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죽이는 건 너무나 간단하다. 동맥을 긋는 것만으로, 머리를 세게 부딪히는 것만으로 금세 숨이 끊겨버린다. 온도를 빼앗기고 바닥에 나동그라진 남자를 내려다보며 이치마츠는 저도 모르게 손바닥에 손톱을 파고들고 있었다. 열띤 한숨이 새어나왔다.

정말로, 죽어버렸다. 이치마츠는 이 바닥에서 세간에선 용납할 수 없는 많은 비합법적인 일을 하며 지냈다. 마약운반, 절도, 공갈, 협박, 누군가를 미행하고 신상정보를 파는 일.

하지만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살해한 것은 이것이 첫 경험이였다.

언젠가는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사람의 무게는 무겁고, 그 얇은 피부안에서 느껴지는 생명의 생동감이 피식 꺼지는 기분 같은건 이치마츠같은 망할 놈이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훨씬 더 끔찍했다. 빌어먹을, 손바닥에 쩍쩍 달라붙는 습기가 기분나빴다. 지금까지도 인간다운 삶이라곤 말할 수 없었지만 이것으로 이치마츠라는 버러지의 인생은 무저갱 바닥에 곤두박질 친 것이다. 인간이라고도 할 수 없는 비루한 벌레새끼. 역겹다.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고개를 돌리면 자신과 똑같은 얼굴로 저만치 망연히 서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뿔싸, 이치마츠가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만 단어를 빚어내고, 그와 동시에 총을 겨눈 것은 몇 초 지나지 않아서였다. 식은 땀이 이치마츠의 등줄기에 배어나왔다. 흔들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남자의 머리에 정확히 조준하고 이치마츠는 악물듯이 내뱉는다. 움직이면 죽인다.... 가만히 있어. 시끄럽게 굴지 말고. 목격자는 제거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뒷세계 인간들의 정석적인 처리방식이다. 그거면 됐어. 그리고 나머지는 돌아갈 뿐이다. 그 뿐인데도,

아직 손에 피를 묻히고 난 이후 진정되지 않은 심장은 눈치없이 유별나게 날뛰고 있었다.

내밀어진 총구에 당혹스러워하던 남자는 눈치를 보더니 양 손을 올려 귀에 붙인다. 소지품은 전부 바닥에 내려놓았다. 반항할 생각이 없다는 표시,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이치마츠는 남자를 슥 훑어본다. 근처 블랙공장으로 불리는 불법공정의 작업복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 외에 소지품도 볼품없는 때묻은 서류가방이 전부.

어떡하지, 하고 이치마츠는 생각한다. 이대로 죽여 입막음을 하는 것이 가장 간편하다. 하지만..... 이미 벌써 한 명을 죽여 바닥에 처박은 주제에 두 명 죽인다고 뭐가 다르지? 하지만이라니, 예외는 없어. 이치마츠는 자신의 일생을 떠올린다. 고아로 부모 얼굴도 본 적없이 태어나 골목을 전전해, 우연히 마피아에게 거둬져 그들의 뒤처리를 하며 자라온 것도 십수 년, 거리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지켜낼만큼 소중한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질기게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눈 앞의 남자는 방해물일 뿐이다.

그럴 텐데도,

".....이제 어떻게 하면 되나."
"에."
"아직 생각중인가. 바쁜중에 미안하지만 조금 팔이 아파서.... 빨리 정해줬으면 한다. 슬슬 졸리고 집에도 돌아가고 싶고."

이 자식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머리를 망치로 치는듯한 충격에 이치마츠는 순간 총을 떨어뜨릴 뻔한다.

"하, 너..... 지금 내가 보내줄지 어떨지도 모르는 상황에 태연하구나.."
"그건 어째서지. ...아, 내가 우연히 집에 가다 그를 살해하고 있는 너를 발견해버린 탓인가. ....그렇다면 왜 아직도 나는 살아있는거지."
"닥쳐, 입다물고 가만히 있으라고. 썩을 아저씨."
"말버릇이 제법이구나. 상당히 와일드한 심성을 가진 보이로군."
"닥치라고 했다."
"알았다."

뭐냐, 뭐냐고 저 여유. 뭐냐 저 이상한 언동. 이 상황에서 농담이라도 하겠단 거냐. 겉보기엔 금방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비실한 놈이. 눈살을 찌푸리며 총을 고쳐쥐는 동안, 남자는 전혀 미동하지 않았다. 그저 곤란하다는듯 졸린 눈을 하고 이쪽을 보고 있을 뿐. 수상하다. 엄청 수상해. 뭐야 저놈.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 슬슬 판단에 혼란이 오기 시작한 시점에서 남자가 입을 연다.

"그 죽어버린 남자의 존재가 문제인가. 그게 네 하트와 마인드를 옭아매고 있는 건가, 소년이여."
"....힛, 그럴리가 없잖아. 내가 지금 노리고 있는건 그걸 봐버린 네 머리통이라고. 정확하게 조준하고 있으니까."
"딱히 신고할 생각도, 누군가에게 알릴 생각이 없다고 해도?"
"그 말을 어떻게 믿어."

과연, 그렇다. 너는 나를 모르고 나 또한 너를 알리가 없다고 초췌한 인상의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 아니야. 그 태도가 아니라고, 아저씨. 분위기 파악이란거 혹시 알아?

"알았으면, 너. 이 자리에서 죽을 각오가 되어있어?"
"네겐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아직 그런 각오는 되어있지 않군. 죽을 생각도 당분간은 전혀 없다. 이래뵈도 아직 20대 중반이라는 청춘의 구간을 지나고 있으니까."

20대였냐, 아저씨. 30살은 넘은 줄 알았건만.

"나도 딱히 이러고 싶진 않아, 아저씨. 운이 나빴다고 생각해. 난 어차피 이럴 수 밖에 없어. 별로 남의 사정을 봐줄만큼 좋은 녀석으로 자라나지 못했고 사고방식도 더럽기 짝이 없거든. 그러니까,"

"그러니 한 가지 제안이 있다."

"어이....."

"그 시체, 계속 그대로 둘 생각은 아니겠지. 모습을 보아하니 처리해본 적도 없을테지."

도와주겠다고, 그런 말을 지껄이며 남자는 태연히 어른의 냉혹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벙쪄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이치마츠의 앞에 어느새 남자는 다가와서 시체를 어깨에 받쳐 들어올린다. 가지, 하는 말에 어쩐지 짓눌려 이치마츠는 순순히 남자를 따라 나선다.

"우리 공장은, 이따금 시체가 나오지. 프레스에 몸이 끼이거나, 직원간의 다툼으로 우발적인 싸움이 일어나거나. 하지만 그 사실이 드러나는 일은 없어. 왜냐하면,"

시체를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이지. 하고 남자는 손짓으로 공장의 뒤쪽으로 안내한다. 시체를 업어올린 이치마츠가 미간을 찌푸린다. 과연 블랙공장, 이런 편리 좋은 곳도 있네.

여러모로 정보를 밀폐하기도 좋지. 아무렴, 사람들은 누구나 크고 작은 비밀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을텐데 만약 그 비밀이 새어나갔을 때 곤란해지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 사람들은 그 원인을 없애기를 희망한다.

남자는 아무래도 좋은 것을 떠들어대며, 공장의 문을 열쇠로 연다. "영업 끝났는데, 들어가도 좋은거야?" "이런 걸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진 않을테지. 그리고, 괜찮다."

내가 여기 책임자니까,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도 전에 공장 문이 열리며 엄청나게 거대한 욕조같은 통에 이상한 액체가 부어져있고, 문이 열리면 남자는 이상한 우주복같은걸 걸치고 있었다. 주변을 들여다보면 여기저기는 이상한 기계장치와 영문모를 화약약품 통이 굴러다니고 있었고, 영문모를 이상한 악취가 났다.

"별로 보기 좋은 일은 아닐텐데도, 나가있지 그래."
"됐어. 여기 있을거야."
"고집은, 뭐. 그것은 네 선택이야."

장비를 갖춰입은 남자가 시체를 달라는듯 손을 까딱였다. 홀린듯이 재빨리 등에 짊어진 밀봉된 것을 건네면 남자는 고무장갑 낀 손으로 그걸 받아 통에 설치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다.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아무 문제 없이 시체는 이치마츠의 눈에서 사라지고 남자는 다시 사다리를 내려온다.

간단하고, 깔끔한 작업.

후우, 하며 고글을 벗은 남자가 이치마츠의 동태를 발견하고는 다가온다. 그 손길에 저도 모르게 흔들린 것은 아직 나약한 정신이 이치마츠의 마음 한구석을 뒤흔들고 있는 탓일까. 어이없이 사라진 시체와, 눈 앞의 남자.

그런 이치마츠를 타박하듯 남자의 말이 이어진다.

"그렇게 놀랄것 없다, 소년. 너희 상사들도 자주 이용하는 곳이라고."
"뭐, ....그건 어떻게...."
"척 보면 알지. 마피아의 총알잡이라는 것 정도는."

여전히 충격에 빠져있는듯한 이치마츠를 보며 쓴 웃음을 짓고 있는 남자. "뭐, 기분좋은 업무는 아니다. 그저, 반복되는 행위에 익숙해졌을 뿐. 죄에 손을 물들이고 그 무게조차 느끼지 못하는 단계지. 아직 네가 익숙해질 필요는 없어. 어쩌면, 네 반응이 실로 당연한 것이다." 이치마츠의 볼에 체온이 느껴지더니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진다. "지독한 걸 보여줘서 미안하군."

"....별로 상관없다고 했잖아." 목에 메인 소리가 나오는 것을 이치마츠 스스로는 막을 수 없다. 방금 남자가 시체를 처리하는 것을 본 것이 충격이였는지, 시체가 사라진 것만으로 이렇게 안도를 느끼는 자신이 더없이 혐오스레 느껴진 탓인지. 이치마츠는 알지 못한다.

그저 눈 앞의 남자가 아니라면, 자신은 어떻게 되었을까 따위를 상상할 뿐.

죽이려고 한 대상에게 도움받고,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이 순간.

아아, 자신은 영영 인간으로 살지 못할 것이다.

"....고마워."
"고맙다는 말같은걸 듣고자 한 일이 아니다. 나는 너에게서 살기 위해 너를 도와줬을 뿐이니."
"그래도 고마워."
".....고집이 센 키드로군. 뭐, 우리집에는 변변찮은 건 없고 핫초코 정도로만 대접이 가능하겠지만. 원한다면 가겠는가."

공범이 된 것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남자는 다시 허름한 서류가방을 들어올린다. 공장 문은 닫히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림자의 수는 두 명 분.

"이름을 말하는 게 늦어졌군. 나는 마츠노 카라마츠라고 한다. 너는?"
".....이치마츠. 성은 없어."
"흠, 그런가. 그래, 이치마츠."
"......"
"카라마츠 형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아저씨인 주제에."
"아직 이십대라고 하지 않았나. 너와 나이차가 생각만큼 많지도 않다고."
"시끄러, 썩을 아저씨. 아재한테서 구린내 나거든."
"너무하군...."

시무룩한 얼굴로 우는 시늉을 하는 남자, 카라마츠를 보며 이치마츠의 입가에 웃음 비슷한게 떠오르다가 가라앉는다. 이 남자와 같이 있으면 묘하게 진정된다. 그것도 방금 사람을 죽이고 담가놓고 온 직후인데도. 자신이 처음 만난 사람과 이렇게 떠들 수 있는 줄도 몰랐다.

일단은, 이 남자 집에서 핫초코를 대접받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단 건 싫어하지 않으니까.
카라마츠가 자꾸 가까이 붙어서 치근덕대서 신경질적으로 밀쳐냈더니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웃으며 밟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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