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그런 짓을 했던 걸까. 


아직 열이 빠져나가지 않아 멍하고 무거운 머리로, 나는 지난 날을 후회했다. 3월의 끝자락. 더운 건지 추운 건지 통 알 수 없는 날씨 속에서 나는 그만, 한 순간의 더위에 속아버려 창문을 열고 자버렸던 것이다. 어디 그 뿐이랴. 점점 상태가 나빠지는 걸 실감하면서도 줄곧 스스로를 속여오기까지 했다. 아직 괜찮아. 조금만 더 버티고 쉬는 거야. 이러면서.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맞이한 결과는.....바로 이거다.


으흑, 이 바보! 멍청이!


뒤늦게 스스로를 탓해보지만, 이렇게 몸져 눕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하나 변하지 않는다. 아~ 정말, 답답해. 나는 무거운 몸을 겨우 뒤척이며 탁상 시계를 보았다. 시간 뿐만 아니라 날짜도 착실하게 표기하고 있는 이 무뚝뚝한 녀석은, 내가 감기로 뻗어버린지 지 벌써 3일이나 지났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것도. 


원래라면 이 날, 나는 모두의 축하를 받았을텐데. 학교 친구들뿐만 아니라 시어터의 모두하고 아주 떠들썩하게 생일 파티도 했을 거고.


응. 그랬겠지. 원래라면 말야. 나는 울적한 마음으로 머리 맡을 더듬거리며, 한참 전에 내팽겨쳐버렸던 휴대폰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화면을 조작해, 아직 가물가물한 눈으로 이미 몇 번이고 읽어본 라인 메세지를 또 한 번 눈에 담았다. 환자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자는 거하고 이런 것 정도밖에 없다.


-하루카 쨩! 몸 상태는 괜찮아? 


-병문안 가도 괜찮을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모두가 날 걱정해주고 있어서, 조금 눈물이 나올 정도로 고마웠다. 좀 더 그 따스함에 기대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다. 그게, 다들 이제 막 새학기를 시작하느라 바쁠테니까. 특히 시어터 동료들은 학교 뿐만 아니라 아이돌 활동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굳이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그러다가 감기라도 옮으면 책임 못진다고, 조금 우스개 소리도 섞어서.


.....사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지금 당장이라도 그 말 취소하고 싶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어느 순간부터 줄줄 적어내리고 있던 메세지를 취소버튼을 꾹 눌러 지웠다. 괜찮다고 했는데 와달라고 하는 건 역시, 이상할테니까. 


그치만 역시 외롭다. 


정말 어쩌라는 거야. 나는 갈팡질팡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울고 싶어. 그렇지만 그럴 기력도 없고, 또 혹시 엄마한테 들리기라도 하면 큰일 나겠지, 분명. 걱정하실 거라구. 그러니까, 참자. 참는 거야. 나는 튀어나오려고하는 답답한 마음을 꼴깍 집어삼켰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적당한 곳에 밀어놓고는, 구깃구깃한 이불을 푹 둘러썼다. 


어쨌든 컨디션 관리를 안한 내가 나쁜 거니까. 무리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 그러니 반성합시다. 반성하고, 푹 자는 거야. 자고 일어나면 개운해지겠지.....


그렇게 몇 번이고 스스로를 타일러가며 억지로 잠을 청하는 와중이었다. 갑자기 똑똑, 하고 작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엄마? 일단 그렇게 생각한 나는 잘 거야- 하고 대강 답하고는, 꼭 몸을 웅크렸다. 


-그러면 좀 곤란한데.


그런데 그 때, 엄마하고는 다른 목소리가 닫혀있는 문 너머로 들려왔다. 특유의 조용하고 침착한 음색은, 내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의 것.


"에, 에엣!? 치하야 쨩!?"


-잠깐 얼굴을 보는 정도라도 안될까? 정 피곤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아니! 괜찮아! 들어와!"


나는 둘렀던 이블을 급하게 치워버리고는, 부스스한 머리와 씨름하면서 소리쳤다. 실은 좀 더 말끔한 모습으로 맞이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반가운 사람을 떠나보낼 수는 없었다. 


끼익.


이윽고 작은 문소리와 함께, 예상대로의 인물이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채색의 셔츠와 바지, 그리고 자켓.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단정한 차림을 하고 있는, 긴 생머리의 여자아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치하야 쨩.


"읏.....으흑, 으아앙~" 


"저기, 괜찮.....에, 저기....하루카?"


아주 오랫동안 헤어졌던 건 결코 아니었다. 그렇지만 어째서일까. 마치 더 이상 만날 수 없었던 사람을 겨우 만난 것 같은 안도감에, 나는 집어삼킨 것이 틀림없었던 울음을 한바탕 아이처럼 쏟아내고 말았다. 


.....


그런 지 얼마나 되었을까.


"....이제 괜찮아?"


"아하하...."


지금까지 쭉 울음이 잦아들길 기다리고 있었던 치하야 쨩이, 겨우 입을 열었다. 펑펑 울어버린 끝에서야 겨우 머릿 속을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부끄러움이라는 이름의 감정. 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갑자기 왜....나는 마른 웃음을 변명처럼 흘리면서 아직 젖어있는 눈가를 몇 번 손 끝으로 훔쳐냈다.


"그, 많이 아팠, 어.....?"


"으으응, 아니."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치하야 쨩의 가라앉은 시선이 내 쪽을 향할 듯 말 듯 했다. 아파서 그런 게 아니라면, 혹시 자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하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보였다.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거듭 손을 내저었다. 그래도 치하야 쨩의 두 눈에서는 미안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직접 말해야겠지.


"저기, 그, 치하야 쨩."


몇 마디 내뱉었을 뿐인데도, 쩍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와 내 자신도 놀랐다. 울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제야 그 심각성을 알 것 같다. 치하야 쨩이 저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네. 으음.....그렇다고 해도 그건 정말 착각이니까.


"괜찮아. 치하야 쨩 때문에 그런 게 아니야. 나도 모르게 그만 굉장히 울고 싶어져서....."


"으, 응."


그러자 치하야 쨩이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무거운 시선을 내게 부딪쳐왔다. 이렇게 되면 일부러 너스레를 떨어서라도 치하야 쨩을 안심시켜야겠네.


"그냥, 혼자 방 안에만 있다보니까 뭔가 좀 쓸쓸한 기분이 들어서....응. 그랬습니다. 그냥 그런 거라서.....정말 별거 아닌 건데.....아하하, 내가 생각해도 참 이상하다니까~ 그치?"


"아니, 이상하지 않아. 하루카가 그렇게 느낀 거라면, 정말 그런 거야."


미안, 하루카. 그런 줄도 모르고. 좀 더 일찍 올 걸 그랬어. 치하야 쨩이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안심은커녕,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만 모양이다. 이걸 어쩌면 좋담. 당황하는 동안에도 치하야 쨩의 중얼거림은 계속 이어졌고, 나는 거기서 곧 흘려들을 수 없는 부분을 발견하고 말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정말 모두 다 같이 올 걸 그랬나봐. 현실적으로 다소 어려운 부분들이 있긴 해도."


"에?"


"아, 그게.....나, 시어터의 모두를 대신해서 온 거거든.....일단은."


치하야 쨩이 그렇게 말하고는 살짝 한 팔을 들어올리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뭐지? 그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옮기니 커다란 비닐봉투가 그제서야 보였다. 저게 뭔지 물어보려는 순간, 치하야 쨩이 먼저 선수를 치듯 말했다.


"모두가 부탁한 거야."


"모두?"


"응."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것이 더 빠르겠다고 판단한 걸까. 치하야 쨩은 봉투에서 하나둘씩 내용물을 꺼내, 내 눈 앞에 늘어놓기 시작한다. 핫팩 몇 개, 목캔디, 얼음주머니, 목도리. 그리고 누가 봐도 바로 생일 선물임을 알 수 있는 예쁘게 포장된 상자 몇 가지와 색색깔의 편지봉투들까지.....


어, 어쩌지. 방금 울었는데, 이번에 또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이번에는 정말, 기뻐서 나는 눈물이지만. 


"그, 일단, 생일 축하해 하루카. 시어터의 모두가 그렇게 전해달래."


내가 숨을 한껏 크게 들이쉬며 겨우 울음을 참아내고 있는 동안, 치하야 쨩이 쭈뻣거리면서 모두의 전언을 내게 전했다. 정말, 이렇게 되면 또 울어버릴 수밖에 없잖아.


"응, 응, 고마워. 너무 고마워서 그만 울어버릴 정도라고, 모두에게 그렇게 전해줄래?"


결국 솔직하게 새어나오곤 하는 눈물을 몇 번 훔쳐내면서도, 감사의 인사를 빼놓지 않고 말했다. 그러자 치하야 쨩은 고개를 크게 한 번 끄덕이고는 나를 쭉 바라보았다. 아직 할 말이 남은 것처럼 보인다.


".....하루카."


"응?"


"다시 한 번 생일 축하해."


이건 내 개인적인 축하야. 치하야 쨩이 그렇게 덧붙임과 거의 동시에 내게 한 손에 쏙 들어올 정도의 크기인 상자를 건네었다. 이 안에는 과연 뭐가 들었을까하고 궁금해하고 있자니, 치하야 쨩이 조금 머뭇거리면서 말을 시작했다.


"그,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오르골이야. 전에 하루카가 신기해하던 게 기억에 남아서. 마음에 들면 좋겠는데."


"그거야 당연하지! 치하야 쨩이 주는 거라면 뭐든!"


저기 있지, 지금 열어봐도 돼? 그 질문에 치하야 쨩은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건, 분명 긍정일 게 틀림 없다. 나는 살짝 떨리는 손으로 포장을 풀었다. 상자 안에는 고동색 빛을 띤 작은 상자가 또 하나 들어있었다.


나는 그걸 어색한 손놀림으로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정말 작은 태엽을 조심조심 돌려보았다. 그러자 오르골 특유의 몽환적인 음색으로 조금씩 흘러나오는, 어느 정도는 익숙한 멜로디. 치하야 쨩은 나를 보고는 조금 의기양양한 투로 이렇게 말했다.


"본인의 노래를 이렇게 들어보니까 어때? 색다른 느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음, 확실히. 그렇네. 정말 신기해."


'네가 있어 꿈이 되어'가, 설마 이런 풍으로 어레인지 될 줄은. 역시 치하야쨩의 센스는 대단하다고 해야할까....언제 울었냐는 듯 어느덧 감탄에 젖고 있는 내게, 치하야쨩이 머뭇거리면서도 더 가까이 다가왔다. 옆에 앉아도 될까. 나는 치하야 쨩이 그렇게 말하기도 전에 침대를 통통 두드렸다.


"다행이야. 마음에 든 것 같아서."


"치하야 쨩이 준 거잖아. 마음에 안 들 리가 없지."


치하야 쨩은 사양없이 바로 내 곁으로 왔다.


"하루카."


"응?"


"온 게 나 혼자여도 괜찮겠니?"


"이제 와서 무슨 소리하는 거야. 와준 것만으로 정말 고마운 걸." 


"하루카가 그렇다고 한다면야."


치하야 쨩은 반만 수긍한 것처럼 보였다. 왜 절반은 그러지 못하는 걸까. 그 이유를 물어보자, 치하야 쨩은 조금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그, 실은 억지를 좀 부려서라도 내가 대표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모두가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보내겠다고 할 줄은 몰랐거든. 얼떨결에 이렇게 오긴 했지만 이번에는 갑자기 하루카 네가 울어버려서.....나 혼자 오는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아...."


도리어 내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렇지, 치하야쨩, 의외로 표가 나는 타입이니까. 저렇게 가고 싶다 가고 싶다하고 생각하고 있으면, 싫어도 알 수 밖에....슬쩍 엿보이는 모두의 배려에, 이번에는 웃음이 나왔다.


"하루카? 갑자기 왜 웃어?"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그건 그렇고 잠깐 할 말이 있는데.....들어줄래?"


"뭔데?"


"치하야 쨩이 안 왔으면 분명 나, 혼자 외로워서 펑펑 울었을 거야."


".....좀 전에 나를 보고 울었는데?"


"아, 그거하고는 의미가 전혀 다르니까. 아까 운 건 정말 기뻐서 그런 거야. 하여튼, 그러니까."


치하야 쨩, 이렇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 모두를 대신해서 와준 것도. 그러지 않은 부분도. 나는 더할 나위 없는 진심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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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카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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