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창작

※전력 60분

※주제:술주정

※약수위

※공백포함 6,992자



 

 동화 속의 주인공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 한다. 그러다가 행복해지는 결말로 끝나는 뻔한 이야기. 모든 아이들이 동화를 따라서 꿈을 꾸지만 어릴 적의 나는 그 누구보다도 빨리 현실을 깨우쳤다. 그러기엔 너무 일렀던 나이였을까. 고교 때 나를 쓰레기 취급하던 몇몇 인간들에 의해 나 자신마저 쓰레기라고 인식했던 건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지금까지도 날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아무도…



친애하는 그대에게_by.Lemon



"우리 이치마츠~ 이제 봄이 되니까 술 마시는 양이 늘었다아~?"



‘…정작 본인이 제일 많이 마시면서.’



오소마츠 형이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술에 취해 헤벌레 웃는다. 치비타는 팔짱을 끼며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역시 오소마츠 형 옆에 앉는게 아니였어. 아, 게다가 내 오른쪽에는….



"브라더, 너무 마시면 좋지 않다구?"



…이 자식이 있었지.



"………"



오늘은 친절함 따위 베풀지 말아줘. 봄이 오면 고교 때의 트라우마가 떠오르니까. 특히, 꽃잎이 흩날리는 날은 정말 최악이야. 맥주잔에 맺힌 차가운 물방울이 컵을 잡은 내 두손에 스며들었다.



"젠자아아앙~... 이젠 잊을 때도 됐잖아-!"



괜히 몰려오는 감정에 나는 그렇게 큰 소리를 내며 상에 엎드렸다. 잠시 조용했다가 이내 형제들과 치비타가 웃으면서 나를 놀린다. 하긴 너네가 뭘 알겠냐. 내 고교 때의 과거를 아는 건 아마 오소마츠 형 뿐일걸... 왁자지껄 떠드는 형제들의 목소리 속에서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만이 들리지 않는다. 상에 처박은 고개를 오소마츠 형 쪽으로 살짝 돌리니 오소마츠 형은 맥주잔을 쥔 채 무표정으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오소마츠 형도 나의 분위기 파악을 잘한다니까. 내 과거는 그냥 웃어 넘기며 떠들 일이 아니니까. 오소마츠 형이 잠시 눈을 감더니 내 쪽을 보며 웃었다.



"미안해. 그때 내가 좀 더 빨리 알아챘어야 했는데."



"그럴 거 없어. 단순히 나는 인간관계에 소홀했던 것 뿐이니까."



매년 봄마다 오소마츠 형에게 듣는 소리다. ‘미안해’ 라는 말 따위는 형이 아니라 학창 시절의 그 애들이 해야 하는 말인데.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매년 사과하는 오소마츠 형이 어떻게 보면 분하기도 하다. 상 위에 계속 엎드린 채 오소마츠 형을 보다보니까 오른쪽 뺨이 슬슬 저려온다. 그리고 내 뒷통수에서도 시선이 느껴지자 고개를 휙 돌려 방향을 쿠소마츠 쪽으로 바꾸었다. 그러자 쿠소마츠는 당황하여 움찔하고서는 자연스럽게 맥주를 들이켰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카라마츠의 맥주잔이 상 위에 놓이자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저, 이치마츠. 뭔가 오소마츠 형이랑만 둘이서 아는 게 많은 것 같네?"



"흥. 오히려 너희가 나한테 관심 없는 거겠지. 베-"



나는 혀를 살짝 내밀어서 약 올렸다. 카라마츠는 그런 나를 보며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렇게 확 티가 나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술기운인가?



"...그렇구나. 내가 이치마츠한테 너무 소홀했던 건가."



"그치마안 너의 관심 따위를 필요로 하진 않는다구우..."



아 지금 나 엄청 이상한 표정 지었을 것 같은데. 뾰루퉁한 얼굴이려나. 토도마츠가 나를 보고서는 웃기다는 듯이 휴대폰을 들어 내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아-- 이치마츠 형의 이 표정은 드물지. 완전 럭키라구??"



"그래도 오늘 이 정도로 주정이 심한 걸 보면 꽤나 쌓인 게 있는 모양이야."



쵸로마츠 형 제법이네. 그걸 알아맞췄구나. 느닷없이 과거의 오소마츠 형이 떠올랐다.



"이제 잊을 때도 됐잖아, 이치마츠--"



"난 네가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거이상은 못 본다고-"



그토록 나를 설득하던 오소마츠 형은 어느 순간부터 잊으라는 강요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잊을 수 있을리가... 없잖아..."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지만 달아오른 형제들의 분위기 때문에 아무도 듣지 못했다.



"동화같은 일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으니까... 꿈 같은거 꿔봤자 나중에 더 아프잖아......."



나는 지금도 아프다. 고교 때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을거라는 꿈을 나도 모르게 꾸었던 것일까. 그 꿈이 지금까지도 나를 아프게 만든다.



"어째서..... 어째서 동화는 존재하는걸까,

.

.

.

꿈을 꾸게 만들어놓고서는 처참히 부수잖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현실이 그렇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잔인하구나, 현실이라는건. 줄곧 지금도 그걸 느낀다. 


…나 혼자 너무 부정적인 것 같잖아. 이 세계를 탓하면서 남몰래 슬퍼하고 있다가 그대로 잠들어버린 것 같다. 어째서인지 고교 때의 꿈을 꾸었다. 그 당시의 상황 하나하나가 묘사되어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



고등학교 입학 당시, 벚꽃이 흩날렸다. 벚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렇게 예쁜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후로 나는 벚꽃을 싫어하게 되었다. 반배정 표가 나왔을 때 나와 형제들은 각각 다른 반으로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중학교 때 나는 꽤나 친구를 잘 사귀었었으니까 이번에도 걱정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랐다. 반배정이 잘못 되어서 우리반에 양아치들이 몰렸던 건지, 아니면 단순히 내가 노력하지 않은 건지.



고등학교 1학년,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려 해도 어째서인지 쉽지 않았고 내가 6쌍둥이 중 한명이라는 이유로 조금씩 따돌림을 당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다른 반에 있는 나머지 형제들은 별 문제 없이 잘 지냈다.그들이 6쌍둥이라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는데 나만 차별 당한 것이다. 외로웠다. 점심시간에도 밥을 먹지 않고 운동장 밖의 나무 그늘에 앉아 벚꽃만을 구경했었다. 그러다가 우리반의 양아치들이 나를 찾아내서는 내 머리 위에 음식을 쏟는다든지 돌도 던진다던지... 그야말로 난 쓰레기였다. 쏟아지는 꽃잎들 속에 음식물 쓰레기를 뒤덮은 나를 보고서는 그 자식들이 비웃었다.



"벚꽃 나무 아래 쓰레기네~"



그래서 나는 벚꽃을 싫어하게 되었다. 벚꽃을 보면 고교 때의 일이 자꾸 떠올라서 보기 싫어진다. 그 애들이 나를 쓰레기로 만들었어. 난 그냥 하찮은 쓰레기일 뿐이야. 나 자신을 비하하는 말을 쓴 게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당시 오소마츠 형은 내가 이상하단 걸 눈치채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당장이라도 그 자식들을 팰 듯한 인상을 한 채 욕을 했다.



오소마츠 형의 도움으로 내가 따돌림을 당할 때 보호 받긴 했지만 고교 생활 3년 내내 행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소마츠 형은 매번 미안하다는 말만 수시로 반복했다. 자신이 빨리 알아채지 못한 것을 원망하며 계속 사과했었다. 사과해야 하는건 그 자식들인데... 어째서 형이 사과하는거야. 

나를 괴롭히는 자식들은 오소마츠 형이 항상 두들겨 팼다. 합리적인 대화로 풀 생각은 없었는지, 덕분에 오소마츠 형은 늘 상처투성이였다.



"에~ 오소마츠 형 오늘도 다친거야? 이 정도면 무슨 일 있는거 아닌가 싶은데-"



"헤헤 불량배들 좀 혼내주느라~ 그래도 걱정 마! 내가 무조건 다 이기거든"



'정도껏 해-' 형제들이 모두 오소마츠 형을 걱정한다. 그냥 웃어넘기던 형이었지만 그 뒤에 숨겨진 쓸쓸함과 안타까움이 내게는 보였다.



"이딴 인생 정말………………"

.

.

.

.


"……………행복할 거 없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면서 잠을 깼다.



"아, 이치마츠! 정신이 드는가?"



쿠소마.. 츠...? 다른 형제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쏠렸다. 오소마츠 형이 나를 제일 걱정했다.



"어이 이치마츠. 너 왜그래? 자면서 울기나 하고.."



"이치마츠 형 진짜 무서웠다니까?! 뭔가 우리한테 원한이라도 있는 거면 제대로 말 해. 사과할테니까아-"



"미안합니다 형아-"



갑자기 사과하고 난리야…



"아니이.... 그런 거 아니니까아.."



그렇게 말하며 나는 헤벌쭉 웃어보였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치비타는 국자를 든 채로 굳어있었다. 무슨 일인지 파악하지 못 한 나는 머리속이 물음표로 가득찼지만 입술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고서는 이내 알아챘다.



‘카라.......?!!’



입 안의 물컹함이 완전히 나를 뒤집었다. 카라마츠의 기습 키스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나는 버둥대다가 허리에 손이 오면서 입이 떼졌다.



"이치마츠…"



어두운 톤의 목소리. 이런 목소리는 쿠소마츠 뿐이 낼 수 있으니까. 카라마츠가 다시 입을 맞춰오더니 혀로 내 입 안을 탐했다. 고개 각도를 바꾸면서 입을 잠깐 뗐다가 다시 맞춰오고 혀가 얽히면서 츄웁 춥 거리는 소리가 났다.



"후으읍... 웅.. 읍......."



왜 느닷없이 키스를 당한 건지 나는 몰랐다. 정적이 흘렀던 형제들이 정신을 차리고서는 우리 둘을 말리려고 했다. 오소마츠 형이 나를 딱 떼어놓더니 카라마츠에게 그만하라고 말하려던 순간 내 목덜미가 물렸다.



"후긍읏....?!!"



부드러운 촉감이 목덜미에 닿아 깨물고서는 이내 핥고 키스를 한다.



"잠... 깐........... 카라마츳....♥"



쥬시마츠가 카라마츠를 떼어놓자 카라마츠가 사람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거 놔.."


뭐냐고 쿠소마츠?! 갑자기 흥분하고 지랄이냐!! 카라마츠가 쥬시마츠에게서 빠져나와 나를 제압하려고 하자 나는 냥냥펀치를 카라마츠의 뺨에 날렸다.



"그... 마안........"



카라마츠도 정신을 되찾은 듯 나를 강하게 붙잡고 있던 손에 조금씩 힘이 풀렸다. 카라마츠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저,............... 내가 뭔가 이상한 짓을 했다면 미, 미안 이치마츠..... 너무 귀여워서 그만..."



헛소리를 하는 카라마츠를 멍하니 보다가 하늘이 뒤집어지는 느낌이 들더니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환청처럼 형제들의 소리가 울렸다.



--괜찮아, 이치마츠?!



--너무 취했어. 얼른 집에 데려가자.



정신을 차렸을 때 보였던 건 평소 익숙한 천장.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보니 모두가 아직 자고 있다.



‘지금 몇시지…’



시계를 보니 새벽 6시 반이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내가 일어나다니, 별일이다. 몸을 일으켜 세우고서는 기지개를 쭉 폈다. 그러자 내 옷깃을 붙잡는 손이 느껴졌다.



"………이치마츠, 깼어?"



아직 잠에서 덜 깬 눈빛을 한 쿠소마츠. 어제 술 마셨을 때 일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쿠소마츠가 내게 키스했던 일만은 똑똑히 기억났다.



".......읏?!"



나는 순간 당황해서 이불을 빠져나와 벽에 착 달라붙었다. 카라마츠도 몸을 일으키고서는 괜찮냐고 묻는다.



"...괘, 괜찮을리가 없잖아, 바보야!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고 말하는건지...."



"아, 아아...... 그땐 미안했어 이치마츠.."



아직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그래도 그땐 쿠소마츠의 실수였을테니까.



"저, 이치마츠. 우리 잠깐 산책할까?"



"....? 뜬금 없네."



"오늘 벚꽃이 본격적으로 지니까 그 광경을 이치마츠랑 둘이서 꼭 보고 싶거든."



.... 역시 카라마츠는 날 좋아하는건가. 그보다도 난 벚꽃을 보면 트라우마가 떠올라버려서 꽤 힘들다. 그래도...... 카라마츠랑 함께라면 괜찮을지도..... 아니, 나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뭐가 괜찮은거냐고??? 속으론 그렇게 헤맸지만 내 몸은 밖에 나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이젠 아침 7시 쯤이다. 아침 공기는 꽤나 맑았다. 아침 산책은 아마 이번이 처음이려나..... 나 진짜 게을러터졌다. 카라마츠와 길을 걷고 있다가 내 눈 앞에 스친 것은 분명 분홍빛이었다. 해가 뜨고 있는 시간에 벚꽃은 무수히 쏟아지고 있었다. 아, 싫어. 더는 보기 싫다고. 벚꽃 앞에서의 나는 쓰레기니까.



"이치마츠, 멋지지 않은가? 이런 광경을 이 시간에 볼 수 있다니 완전 럭키군!"



카라마츠는 들떠서 벚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실 앞에서는 자꾸 쓰레기가 되는 내가 싫었다. 이딴 트라우마 하나 이겨내지 못해서는 의기소침해지는 내가 너무 싫다. 머리를 꽉 쥐고서는 주저앉았다.



".....이치마츠?"



"싫어 더 이상은!"



"왜...... 그러는가, 이치마츠...."



"너는 몰라. 내가 왜 쓰레기가 되었는지는 오소마츠 형 밖에 모른다고!"



오소마츠 형이라는 말이 나오자 카라마츠는 움찔했다.



"어제 오소마츠랑 얘기했던 것... 말인건가"



"…"



"미안해 이치마츠. 이런 나라도 괜찮으면 다 말해주지 않겠는가?"



.... 말한다고 나쁠 건 없지. 조금 더 나를 알아줬으면 하니까. 내 과거를 전부 토해내니 속이 시원했다.



".....그렇구나."



...? 조금은 실망할 줄 알았는데.



"알아채지 못 해서 미안해, 이치마츠. 동생이 그렇게 상처입고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그렇게 힘들어했는데 나는 그거 하나 모르고 아무렇지 않았었으니까."



"…됐어. 내가 알리지 않았을 뿐이고."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래도 이치마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너 자신을 사랑해야 누군가도 널 사랑해줄 수 있어"



아무도 없어.



"그래도 난 널 사랑해줄 거야, 그러니까 널 사랑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여기 있어."



카라마츠가 날 끌어안았다. 여태까지 들어보지 못 한 말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여태껏 나는 외면해왔다. 더 바래봤자 아무것도 얻을 게 없었던 이 현실을. 벚꽃을 원망했다. 그 원망으로 가득 찬 나의 그림자에 꽃잎이 가려졌다. 그렇게 내가 부서져가고 있었던 그때 카라마츠가 나를 구원해주었다. 나는 이제 벚꽃을 사랑할 수 있다.



이 현실을 사랑할 수 있고, 카라마츠도 사랑할 수 있다.




Fin.





제 블로그에 있는 소설이 너무 많아서 전부 다 못 올리겠더라구요 하하... 열심히 올려야겠져... 8ㅅ8 근데 어차피 예전 소설들은 전부 이상하게 써서 올리기도 민망할 것 같아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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