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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메스는 특히 요즘의 그리스 신화 팬덤에서 인기가 많은 신입니다. 하지만 그 인기가 무색하게도, 헤르메스는 그렇게 눈에 띄는 인물이 아닙니다. 헤르메스는 언제나 부차적인 역할을 합니다. 가장 자주 하는 일은 제우스의 명령을 받아 그대로 수행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무엇이 헤르메스를 그렇게 매력적인 인물로 만들었을까요?

 한 가지 요인은 아마도 여러 분야에 발을 담근 헤르메스의 역할일 것입니다. 다른 신들과 비교해도 다양한 업무를 가진 헤르메스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부의 신』에서도 패러디되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크레뮐로스와 그 노예 카리온은 부의 신의 눈을 치료하고, 그 결과 모든 사람이 부유해집니다. 더 이상 사람들은 신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고, 배고파진 헤르메스는 일자리를 찾아서 이들을 찾아옵니다.

카리온: 당신들이 여기에 머무르면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되나요?
헤르메스: 나를 문 옆에 세워! 내가 파수꾼(strophaios)으로서 도둑들을 막아줄 테니.
카리온: 막아준다고요? 여기엔 막아줄 자가 필요 없어요.
헤르메스: 그렇다면 장사의 신(empolaios)으로 세워!
카리온: 우리는 이제 부자들이라, 도붓장수 헤르메스를 먹여 살릴 필요가 없어요.
헤르메스: 그럼 기만의 신(dolios)으로 세워!
카리온: 기만의 신이라고? 천만의 말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만이 아니라 정직이니까요.
헤르메스: 그럼 길라잡이 신(hegemonios)으로 세워!
카리온: 부의 신이 시력을 회복한 지금, 우리는 더 이상 길라잡이가 필요 없어요.
헤르메스: 그럼 난 경기의 신(enagonios)이 될래. 이의 있어? 예술 경연과 육상 경기를 개최하는 것은 부의 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니까 말이야.
카리온: 직함이 많다는 것이 확실히 좋긴 좋네요.

-아리스토파네스 『부의 신』 1152-1164 (천병희 역)

 헤르메스는 어떻게 이런 다양한 역할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헤르메스는 어떤 신일까요? 이 글에서는 우선 헤르메스의 다양한 역할과 모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다음엔 헤르메스의 다양한 역할을 과도기라는 한 가지 주제로 묶어보겠습니다. 끝에는 헤르메스가 주역으로 등장하는 거의 유일한 신화, 「호메로스 찬송가」 속 소 도둑질 신화와 청소년 통과 의례 사이의 관계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Ⅰ. 헤르메스의 역할

 앞서 말한 것처럼, 헤르메스는 여러 직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학자들도 헤르메스의 다양한 역할을 하나로 묶어 설명하기 어려워합니다. 우선은 헤르메스가 어떤 신인지 알아봅시다.

 헤르메스는 신화에서나 숭배에서나 가장 중요한 신이 아니었습니다. 헤르메스 숭배는 그리스 전역에 퍼져 있었지만, 그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성역이나 축제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에 헤르메스는 다양한 신화에 작게나마 등장해서 역할을 하곤 합니다.

양을 짊어진 헤르메스. 루브르 F161 화가가 그린 아테나이 흑색 그림 올페. 기원전 510년경.헤르마 상 앞에서 제물을 바치는 사람들. 아테나이 흑색 그림 크라테르. 기원전 510년경.
ⅰ. 목동의 신

 헤르메스는 목동의 신이었습니다. 『일리아스』는 헤르메스의 사랑을 받아, 많은 양 떼를 보유한 트로이아인 포르바스를 이야기합니다(14.491). ‘많은 양 떼’를 뜻하는 폴뤼멜레에게서 ‘좋은 선물’ 에우도로스를 낳은 이야기는 암시적입니다(16.185). 헤시오도스는 마찬가지로 헤르메스와 헤카테가 가축 떼를 늘리는 데 도움을 준다고 전합니다(『신들의 계보』 444). 따라서 헤르메스는 양 떼의 신(epimelios)입니다(파우사니아스 9.34.3).

 전형적인 도상의 일종이 된 양을 짊어진(kriophoros) 헤르메스는 보이오티아의 타나그라에서 숭배됐습니다. 타나그라에서는 도시에서 가장 잘생긴 젊은이가 양을 짊어지고 성벽을 도는 의례를 진행했습니다. 이는 헤르메스가 같은 행동을 해서 역병을 쫓았다는 신화에서 유래했습니다(파우사니아스 9.22.1).

 헤르메스는 목동들에 더욱 가까운 지상의 신들과 친했습니다. 『오뒷세이아』에서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는 돼지를 해체하고, 뉨프들과 헤르메스를 위해 한 몫 남겨 둡니다(14.435). 야생의 여신들인 뉨프들은 헤르메스와 자주 연결됐습니다(「호메로스 찬송가」 5.262; 아리스토파네스 『테스모포리아 여인들』 977; 파우사니아스 8.16.1). 아르카디아 산속의 반인반수 신 판은 헤르메스의 아들입니다(「호메로스 찬송가」 19.1). 마찬가지로 목가시를 발명한 다프니스 또한 헤르메스의 아들입니다(디오도로스 4.84.2).

 헤르메스의 이러한 특성은 무엇보다 그의 고향에서 강조됩니다. 그는 아르카디아의 퀼레네산 출신으로, 퀼레네의 신(Kyllenios)이라고 불립니다. 내륙 지방인 아르카디아는 도시가 발달하지 않고, 목가적인 풍경으로 그려집니다. 아르카디아는 그의 아들 판이 숭배된 장소기도 합니다. 우리는 뒤에서 소 떼를 훔치는 목동 헤르메스를 볼 것입니다.

ⅱ. 풍요와 상업의 신

 헤르메스가 가축 수에만 관여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보다 일반적인 다산, 풍요, 번영의 신이었습니다.

 6세기부터 아테나이에서 인기를 끈 직육면체의 신상들을 ‘헤르마’라고 했습니다. 헤르마 상에는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수염 난 헤르메스의 머리와 남근이 부착되었습니다. 발기된 남근은 그것이 풍요의 상징임을 보여줍니다. 헤르마 상은 도시 국경의 표시로써 세워졌습니다(파우사니아스 2.38.7; 8.34.6). 사람들은 헤르마 상 앞에 돌을 쌓았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돌을 거기에 돌을 던졌습니다. 이는 헤르메스가 아르고스 살인을 저지른 뒤 무죄를 받자, 분노한 신들이 그에게 돌을 던진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오뒷세이아』 16.471에 대한 스콜리아). 혹은 단순히 돌을 추가했다고도 합니다(코르누투스 『신론』 24). 헤르마 상은 나아가 가정집이나 신전 출입구 등에 일상적으로 세워졌습니다. 이는 분명히 해로운 것들을 막아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헤르마 상을 훼손하는 것은 중대한 범죄였습니다(투퀴디데스 6.27ff).

 헤르메스는 상업, 나아가서 이후에는 무역의 신이었습니다. 상업의 신으로서, 그는 시장의 신(agoraios)라고 불렸습니다(파우사니아스 1.15.1; 2.9.7; 3.11.11). 노예 신분이 된 헤라클레스를 옴팔레 여왕에게 판 것은 헤르메스였습니다(아폴로도로스 2.6.3).

 아카이아 파라이시에 있던 시장의 신 헤르메스 신상은 특이하게도 신탁을 내려주었습니다. 신탁을 묻고 싶은 사람은 저녁에 신상을 찾아가, 앞에 있는 난로에 향을 피우고, 등잔에 불을 붙이고, 동전을 바칩니다. 그 후 질문을 신상의 귀에 말하고, 귀를 막은 채 시장을 나옵니다. 그러고 처음 듣는 말이 헤르메스의 신탁이었습니다(파우사니아스 7.22.2).

 번영을 가져다주는 행운은 헤르메스의 영역입니다. 그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신이라고 불립니다(『일리아스』 20.35). 길에서 발견한 물건은 헤르마이아(hermaia)라고 불립니다(코르누투스 『신론』 24). 헤르마 상 앞에는 나그네들을 위한 식량이 놓였는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행운을 뜻하는 ‘헤르마이온’이 유래했습니다(『수다』 s.v. hermaion). 제비뽑기 역시 헤르메스가 주관했습니다(아리스토파네스 『평화』 365).

아르고스를 죽이는 헤르메스. 옆에는 암소로 변한 이오와 제우스가 있다. 아르고스 화가가 그린 아테나이 적색 그림 암포라. 기원전 460년경.헤르메스와 이리스를 내보내는 제우스. 베를린 화가가 그린 아테나이 적색 그림 스탐노스. 기원전 480년경.
ⅲ. 기만의 신

 역설적이게도, 헤르메스는 도둑질과 기만의 신이기도 했습니다. 헤르메스의 성격은 속임수에 능한 민담 인물인 트릭스터에 속합니다. 「호메로스 찬송가」에서 갓난아기 헤르메스는 독특한 방법으로 아폴론의 소 떼를 훔칩니다. 헤르메스는 알로아다이 형제에게 붙잡힌 아레스를 빼돌렸습니다(『일리아스』 5.390). 또한 아들인 아우톨뤼코스에게 도둑질과 맹세의 기술을 선물했습니다(『오뒷세이아』 19.397). 그가 판도라에게 준 것은 거짓말과 아첨, 교활함이었습니다(헤시오도스 『일과 날』 77). 튀폰이 제우스를 붙잡고 힘줄을 끊었을 때, 힘줄을 훔쳐서 돌려준 것도 헤르메스입니다(아폴로도로스 1.6.3). 헤르메스는 미끄러운 가죽을 깔아, 자기보다 발 빠른 아페모쉬네를 붙잡아 겁탈했습니다(아폴로도로스 3.2.1).

 사모스섬에는 특이한 풍습이 있었습니다. 기쁨을 주는(charidotes) 헤르메스에게 제물을 바치는 사람은 원한다면 도둑질이 가능했습니다. 플루타르코스는 이것이 본래 강도 행위로 생계를 유지한 옛 사모스 사람들에게서 유래한 풍습이라고 전합니다(플루타르코스 『그리스 질문』 55).

 아르게이폰테스(Argeiphontes)는 가장 빈번한 헤르메스의 시적 별명입니다. 이 별명은 일반적으로 아르고스를 죽인 것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르고스는 제우스의 애인 이오를 감시하도록, 헤라가 보낸 거인이었습니다. 제우스의 명을 받은 헤르메스는 돌을 던져 그를 죽입니다(아폴로도로스 2.1.3). 반면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헤르메스는 아르고스를 잠재운 뒤 죽입니다(『변신』 1.668ff).

 그런데 아르게이폰테스를 ‘개 살해자’로 해석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도둑의 신인 헤르메스에게, 집 지키는 개는 적이기 마련이죠. ‘밝은’ 혹은 ‘재빠른’을 의미하는 형용사 argos는 전형적인 개 이름입니다. 가장 익숙한 예시는 물론 오뒷세우스의 늙은 개입니다. 이오의 ‘파수꾼’ 거인이 아르고스인 것도 아마 무관하지 않겠죠.¹

 헤르메스의 교활한 지적 능력이 항상 나쁜 쪽으로만 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헤르메스는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여러 문명의 발명가입니다. 뒤에서 보게 될 「호메로스 찬송가」에서 헤르메스는 뤼라와 피리뿐 아니라, 불 피우는 법과 신에 대한 희생 제사를 발명합니다. 이런 점에서 헤시오도스 시 속 트릭스터 인물인 프로메테우스와 무척 닮았습니다. 더불어 문자와 천문학, 도량형, 저울추 등도 헤르메스의 발명품으로 여겨졌습니다(디오도로스 1.16.1; 5.75.2; 휘기누스 『이야기 모음집』 277).

ⅳ. 전령의 신

 신화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헤르메스는 왕의 뜻을 전달하는 전령신이었습니다. 비록 『일리아스』에선 이리스가 신들의 전령 역할을 하지만, 이리스가 등장하지 않는 『오뒷세이아』에선 비로소 전령 역할을 도맡게 됩니다. 제우스의 명을 받아 아이기스토스에게 음모를 관두라고 전한 것은 헤르메스였습니다(1.38). 칼륍소에게 가서 오뒷세우스를 돌려보내라는 제우스의 명령을 전달한 것 또한 그였습니다(5.44ff). 이후 신화에서도 마찬가지로, 헤르메스는 트로이아 전쟁의 원인이 된 다툼에서 세 여신을 파리스에게 인도했습니다(프로클로스의 『퀴프리아』 요약). 아이스퀼로스의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에선 프로메테우스가 숨기고 있는 예언을 말하라고 협박하러 찾아옵니다(944ff). 그는 또한 판도라를 에피메테우스에게 전해주고(헤시오도스 『일과 날』 84), 어린 디오뉘소스를 유모에게 데려갔습니다(아폴로도로스 3.4.3).

 제우스의 전령으로서, 그의 외도를 돕기도 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애인 이오를 감시하던 아르고스를 죽였습니다. 또한 제우스는 에우로페를 만나기 위해, 헤르메스에게 소 떼를 바닷가로 몰게 시켰습니다(오비디우스 『변신』 2.835ff). 루키아노스는 이러한 헤르메스의 역할을 풍자합니다(『신들의 대화』 4).

 전령은 말을 그대로 전하는 것만이 역할은 아니었습니다. 전하는 말의 속뜻을 이해하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적절한 화술이 필요했습니다. 헤르메스는 그런 점에서 신들의 전령이기 적합했습니다. 헤르메스는 웅변의 신이었고, 혀를 제물로 받았습니다(아테나이오스 1.28).

 꿈은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일종의 전령 역할을 했습니다(『일리아스』 2.26). 따라서 헤르메스 역시 꿈의 전달자로 묘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파이아케스인들이 자기 전 헤르메스에게 헌주하는 것은 이 때문이었겠죠(『오뒷세이아』 7.137). 헤르메스의 황금 지팡이는 사람을 잠재울 수도, 깨울 수도 있었습니다(『일리아스』 24.343).

페르세포네가 지상으로 올라오고, 헤르메스가 옆에 서 있다. 횃불을 든 헤카테가 맞이한다. 페르세포네 화가가 그린 아테나이 적색 그림 크라테르. 기원전 440년경.타나토스(죽음)와 휘프노스(잠)가 사르페돈의 시신을 운반하고, 헤르메스가 감독한다. 에우프로니오스가 그린 아테나이 적색 그림 크라테르. 기원전 515년경.어린 디오뉘소스를 안은 헤르메스. 프락시텔레스 작. 기원전 4세기경.
ⅴ. 영혼의 인도자

 전령인 헤르메스는 삶과 죽음의 경계도 자유롭게 넘었습니다. 헤르메스는 죽은 자들의 영혼을 지하 세계로 데려가는 영혼의 인도자(psychopompos)입니다. 『오뒷세이아』 24권은 구혼자들의 혼백이 헤르메스의 인도를 받아, 지하 세계로 내려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24.1). 『일리아스』 24권에서는 프리아모스 왕이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받기 위해 직접 아킬레우스의 천막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여기서 헤르메스는 프리아모스를 위한 길잡이가 되어줍니다. 그 모습은 마치 저승 여행처럼 채색되어 있습니다(24.331ff; 679ff).²

 그 외에도 지하 세계에 관련된 업무는 헤르메스의 일이었습니다. 헤르메스는 하데스를 설득해서 페르세포네를 지상으로 데려왔습니다(「호메로스 찬송가」 2.335ff).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는 죽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한 도움 요청으로 헤르메스를 부릅니다(아이스퀼로스 『제주 바치는 여인들』 1; 124ff). 헤라클레스가 케르베로스를 붙잡으러 지하 세계에 내려갔을 때, 그는 메두사의 영혼을 보고 칼을 뽑았습니다. 헤르메스는 그저 영혼일 뿐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아폴로도로스 2.5.12).

ⅵ. 운동과 경기의 신

 『부의 신』에서 결국 받아들여진 그의 역할은 경기의 신입니다. 헤르메스는 체육 활동, 특히 레슬링과 연관되었습니다(핀다로스 「퓌티아 송시」 2.10; 「이스트미아 송시」 1.60). 그는 헤라클레스와 함께 체육관의 신이었습니다(핀다로스 「네메아 송시」 10.53; 아테나이오스 13.12; 파우사니아스 4.32.1).

 그래서인지, 헤르메스는 그다지 호전적인 신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앞서 언급한 말솜씨로 싸움을 빠져나가는 것에 능했습니다. 『일리아스』 신들의 싸움에서 헤르메스는 레토와 대적하지만, 아버지의 애인과는 싸우지 않겠다며 능청스럽게 넘어갑니다(21.497). 헤르메스가 직접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앞서 말한 아르고스나 기간테스와의 싸움 정도입니다(아폴로도로스 1.6.2).

 헤르메스는 군사 관련으로도 그다지 연이 없었지만, 그렇기에 타나그라에서 숭배된 앞서 싸우는(promachos) 헤르메스는 특이합니다. 타나그라가 에레트리아에게 공격당했을 때, 헤르메스는 젊은이들을 이끌고 싸웠다고 합니다. 특이하게도 헤르메스는 젊은이들처럼, 주로 운동선수가 쓰는 긁개(stlengis)를 들고 싸웠습니다(파우사니아스 9.22.2).

ⅶ. 도상

 호메로스 시에서 그가 인간 앞에 나타날 때마다, 헤르메스는 갓 수염이 나기 시작한 젊은이의 모습으로 보입니다(『일리아스』 24.331ff; 『오뒷세이아』 10.277). 그럼에도 5세기까지 헤르메스는 일반적으로 수염을 가진 성인 신으로 묘사되었습니다. 하지만 헤르마 상을 제외하고는, 점차 그의 모습은 수염 없는 젊은이의 형상으로 바뀌었습니다. 파르테논 신전 프리즈에서 젊은 헤르메스는 디오뉘소스와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프락시텔레스의 유명한 조각상은 디오뉘소스를 안고 있는 젊은 헤르메스를 묘사합니다.

 헤르메스는 일반적으로 전령 지팡이(kerykeion)를 들고 있습니다. 라틴어로 카두케우스(caduceus)라고 하는 이 지팡이는 고대 도기 그림에서 8자 모양 장식이 달린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나중에는 두 마리 뱀이 감긴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 지팡이가 근동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증명될 수 없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전령 지팡이는 헤르메스만의 상징이 아니고, 이리스 같은 다른 인물에게도 주어지는 물건이라는 사실입니다. 더불어, 케뤼케이온이라는 이름과 형상은 초기 문학 묘사에서 드뭅니다. 호메로스는 황금 지팡이를 가진 신으로만 묘사하고, 「호메로스 찬송가」에는 세 개의 가지가 달린 지팡이가 등장하죠.

 헤르메스는 주로 나그네의 복장인 망토 클라뮈스(chlamys)를 걸칩니다. 또한 챙 있는 모자(petasos)나 뾰족한 모자(pilos)를 쓰고, 날개 달린 신발을 신습니다. 헤르메스의 신속함을 상징하는 황금 샌들은 호메로스 시에서도 일반적으로 묘사됩니다(『일리아스』 24.341 등에서). 비록 호메로스는 샌들에 날개가 달렸다고 말하지는 않지만요.


Ⅱ. 과도기의 신으로서 헤르메스

 헤르메스의 이런 다양한 모습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요? 그리스 신 중에서 그 유래가 확실한 신은 얼마 없지만, 헤르메스는 그중에서도 불분명한 편입니다. 헤르메스와 유사한 다른 인도유럽 신은 없지만, 헤르메스가 근동이나 다른 지역에서 유래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헤르메스는 퓔로스, 테바이, 크레테에서 발견된 선형문자 B 서판에서 등장합니다. 아마도 헤르메스는 그리스인이나 그 선주민이 숭배하던 신일지도 모릅니다.³

 헤르메스라는 이름은 일반적으로 ‘지지대’ 혹은 ‘돌무더기’를 뜻하는 헤르마이(hermai)에서 유래했다고 여겨졌습니다. 비록 이 가설은 오늘날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헤르메스의 역할을 일반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유용한 도구입니다. 돌무더기는 길의 경계를 표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헤르메스는 경계를 지키고, 자유롭게 넘나드는 자들의 신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를 생각해봅시다. 도시를 감싼 성벽을 벗어나 걷다 보면, 점차 문명과는 멀어지고 야생과 가까워집니다. 이 경계의 공간은 가장 처음으로 살펴본 헤르메스의 영역, 목동이 활동하는 땅입니다. 상인과 도둑, 전령은 그 경계를 자주 넘나들었습니다. 이들을 굽어살피는 것이 ‘돌무더기’인 헤르메스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이것으로 끝일까요? 헤르메스와 돌무더기의 초기 연관성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했고, 헤르메스와 운동 경기 사이의 연관성은 잘 설명되지 않습니다. 헤르메스가 경계의 신인 것은 명백해 보이지만, 그 점을 다르게 설명할 수는 없을까요?

 한 가지 설명이 있습니다. 헤르메스는 삶의 경계, 아이와 어른의 과도기에 위치한 젊은이의 신입니다. 그리스어 에페베(ephebe)는 더 이상 젊지 않지만, 완전히 성숙하지도 않은, 호메로스가 헤르메스를 묘사하는 것처럼 수염이 갓 나기 시작한 젊은이들을 지칭합니다. 헤르메스는 바로 이들의 모습을 구현합니다. 비슷한 역할의 아폴론이 연애에 실패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헤르메스는 일반적으로 미혼의 신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헤르메스와 운동 경기의 연관성도 자연스러워집니다. 운동 경기와 체육관은 젊은 남성들의 영역이었습니다. 헤르메스는 운동에 능한, 이상적인 젊은이의 표상입니다.

 그렇다면 헤르메스의 신화는 통과 의례에 관한 내용으로 해석할 여지가 생깁니다. 통과 의례는 삶의 특정 시기에서 다른 시기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의례입니다. 특히 많은 그리스 영웅 신화는 최근에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통과 의례의 반영으로 풀이됩니다. 통과 의례는 집단으로부터의 분리, 과도기, 재통합이라는 세 과정으로 특징지어집니다. 즉, 성인이 될 청소년들은 규범 사회에서 일시적으로 ‘분리’됩니다. 이 단계에서 청소년은 더 이상 사회의 구성원이 아니고, 상징적으로 비인간이거나 죽음을 맞기까지 합니다. 과도기의 청소년은 사회에서 구분되어 다른 장소에서 다른 생활을 지내게 됩니다. 그런 과도기를 지나고 나면, 비로소 성인이 되어 다시 사회에 통합되는 재통합 과정을 맞이하게 됩니다.

 과도기의 생활은 규범적인 사회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앞서 헤르메스의 영역으로 살펴본 것들입니다. 그들은 문명보단 야생에 속하고, 전장의 전사보단 경기의 운동선수나 숲속의 사냥꾼에 속합니다. 타나그라에서 젊은이들을 전쟁으로 이끈 헤르메스가 창이 아닌 긁개를 들었던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 속합니다. 속임수와 도둑질 역시 전형적으로 규범 밖에 속합니다. 절도는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규범 밖의 존재인 젊은이들에게는 달랐습니다.

 헤르메스가 규범 밖의 존재라면, 우리는 사모스섬에서 도둑질이 허용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시는 크레테에 있습니다. 크레테 헤르메스 축제에서는 주인이 노예의 시중을 들었다고 합니다(아테나이오스 14.44). 주인과 노예의 반전은 일반적으로 크로노스 축제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두 신 모두 규범 밖의 존재-원시 시대의 왕, 과도기 청소년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동 활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신화에서 목동 일 하는 왕자들을 봅니다. 앙키세스는 이데산에서 아프로디테를, 파리스는 세 여신을 만납니다. 왕족이면서도 직접 도시를 벗어나 가축을 치는 것은, 주인이 노예 시중을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전된 모습입니다. 이 반전된 삶은 규범 밖의 존재가 생활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평생 규범 밖의 존재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과도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 규범 사회에 다시 통합되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젊은이는 시험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존재를 규범 사회에 증명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다음에서 다룰 주제, 소 도둑질입니다.


Ⅲ. 소 도둑질

 네 번째 「호메로스 찬송가」는 헤르메스에게 바쳐졌습니다. 찬송가는 쓰인 시기가 명확하지 않지만 아마도 6세기경에 쓰였다고 생각됩니다. 시는 갓 태어난 헤르메스가 어떻게 아폴론의 소 떼를 훔쳤는지 보여줍니다. 우리는 찬송가를 읽으면서 앞서 살펴보았던 헤르메스의 다양한 역할을 발견하게 됩니다.

 찬송가가 소 도둑질 신화의 유일한 출전은 아닙니다. 서정시인 알카이오스가 이 신화를 다뤘습니다. 소포클레스의 사튀로스극 『추적자들(Ichneutai)』도 마찬가지인데, 많은 부분이 파피루스로 발견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안토니노스나 아폴로도로스가 이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중요한 「호메로스 찬송가」만 다루고, 신화의 변형은 주석에서 따로 언급하기로 합니다.

포대기에 싸인 헤르메스가 침대에 누워 있다. 아폴론이 마이아, 제우스와 논쟁한다. 왼쪽에는 소 떼가 숨겨져 있다. 케레 흑색 그림 휘드리아. 기원전 530년경.헤르메스가 뤼라를 들고 있다. 마크론이 그린 아테나이 적색 그림 퀼릭스. 기원전 490년경.
ⅰ. 찬송가의 내용

 헤르메스를 노래합시다. 헤르메스는 아르카디아의 퀼레네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신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사는 뉨프 마이아가 헤르메스를 낳았습니다. 제우스는 헤라가 자는 동안 몰래 마이아와 사랑했습니다(1-13). 헤르메스는 그달의 네 번째 날 새벽에 태어났습니다. 헤르메스는 태어나서부터 영특했습니다(14-19). 헤르메스는 요람에 가만히 누워 있지 않고, 아폴론의 소 떼를 찾아서 동굴을 나섰습니다(20-23). 거기서 헤르메스는 거북을 발견했습니다. 헤르메스는 거북을 행운의 징조로 여기고, 거북의 껍데기로 일곱 개의 현을 단 뤼라를 만들었습니다. 헤르메스는 뤼라를 연주하면서 자신의 위대한 탄생을 노래했습니다(24-63).

 그러고 나니 해가 저물고 있었습니다. 헤르메스는 피에리아로 가서 소 떼를 발견했습니다. 헤르메스는 소 떼에서 쉰 마리를 몰아내, 모래밭으로 끌고 갔습니다. 헤르메스는 소 떼를 거꾸로 끌어서, 마치 반대로 걸어간 것처럼 꾸몄습니다. 자신은 샌들을 엮어서 신었습니다(64-86).¹⁰ 옹케스토스에선 포도밭을 가꾸는 한 노인이 그를 발견했습니다. 헤르메스는 노인에게 침묵을 지키라고 충고합니다(87-93).¹¹

 헤르메스가 소 떼를 알페이오스 강가에 몰고 왔을 때는 이미 밤이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94-107). 헤르메스는 나뭇가지들을 모아와 불을 피웠습니다. 헤르메스는 최초로 그렇게 불을 피웠습니다. 헤르메스는 소 두 마리를 죽이고 분해해, 열두 몫으로 나눈 뒤 제물로 태웠습니다(108-129). 헤르메스는 배고팠지만 먹지 않았습니다(130-134). 헤르메스는 흔적들을 없애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무 일 없단 듯이 요람에 누웠습니다(135-153). 마이아는 아들을 꾸짖습니다(154-161). 헤르메스는 자기 계획을 밝힙니다. 자기들은 신이 될 것이고, 만약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도둑들의 우두머리가 될 것입니다(162-183).

 아폴론은 소 떼를 찾아서 돌아다녔습니다. 옹케스토스의 노인은 어린아이가 소 떼를 거꾸로 몰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184-212). 아폴론은 새들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는, 예언술로 제우스의 아들이 도둑이라고 알아챘습니다(213-214). 아폴론은 퓔로스로 가서 소들의 발자국을 보고 신기해했습니다(215-226).

 아폴론은 퀼레네산 마이아의 동굴을 찾아갔습니다. 요람에 누워있던 헤르메스는 잠든 아기처럼 움츠렸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잠들지 않고, 품 안에 뤼라를 안고 있었습니다. 아폴론은 눈치채지 못했지만(227-245). 아폴론은 동굴 안을 샅샅이 뒤진 뒤, 헤르메스에게 소 떼를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246-259). 헤르메스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인 첫 시치미를 뗐습니다(260-280). 아폴론은 헤르메스를 요람에서 꺼내 들었습니다. 헤르메스가 방귀를 뀌고 재채기하자, 아폴론은 헤르메스를 떨어트렸습니다(281-299). 아폴론은 헤르메스를 데리고 길을 갔습니다. 헤르메스는 걸으며 내내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습니다(300-321).

 둘은 올륌포스 정상 제우스의 궁전에 도착했습니다. 아폴론은 아버지에게 자기가 당한 일을 이야기했습니다(322-365). 헤르메스는 아버지에게 자기는 아무 죄가 없다며 항변했습니다(366-388). 제우스는 아들의 귀여운 항변에 웃음을 터트리고, 아폴론에게 소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라고 지시했습니다(389-394).

 헤르메스는 아폴론을 알페이오스 강가로 안내했습니다. 아폴론은 옆에 걸린 소가죽을 보고, 이렇게 어린아이가 소를 죽인 것에 감탄했습니다(395-408). 아폴론은 실가지로 소를 묶으려 했습니다. 헤르메스는 실가지들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울타리처럼 소들을 가두게 했습니다(409-419). 헤르메스는 뤼라를 연주하며 신들의 탄생을 노래했습니다(420-433). 아폴론은 그 연주에 매료됐습니다. 아폴론은 소와 뤼라를 교환하자고 제안했습니다(434-462). 헤르메스는 친절하게 대답하고 교환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두 신은 친밀한 관계가 되었습니다(463-510).

 다음으로 헤르메스는 피리를 발명했습니다. 아폴론은 또 그것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헤르메스가 다시는 아폴론의 물건을 훔치지 않겠다고 맹세하자, 아폴론은 세 개의 가지가 달린 지팡이를 주었습니다. 또 예언술은 아폴론의 특권이지만, 대신 점술에 능한 꿀벌 뉨프들¹²을 소개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헤르메스는 저승의 인도자가 되었습니다(511-574).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신과 인간 사이의 전령으로 임명했습니다(575-578).

ⅱ. 오래된 연관성

 가축 떼는 고대 사회에서 가장 확실한 부의 상징이었고, 그 부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남성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따라 테바이에선 오이디푸스의 양 떼 때문에 전쟁을 벌이고(헤시오도스 『일과 날』 162), 오뒷세우스의 동료들은 헬리오스의 소 떼를 잡아먹음으로써 파멸에 이릅니다(『오뒷세이아』 1.7). 에우마이오스는 오뒷세우스의 부유함을 자랑하기 위해 가축의 수를 제시합니다(『오뒷세이아』 14.100).

 때문에 이웃의 소를 훔치는 행위는 가장 쉽게 부를 늘리는 방법이자, 그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우리는 비슷한 소 도둑질 신화를 여럿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예언가 멜람푸스의 신화는 가장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멜람푸스의 동생 비아스는 퓔로스 왕 넬레우스의 딸인 페로와 결혼하고 싶어 합니다. 넬레우스는 결혼 조건으로 퓔라케의 소 떼를 훔쳐 오라고 합니다. 멜람푸스는 동생을 위해 퓔라케 소 떼를 훔치려다가 붙잡힙니다. 1년 뒤, 멜람푸스는 자기가 갇힌 감옥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합니다. 멜람푸스는 퓔라케 왕자의 불임을 치료해주고 풀려나, 소 떼를 받아냅니다(『오뒷세이아』 11.288; 15.225; 아폴로도로스 1.7.7).

 넬레우스의 아들인 네스토르는 『일리아스』 속 다른 소 도둑질 신화의 주인공입니다. 네스토르는 엘리스에서 가축 떼를 약탈해왔습니다. 소, 양, 돼지, 염소는 모두 쉰 마리씩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엘리스와 퓔로스 사이에 전쟁이 일었습니다. 넬레우스는 하나뿐인 아들이 걱정됐는지, 네스토르의 무장을 금지하고 전차를 숨겼습니다. 하지만 네스토르는 무장 없이 전장에 나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합니다. 그 과정에서 네스토르는 샴쌍둥이인 악토르의 아들들과도 싸웁니다(11.670ff).

 그런데 네스토르는 본래 열한 명의 형제가 있었습니다. 이 형제들은 모두 헤라클레스의 손에 죽었습니다. 한 이야기에 따르면, 그 이유는 퓔로스 사람들이 헤라클레스의 소 떼를 훔쳤기 때문입니다(이소크라테스 16.19). 네스토르의 형제 중 하나인 페리클뤼메노스는 온갖 동물로 변신하며 헤라클레스를 농락했습니다(헤시오도스 단편 33).

 사실, 헤라클레스의 소 떼도 훔친 것입니다. 본래 주인은 세상의 서쪽 끝 땅에 사는 거인 게뤼온입니다. 게뤼온은 세 개의 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헤라클레스는 게뤼온과 파수꾼들을 죽이고 소 떼를 차지합니다(아폴로도로스 2.5.10). 헤라클레스는 소 떼를 데리고 돌아오는 길에 여러 강도를 만납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베르길리우스가 언급한 카쿠스입니다(『아이네이스』 8.190). 다른 강도는 강력한 거인 알퀴오네우스입니다(핀다로스 「이스트미아 송시」 6.31; 그에 대한 스콜리아). 헤라클레스는 소 도둑질에 능합니다. 헤라클레스는 오이칼리아 왕 에우뤼토스의 소 떼도 훔쳤습니다(『오뒷세이아』 21.25).

 헤라클레스의 부모님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뮈케나이 왕 엘렉트뤼온은 타포스 사람들에게 소 떼를 빼앗깁니다. 이로 인해 엘렉트뤼온의 아들들과 타포스 사람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납니다. 엘렉트뤼온의 아들 중에선 막내만 살아남고, 타포스 왕자 중에서도 한 명만 살아남습니다. 소 떼를 돌려받은 것은 암피트뤼온이었습니다. 암피트뤼온은 엘렉트뤼온의 딸 알크메네와 결혼하고 싶어 하지만, 알크메네는 형제들의 복수를 조건으로 내겁니다. 결국 암피트뤼온은 타포스를 함락하고 돌아옵니다. 물론 그가 돌아오기 전날, 알크메네는 제우스와 누워있었죠(아폴로도로스 2.4.6).

 아폴로도로스는 비슷한 유형에 속할 다른 신화들을 많이 전합니다. 아르카디아에서 가축을 빼앗던 사튀로스는 아르고스에게 살해당했습니다(2.1.2). 카트레우스는 자기를 강도라고 오해한 목동들과 아들에게 살해당했습니다(3.2.2). 튄다레오스의 아들들과 아파레우스의 아들들은 합심하여 아르카디아 소 떼를 훔칩니다(3.11.2). 플루타르코스는 다른 이야기를 전합니다. 페이리토오스는 테세우스의 소 떼를 훔쳤습니다. 도둑을 붙잡으러 온 테세우스는 페이리토오스의 대담함에 놀랐습니다. 이후 둘은 가장 친한 친구가 됩니다(『테세우스전』 30).

 이 이야기들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느슨한 유사성을 드러냅니다. 퓔로스를 배경으로 하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헤르메스, 멜람푸스, 네스토르, 헤라클레스).¹³ 소 도둑질은 이후의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특히 거기에는 괴물 같은 적수가 있습니다(악토르의 아들들, 페리클뤼메노스, 게뤼온). 도둑질의 결과는 사회적 인정 혹은 결혼입니다(헤르메스, 네스토르, 암피트뤼온, 멜람푸스의 경우 동생의 아내). 헤르메스와 페이리토오스는 특이하게도 도둑질 피해자와 돈독한 우정을 다집니다.

 이 유사성의 배경에는 아마도 인도유럽의 소 도둑질 신화 전통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통은 청소년의 사회 통합을 결정하는 통과 의례였습니다. 원시 인도유럽 청소년들은 소를 훔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규범 사회에 통합됩니다. 헤르메스가 올륌포스의 일원으로서 당당히 선 것처럼 말이죠.¹⁴


 헤르메스의 다양한 특성과 역할, 그리고 인도유럽 전통에서 유래한 소 도둑질 신화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사실, 여기서 다루지 않은 헤르메스의 특성도 여럿 있습니다. 이를테면 헤르메스가 엘레우시스나 사모트라케 등의 비의(mysteria)에서 한 역할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헤르메스와 젊은이의 연결이라는 주제도 완전히 깔끔한 해석은 아닙니다. 어쩌면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화무쌍했던 신의 다양한 모습을 한 가지 주제로 묶으려는 시도 자체가 어리석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최근의 연구는 개별 신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 서로 다른 신들과 상호작용하는 네트워크로서의 판테온에 집중합니다.

 그럼에도 헤르메스라는 단일 신을 주제로 삼은 것은, 비단 그의 인기 때문만이 아니라, 통과 의례라는 주제를 설명하기에 적절했기 때문입니다. 앞선 글들에서 여러 번 설명했다시피, 청소년의 성장과 가장 일반적으로 연결되는 신은 아폴론입니다. 하지만 헤르메스는 대부분의 신화에서 부차적인 역할만 한다는 특성상, 짧으면서도 많은 행적을 소개하기 편했습니다. 더불어 그가 주역으로 등장하는 거의 유일한 신화는 인도유럽 통과 의례 전통과 명백한 친연성을 보여줍니다. 이보다 적절한 예시가 어디 있을까요?

 통과 의례는 최근의 학자들, Jan Bremmer, Fritz Graf, Ken Dowden 같은 여러 학자가 선호하는 주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통과 의례 해석이 항상 완벽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어쩌면 앞의 글을 읽으면서도, ‘너무 기승전 통과 의례 아닌가?’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는 부분적으로 제 설명이 부족하고 간추렸기 때문이겠지만, 다른 한 편으로 그것이 통과 의례 해석이 가지는 한계기도 합니다. 통과 의례는 역사 시대 그리스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신화 해석 수단으로써 통과 의례는 보다 머나먼 과거의 의례를 가정하고서 진행됩니다. 아마도 이런 해석의 많은 부분이 언젠가 받아들여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한때 신화 해석의 주류를 차지했던 정신분석학, 비교신화학, 혹은 ‘말해진 의례’ 해석은 오늘날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매우 제한적으로만 사용됩니다.

 하지만 적어도 현대 신화 연구의 한 축을 차지하는 통과 의례에 관해 아는 것은 신화 이해에 분명히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 신화의 많은 부분이 통과 의례에 속한다는 것이 오늘날 여러 학자의 견해가 되었습니다. 헤르메스뿐 아니라, 아폴론, 디오뉘소스, 아르테미스, 아프로디테 등 많은 신들이 이 역할을 가졌습니다. 페르세우스, 이아손, 테세우스, 트로이아 전쟁 등 많은 영웅 신화가 통과 의례 과정을 나타냈습니다. 이오, 칼리스토, 이피게네이아 같은 여성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제껏 많은 분석을 받았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이 글이 그런 통과 의례로서의 신화 이해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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