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피는 욕망을 지배한다

Written By Pretty Devil

 

 

 

 

1. 계급사회(6)

 

 

 

 

“이브, 내가 너한테 언제부터 반한 건지 그게 새삼스레 궁금해? 왜? 크게 상관없지 않았어? 뾰족한 너한텐 말이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대체 왜 갑자기 말에 가시를 세우는 건지 모르겠다. 이브는 어처구니가 없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래, 새삼스레 왜 궁금해서 저딴 답이나 들어야 하는지.

 

“나보다 도망친 저 개새끼한테 관심이 더 지대한 것 같아서.”

“…….”

“하지만 그저 애완견 노릇이나 한다면 봐줄 수도 있어.”

“듀크에 대해 그 따위로 말하지 마. 그는 너한테 그런 취급 받을 존재가 아니니까.”

“하아? 자꾸 나를 자극시켜서 네가 좋을 게 없을 텐데.”

“…돌아가겠어. 피곤해.”

 

더 이상 무의미한 논쟁 따위 하고 싶지 않아 이브는 등을 홱 돌렸다. 순간, 눈앞이 핑 돌며 무릎이 꺾여 그대로 쓰러질 뻔 했다. 쓰러지려는 제 허리를 단단한 손이 받친 덕에 바닥으로 엎어지진 않았으나 이브는 당황한 상태였다. 분명 인간을 죽이며 피를 충분히 마셨건만 대체 왜 이러는 건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

 

체이스에게서 나는 청량한 페로몬. 그 페로몬이 이브를 질식하듯 코끝으로 흘러들어가 고요하게 흐르는 제 피를 뜨겁게 달궜다. 붉어진 얼굴로 체이스를 밀어내며 떨어졌지만 온 몸이 떨리는 이 감각은 도저히 무어라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내 욕망이 너한테까지 자극되는 거야, 그렇지?”

 

이브는 속으로 온갖 욕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로얄 알파. 그들이 지닌 강력한 페로몬은 베타까지도 성적으로 휘감아 달아오르게 만든다. 이제야 성에 대해 배워가기 시작한 이브로서는 외부적, 물리적으로 제 몸이 제 몸 같지 않게 되는 이런 상황이 견딜 수 없는 수치심으로 작용했다. 소년은 입술을 깨물며 체이스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저를 향한 푸른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했을 때 살갗에 따끔거릴 만큼 강한 페로몬이 휘감는 걸 느끼며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쓰러지기 직전, 묘하게 끈적한 시선의 체이스를 느꼈으나 거기까지였다.

 

대체…, 무슨 생각이야. 체이스 아다마스.

 

 

 

 

*****

 


소년은 꿈을 꾸었다. 분명 울고 있는 5 살배기 제게 나타나 품에 안아주며 따뜻하게 위로해주던 어린 늑대, 듀크와의 첫 만남에 대한 꿈이었다. 그런데 거기엔 이브와 듀크만 있는 게 아니었다. 붉은 머리칼의 소년이 함께 있었다. 역시나 어린애로 보이는 아이가 노란 꽃을 꺾어 엉기성기 엮은 꽃다발을 이브에게 내밀며 말했다.

 

‘나중에 우리 결혼하자. 내가 멋진 남편이 될게!’

‘바보야! 나도 남자거든!’

 

분명, 저 붉은 머리와 느끼하지 않은 쌍꺼풀을 지닌 푸른 눈동자, 뾰족한 턱을 지닌 잘 생긴 아이는 체이스였다. 이브는 순간 눈을 뜨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비? 눈 떴니?”

“…어머니?”

“체이스 군이 쓰러진 너를 데리고 왔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이비, 혹여라도 잘못 된 걸까봐 이 엄마는 정말….”

 

누구보다 강한 뱀파이어이자 모르나카의 안주인 비올라는 눈물을 훔쳤다. 어렵게 가진 아이였기에 제 어미가 가진 모성애는 뜨겁고 강렬하다는 걸 잘 알았다. 그렇기에 이브는 늘 미안했다. 제가 베타라는 사실에.

 

이브는 비올라를 부드럽게 안았다. 비올라의 검은 머리카락과 화사한 얼굴을 빼다 박은 탓에 여성스러운 주제에 베타라는 사실이 늘 괴로웠으나 그래도 다정한 제 어미를 볼 때면 기쁘기도 했다. 아버지는 정말로 강력한 뱀파이어 그 자체였으나 이브는 알고 있었다. 비올라가 이 집안의 숨은 실세라는 걸.

 

“어머니. 저도 이제 슬슬 인간 사냥에 참여하고 싶어요.”

“이비. 체이스한테 듣긴 했지만 넌 아직 어려.”

“아뇨, 어머니. 저도 제 힘을 조절하는 힘을 키우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훈련만으로는 안 돼요. 본격적으로 사냥에 참여해서 실전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과보호라는 건 아는데… 불안하구나, 어미는.”

“어머니.”

“이비 말이 맞아. 올리. 이제 당신과 나의 아들은 16살이고, 16살은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야.”

“에드윈!”

“아버지!”

 

눈부신 금발과 붉은 눈동자를 지닌 잘 생긴 남자가 이브와 비올라를 향해 다가오며 말했다. 바로 모나르카의 가주이자 비올라의 남편이자 이브의 아비인 에드윈 모나르카였다. 뱀파이어답게 이브의 부모 역시 젊은 얼굴이었다. 기껏해야 30대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선남선녀들은 이브를 향해 부드러운 눈빛을 보내주었다. 이브가 자랑스러워하는 부모였다.

 

“올리, 우리 아들은 형질과는 상관없어. 그대도 알잖아. 이브는 차라리 베타로 태어난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걸.”

 

에드윈의 말에 이브는 의아함을 느끼며 비올라를 바라보았으나 비올라는 입술을 깨문 채 에드윈을 노려보기만 했다. 그는 이브를 안았던 팔을 풀며 에드윈에게 다가가 이를 악물며 낮게 속삭였다.

 

“그 이야기를 이비가 있는 데서 꼭 할 필요가 있어?”

“올리, 우리 아들이야. 우리가 우리 새끼를 안 믿으면 누가 믿어. 모나르카의 힘을 제대로 받은 유일무이한 존재야. 우리를 뛰어넘을 거야, 이브는.”

“알아! 누가 그걸 모른대? 내가 무얼 걱정하는지 자기도 잘 알잖아!”

 

이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번도 소년 앞에서 언성을 높인 적 없던 부모였다. 드물게 에드윈에게 화를 내는 비올라의 눈엔 복잡한 감정이 담겨져 있었으나 그 깊은 곳에 드러나는 건 불안이었다. 이브는 두 주먹을 움켜쥐며 낮게 말했다.

 

“…제가 베타라서 죄송해요. 그, 그래도 저 진짜 뱀파이어로서의 힘은 강해요! 어머니,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잖아요! 그러니까…!”

“오, 이비! 그런 거 아니란다, 네가 베타라서 그런 게 아니야! 엄마는, 엄마는…!”

 

소년의 말에 놀란 비올라는 자책하는 소년을 있는 힘껏 품안에 끌어안았다. 이브는 다른 방법을 제안하기로 했다.

 

“어머니, 그렇게 걱정되시면 체이스와 함께 할게요. 실전에 투입할 때마다 체이스와 함께 한다면 괜찮을 거예요!”

 

이브의 말에 비올라와 에드윈은 서로를 바라보다 소년을 다시 바라보았다. 이브는 반짝이는 붉은 눈으로 확고한 의지를 부모에게 심어주었다. 뱀파이어가 지닌 능력 중 하나는 바로 세뇌와 최면이었다. 부모에게까지 무의식적으로 그 힘을 내뿜기 시작하는 소년이 기특해 에드윈은 이브의 결 좋은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며 호쾌하게 웃었다.

 

“그래, 네 약혼자와 함께 한다면 네 엄마의 과보호도 좀 덜어낼 수 있겠다, 좋은 생각인데 아들?”

“에디! 이게 장난으로 보여? 난 지금 심각하다고.”

“부인, 나도 장난 아니야. 언제까지 우리가 끼고 살 순 없다고. 이제 곧 당신과 나의 사랑으로 태어난 우리 아들은 결혼을 한다고. 알지? 20살은 코앞이야.”

“나도 알아, 나도 안다고. 하지만…, 이비는…!”

“비올라. 우리 아들이 다 듣고 있어.”

 

이브는 혼란스러웠다. 대체 제 어미가 무엇 때문에 저렇게 크게 걱정을 하는지 이브로서는 짐작조차 되지 않아 마음이 복잡했다. 제 형질 베타 때문인가? 싶다가도 아비인 에드윈의 태도로 미루어보자면 결코 형질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대체 뭐가 문제지?

 

부모의 입장을 봐선 결코 소년에겐 말해줄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이브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계속 생각해봤자 자존감만 낮아질 것 같았기에 소년은 다부진 눈매로 부모에게 제대로 못 박았다.

 

“저 정말 잘할 자신 있어요. 물론, 실전은 다르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모나르카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강해지고 싶어요.”


그리고 제게 소중한 이들을 지키고 싶다. 그 순간 이브에게 떠오른 건 두 명이었다. 붉은 머리칼의 체이스와 검은 머리칼의 듀크가.

 

말도 안 된다 생각했지만 이브는 고작 만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정략혼의 주인공이 조금씩 가슴에 들어차는 걸 느꼈다. 쉽게 잊을 수 없는 압도적인 존재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강렬하게 머리와 가슴을 지배하는 건 역시 이브와 같은 솔이기 때문일까. 설마, 뱀파이어의 힘을 제게도 쓴 걸까. 아니, 그러지는 못하리라. 같은 계급끼리는 세뇌와 최면을 걸지 못한다. 물론 그 힘을 느낄 순 있어도 결코 지배당하지 않기에 철저히 힘의 세계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다, 뱀파이어의 세계란.

 

세뇌와 최면은 우위를 점하기 위한 뱀파이어의 본능적 지배욕이었다. 소년 또한 제 부모에게 무의식적이었으나 그걸 사용하려 하지 않았던가. 그래봤자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뼈저리게 깨달았을 뿐이지만. 그 정도로 이것은 뱀파이어에게 있어 기본적인 욕구였다.

 

“이비, 너는 체이스가 어떠니?”

 

다정하게 볼을 쓰다듬으며 말을 건네는 비올라의 질문을 순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이브는 눈을 깜빡였다. 비올라는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한 번 질문을 건넸다.

 

“체이스와의 결혼, 네가 싫다면 어미는 네 뜻을 따를 거야.”

 

 


작가가 꿈인 악마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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