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아리 펄 그레이시아에게



그래, 10년 후의 세상은 좀 어떠니? 지금보다 살기 좋니? 넌 머리가 좋으니까 10년 전의 세상이 어떤지 금방 기억하고 답할 수 있겠지. 사실 세상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 그걸 진짜 묻고 싶었다면 이런 편지에 써놓지 않았을 거야.


본론이란다. 내 까마귀 친구는 잘 만났어? 만나서 이상한 소리 안 했지? 좋은 인상을 남겨줬겠지? 안 그러기만 해봐라. 10년 전의 네가 꿈에 매일 나타나서 널 괴롭힐 거란다. 그애처럼 내 인생에 특이한 방식으로 등장한 사람은 없을 거야. 소중히 대해줘. 네게 10년 뒤에 나라면 어련히 잘 하고 있겠지만, 가끔은 10년 전 사람에게 잔소리를 듣는 것도 나쁘지 않잖니?


너도 기억하겠지만, 아니, 어쩌면 지금의 너도 그러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원래 나는 좀 사납고 예민한 성정이 있지. 하루에도 오천 번씩 바뀌는 모순적인 생각들은 또 어떠하고. 원래라면 나는 처음 만나는 이들에게 그렇게 가시를 드러내는 편이지만… 알잖아, 하르퓌니아의 편지에는 거짓말을 쓰지 못한다는 거. 그리고 나는 그렇게 상냥한 사람에게 약하지. 그래서 나는 꽤 예외적으로 그애에게 썩 날을 세우지 않았고, 그래, 솔직히 그렇게 편안하게 대화하는 것도 좋았어.


또 뭘 물어볼까. 아, 그래. 내 까마귀 친구가 10년 뒤에나 얘기해줄 수 있는 게 있다고 했는데… 그거 물어봤어? 어떤 거야? 지금도 궁금해서 머리가 간지러울 지경이라고. 아, 너 책은 어떤 걸 들고 갔어? 지금 내가 몇 개 정해두긴 했는데, 10년이면 그 사이에 바뀌었을 수도 있잖아. 그애가 마음에 들어하니? 부디 그러면 좋겠다.


그리고 또…… 흠, 참고로 너에 관해 물어볼 건 없어. 알아서 잘 살아있겠지, 10년간. 네가 불경죄로 잡혀가지 않았나는 걱정이 되긴 하는데, 이 편지를 읽는다는 건 어쨌건 안 잡히고 잘 살아있다는 얘기잖니? 그럼 됐지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네 집요함을 믿거든.


좋아, 일단 할 말은 여기까지야. 10년 동안 살아있던 만큼, 앞으로도 잘 살아. 네게 신의 가호를 빌어줄게.



10년 전 아리 펄 그레이시아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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