가 내게 흡수되는 것만 같아. "


"하지만 홀로 있을 때면 금세 사라져버린단다."


나는 다시 침대로 돌아와 그것과 한 몸이 되어버린다. 


비록 나는 파라사우롤로푸스가 되지 못 했지만 울 엄마는 마이아사우라.

다시는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어. 

그 커다란 앞발로는 붓을 쥘 수가 없어.

나의 귀는 더 이상 당신의 울음소리를 담을 수 없어.


그렇게 화석이 되어간다.




짧은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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