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도 맞춰 놓지 않은 여유가 넘치는 토요일 아침. 아무도 깨우지 않았는데 저절로 잠이 깬 토니가 조용히 눈을 떴다. 깜빡깜빡 느리게 눈을 깜빡이니 흐리던 시야가 점점 또렷하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런 토니의 움직임을 눈치 챈 프라이데이가 창문위로 지금의 시간을 보여주었다.


아침 8시. 사실 조금 더 자도 좋을 시간인데. 더는 잠이 오질 않을 것 같은 기분에 토니가 창문이 조금 더 잘 보이도록 몸을 틀었다. 그러자 화면의 글씨는 시계에서 주요 브리핑으로 바뀌었다. ‘밤사이 온 연락’ 이 보이자 토니는 한손을 휙 휘둘렀다. 그러자 그 화면이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화면이 올라왔다. ‘주요 뉴스’ 귀찮은 기분에 토니가 한 번 더 손을 움직이자 이번엔 창밖의 풍경으로 화면이 바뀌었다. 세상에 저게 뭐지? 토니는 조금 인상을 쓰며 창밖에 날리는 저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보려고 애썼다. 그런 토니를 눈치 챈 프라이데이가 지금의 일기예보를 화면에 띄워주었다. 화면에 떠있는 눈사람을 보며 토니는 자신도 모르게 피터를 떠올렸다.


피터가 좋아하겠단 생각에 시선을 옮기니 토니의 옆에서 토니의 팔을 베고 누운 것이 아니라 팔위에 눈을 댄 정확히는 팔에 얼굴을 묻은 아이의 동그란 뒤통수가 들어왔다. 조금의 빛이라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제법 힘 있게 누르고 있는 얼굴 덕분에 아이가 조금만 움직여도 토니의 팔엔 간지러운 속눈썹의 움직임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 기분 좋은 느낌에 토니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시선이 아이의 뒤통수를 지나 아이의 몸에 닿았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자세였다. 매일 저런 것은 아니지만 이따금 나오는 자세는 뭐랄까 무릎을 꿇은 모습이라고 하면 맞으려나? 불교에서 108배를 할 때 나올 법한, 아니면 요가의 자세 같기도 한 독특한 모습으로 잠이 든 아이를 보면 저것도 거미의 능력중 하나일까? 가는 생각이 들곤 했다.


토니가 손을 뻗어 아이의 엉덩이를 가볍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톡톡 톡톡’ 손이 닿을 때마다 신기하게도 아이의 자세는 풀렸고 어느새 평범하게 엎드린 자세로 바뀌었다. 아이의 자세가 한결 편안해 지자 토니가 고개를 조금 더 가까이해 아이의 귀에 속삭였다.


“kid. 일어나. 아침이야.”

“오 스타크씨. 5분만요.”


아이의 말에 토니의 손이 다시 아이의 동그란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이 주간 시험과 과제에 쫓겨 힘든 시간을 보내긴 했었다. 마음 같아선 교수를 직접 찾아가 깽판이라도 치고 싶을 만큼 시험 한 과목을 치루면 바로 과제가 있고 또 한 과목을 치루면 또 다른 과제가 나왔다. 아니 목표가 학생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면 대체 왜? 라는 생각이 들 만큼 과분한 양에 토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멱살을 잡으러 쫓아가려는 자신을 붙들어야 했다. 피터의 사회적 지위를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피터를 위해서 참고 또 참은 토니였다. 자신이 타인을 위해 이렇게 까지 참게 되다니. 피터는 참 토니의 인생에 다시없을 사람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토니의 손길에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아이는 힘겹게 몸을 움직여 토니와 마주 누웠다. 지난밤 시험과 과제가 모두 끝났다고 신나서 마신 술의 덕택인지 조금 부어오른 두 눈이 귀여워 토니가 아이의 눈 위에 입을 맞추었다. 팔에 닿아오던 촉감이 이젠 입술위에서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아이의 귀에 다시 속삭였다.


“kid. 밖에 눈이 와.”

“어 정말요?”


안 떠질 것 같던 아이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그 모습에 토니의 입에서 한 번 더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눈’이란 단어에 반응한 아이는 그런 토니의 미소를 보지 못하고 휙 몸을 일으켜 창문으로 다가갔다. 토니도 몸을 일으키며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뒷모습만 보아도 한껏 신이 나 보이는 모습에 토니의 기분도 몽글몽글해 졌다.


“와! 스타크씨 저기 눈 쌓이건 맞죠? 세상에!”

“그래, kid. 근데 아직 차니까 몸 식기 전에 침대로 돌아와.”

“엄.. 그래도 눈 좀 더 보고 싶은데..”

“일단 아침부터 먹자. 그리고 눈을 보던 더 자던 해.”

“네에.”


토니의 말에 피터가 조금 다운된 모습으로 다시 침대 안으로 돌아왔다. 그런 피터에게 꼼꼼하게 이불을 덮어준 토니가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방 밖으로 향했다. 주방, 아침, 요리, 이보다 더 토니 스타크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있을까? 늘 남이 해주는 요리만 먹어온 토니였는데 피터와 만나게 되면서 가장 크게 바뀐 것이 있다면 이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요리를 다 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토니가 시작한 요리는 아침에 가볍게 먹을 수 있는 토스트 정도. 그마저도 초반엔 몇 번 태워먹고 실패했었다. 이제는 완벽하다고 해도 빠질게 없지만 말이다.


타워에 딸린 작은 주방에 선 토니가 익숙하게 빵과 팬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버터와 계란도 함께 꺼내 조금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토니가 아침을 여는 동안 침대에 있던 피터는 토니가 덮어준 이불을 온 몸에 두르고 천천히 방을 나섰다. 요리하는 토니의 뒷모습도 볼 겸 눈이 내리는 타워의 전경도 볼 겸 모두가 기대가 되는 풍경이었다.


“kid. 이불은 왜 둘둘 말아 나온 거야. 난 무슨 디즈니 공주가 나온 줄 알았어.”

“공주 말고 왕자 시켜 주세요!”

“어느 왕자가 드레스를 입고 나오는데?”

“음.. 그런가? 그럼 이렇게 쓰면 할로윈 유령이 될까요?”

“이미 할로윈은 지났지만 네가 원하면 사탕은 줄 수 있지. 언제든 말이야.”


피터가 몸에 두르고 있던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썼다. 그리고 두 팔을 뻗으니 영락없는 할로윈의 장난꾸러기 유령 같아 보였다.


“오 그거 프러포즈 같아요!”

“겨우 이런 말로 프러포즈를 할 리가 없잖아! 그나저나 추운데 방에 있지 왜 나온 거야?”

“요리하는 스타크씨 뒷모습도 좀 보고 싶어서요.”

“얼마든 감상하시죠.”


피터의 말에 작게 웃은 토니가 몸을 돌려 다시 토스트에 집중했다. 그런 토니의 뒷모습을 식탁에 기대어 보던 피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스타크씨.”

“응?”

“저희 아침 테라스에서 먹음 안 되겠죠?”

“당연하지. 안 돼.”

“그래도 눈 오는 거 보고 싶은데.”

“밥은 금방 먹는 것도 아니잖아. 대신 밥을 잘 먹으면 커피는 함께 테라스에서 마시도록 하자.”

“아 그것도 좋아요!”


토니가 뒤를 돌아 피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피터는 익숙하다는 듯 그의 손에 머리를 부볐다. 손바닥에 닿아오는 보드라운 감촉에 토니의 기분도 피터의 기분도 다시 한 번 몽글몽글 해졌다.


“거의 다 되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네!”


고소한 버터의 향이 곧 공간을 채워가고 그렇게 아침이 준비되었다. 토니는 익숙한 듯 그릇을 두 개 꺼내고 자신의 그릇에 한 장의 빵을 피터의 그릇에 세장의 빵을 올려두었다. 함께 구운 베이컨과 계란까지 얹으니 제법 훌륭한 아침이 완성되었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피터의 잔을 채워준 토니가 자신의 잔에는 커피를 채운 채 피터와 마주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그래, 맛있게 먹어.”


피터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식사를 시작했다. 토니는 천천히 자신의 그릇을 비우며 앞에 앉은 피터를 바라보았다.


“스타크씨!”

“응?”

“저희 오늘은 뭐해요?”

“음 네가 하고 싶은 거? 그나저나 너 여기 설탕 묻었다.”


토니가 손을 뻗어 피터의 입가에 묻은 설탕을 닦아 자신의 입에 물었다. 손가락을 통해 설탕의 단맛이 정직하게 느껴졌다.


“어! 내 설탕!”

“뭐?”

“그거 이따가 먹으려고 둔건데!”


피터의 말도 안 되는 주장에 토니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피터가 두 손을 뻗어 토니의 얼굴을 붙들고 가볍게 입을 맞췄다. 사실 입을 맞췄다는 표현보단 ‘쪽’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는 표현이 옳긴 했지만.


“제 설탕 찾아가는 거예요!”

“kid. 그래서 단맛이나 느껴지겠어?”


눈을 찡긋 윙크한 토니가 이번엔 피터의 얼굴을 쥐고 다시 입을 맞췄다. 조금 전 뽀뽀보다는 훨씬 깊은 입맞춤이었다.


“자, 이제 돌려줬으니 다시 먹어.”

“난 언제쯤 스타크씨를 이길 수 있을까요?”

“아직 십년은 일러 kid. 얼른 식기 전에 먹어. 테라스 나가야지.”

“아 맞다!”


조금 억울하다는 듯 툴툴 거리는 피터를 달래며 토니는 다시 커피를 한잔 따라왔다. 조금 전 키스는 설탕보단 토스트의 맛이 났고, 그것도 크게 나쁘진 않다는 생각에 토니는 다시 웃으며 피터를 바라보았다. 두 볼 가득 빵을 씹는 아이의 모습은 정말 소동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이제 다 먹었어요!”


그렇게 생각에 빠져들 즈음 식사를 마친 피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신의 그릇을 싱크대에 가져다 두었고 토니는 고개를 끄덕인 뒤 새로운 잔에 피터 몫의 커피를 따라 피터의 손에 쥐어주었다. 커피까지 받은 피터는 후다닥 테라스로 걸음을 옮겼고, 토니는 피터가 흘린 이불을 집어 든 채 그 뒤를 따랐다.

하늘에선 하얀 눈이 날리고 있었고, 스타크 타워 아래로 보이는 건물의 옥상들은 온통 하얗게 뒤 덮여 있었다. 토니가 얼른 피터의 어깨에 이불을 둘러 주고 난간에 기대어 섰다.


“스타크씨!”

“왜? 추워?”

“아뇨! 그거보다 저 패트롤 돈다고 하면 또 안 된다고 하시겠죠?”

“알면서 왜 자꾸 묻는 거야 kid. 눈 오는 날 얼마나 미끄러지려고 패트롤 이야길 하는 거야?”

“그.. 이런 날일수록 사람들에겐 친절한 이웃이 필요 할걸요? 눈 오면 미끄러지는 분들도 잡아 드려야 하고! 사고 날 것 같은 차도 막아야 하고!”

“너는 다치고?”

“안 다칠 거예요. 아! 그럼 스타크씨도 같이 가요!”

“뭐?”

“아이언맨이랑 스파이더맨이랑 나란히 패트롤 돌면 아무도 퀸즈를 못 건드리지 않을까요?”


피터의 말에 토니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피터는 작게 입술을 삐죽거렸다. 토니는 못 본 척 눈이 내리는 도시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 스타크씨!”

“안된다니까!”

“아니 그거보다 이거 첫눈이죠?”

“그러네. 생각해보니.”

“그럼 첫눈 같이 보네요. 우리.”


피터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토니는 그 손을 맞잡았다. 그렇게 둘은 한참 눈 내리는 뉴욕의 도시를 바라보았다. 서로의 몸이 조금 식을 때까지 말이다.


comment.

자꾸 글을 안쓰게 되어서 뭐라도 써보려고 요청해 받은 주제로 글을 써보았습니다.

그냥 짧게 막 휘갈겨 쓴거라 좀 부족하지만 그냥 좀 평화로운 아침으로 봐주세요.

오랜만에 일상물 쓰니 좋네요.

17은 정비 더해서 다음에 들고오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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