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94자. 

* 목 조름 묘사 주의. 쥰히요 요소 있음. 









가만히 지켜보는 것엔 익숙하다. 턱을 괴고 가만히 앉아 시선만으로 대상을 좇는다. 시선에도, 머릿속에도 온통 한 사람만을 담는다. 집요하게 좇다 보면 어느새 상대와 눈을 마주하게 된다. 시선을 들킨 탓이다. 그러나 눈은 피하지 않는다. 저를 향해 무슨 일이냐 묻는 듯한 시선을 그저 고요하게 받아내고 있노라면 먼저 눈을 피하는 것은 상대방이 된다. 소리 없는 작은 싸움에서 승리하게 된 셈이다. 


승리를 거머쥐고 나서도 시선은 거두지 않는다. 집요한 추적이 계속된다. 이젠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듯한, 그러나 몹시도 의식하고 있는 곤란한 얼굴을 발견한다. 입가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절로 피어난다. 그제야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작은 한숨 소리는 놓치지 않는다. 한숨은 매일 그 길이라든가 세기 따위가 조금씩 달랐으므로, 그것의 변화를 즐기는 것은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관찰. 최근 란 나기사가 심취해 있는 유흥이다. 아무 말도, 미동도 없이 그저 고요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대상의 움직임을 눈에 담는 것은 제법 즐거운 일이다. 누군가는 나기사가 무척 권태로운 모양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뭐 하십니까?”

“…이바라를 보고 있어.”

“…….”


관찰 대상은 언제나 같다. 사에구사 이바라. 그리고 란 나기사, 저 자신. 나기사는 이바라의 움직임과 목소리, 작은 표정의 흔들림 따위의 것들을 시선에 담아내며 제 안에 일렁이는 감정의 변화를 돌아보았다. 실상 이 행위의 목적은 눈앞의 상대가 아닌 저 자신을 관찰하기 위한 것에 가깝다. 란 나기사의, 사에구사 이바라를 향한 어떠한 일렁임. 


“그… 무료하시다면 책을 더 가져다드릴까요? 이미 꽤 많이 구해드렸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으응. 아니. 책은 이제 됐어. 난 전혀 심심하지 않으니까 신경 쓸 것 없어. 볼일 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지 않나요? 이런 건.”


언젠가 있었던 이바라와의 짧은 대화. 그의 한숨으로 끝난 대화 이후 이바라는 나기사의 말대로 신경 쓰지 않기로 작정한 듯, 그 이상 나기사의 이 행위에 관해 묻지 않았다. 내버려 두기로 한 모양이다. 아마 간혹 나기사가 보이는 이상한 변덕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나기사는 더더욱 느긋하게 그와 저 자신을 관찰할 수 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나기사는 자신이 무엇이든 할 줄 아는 것만큼, 모르는 것 또한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특히나 타인과의 교류에서 배울 수 있는 감정에 관한 것들을. 백지 같은 자신의 위에 히요리가 밑그림을 그려주었고 그와 함께했던 시간들로 색깔을 채워나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빈 곳이 많았다. 


히요리가 채워준 색은 그의 반짝임만큼이나 무척 맑고 밝은 것. 이따금 그의 외로움이나 두려움 따위가 튀어 스며들기도 했지만, 히요리는 항상 온 힘을 다해 나기사의 앞에 서서 모든 것을 씹어 삼킨 뒤 좋은 것들만 뱉어 칠해주었으므로, 나기사의 도화지는 무척이나 밝았다. 


마치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것처럼. 


그래서 더더욱 기민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제 가슴에 튄, 처음 보는 색깔 정도는. 더욱이 그것이 제 위에 한 번도 칠해지지 않았던 새까만 색이라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웃으며 다가와 보란 듯이 제 가슴에 시커먼 붓 자국을 내는 이가 이바라였다. 처음 보는 유형의 인간, 처음 보는 색이었으므로, 나기사는 금세 그에게 흥미를 보였다. 


새카맣게 물들어 간다. 그 위엔 어떤 색을 덧칠해도 시커먼 물감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다. 머릿속은 온통 이바라가 칠한 색으로 채워졌다. 나기사는 이 현상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 그러나 지금껏 책에서 본 묘사와는 그 색깔이 너무나도 달랐으므로, 나기사는 이 또한 사랑이라 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색이나 형태가 다르다 한들 나기사는 제 감정을 외면할 생각도, 그대로 파묻어 버릴 생각도 없다. 토해낼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다. 나기사가 이것에 대해 제대로 이름을 붙이지 못했으니까. 그러므로 이바라를 관찰하기로 했다. 색깔의 출처는 이바라였으므로, 그를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상대를 관찰하며 적절한 때를 기다린다. 이건 이바라에게서 배운 전술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날 더럽힌 너에겐 어떤 색이 칠해져 있으려나? 



****



“뭐 하고 있어?”

“…히요리 군.”

“천장만 보면서 가만히 앉아있길래 잠든 줄 알았네. 눈을 뜨고 있어서 놀랐어.”


스케줄 사이의 대기 시간. 지금은 히요리와 나기사 둘만의 일정이다. 관찰 대상이 눈앞에 없었으므로, 나기사는 가만히 소파 등받이에 기대어 앉아 지금껏 관찰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고 있었다. 곧 히요리가 다가와 자연스레 곁에 앉는다. 나기사도 몸을 일으켰다. 


“요즘 뭔가 고민이 있지? 멍하게 있을 때가 많은데?”

“…고민……. …으응. 고민 같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

“그럼?”

“…알아가는 중이야. 여러 가지를.”

“흐음.”


히요리는 눈에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나기사를 바라본다. 그는 더 자세한 것은 묻지 않았다. 그래도 알고있는것 같았다. 그는 나기사에 관해 뭐든 알고 있다. 나기사 역시 마찬가지다. 


“…히요리 군은, 요즘 행복해 보여.”

“…음……. 그러네. 두근두근한 일이 있었거든.”

“…쥰이지?”

“응. 아직은 비밀이네. 독사한테 얘기하면 곤란해.”

“…하지만 곧 들킬 거라고 생각해. 쥰은 솔직한 아이니까.”


투덜거리는 그를 보며 웃었다. 히요리는 사랑에 빠져있다. 표정을 가리는 데엔 누구보다 일가견이 있는 그였지만, 나기사는 그의 반짝이는 눈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행복에 겨워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시선이 머무는 곳을 따라가면 그 행복의 출처가 어디인지도 금방 알게 된다. 


“…기뻐. 행복해 보여서.”


히요리는 무척 맑게 웃었다. 그가 나기사에게 칠해준 색과 같은 색의 웃음. 나기사에게 물든 것과는 다른 색. 그는 사랑하는 이를 곁에 두고 아끼고 보살피는 방식으로 제 마음을 전하는 사람이다. 여느 책에서 본 묘사와 같은 모양새의 사랑. 역시 나기사 자신의 것과는 다르다. 나기사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역시… 히요리 군과는 다른 것 같아.”

“뭐가?”

“…집착이나 소유욕에 더 가까운 걸까?”


곱씹어 본다. 이바라를 볼 때마다 들끓었던 내면의 감정에 대하여. 보살피고, 아끼는 형태는 분명 아니었다. 그야, 나기사도 이바라를 무척 아끼고 귀여워하곤 있지만. 그러나 나기사가 간신히 찾아낸 단어는 사랑이라거나 하는 말랑한 단어와는 색이 다르다. 


“나기사 군이 뭔가에 집착하다니 드문 일이네.”

“…그런가.”

“네가 그렇게 느낀다면, 그게 맞는다고 생각하면 되겠네. 내가 어떻든지, 다른 사람이 어떻든지 하는 건 별로 상관없어. 사람마다 모양은 조금씩 다를 테니까.”

“…응. 알고 있지만.”


나기사는 제 손끝을 매만졌다. 이 손으로 그 아이의 목을 쥐었던 것이 지금도 생경하다. 그때 느꼈던 묘한 희열도. 


“…그래도 역시 좀 상처입히게 되려나?”

“누굴? 걔를? 설마.”

“…아무래도 난 그 애한텐 좀 포악해지는 것 같거든.”

“그 정도야 알고 있을걸. 게다가 내가 아는 그 아이라면 그렇게 마음이 약하지도 않을 텐데. 오히려 나기사 군이 그렇게 생각하는 걸 알게 되면 화를 낼 거라고 생각하네.”

“…내가 말하는 건 마음 쪽은 아니지만 말이야.”


웃었다. 그는 나기사의 고백이 차이기라도 하면 그 앨 가만두지 않을 거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나기사의 대답엔 확신이 있었다. 거절당할 것을 걱정해 본 적은 없다. 오만인가? 아니. 이건 확신이다. 이바라는 나기사를 거절하지 않는다. 그게 무엇이든. 고작 말 몇 마디로 마음에 상처를 입을 만큼 약하지도 않다. 


그렇군. 기억났다. 그때 느꼈던 묘한 희열. 아마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그것. 당황과 두려움 사이에 미묘하게 번져있던 열감. 본인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 눈동자의 흔들림 속에 드러나 버리고 말았던 것을. 이바라도 독특하네. 나도 그렇지만. 작은 중얼거림에 히요리의 의아하단 시선이 따라붙었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확신이 있으면서 뭘 망설이고 있는 거야? 부끄러워서 망설인다고 생각하긴 어려운데.”

“…때를 기다리고 있어. 적절한 때를. 정작 그 애가 잘 모르는 것 같거든.”


나기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슬슬 대기시간이 끝날 때다. 


“…그럼 언제쯤 파고들면 좋을까…하고 말이야. 이왕이면 한 번에 붙잡고 싶거든. 그 애는 잘 도망치니까.”


히요리도 몸을 일으킨다. 때마침 그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슬슬 시간이 된 것 같아. 움직여야겠어.”


만족스러운 미소가 자연스레 번진다. 




*********



이젠 나기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신경 쓰지 않게 되었을 정도로 나기사의 관찰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다만 관찰 대상인 이바라에겐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슬슬 표정에서 그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읽을 수 있다. 소파의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나기사는 입가에 걸린 웃음을 슬쩍 손으로 가렸다. 이바라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무실엔 둘 외엔 아무도 없었다. 


“각하?”

“…응. 이바라.”

“이제 슬슬 할 말이 있으시면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언제고 시선을 받고 있어야 하는 제 입장도 생각을 좀 해주세요.”

“…음. 그럴까.”


이바라는 조금 화가 나 있는 것 같다. 미간을 잔뜩 구긴 채 큰 눈으로 이쪽을 쏘아본다. 원망이 가득한 얼굴. 나기사가 좋아하는 얼굴. 몰려오는 즐거움에 웃음을 흘렸더니, 그의 얼굴이 더 구겨진다. 


“…이바라는.”


따지려는 듯 덤벼드는 그의 말을 잘라냈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네……?”


놀라서 동그랗게 뜬 눈. 방금 자신이 들은 것을 의심하는 듯 눈동자를 한 번 돌리더니, 다시 얼굴이 구겨진다. 나기사는 그런 이바라의 얼굴을 무척 좋아한다. 곤란한 얼굴. 나기사의 진위를 파악하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얼굴. 입가엔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그의 대답을 기다린다. 


“이야~ 이거! 그런 철학적인 고민을 하고 계셨다니!”


금세 활짝 웃는다. 그가 전혀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귀찮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물론, 들어줄 생각은 없다. 


“글쎄요. 사랑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곤 합니다만, 저는 그 어떤 종류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 질문이라면 전하가 훨씬 좋은 답을 들려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절의 의미를 담아 속사포로 길게 내뱉은 말에도 나기사의 얼굴엔 미동이 없었다. 무척 평온해 보이는 얼굴은 오히려 무료해 보일 지경이다. 


“…그에게선 이미 답을 들었어.”

“그럼 해결된 것 아닙니까? 굳이 제게 물어보시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네 말대로 사랑이란 건 무척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으니까. 이바라의 사랑은 뭘까 궁금해서.”


이바라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나기사가 꽤 진지하게 이 허무맹랑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제대로 된 대답을 듣지 않으면 이바라를 놓지 않으리란 걸 드디어 깨달은 모양이다. 가식을 거둔 그는 몹시 퉁명스럽게, 귀찮기 짝이 없다는 듯 얼굴을 구기며 대답을 던졌다. 


“글쎄요. 물론 팬들에게 사랑을 건네는 것이 아이돌이겠습니다만, 그런 쪽을 이야기하시는 건 아닌 것 같고……. 그쪽이 아니라면 역시 제겐 귀찮고 거슬리기 짝이 없는 감정이라고 여겨지는군요.”


거슬린다라……. 그의 대답을 잠시 곱씹어 보며, 나기사는 이바라의 눈을 바라보며 되묻는다. 


“…이유는?”

“사사로운 감정은 사람의 이성을 흔들고 눈을 흐립니다. 합리적인 판단을 방해해요. 그게 특정 대상에 대한 애정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죠. 전 비즈니스맨의 입장도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제겐 역시 방해입니다.”

“…그렇군.”


제법 그 다운 대답이다. 이런 대답이 돌아올 거란 걸 예상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게 나기사가 원하는 대답인 건 아니다. 


“…그렇다면, 방해되기 때문에 계속 외면하고 있는 걸까?”

“네?”


나기사는 몸을 일으켰다. 이바라에게 다가간다. 어깨를 붙잡고 그를 벽에 몰아세우는 데엔 아주 찰나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그는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했다. 나기사의 무릎이 이바라의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커다란 손으로 그의 턱을 쥐어 올린다. 


동공이 흔들릴 정도로 당황한 그의 얼굴을 보며, 나기사는 웃었다. 그때와 제법 닮은 얼굴이다. 나기사는 이런 이바라의 얼굴을 좋아한다. 불안과 당황, 어쩌면 두려움까지 뒤엉켜 무척 혼란스러운 듯한 그 얼굴을. 특히 그것이 자신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면 더더욱. 


“…나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건 말이야.”


턱을 쥔 손끝으로 그의 볼을 짓눌렀다. 포악한 행동이겠으나, 목소리만큼은 평소와 다름없이 고요하고 평온하다. 이바라는 크게 당황한 것 같으면서도 저항하지 못했다.


“…식욕 같은 거야.”


얼굴을 짓누르듯 힘이 들어간 엄지 끝으로 그의 입술을 천천히 훑는다. 얇은 입술이 제법 눈길을 끈다. 식욕을 돋운다. 아. 그렇군. 드디어 가장 어울리는 이름을 찾았다. 만족스럽다. 나기사는 천천히 손을 놓았다. 손끝은 이제 이바라의 목을, 그 윤곽을 천천히 더듬어 간다. 


“…그래. 이름을 붙인다면 그쪽에 가깝겠네.”

“…….”

“…붙들어 놓고, 먹어 치우고 싶어. 뼛조각 하나 남김없이.”

“자, 잠깐. 각하. 숨 막……! 컥!”


목을 붙들었다. 손에 서서히 힘을 준다. 이바라의 목은 꽤 가는 편이라서, 쉽게 부러뜨릴 수 있을 것만 같다. 


“…늘 굶주려 있어. 생각하면 할수록 갈증이 심해져. 내 손으로 으스러뜨리고 싶어. 물어뜯으면 그 안에 과육이 얼마나 달콤할지 상상하면서.”

“윽……. 컥!”

“…하지만 한편으론 곁에 두고 키우고 싶기도 해. 소중하게. 그래서 지켜보고 있어. 탐스럽게 익어갈 때까지.”


이바라의 손이 다급하게 나기사의 손목을 붙잡는다. 생존을 갈구하는 본능적인 움직임이다. 그러나 나기사의 손을 떼어내진 못했다. 떼어내지 않는 것일까? 그는 온전히 저 자신을 나기사의 손에 내맡기고 있는 것만 같다. 저도 모르게. 


손의 힘을 서서히 풀었다. 이바라가 막힌 숨을 몰아쉬며 기침을 토했다. 긴장이 풀려 무너지려는 몸을 간신히 버티고 선다. 그러면서도 나기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떨리는 동공을 오래도록 마주했다. 거친 호흡이 천천히 제 리듬을 찾아갈 때까지. 


당황한 이바라는 몹시 읽기 쉽다. 나기사는 그의 생각을 모조리 읽어낼 수 있었다. 그가 여태 깨닫지 못한 것까지도. 이바라는 여전히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어떤 눈을 하고 있었는지. 손끝으로 무엇을 전하고 있었는지. 


“…하지만 역시 마냥 기다리는 건 힘드네. 잘 익은 과실을 눈앞에 두고서도 말이야.”


나기사는 다시 이바라의 턱 끝을 쥐고 제 쪽으로 들어 올렸다. 이번엔 어디까지나 부드럽고 정중하게. 힘도, 강압도 없는 손길이었지만 이바라는 이번에도 순순히 몸을 일으키고 나기사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호흡이 가쁘다. 목을 조른 것은 무척 짧은 시간이었으므로, 모자랐던 산소는 진작 채워 넣었을 것이다. 그를 떨게 만드는 건 다른 것이다. 두려움. 그리고 두려움 뒤에 감춰져 있는 것. 열감과 흥분, 어쩌면 쾌감 같은 것들. 손을 넣고 무작정 파내어 꺼내고 싶은 충동이 인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 아직인가?”


그러나 조금만 더 기다려 주기로 한다. 바짝 세운 이로 껍질을 뚫고 파고들어 과육을 씹어먹고 삼키기엔 아직은 이른 감이 있다. 참는 건 힘든 일이네. 나기사는 혀끝으로 제 입술을 훑었다. 천천히. 이바라의 시선이 제 혀끝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면서. 


“…어쨌든. 지켜보는 게 불편하다면 슬슬 그만둘게. 나도 답을 알게 됐으니까.”

“…네, 네에…….”

“…무서웠어?”

“당황…하긴 했네요. 각하의 의중을 모르겠으니…….”

“…거짓말. 깨달았으면서.”


이바라의 목엔 그새 옅은 손자국이 났다. 손바닥으로 쓸어본다. 제법 부드러운 손길이었건만 그의 잔떨림이 전해져온다. 귀여워라. 나기사는 옅은 웃음을 흘리며 이바라에게 바짝 다가섰다. 마치 끌어안기라도 하려는 듯이. 귓가에서 입술을 달싹이는 것만으로도 흠칫 떨리는 몸짓이 손아귀에 고스란히 잡힌다. 나기사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기다릴게. 시간이 필요한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나는 사랑에 대해 물었어. 제대로 된 답을 들려줘. 궁금하거든.”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춰주었다. “…응. 사랑해, 이바라.” 달콤한 말도 속삭여 주었다. 애정을 표현하는 행위. 그러나 전한 것은 경고다. 인내가 바닥나고 있음을 알아달라는. 정확하게 전해졌는지, 마침내 나기사의 품에서 벗어난 그는 경멸하는 듯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기 드문 얼굴이다. 나기사는 이런 이바라의 얼굴을 좋아한다. 


“…흥분했어?”

“……! 헛소리하지 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와. 난 항상 이바라를 기다리고 있어.”

“놀리는 건 이제 작작 하세요.”


이바라는 안경을 거칠게 벗고 제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분하다는 듯 씩씩거리는 그의 귓가가 붉다. 역시 이바라는 독특해. 나도 마찬가지지만. 나기사는 여유롭게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섰다. 관찰은 이제 끝이다. 답을 알았으니까. 


“…나랑 같은 색.”


제 안의 새까만 색으로 나기사를 온통 더럽혀 놓은 것은 이바라만의 사랑 방식이었을까? 덕분에 나도 새카매졌어, 이바라. 밀려오는 즐거움에 입가엔 자연스레 미소가 걸린다. 이바라가 새로운 답을 들고 오기까지는 아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하지만 자존심이 자꾸만 방해할 텐데. 그땐 과연 어떤 얼굴을 하려나? 


나기사는 저가 좋아하는 이바라의 얼굴을 덧그려 본다. 자연스레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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