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전 물건을 받아 오느라 가져온 차 시트가 차갑다. 내내 세워져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이럴 땐 정말 싫다. 히터를 서둘러 높이는 동안에도 아래턱이 떨렸다. 조금만 참자. 조금만. 왜 이렇게 추위에 약할까. 가을 태생이면 추위에 면역성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게 다 어릴 때 아무도 안아주지 않은 탓이다.

 얼토당토않은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추웠다. 카페 안이 워낙 따뜻해, 하루 내내 느끼지 못한 찬기에 몸이 아린다. 장부 정리에 창고 확인도 하고 수량도 채워 넣느라 조금 늦게 퇴근하는 건데 이렇게까지 추워질 줄은 몰랐다. 이러다 감기 오겠네.

 열이 슬그머니 오르는 엉덩이 아래로 손을 끼우고 있으려니 전화기가 울린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서둘러 받았는데 반가운 목소리가 들리자 떨림이 멎었다. 그런 자신이 웃기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참나. 어디냐 묻는 밝은 음성 하나에. 실로 좋았다.


“이제 막 나왔어요.”

- 퇴근이 왜 이렇게 늦었어요!

“그러게. 오늘은 정리할 게 조금 많았어요. 하나 씨는 어디예요?”


 답을 듣기 어려울 만큼 소음이 컸다. 오늘 약속있다더니 술 약속이었나. 웃음인지 고성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왁자지껄한 탓에 말이 또렷하지 않아 답답했다.


“하나 씨?”

- 저, 저 지금! 막걸리집이에요!


 그래서 시끄러웠군. 막걸리집이라면 거리가 좀 있는 사거리 앞 가게일 것이다.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들이 즐기기 좋은 가격에 술과 안주를 파는 곳이라 늘 사람이 많았다. 딱 한 번. 가게 알바생들이 좋아하는 가게라는 말에 회식을 위해 간 적이 있다. 그야말로 먹고 마시는 공간이라 학을 뗐지만.


“많이 마셨어요?”

- 아뇨, 아뇨! 막걸리 두 병밖에 안 마셨어요!


 두 병밖에? ……이 아가씨가.


“친구들이랑 같이 있어요? 더 마실 건 아니죠?”

- 네! 같이 있긴 한데, 얘네는 더 마신대요. 그래서 저 도망치려고요.

“그럼 도와줄까요?”

- 뭘요?

“도망친다면서요. 기다리고 있어요. 금방 갈게.”


 우렁찬 대답과 함께 뚝 끊긴 전화기는 던지듯 내려두고 시동을 걸었다. 취한 목소리는 처음이라 생소하기도 했지만, 걱정도 됐다. 곧 자정인데 언제부터 마셨기에 이렇게 취하나. 겨우 두 병이면 평소엔 얼마나 마신다는 건가. 만난다는 친구들은 여자랑 사귄다는 걸 알고 있을까. 여러 생각이 스쳐 갔다.


 우회전하자마자 보이는 막걸리집은 여전히 대낮이었다. 시내와도 거리가 있는 이 애매한 주택가의 끝에 위치한 술집이니 문전성시가 당연하긴 했다. 우리 가게를 찾는 단골도 보이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어떻게 찾아야 하지. 일단 차를 세우고 내려 옷깃을 여몄다. 당연히 나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어쩌나. 전화 걸어볼까.


“점장님!”


 주머니를 뒤지는데 대체 언제 나온 건지 모를 하나 씨가 달려와 허리에 매달렸다. 달큰한 술 냄새가 품기는 몸을 반사적으로 감쌌다. 두툼한 회색 후드티에 짙은 파란색 바지, 늘 신는 운동화. 추워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제대로 안았다.


“외투는 어쨌어요.”

“안 들고 왔는데.”

“네? 가게 안에 있어요?”

“후드티 안에 세 겹이나 껴입어서 외투 필요 없어요. 하-나도 안 추워요.”

“그래도.”


 제대로 잘, 입어야죠. 후드를 찾아 뒤집어씌우니 헤헤 웃는 말간 얼굴이 둥글둥글 사랑스러웠다. 이러기야. 술까지 마시고.


“같이 있던 친구들은요.”

“화장실 갔어요.”

“자리 옮긴대요?”

“아뇨. 걔네 우르르 화장실 가서 도망치려고 후다닥 나왔어요.”


 우르르에 후다닥까지. 평소보다 좀 더 수다스럽고 신난 양 볼에 잔뜩 입 맞추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일단 태웠다. 보조석에 앉혀 안전벨트까지 해주자 멀뚱멀뚱 바라보는 표정이 꼭, 아. 그만하자.


“계산하고 올게요.”

“어어? 왜요?”

“도망치는 사람은 원래 그런 거라도 해야해.”


 시선 끌지 않으려 조용히 계산한 뒤 서둘러 차에 탔다. 혹시나 불편한 상황이 생길까 걱정한 것도 있지만 혼자 두는 게 싫었다. 후드도 벗지 않고 얌전히 기다린 그는 출발하기 무섭게 졸기 시작했다. 불러도 별 반응이 없을 정도로 노곤한 모양이었다.

 빌라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는 거리라 망설여졌다. 얼른 가서 자도록 해야 하나. 아니면 단잠을 깨우지 말아야 하나. 어느 쪽도 나에겐 어려운 선택이었다.



 고민하다 결국 곧 깨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근처를 돌았다. 느긋한 숨이 이어지는 차 안. 덜큰한 술 냄새가 퍼진다. 혹시나 머리가 아플까 봐 조금 열어둔 창문에 머리 한 번 박지 않고 얌전히 잘 자는 게 신기해서 절로 웃음이 났다.

 두어 바퀴를 돌아도 깨지 않기에 조용히 세웠다. 깨우기 싫다. 솔직한 마음과 얼른 씻고 편하게 자도록 도와야 한다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제각기 싸우고, 시간은 잘도 갔다.


 그렇다고 자는 얼굴을 보고만 있진 않았다. 괜히 전화기도 들쑤시고 진동이 울려 떨어진 하나 씨의 전화기에 밀려드는 수십 개의 메시지를 보지 않으려 애쓰기도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뒤척이던 움직임이 멎더니 눈을 떴다.


“으음.”

“물 마셔요.”


 잠자코 꿀꺽꿀꺽 받아 마시던 눈이 금세 커졌다. 진정해요. 그러다 체할라. 내 말에도 전혀 진정하지 못하더니 자동차 시계를 보곤 헉 소리가 나도록 놀란다. 거 참. 진정하래도.


“왜 안 깨웠어요!”

“깨우기 미안할 만큼 잘 자서.”

“어떡해. 원래 술 마시고 잘 안 자는데. 갑자기 잠이 쏟아져서….”

“아니야, 괜찮아요. 몸 뻐근하겠어요. 일단 내려요.”


 내리고 나서도 어쩔 줄 모르는 손에 전화기를 돌려주곤 다시 안았다. 내가 깨우기 싫었어요. 그렇다고 한 시간을 넘게 있으면 어떡해요. 미안하게. 웅얼웅얼 울리는 목소리가 사랑스럽다. 그가 혹시나 추울까 서둘러 몸을 뗐다.


“얼른 들어가요. 앞까지 같이 가줄게요.”

“….”

“왜요?”

“…들어가기 싫어요.”


 그가 마주 잡고 있던 손을 힘주어 잡아 왔다. 오늘 이 아가씨가 정말.




 술 냄새가 풍풍 나는 몸을 데리고 다른 동 비밀번호를 누른 뒤 데리고 올라가 다시 비밀번호를 넣고 방 안에 눕힐 자신이 없긴 했다.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취한 건 아니지만, 한숨 자고 일어나 오히려 차분해진 상태가 더욱 거절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너무 늦었으니까. 재우기만 하면 되겠지. 대충 알량한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결국 하나 씨가 집으로 왔다. 두 번째 방문이 또 이런 식일 줄은 몰랐다.

 겹겹이 입었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씻어야 하니 가볍게 입고 들어가라는 말에 후드와 티셔츠를 벗어내도 반팔 티가 남아 있어 조금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옷가지와 칫솔을 교환한 채 욕실로 보내고 벗은 옷을 전부 테라스 근처에 걸어두었다. 향균 성분이 있는 스프레이도 뿌리고 환기도 시키고. 마찬가지로 내 것까지 정리한 다음 홈웨어를 입었다. 거실에서 자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소파도 없으니 여기서 재울 수도, 내가 잘 수도 없다.


 그러니까…… 침대에서 같이 자겠구나.


 하마터면 전화기를 떨어트릴 뻔 했다. 이 나이 먹고 어디서 주책이지. 그것도 술 마신 사람을 데리고. 냉수를 속에 퍼부은 다음 영양제까지 전부 삼켰다. 집에 딱히 사람을 들이지 않다 보니 은채처럼 손님용 홈웨어가 따로 없어서, 겨우 줄 만한 것을 골랐다.

 하는 운동이라고는 스트레칭과 자전거 타기가 전부인 나와는 달리 하나 씨는 중학교 때부터 꾸준히 육상을 해왔다고 했다. 스포츠에는 자신 있다며 듬직하게 팔을 걷어붙였던 날 또다시 반했던 기억에 슬며시 웃음이 샜다. 항상 체육대회 대표를 했단 이야기를 신나게 했었지.


“……….”

“뭐해요?”

“어? 아니. 그냥.”


 네가 너무 어리게 느껴져서 혼자 자기반성 하고 있었다고는, 말 못 해.


“물은 식탁에 있고, 스킨이랑 드라이기는 거실에 내놨어요. 갈아입을 옷도 같이 뒀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뺨을 슬쩍 주무르고 서둘러 욕실로 들어갔다. 아무리 오래 따듯한 물 아래에 있어도 손바닥 안쪽 깊은 곳에 남아버린 하나 씨의 감촉은 씻겨나가지 않았다. 조금 젖어있던 티셔츠 목 주변과 머리칼을 타고 흐르던 물기가 자꾸만 어른거렸다. 문만 열고 나가면 있을 사람에 대한 생각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도.



 평소처럼 속옷도 없이 가운만 입고 나갈 수도, 벗은 몸 그대로 나갈 수도 없어서 물기를 최대한 훔쳐냈다. 욕실 문을 열자 거실 러그 위에 엎드린 몸뚱이가 보였다. 빌려준 옷이 썩 보기 좋게 감싸고 있었다.


“왜 거기 있어요.”

“시원해요.”

“보일러 온도 좀 내릴게요, 그럼.”


 자동으로 돌아갔을 보일러를 낮추고 베란다 문도 열었다. 젖은 수건들은 빨래통에 걸고 스킨을 바르는 내내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다. 왜요? 물어봐도 대답은 없다. 얼마 전 숱을 쳐낸 터라 금세 마른 머리칼은 손으로 슥슥 정리했다. 그동안에도 시선은 떨어지지 않았다.


“술 다 깼어요?”

“그런 거 같아요.”

“배는 안 고파요?”

“네. 배고파요?”

“아니. 술 깨면 배고파지니까 물어봤어요.”


 턱을 괸 채 늘어지고 있던 자세에서 빙글 돌아 일어선 그의 동작이 날렵하고 멋졌다. 운동한 사람은 역시 다르구나. 대학교 체육대회에서 사체과를 제치고 계주에선 1등 했단 말이 절대 거짓 같지 않다. 둥그런 뺨은 말랑한데, 팔다리는 탄탄하다.


“물 안 마셔요?”

“아, 응.”


 물 마시겠다고 컵 든 채로 멍하니 있었네. 민망해라. 씻기 전에도 그렇게나 마신 물을 다시 비워내고 나니 어느새 하나 씨가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집 구경 시켜 주세요.”




 손을 잡아 끄는 걸 따라가며 이곳저곳 둘러보았다. 여긴 화장실 딸린 방인데 작아서 노트북 놓고 작업실처럼 써요. 여긴 옷방. 욕실은 아까 봤고, 거실도 봤네. TV도 없고, 소파도 없고. 거실에선 안 자거든요. 여긴 테라스라고 부르긴 하는데 크지 않아서 베란다 겸 다용도실 겸. 이제 여기가 당연히 부엌. 리액션은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집에서 요리 안 해요?”

“음, 아마. 레토르트나 냉동식품 먹는 횟수가 많고. 먹고 싶은 건 사다 먹어요.”

“차도 잘 끓이고, 샌드위치도 잘 만들잖아요.”

“그거야 일이니까. 카페에서 하는 건 다 하죠. 집엔 재료도 없고, 신경 쓰는 것도 번거로워서 안 해요.”

“그렇구나. 당연히 잘하실 줄 알았어요.”

“그래서 실망했어요?”


 무슨 그런 말을 하냐는 표정과는 달리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춰준다. 아뇨. 더 좋아요. 귀여운 말도 잊지 않고.


“하나 씨는 요리 잘하죠?”

“좋아하는 편이에요. 관심도 많고.”

“그래서 부엌만 봐도 딱 아는구나.”


 답 없이 웃은 그가 침실로 향했다. 머리칼이 팔랑이는 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곱슬머리구나. 만져보고 싶은 마음이 함께 팔랑거렸다.


“침실은 별로 볼 것도 없는데.”


 거울이나 화장대도 없고 정말 잠만 자는 공간이라 서랍장과 사이드 테이블, 사진 그리고 옷걸이를 제외하곤 커다란 침대 뿐이다. 나름대로 꾸민 거긴 하지만. 책장처럼 생긴 서랍장을 둘러보던 그가 사진 앞에 섰다.


“이건 언제예요?”

“스무살 때 독립하고, 아마 한 달 정도 지닌 때일 거예요. 살았던 곳이 오르막길에서 한참 더 올라가는 작고 작은 집이었는데, 내 이름으로 된 게 좋아서 정을 많이 줬죠. 그 동네 골목 끝에서 찍은 거예요.”

“이건요?”

“이건 여행 가서 찍은 것들이에요. 여긴 제주도, 여긴 부산. 통영이랑, 이건 담양.”

“전부 밤 사진이네요. 아니면 저녁이고.”

“볕이 많으면 사진 생각이 안 나요. 걷고, 구경하기 바빠서. 해가 좀 져야 사진기를 들어서 그래요.”


 사진 안으로 들어갈 기세로 오래도록 들여다 보는 그가 잡은 손에 힘을 주는 게 느꼈다.


“…하나 씨.”

“왜 이러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에 입 맞추고 물기를 닦아냈다. 왜요, 왜 울어요. 그만 울어. 아까부터 묘하게 가라 앉은 거 같더라니. 달래고 안아주고 입을 맞춰도 그칠 기미가 안 보였다. 침대에 앉히고 좋아하는 핫초코도 쥐여준 뒤 조심스럽게 어깨를 감쌌다.

 찬찬히 기대오는 몸을 단단히 안고 등 뒤에 베개를 댔다. 완전히 뒤에서 감싼 자세가 되고 나니 오히려 편안했다. 코를 훌쩍일 때면 뺨에, 핫초코를 마시고 숨 뱉을 땐 어깨에 입을 맞췄다. 조용히 비워낸 잔을 받아 사이드 테이블에 올려놓고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왜 울었는지 말 안 해줄 거예요?”

“그냥.”

“그냥?”

“…좋아서요. 신기해서.”

“이러는 거 우리 그만하자고 해놓고선. 꼭 서로 밀어내는 것 같다 그랬으면서, 하나 씨가 울면 어떡해요.”

“그러게요. 아유, 창피해.”


 심각한 얼굴로 손을 조물대다 눈이 마주친 순간 결국 웃음이 터지고 만 우리는 옆으로 누워 킥킥 한참을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긴지도 모르고. 왜 그렇게까지 즐거운 줄도 모르고. 그냥, 그냥. 좋아서. 네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울어버릴 만큼 좋아서. 그 사실에 웃느라 또 울만큼 좋아서.


 이불 두른 몸을 함빡 안았다. 뜨끈하고 단단하지만 말랑한 몸뚱이에 코를 박으면 초코 향과 함께 내 몸에서 나는 것과 같을 바닐라 향이 섞여 달다 못해 코끝이 아릿할 정도였다. 그것까지도 좋았다. 울고 웃고 다시 운 탓에 기운이 쭉 빠진 그는 조곤조곤 말하다 말고 금세 잠들었다. 규칙적으로 들고 나는 숨을 달게 마시며 나 역시 눈을 감았다.








1

누구를 좋아하면 자주 울게 되는 거 같아요


2

비정기 자유연재이긴 합니다만 주 1회는 오고팠는데 저번 주는 너무 바빠 글을 아예 쉬었습니다 대신 주초에 왔어요 기다리셨을까요? (그럼 좋겠다)


3

아무리 좋아해도 조심스러울 수 있고, 걱정도 겁도 많은 사람이 좋아하니까 할 수 있는 여러 순간들을 지나보내면 좀 더 깊은 관계가 되겠죠


4

늘 감사합니다 마음의 위안이나 짧은 휴식이 될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거예요 부디 건강한 채로 또 뵈어요



take your broken heart make it into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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