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환상체 작업을 준비 중이던 사무직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직원들은 인지필터를 사용하지 않는가?"

돌아온 대답은 생각보다 훨씬 쌀쌀맞았다.

"우리는 인지필터 상으로도 상상보다 훨씬 끔찍한 형상을 본답니다."

모니터 너머의 당신과는 달리 말이죠,라며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서랍을 열어 탄환을 세고 있자면 이제는 없는 그 직원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과연 나에게는 이 탄환을 쏠 자격이 있나 고민하게 된다.

클리포트 카운터가 0이 되어 복도에 비명이 울려퍼져도, 시간이 점차 자정에 가까워져도, 방아쇠를 당기는 대신 기억을 돌렸던 적도 몇 번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쏴 버리고 마는 것이 좌절감을 더해갈 뿐이었다.

하루를 마치는 보고서에는 죽어나간 사무직들까지 신경 쓸 공간은 없었다.

남아있는 직원과 내일도 돌아가는 회사를 통한 합리화가 전부였다.


사실 건물 자체를 제대로 본 적도 아주 잠깐이었다.

환상체는 커녕 직원들조차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는 상황이다.

B의 말이 옳다. 관리자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곳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다.

죽어가는 직원들을 몇 명씩 봐도 손쓸 방도가 없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것이 호드였다.

방식이 잘못되었다고는 해도, 다른 세피라들과는 다르게 직원들의 복지를 생각해주었던 호드였다.

상담과 격려로 호드는 나름대로의 노력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단지 AI와 인간의 차이가 그런 비극을 불렀던 것이다.

나라면, 같은 감정을 가진 인간의 입장에서라면 직원들을 좀 더 신경 써 줄 수 있지 않을까.

같은 높이에 서기 위해서라면 같은 입장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격리실의 문을 열게 된 이유다.


아무리 각오를 다졌다고는 해도 첫 대면이다. 떨리는 손을 멈출 수 없다.

문고리를 붙잡자 차가운 쇠의 감촉에 손이 그대로 얼어붙은 것 마냥 떨어지질 않는다.

턱턱 막히는 숨을 크게 내뱉기를 수 번. 

어떻게든 열고 들어간 격리실 안에는 자판기와 두 다리로 서 있는 새우가 두 마리 있었다.

방 안을 가득 채운 알로하 풍의 노래는 어디선가 들리는 파도 소리와 함께 순간 바다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벌써부터 정신이 이상해진 건가, 의심하면서도 시선을 돌려 관리 매뉴얼을 서둘러 넘겼다.


그런데 갑자기 앞에 서있던 새우대가리들이 날 비웃기 시작했다.

"마 점마 인지필터 쓴다 아이가. 빙시 아이가?"

"마! 보소! 예 좀 와보소. 웰치스 한번 무봐라!"

그러면서 이미 뚜껑이 따인 음료수 하나를 들이댄다.

"아... 제가 탄산은 잘 못마셔셔요..."

그렇게 거절의 의사를 표하는 순간 새우대가리들의 눈깔이 뒤집히더니 난장판이 벌어졌다.

구와ㅏ아ㅏㄱ 갸아ㅇ아악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더니 갑자기 자판기를 연신 눌러 몇 캔의 음료수를 뽑아냈다.

그러고는 갑자기 뽑은 음료수를 전부 섞는 것이 아닌가?

연신 서로에게 퍼 먹여주며 "마 우리가 남이가! 마 우리가 남이가!"

신나게 벌어지는 그들의 연회에 저는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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