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헤이싱

   BGM. 원혁 - 우리는 사랑 아니면









   나눠 갖는다는 것에 민현은 기쁨을 느꼈다. 하루의 일상과 꿈과 생각들을 얘기하고 있노라면 안심이 되었다. 안정이 주는 평온은 민현이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설렘이었다. 스스로가 낯설고 신기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은 얇은 종이짝과 같아서 바람만 훅- 불면 한순간에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뒤집어진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낯설고 신기한 것이 아닌, 어색하고 싫어질 수 있단 얘기다.



   [상훈이가 너무 부탁해서 피로연만 잠깐 있다 갈게.]

   [재환이도 같이있어. 그... 걔도 있긴 한데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걱정말구!]

   [미니형, 아직도 자나? 나 노래방이야.]



   라는 문자가 끝이었다. 민현은 오랜만에 늑장을 부렸다. 뭔가 기운이 빠졌다. 스마트폰을 들여다 볼 여력이 생기지 않았다. 이렇게 무기력한 날은 쉬이 오지 않는데, 아무리 신경쓰지 않는다 해도 '전 사람' 이란 것에 날이 서나 보다.

   문자를 보자마자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심지어 오랜 시간 연락도 오지 않았다. 시간이 저녁 열시를 훌쩍 넘어가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네시 즘 보낸게 마지막 같은데, 그렇다고 재환에게 연락하기엔 조금 찝지름한 구석이 있었다. 너무 뜬금없으니까, 조금은 비겁한 마음에. 

   그의 무소식에 민현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독서실에서 스마트폰을 엎어놓고도 다시 반복적으로 들여다 보았다. 옆사람이 신경쓸 정도였다. 전 문자를 보면 속에 열이 끓는 기분도 들었다. 결국 다니엘 집으로 향한 건 순전히 충동적이었다. 정신차리고 보니 다니엘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있었고, 또 정신차리고 보니 다니엘의 집에 도착해 제 집마냥 도어락을 풀고 있었다. 성우가 물 한잔을 먹다말고 놀라 입술 사이로 주륵 흘러내리는 것까지.



   "뭐야, 뭐야."

   "너 있었구나."

   "당연하지. 내 집인데. 놀랐잖아!"

   "어, 미안."

   "다니엘 결혼식 갔는데. 꽤 늦게 오나봐."

   "알아."



   왜, 그 이름부터 나오는지. 성우는 다른 짐 없이 폰만 덩그러니 든 채 소파에 앉는 민현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나사 하나 풀린 표정인데, 성우는 생수를 다시 벌컥 들이키며 말했다.



   "혹시 나 보러 온거야?"

   "겸사?"

   "... 왜 온거야?"

   "그냥 왔어."

   "내 동생 만나러 온 줄 알았지."



   민현은 성우의 의도적인 억양에 미간을 구겼다. 평소완 다름 없다가도, 다니엘이란 이름이 들어오면 자신이 불청객이 된 느낌이 들었다. 성우 특유의 진중한 눈빛 때문일까, 괜히 저를 꿰뚫어보는 거 같아 눈을 피한 적이 자주 있다. 그때마다 바보같아서, 요즘들어 성우와의 사이가 껄끄러웠다. 게다가 다른 이유도 있었다.



   "여기가 무슨 과방도 아니고, 아, 혹시 상담하러 왔냐?"

   "무슨,"

   "저번에 내가 소개시켜줬잖아."

   "누굴... 아,"

   "그 애랑 연락해?"



   성우가 부쩍 자신의 대외적인 연애사에 관심이 많아진 것이다. 설마 그 자리가 소개팅 자리었나. 저녁이나 먹고 가자며 평소에 가보도 않는 이탈리안 파스타집을 가더니 여성 두 분이 성우와 아는체를 해와 자연스레 합석을 청했었다. 깨끗하고 단아한 이미지의 여성분이었던 거 같은데, 자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민현은 성우가 수락하니 같이 저녁을 먹었다. 와인까지 시켰던 그들과 달리 탄산수를 홀짝거리던 민현은 점점 길어지는 저녁시간에 엉덩이가 들썩거렸던 기억뿐이었다. 다니엘과는 항상 몇시까지 약속을 정하고 만난 것이 아니라 부담 없을 수 있었지만, 그 투명한 약속이 민현에겐 오히려 더 중요했다. 대화내용은 전반적으로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부터 시작이었으니까. 

   성우의 뜬금없는 말에, 난데없는 그 만남이 대번 떠올랐다. 연락처를 주고 받긴 했지만, 으레 빨간불이 들어온 채팅방을 들어가진 않았다.



   "야. 진짜 연락 씹는거 똥매너인거 알지?"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뭐 하러 보내."

   "와 진짜, 쓰레기네. 그래도 보내야지!"

   "허, 쓰레기?"



   되레 그 연락이 안되는 누군가가 자기 동생이란 걸 알까나. 결국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경우의 수가 떠올랐다. 본인도 몰랐던 소개팅자리, 죄책감을 갖고 있을리 없다. 하지만 다니엘이 알게 될 때 미안해해야 하는 걸까? 연락이 안되는 현재, 혹시 다니엘은 제게 미안할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하니 급격히 속이 울렁거렸다. 민현은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 행동은 겉으로 보기엔 자연스럽게 입술을 만지는 것이었고,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초조해 보이는 것은 역력해보였다. 성우는 그 기미에 별 다른 주석을 달지 않았다.



   "그래도 보내봐. 인성 갑이라고 찍히지 말고."



   성우가 자신들의 사이를 알고 있음을 민현은 직감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부터가 웃기지만, 알고 있음에도 티를 내지 않는다는 건, 모르고 싶은 거겠지. 제 동생에 대한, 절친한 친구에 대한 배려일까, 아니면 탐탁치 않음일까. 전적으로 후자로 생각이 쏠리는 건 성우가 주기적으로 민현을 술자리에 부르고, 소개팅까지 직접 주선해준다는 이유로도 충분하다. '아니라고 해줘서 고맙다.' 라는 예전 그의 말은 지금까지의 상황을 미루어 보아 '아니여야 한다.' 라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자신은 그 점을 부러 섭섭하다고 못한다. 성우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다. 민현 또한 성우와의 함께했던 오랜 시간을 한순간에 얼음장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 솔직히 자신은 불안하다.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인거다. 안다. 그래서 더욱, 더욱 다니엘이 그리웠다. 문자라도 보내주지. 과하다 생각할 정도로 제게 흘러내다가 어떻게 이렇게 절박한 순간에 숨어버릴 수가 있는지.

   민현은 성우의 종용에 못이겨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강초딩'의 방에 불은 꺼져있었고, 의외의 구석에서 새로운 방이 만들어졌다. 민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재환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다.



   [민현이형 얘 여기있어요. 형 보러가야 한다고 소리지르다가 뻗음]

   [(사진)]



   아기같이 웅크려 잠든 사진이 떴고, 이와 어울리지 않는 수트차림이 퍽 웃겼지만, 어쩐지 그 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 날, 다니엘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다음 날 편의점에 들러 요기거리를 사고 집으로 돌아올 때였다. 오래잖아 민현의 걸음이 멈춤과 동시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은 느낌을 받아야 했다. 집앞에 다니엘은 쪼그려 앉아 있었고 어제 입었던 수트차림 그대로였다. 저를 보자 스륵 일어나는 폼에 민현은 그를 지나쳐 문을 열며 말했다.



   "밥은 먹었어?"

   "미니형."

   "들어가 있지, 왜."



   아무말없이 따라 들어온다. 흘깃 본 얼굴은 술병이 거하게 났는지 핏기가 없다. 다니엘은 방으로 들어서며 물끄러미 민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조그만 주방찬장을 열고 있다. 가벼운 소재의 반바지와 얄쌍한 몸매를 가리고 있는 흰 티셔츠가 맑았다. 어깨에서 뚝 떨어지는 선이 그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다. 

   예상보다 굳어있지 않았다. 말투는 다정하다. 하지만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피하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화를 내지, 왜 연락이 없었냐고 따지고 들지. 다니엘은 명치가 꽉 막혀서 헛기침을 몇 번 했다. 민현은 편의점에서 사온 주전부리를 정리했다. 정적속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쩍쩍 갈라졌다. 다니엘은 몇번 더 목을 가다듬고 운을 뗐다. 어쩌면, 그는 화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는 것 같았다.



   "미니형, 어제는..."

   "됐어. 괜찮아."

   "... 내 말 안들을기가."

   "뭐하러 들어. 이미 끝났는데."

   "... 뭐가 끝나."

   "상황 끝났다고. 재환이가 연락줬잖아."

   "안 끝난 거 같은데."



   민현은 점점 치밀어오르는 짜증에 미간을 구겼다. '안 끝난거 같은데,' 라는 말투에 울컥 치민다. 이게 뭐야, 스스로 상황종료됐다 말했으면서 전혀 명쾌하지 않아. 말투가 심히 거슬려. 아무것도 모르니까 비관을 하게 된다. 저를 무시하는 것인가. 전날 밤 얼마나 복잡했는데, 잠도 한 숨 못잤는데. 그것도 모르고. 애써 꾹 눌렀던 것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민현은 최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뭐가. 너 거기 있는 거 알았으면 됐지."

   "할 말 있잖아. 숨기지 말고 말하라고."



   민현은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놓았다. 손에 힘이 풀려버렸다. 이미 왈칵 터진걸지도 모르겠다. 민현은 몸을 돌아 다니엘을 마주보았다. 방안에 우두커니 서있는 그는 마치 저승사자 같았다. 여기까지야, 라고 금방이라도 말할 것 같았다. 무섭다.



   "뭐가 그렇게 당당해. 기어코 날 속좁은 인간으로 만들고 싶어?"

   "뭐?"

   "기분 나쁜 거, 속상한 거 어떻게 다 일일이 얘기해. 말 안해도 알잖아."

   "말을 안하는데 어떻게 알아."

   "그럼 뭘 원해? 난 안하고 싶어!"



   솔직히 말하면 피하고 싶다. 덮고, 외면하고 싶다. 싸워서 좋을 거 하나 없잖아, 괜히 감정만 상하니까. 그런데 다음 다니엘이 뱉은 말은 민현을 상실케 했다. 도대체 이 말의 출처를 알 수 없었다. 어디서 생성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어째서 그 말부터 나오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젠가 우리도 끝날거잖아."



   민현은 머리가 댕- 울렸다. 심장이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눈이 시큰거리고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었다. 그 적막이 견딜 수 없었다. 장담컨데,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생각이었다. 억울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기어코 넌 어제 끝을 보고 왔니, 그 사람을 보니까 우리의 끝도 보이는 거 같았니. 속으로 단어들이 튀어나왔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 무너져버린다면 다신 돌이킬 수 없을 거 같았다. 눈을 길게 감았다 떴다. 겨우 끄집어 낸 말들이 맥아리 없이 흘러나온다.



   "넌... 그런식이야."



   다니엘의 잇사이로 작은 욕설이 나왔다. 얼굴이 말도 안되게 일그러졌다. 민현의 목소리에 물기가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순간 뱉어버린 두려움에 오장이 옥죄어져왔다.



   "당장 헤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말한다고."

   "우리가 왜 헤어져? 떠난다면 형이 먼저 떠나겠지!"



   명치가 덜덜 떨려왔다. 체기가 들어서서 위장을 틀어지게 만들었다. 같잖게 몸에 열이 돌아 다니엘은 흥분하며 말을 쏟아내었다. 어린아이같이 떼쓰는 말투였다. 먼저 상처받기 싫어하는 어린아이의 터지는 울음같은 말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내가..."

   "형이 생각했던 것보다 난 굉장히, 못난 놈이야."



   민현은 또 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니엘의 축 처진 눈에서 굵은 물방울이 두둑 떨어져서, 한꺼번에 폭풍이 몰아치는 거 같아서. 감당할 수 없이 몸이 흔들려서. 그의 눈물은 예상치 못한 비처럼 끊어지듯 내렸다. 민현의 몸이 차갑게 식어갔다. 왜, 도대체 너를 왜? 

   또 너를 상처내는 말을 하려고 하는거야.



   "그럼 우리 왜 만나는건데."

   "..."

   "그냥 섹스만 하려고 만나는거야?"

   "미니형,"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들어줄거고, 내가 어떤 모습이든 봐줄거고. 나도 너의 어떤 모습이던 행동이던 보고싶어서... 그래서 우리 만나는거잖아. 아니야?"

   "... 맞아."

   "근데 왜 그렇게 말해!"

   "내가 형을 망치는 거 같아서!"



   눈물은 그제야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다니엘의 표정은 겁먹고 있어 바들바들 떨렸다.



   "나 진짜 못되고, 이기적이야. 진짜, 병신이고 더러운 새끼야."

   "왜 그런 말을 해..."

   "한번에 여러 사람을 만난 적도 있고, 사랑하지 않으면서 잔 적도 있어. 먹고 살려면 어떤 일이든 다 했어. 심지어 밤일까지도 했어."

   "... 다니엘."

   "나만 아니면, 형 상처받지 않을 수 있어. 내가 지금 형을 방해하는 거야. 내가 붙잡고 안놔줘서 지친 형이 떠난다고 생각하면 자꾸 못돼져. 이쯤에서 그만해야지 싶은데... 형이 너무 욕심나서... 내 이기심에 ... 형을 가두는 거라고. 형은 그러니까 떠나야 하는거야. 나한테서. 결국은 떠나게 된다고."



   억울한 물기가 찰팍한 목소리가 떨렸다. 그 목소리로도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최대한 발음을 뭉개지 않으려 노력하는거다. 이에 민현의 눈가가 파르르 경련했다. 고개를 푹 떨군 다니엘의 모습이 너무 가여웠다. 웅크린 어깨가 안타까웠다. 

   그의 말대로 끝이 야기되도 이상하지 않을 관계다.



   "진짜 화나게 만드는구나, 너."

   "형,"

   "정말 내 생각은... 너 형 생각은 조금도 안해?"

   "..."

   "제멋대로 생각할거면 너 혼자 해!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고!"



   연락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몇 분 간격으로 계속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자신을 발견했다. 집앞에 서있는 다니엘을 보자 안도와 동시에 서운한 감정이 앞서 터져나왔다. 서운하다니, 누군가에게 서운하고 섭섭하다는 감정을 느껴본적이 있었던가. 게다가 저런 터무니없는 생각으로 자신을 감정의 벼랑끝으로 내몰았다니. 투명한 거울의 얼룩은 검은 배경에 들어서야 비로소 보인 것이다.



   "그 동안! 네가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난 정말 몰라. 모른다고 했잖아. 대신 형은 안하겠다고 했잖아!"

   "..."

   "그 말이 그렇게, 안 믿어져?"



   다니엘은 숙인 상태로 제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다. 화를 낸다. 그 온화한 사람이 저 때문에 격양된 목소리로.



   "네가 이러면 어떡해. 형이..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 지 알아?"

   "..."

   "얘기하자고, 맞춰가자고? 애초에 그거부터가 안 맞는거야."



   민현은 그의 넓은 어깨에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처음이잖아, 나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네가 이끌어줘야 하잖아, 그런데 그런 네가 무너져버리면 나는 어떻게 가라고. 그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면서 투정부리고 싶었다. 그렇게 나약해져버린 자신이 낯설면서도 싫었다. 그 얇디 얇은 종이짝같은 모습이 뒤집어 진 것이다.



   "왜 맞춰? 왜 이해해? 우린 당연한 관계가 아니야. 너무 다르게 살아왔고, 모든 점이 달라. 그걸 어떻게 이해해? 나는 그렇게 너 인정할거야. 한번에 모든 걸 끼워 맞출수 없잖아. 그러니까 네가 연락이 되든 안되든 난 상관 안할거라고."

   "...응."

   "뭐가 '응'이야? 뭐를!! 정말 이기적이고 잔인해! 왜 너만 생각해?! 내가 그 시간동안, 밤새, 지금 너를 보는 순간까지! 얼마나, 얼마나 ...수만가지 생각을 했는지 아냐구 ..."

   "...형."



   민현은 한 손으로 제 눈을 가렸다. 아, 젠장. 이 모습 만큼은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작고 단정한 손 사이로 짠내가 번졌다. 다니엘은 이를 악물었다.



   "넌 몰라. 나는 내가 이렇게 바뀔줄 몰랐어! 이렇게 속좁고 짜증나는 인간으로 바뀔지 몰랐다고! 그냥 걱정되고, 무슨일인가 싶고, 설마 하는 마음에 아무것도 눈에 안들어오는데... 너는 연락도 안되고, 그 애랑 같이 있다고 하는데 진짜, 별에 별 상상이 드는지 알아? 아무리 재환이가 연락했어도 네가 있던 곳은 내가 모르는 사람의 집이었어! 내 마음이 편했을 거 같아? 전혀! 연락을 왜 재환이한테 받아야해? 왜 네가 먼저 안해줬던거야? 그 사람이 그렇게 신경쓰였어? 이렇게 다 말하면 우리가 편할까? 정말, 나도 이런 인간일 줄 꿈에도 몰랐다구! 나두!!"

   "!!"

   "네가 갑자기 떠날까봐 너무 무서웠다고! 씨팔!"


  황민현이 욕을 했다.

   다니엘은 목이 댕강 잘려져 나가는 것 같았다. 민현의 목소리 끝이 찢어져있다. 정신이 번쩍 났다. 썩을 놈, 진짜 무식한 놈, 진정 중요한 걸 놓치고 말았다. 맞다, 민현의 말처럼 자신은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제가 저지른 과오에 실망해서 미련없이 등돌리고 떠날 민현의 모습에 상처받을 자신만 생각했다. 

   다니엘은 입술을 콱 깨물었다. 민현에게서 그 시간동안 겪었을 사랑의 좌절감이 여실히 느껴졌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고통받지 않았던 척 하려 얼마나 애썼을까. 제 실없는 투정에 무너졌을 자존심일텐데, 그 와중에도 자신을 인정하려 드는 것일까. 어리석은 짓이란 걸 알면서도 망각과 자각의 길로 들어선 그를 왜 두려워하며 안아주지 못했던걸까. 한심한 제 자신에 말문이 막힌다. 쓴 입안에 혀를 굴렸다. 

   자신이 당장 해 줄 수 있는 말은,



   "... 미안해."



   절대 해주고 싶지 않았던 말뿐이었다.



   "미니형 절대 속좁고 짜증나는 인간 아니야. 절대로. 이건 순전히 내가 백프로 잘못했고, 내가 죽일놈인거야. 어떻게 용서받아야할지 모르겠어서 .. 나한테 기회도 안주고 떠날까봐 겁났어. 내가, 내가 속좁고 짜증나고 비열한 인간인거야 형. 그러니까 ... 그러니까 ..."

   "...정말, 흐.."

   "울지마. 제발 ... 제발 울지마..."

   "... 흐으, 나쁜자식."

   "더 해, 더 욕해,"



   다니엘은 민현의 팔을 잡아 끌어당겼다. 순순히 제 품으로 걸어들어오는 온기를 숨통이 조일만큼 꽉 안았다.



   "실컷 욕해. 풀릴 때까지 나 때려도 돼."

   "... 진짜 나쁜자식."

   "재환이가 축가부르는데, 형 생각밖에 안나더라. 미니형 목소리밖에 안들렸어. 우리도, 언젠간, 이란 생각에. 쓸데없는 생각이 다 들었나봐."



   민현은 당당히 턱시도를 입고 힘차게 걸어가는 다니엘을 상상했었는데, 다니엘은 그 반대였다. 그런 민현의 모습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음에 비관적으로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큰 사랑 앞에 무릎꿇을 수밖에 없는 부속적인 감정이었다. 제 마음의 질량이 너무나 비대해져서, 덜컥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속된 생각임을, 민현의 눈물을 보아서야 깨닫게 되는 것일까. 이와 동시에 그의 마음 또한 겁먹고 있었음에 안심하는 것일까. 미련해 빠졌다. 쾌쾌한 제 뒷방마저 말끔히 청소해주는 이를, 어째서 자신은, 부정으로 밀어내려 했던걸까. 부득 이를 가는 제 자신을 아는 듯 민현은 그의 등날개에 체온을 싣는다.

   믿기지 않아, 이 사람을 안고 있다는 것이.



   "... 너무 많이 생각하지마."

   "응. 고마워. 나 형이 하라는 대로 다할게."

   "... 그럴 필요 없어."

   "형 ... 미니형."

   "앞으로도 넌 너대로 보여줘. 대신 오늘 같은 말일랑 다신 없어야해. 미안하다느니, 고맙다느니, 그런 말들."

   "물론이야. 꼭 지킬게."



   더욱 제 몸을 끌어안는 큰 품에 민현은 얼굴을 파묻었다. 덩치는 이렇게 크면서 어린애 같은 생각만 하다니. 하지만 사랑의 표면 안에서 불완전한 자신들의 모습을 한껏 쏟아내니 어딘가 시원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동안의 서로가 갖고 있던 일종의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엷어지고 이와 반대로 안정감이 한결 견고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멀게는 미래에 대한 막연함과 가깝게는 성우의 입장까지. 끌어안고 가도 깊은 생채기가 나지 않을 만큼 단단해진 것만 같았다. 

   그러자 불현듯 민현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스쳐갔다. 몸을 떼어 다니엘의 얼굴을 보니 속눈썹이 젖어있고 눈밑점이 한껏 진해져있다. 손을 올려 그 순한 눈을 조심스레 어루어만져주며 말했다.



   "그래도, 이번엔 내가 하라는 대로 해줘."

   "물론이지. 다 말해봐. 뭐 해줄까? 춤 춰줄까?"

   "그런거 말고. 나랑 부산가."

   "부산?"

   "응. 내일 나랑 ..."

   "지금 가자! 내랑 당장 가자!"



   민현을 덮치듯 안으니 힘에 부친 그가 몇 발자국 옮겨졌다. 열기가 확 자신을 감싼다. 한껏 쏟아낸 것으로 냉기가 도는 제 몸이 따뜻해진다. 민현도 마찬가지로 제 체온을 다니엘에게 흘려보냈다. 우리 따뜻해지자.



   "안돼, 갈 힘이 없어. 울었더니 배고파."



   발갛게 익은 입술이 비죽 나왔다. 다니엘은 그 모습이 사랑스럽다는 듯 미소지으며 입을 맞추었다.



   "정말로, 미니형 사랑해. 제발 알아줘."

   "알아, 바보야. 너나 모르지 마."



   어색하고 싫어질 수 있는 이면의 모습까지도 우리인 것을. 불완전한 허물로는 결코 완성됐다고 할 수 없는 거니까.

   다니엘이 저를 안은 채로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 몸을 떼려고 하니 팔안쪽으로 어깨를 꽉 죄어온다. 하는 수없이 고개만 돌려 다니엘의 손을 바라보았다. 뭐하려구, 그가 스마트폰으로 배달어플을 키는 것에 민현은 폭소할 수밖에 없었다.

   민현은 짐작했다. 그렇게 살짝 어긋나고, 이어지고, 붙어져서 웃음이 터지고, 원하는 형태는 아니어도 점차 우리만의 모양을 완성해 나가겠지. 라고.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랑의 형태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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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M. If I - 콜렉티브 아츠


I'm always thinking about us

그 순간을 모두 기억하는 건

But you're always living the way

너의 의미는 한참 빨랐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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