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게 너무 멀게만 느껴졌었다. 김상균은 데뷔를 했을 때 첫 행복을 느꼈고, 김동한을 만나고서 두 번째 행복을 느꼈다. 첫 번째 행복에 뒤따라온 불행은 생각보다 저조했던 인기였고, 7초도 채 넘지 못했던 파트였다. 하지만 그 불행은 생각보다 오래 가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 행복에 뒤따라온 불행은 바로 지금 김상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 일이었다. 이 불행은 김상균을 야금야금 긁어먹어서 김상균을 죽도록 아프게 만들었다. 숨만 쉬어도 눈물이 흘러나왔다. 김상균은 생각했다. 역시 행복이란 건 나와 너무 먼 상대라고.

하루종일 김동한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입은 김동한의 이름을 내뱉고, 김상균의 모든 곳들이 김동한을 찾았지만 머리는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김동한은 닿지 않는 연락에 애가 탈 것 같았다. 저를 보며 좋아한다고 하던 그 목소리, 어젯 밤의 나른하던 눈, 낑낑거리며 사랑해달라고 하던 김상균이 아직도 눈 앞에 아른거리는데 매니저 형이 불렀다는 문자를 끝으로 김상균은 연락이 없었다. 미칠 것만 같았다.

김상균은 금방이라도 문을 벌컥 열고 한지혁이 들어올 것만 같아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가, 이불 속에 숨었다가를 반복했다. 한참을 반복하다 김상균은 숙소 밖에서 동네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이런 상황에도 잠이 오긴 오는구나. 김상균이 한숨을 푹 쉬고 몸을 일으키자 밖에서 누군가가 노크를 했다. 당연히 한지혁일 것이다. 사실 마음의 정리는 이미 끝난지 오래였고, 김상균은 아랫입술을 한 번 꽉 깨문 후 문고리를 돌렸다.


"형."

"…."

"생각은 해봤어요?"

"응."


김상균이 눈을 아래로 떨구자 한지혁은 부드럽게 김상균의 뒷목을 감싸며 다가왔다. 김상균은 미간을 찌푸리곤 한지혁의 손을 쳐내고 한지혁을 뒤로 세게 밀었다.


"말해."

"네?"

"말하라고. 매니저 형한테도 말하고, 멤버들한테도 말해."

"뭐요?"

"왜. 하라니까 당황스러워? 내가 당연히 너랑 자줄 줄 알았어?"

"비싸게 구네요, 형."

"니가 존나 싼 거 아냐?"

"뭐라고요?"

"씨발새끼가."


김상균은 한지혁의 어깨를 퍽 치고는 현관으로 가 어제 급하게 들어오느라 대충 벗어던져뒀던 신발을 구겨신었다. 그리고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있던 김상균이 문을 열기도 전에, 현관 문이 열렸다. 김상균의 앞에 서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같은 멤버인 김민건이었다. 존나 피곤해서 죽을 것 같다며 입에 욕을 주렁주렁 달고 들어온 김민건은 울먹이는 김상균의 얼굴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짓고, 거실에 서서 김상균을 노려보고 있는 한지혁을 바라봤다.

아, 안녕. 김상균은 떨리는 목소리로 김민건에게 어색한 인사를 한 뒤 숙소를 빠르게 빠져나가 큰 길로 나갔다. 택시를 잡는 김상균의 손이 분주했다.


집에서 멍청하게 핸드폰만을 바라보고 있던 김동한은 갑자기 울리는 호출 벨소리에 경기를 일으키며 펄쩍 일어났다. 누구세요. 김상균은 김동한의 집 공동 현관에 서서, 김동한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참아왔던 눈물을 펑 터뜨렸다. 동한아. 동한아아아. 김동한은 하루동안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찾아와서는 엉엉 울어버리는 김상균 때문에 너무 놀라 공동현관을 열어줄 생각도 않고 저가 헐레벌떡 집 밖으로 나가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평소보다 너무 느리게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때문에 김동한은 아 씨발! 이라고 소리를 지르고는 비상 계단을 이용해야만 했다. 9층에서.

계단을 뛰쳐내려온 김동한은 거기 가만히 서서 꺼이꺼이 울고있는 김상균을 껴안았다. 김상균은 형,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었어요? 하고 묻는 김동한의 목소리가 너무 다정해서 더 눈물이 났다. 김상균은 도리질을 치며 김동한의 품 속으로 더 파고들었다. 동한아. 나 무서워.


김동한의 집에 들어온 김상균은 그냥 의자에 앉겠다 했지만 김동한이 그걸 가만히 두지 않았다. 김동한은 굳이 김상균을 제 무릎 위에 앉히고서는, 어린 아이를 안은 것 같이 김상균을 껴안았다. 김상균은 계속 등을 토닥여주는 김동한 덕에 마음이 좀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문득 떠오르는 한지혁의 얼굴 때문에 다시 불안감이 생기곤 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김상균의 등을 쓸며 다정히 묻는 김동한의 목소리에 김상균은 몇 번 쉼호흡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한지혁 걔가.


김상균의 말을 끝까지 다 들은 김동한은 아무 말 없이 김동한의 등을 토닥였다. 자신이 그날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김상균에게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미안해요."

"뭐가."

"제가 그 날 멋대로 키스해서 이렇게 됐잖아요."

"그래도 그때 기분은 엄청 좋았잖아."

"응."

"그럼 된 거야."


그렇게 김상균은 김동한의 가슴팍에 머리를 기댔다. 쿵쿵 뛰는 김동한의 심장이 느껴졌다. 아까 한지혁과 이야기를 나누던 제 심장의 박동과 똑같았다. 이제는 김상균이 김동한의 가슴팍에 손을 올려 김동한을 토닥였다. 괜찮아. 우리 진짜, 괜찮아. …괜찮을 거야.

김동한은 며칠 전 밤 김상균과 봤던 그 리얼리티 프로그램 속 김상균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는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나도 소중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너네한테, ….] 

김동한이 알고있던 김상균은 늘 멤버들부터 챙기는 사람이었다. 한지혁에게 열등감을 느끼고있긴 했지만 그 누구보다 한지혁을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활동기 비하인드 영상을 아무거나 하나 골라서 봐도 김상균은 입을 벌리고 자고있는 한지혁을 보며 '지혁이가 너무 피곤해서 걱정이 돼요.'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화가 났다. 멤버들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 김상균에게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게.

김동한은 아직까지도 훌쩍이고있는 김상균의 입에 제 입을 맞췄다. 김동한만 맞출 수 있는 입술이었고, 김동한만 탐낼 수 있는 입술이었고, 김동한만 가질 수 있는 입술이었다. 김동한은 이를 바득 갈았다. 김상균에게 상처를 준 한지혁을 가만히 놔둘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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