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간다니까."

"아니. 나 혼자 가게 해줘... 부탁이야."



탄이 차 안에서 한숨을 내뱉고 창문 너머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곧 무너질 것만 같은 동생의 모습이 보였고, 그것은 이상하게도 커다란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부탁'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대신... 기다릴 거야. 나 있다고 눈치 보지 말고. 그리고... 인사 대신 부탁한다."






일주일 정도의 미국 일정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엄마가 있는 곳이었다. 손에 들린 꽃을 들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 옆에 자리하고 앉았다. 늘 이곳에서 웃기만 했던 소녀는 처음으로 그러지 못했다. 얼굴을 감싸 안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어 흐느꼈다.


엄마. 엄마... 보고 싶어.




내 생일은 엄마의 기일이다. 철이 들기 전부터 항상 생일 다음날은 옆을 지켜준 사람들과 엄마에게 인사를 하러 다녔다.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가버린 엄마를. 늘 내 가슴 속에 있을 거라는 엄마를. 하지만 어린 내가 보기에는 그저 차가운 대리석 바닥 밑에 이름이 적혀있는 '엄마'였을 뿐.


더 어렸을 땐, 늘 큰 오빠가 함께였고. 어렸을 땐, 새엄마가 함께였다. 오빠는 비록 사진으로밖에 만날 수 없는 엄마를 내게 인식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멀리서도 언제나 날 사랑하고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내 눈에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것을 이해하고 느끼기엔 많이 어렸으니까.


새엄마는 그 '엄마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사람이었다. 그리고 큰오빠가 이해시켜주지 못했던 엄마와 새엄마의 구분을 지어주었다. 덕분에 세상엔 여러 형태의 사랑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새엄마는 늘 잠들기 전에 나를 꼭 껴안고는 하는 말이 있었는데...



"진짜 엄마 질투 나라고... 우리 딸 많이 사랑해줘야지."



그 대답으로 나는 늘 새엄마의 손가락을 붙잡곤 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를 모르겠어서.


첫 번째 부인. 남편이 사랑했던 여자. 그 여자가 낳은 딸을 키우게 된 입장에서 인사를 하러 찾아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같이 있으면서 단 한 번도 빼먹지 않았고, 오히려 힘을 주고 더욱 곱게 차려입곤 했다. 대체 거길 가는데 왜 그렇게 꾸미냐고 묻자, 어떤 식으로든 '너네 엄마'한테는 지고 싶지 않단다. 이상한 질투를 다한다고 투덜거리면 새엄마는 내 볼을 쭈욱 꼬집어 늘리곤 했다.


꽃을 옆에 내려놓으면서 첫 인사말은 언제나 날씨 이야기였다. 오늘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네요. 눈이 포근해서 따뜻한 거 같아요. ...오늘도 제 곁에 있는 선물이 요만큼 더 자랐습니다. 점점 닮아가는 게... 크면 더 예쁠 거 같아요.


새엄마는 마지막에 항상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하루하루 시간이 너무 아깝게 만들어준 당신이 고맙다고. 매일 행복해서 불안할 정도라고. 하지만 거기엔 이런 딸을 혼자 내버려 두고 간 당신이 밉다는 말도 늘 빼먹지 않았다.


나는... 언제부터였을까. 사람들이 내게 손가락질을 하는 그런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이름처럼 밤에 잠들 수 없게 되었다. 오빠가 이해시키려 했던 사랑, 새엄마가 체온으로 느끼게 해준 사랑. 그 뒤로도 내 곁을 지켜주려 애쓴 가족들. 뭐가 뭔지 구분하고 알게 되었을 때... 깨달았다.


내가 태어나서... 엄마가 이 세상에 없다는 걸.


나 때문에 오빠는 엄마를 만날 수 없게 되었구나. 나 때문에 새엄마는 한국에서 괴로워했겠구나. 덕분에 생일이란 것은 내게 죄인이 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이상한 날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일부러 더 크게 웃었고 더 즐거운 척을 했다. 나 때문에 또 누군가가 괴로워하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는 엄마를 만나고 온 날만 밤에 푹 잠들 수 있었는데... 엄마를 만나 눈을 감고 손을 모아 마음속으로 전하는 말은 늘 같았다. ...엄마, 보고 싶어. 보고 싶어 해서 미안해. ...미안해.


고해성사라도 하는 듯한 그 말을 전하고 나면 어쩐지 용서받은 기분이 들었달까. 그리고 차가운 바닥을 손으로 쓸며 엄마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은...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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