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이 급해요?"


"급한 건 아닌데... 

아니, 됐어요. 그냥 이리 와요."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잠깐만 가만히 앉아있어 줄래요?"


"어... 그래도 처음은 침대가 낫지 않을까요? 

그리고 좀 밝은데..."


"불 끄지 말고요. 침대보다는 소파가 나을 거예요."


"잡지에서는 익숙한 곳이 좋다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조금만 기다려요. 

손은 되도록 움직이지 말고!"


바로 서재에 있는 구급상자를 가져왔다.


"구급상자? 아, 이건 괜찮아요. 

그냥 살짝 데인..."


"아니잖아요."


그냥 살짝 데인 1도 화상이 아니다. 

아마 뜨거운 것이 끼얹어진 후 제때 식히지 못해서 피부가 짓무른거겠지. 

뭔지 모르겠지만 엄청 아팠을 거다.


"따가울 겁니다. 소독부터 하고... 

이건 병원을 가야 할 것 같은데."


"우웅... 화났어요? 손은 괜찮아요."


"안타깝고 마음이 안 좋은 거예요."


화가 난 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탁자 위에 올라가 있는 저걸 만들려다가 다친 것 같고. 

나한테 줄 것을 만들다가 다친 것이니 화는 나지 않는다. 

그냥 많이 안타까울 뿐이지.


치료도 대충 되어있었다. 

정확히는 치료한 뒤에 물이 닿아서 연고나 밴드가 다 떨어져 있었다.


소독을 다시 하고, 화상 연고를 바르고, 다시 밴드를 붙였다. 

그래도 흉터가 많이 생기지는 않을 것 같긴 한데...


"미안해요. 우진 씨가 좋아하지 않을까 해서 만든 건데..."


"그거랑 별개로 하늘 씨가 다친 건 마음이 아프죠."


뭘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하늘 씨의 손등과 손바닥에 있는 상처를 보니 웃음이 나오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왼팔에 있는 흉터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픈데.


"호에? 우진 씨?"


치료를 다 끝내고 나서, 권투선수의 테이핑처럼 된 하늘 씨의 손을 바라보다가 그냥 끌어안았다. 

뭘 만들어야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거나 어색해도 그냥 감안하기로 하자.

결과물과 상관없이 나한테 이렇게까지 정성을 쏟았으니까.


"흐음. 역시 하고 싶어요?"


안겨있던 하늘 씨가 뭔가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냥 마음이 아파서 끌어안은 건데, 하늘 씨는 뭘 생각하는 걸까.


"뭘 하는 건지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지만... 일단 진정해요. 

하늘 씨 줄 선물도 있으니까."


서재에 있던 커다란 선물상자를 갖고 왔다.


"우와아. 엄청 커요. 우진 씨 몸통만한데요?"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들어있는 선물상자로 해봤어요."


그렇게 부담되는 가격도 아니었으니까.


"우잉... 저는 간단한 거 하나인데 말이죠."


하늘 씨는 그러면서 탁자 위에 있던 종이 상자를 보여주었다. 

상자 안에는... 케이크 조각이 놓여 있었다. 


"초콜릿케이크인가요?"


"네에. 열심히 만들었어요."


굉장히 윤기가 나고, 쌉싸름한 냄새가 나는 초콜릿케이크가 있었다. 

아마 이걸 만들기 위해 여러 군데에 화상을 입고 다칠 정도로 노력한 것 같은데...


"일단 그럼 이것부터 같이 먹을까요?"


"어, 우진 씨에게 준 건데..."


[꼬르르륵...]


하늘 씨가 말하자마자 배에서 그런 소리가 났다. 

많이 배고팠나 보다. 

저녁밥으로 두었던 반찬이 남아있긴 한데... 


"같이 먹어요. 어차피 이 선물상자도 혼자서 먹을 수는 없을 거예요."


"우웅... 그래요."


케이크를 같이 먹으려고 포크를 가져오는데,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케이크는 홀 케이크라고 해서 원기둥 모양으로 크게 만들고, 그걸 잘라서 조각케이크가 되지 않나? 

홀 케이크를 만들고 조각이 하나 남았으면, 나머지 부분은 다 먹은 거 아니야? 

왜 하늘 씨가 배고파하지?


"와아! 케이크!"


오늘 아무것도 안 먹은 사람 같은데. 

하늘 씨의 반응이 영 이상하다. 


"솔직히 말해봐요. 오늘 밥도 안 먹고 뭐 했어요?"


하늘 씨가 케이크를 한 입 먹자마자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그리고 나도 한 입 먹어봤는데...


'어, 뭐지.'


초콜릿케이크라고 말했는데, 왜 단맛이 아니라 쓴맛밖에 안 나지? 

이거 초콜릿 맞아? 그나마 텁텁하지는 않은데...


"우웅... 사실은..."


하늘 씨가 눈을 피했다. 

초콜릿케이크를 만든 게 아니라 다른 걸 했을지도 몰라. 

아니면 이게 독약이라거나? 

크레파스나 휘발유, 석유 같은 식감이랑 맛인데?


"원래는 비스킷에 초콜릿을 찍어 먹을 수 있게 할까, 하다가 실패했어요."


"어... 네?"


"발렌타인데이였잖아요. 그 날 아무것도 못 해줬으니까요. 

그래서 초콜릿을 쓴 과자나 빵을 만들려고 했는데..."


더 말하기가 부끄러운 걸까, 하늘 씨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요리랑 비슷할 것 같다고 생각한 게 문제였어요. 

좀 더 신중히 차근차근 배웠어야 하는데...


초코 멜론빵, 브라우니, 초콜릿 크루아상... 

만들려고 했지만 다 실패했다고요."


"아. 그래서 손을 다친 건가요."


"요리보다 훨씬 까다로운 것이 많았어요오..."


그럴 수 있지. 

요리는 적당히 넣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정량이 적혀있는 레시피북이 많지 않은 편이니까. 

제빵만큼 계량이 중요하거나 절대적인 양이 중요하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제빵이라는 건 그 조금의 오차로도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 분야지...


"그래도 케이크는 맛있는데요."


티라미수가 생각나는 맛과 질감이지만, 그건 둘째치고 하늘 씨가 나를 위해 신경 써준 그 마음만으로 충분히 달달했다.


"으앙. 솔직히 이것도 실패한 거라고요. 

코코아가 달지 않고 쓰다는 걸 오늘 알았어요..."


"하하. 맛있어요. 걱정 마요."


내가 웃으며 케이크를 한 입 떠먹자 하늘 씨가 가린 손가락 사이로 보다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자신도 용기를 내서 한 입 먹어보는데...


"그쵸. 첫맛이랑 다음 맛이 다를 리 없지... 다음에는 더 맛있게 해줄게요."


예상보다 한참 쓰게 나왔다는 걸 이제 안 거겠지. 

거의 가루약을 그대로 먹는 것 같은 느낌이긴 한데, 하늘 씨에게 살짝 웃어주고 다시 포크를 움직였다.


"우진 씨? 이거 계속 먹으면 배탈 날지도 몰라요."


"좀 나면 어때. 괜찮아요."


뭐 이것도 못 참을 정도는 아니다. 

더 끔찍한 요리나 음식도 많이 먹어봤고. 

하늘 씨가 나를 생각해서 노력한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예쁜 손에 여기저기 물집이 다치고 상처가 늘어있었다. 

쓴맛 보다, 그 손이 안쓰러워서라도 다 먹어야겠어.


"그, 그럼 이거 같이 먹는 게 어때요? 그거 맛없으니까..."


하늘 씨가 정말 내가 걱정되나 보네. 

막 뺏어가려고 한다.


"안 먹을 거면 이리 줘요. 저라도 다 먹을 테니까."


"좀 맛있는 걸..."


"하늘 씨가 저 생각해서 만든 거잖아요. 

일부러 골탕 먹이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다 먹을 수 있어요."


혀에서는 좀 쓴데, 마음에서 단맛이 느껴진다.


"에잇."


하늘 씨는 각오를 다지듯이 심호흡을 하더니, 장난스러운 소리를 내며 포크로 케이크를 절반으로 나눴다.


"나도 먹을 거예요! 

오늘 실패한 거라도 먹으려고 했더니, 하은 사장님이 탄 거 먹으면 몸 상한다고 못 먹게 했단 말이에요."


"하하... 그래요. 같이 먹어요."


"... 맛없어."


어허. 이런 건 맛으로 먹는 게 아니죠. 

마음으로 먹는 거지.


"우진 씨가 산 건 어때요? 같이 열어볼까요?"


"그럴까요? 저도 안에 열어보지는 않았는데..."


결국 하늘 씨는 케이크를 포크로 푹 찍어 베어먹기 시작했다. 

나는 잠깐 포크를 내려놓은 뒤, 상자의 포장을 뜯고 내용물을 열어보았다.


"우와아..."


평범한 과자 세트려니 했는데 이건 좀 신기한걸.


터키에서 먹는 과자던가? 

바클라바가 중앙에 있고, 쿠키와 초코바가 위쪽에 놓여 있었다. 

상자 곳곳을 채운 건 바닐라 밀푀유, 까눌레, 휘낭시에, 마카롱이었다. 

그리고 상자 아랫부분이 묘하게 남는다 싶어서 판을 들어보니, 아래층은 통으로 티라미수가 들어가 있었다.


"화이트데이니까요. 좀 비싼 거로 사봤는데 산 보람이 있네요."


"제가 단 건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건 먹어보고 싶네요."


"하하. 다 먹어도 돼요. 하늘 씨 거예요."


일단 바클라바의 포장을 뜯어서 하늘 씨의 손에 올려주었다. 

가장 가운데에 있는 것이니 제일 자신있는 거겠지. 

쓴 거 그만 먹고 단 거로 입가심하는 것도 필요할 거다.


"이걸 혼자 다 먹으면 돼지가 될 거예요..."


"귀엽겠네. 그리고 하늘 씨는 너무 말랐어요."


"아니에요! 요즘도 뱃살이..."


"뭐 보이지도 않는구만."


"여기 봐봐요! 

우진 씨 집 와서 이렇게 뱃살이 잡힐 정도가..."


"그건 가죽이고요, 가죽."


거의 꼬집다시피 옆구리를 잡으면 누구나 뱃살 잡힌다. 

아... 나도 뱃살이 좀 잡히기 시작했는데. 

입원했다, 뭐가 바쁘다 하면서 운동을 너무 멀리했어.


"가죽이 아니라 살이에요! 

그리고 이쪽도 요즘 찌는 것 같아서 고민..."


하늘 씨는 옷을 더 올려서 살이 찐 부분을 가리키려다가 나를 바라보고 얌전히 옷을 내렸다. 

나도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돌렸고. 

거기서부터는 배가 아니라 다른 부위잖아요.


"아우..."


"바클라바 맛있네요. 먹어봐요."


정작 내 입에 들어가는 건 하늘 씨가 만든 쓴 케이크인데, 괜히 바클라바를 말해봤다. 

하늘 씨가 너무 수줍어하는 것 같은데. 

얼굴이 엄청 빨개졌어. 딸기잼이 생각나네.


"그, 음. 네... 어쨌든 화이트데이 선물 고마워요. 

단건 별로 안 좋아하지만."


"저도 발렌타인데이 선물 고마워요. 

케이크 맛있었어요."


"그건 그짓말... 쓰잖아요."


"쓴 거랑 맛있는 건 별개죠."


아마 복어 독이 들어갔어도 맛있게 먹었을 거다. 

이건 요리나 제빵 기술 이전에, 들어간 정성과 마음만으로 100점 이상의 케이크였으니까.


"먹어봤던 케이크 중에 제일 맛있었어요."


하늘 씨는 한 손에 과자를 들고,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내가 웃는 모습을 보며 뭔가 멍한 표정을 짓더니, 과자를 한입에 넣고 나를 꼭 끌어안았다.


"마음이라도 알아줘서 고마워요. 

다음에는 더 맛있는 거 해줄게요."


"마음이면 충분해요. 부담 갖지 마요."


나는 물질적으로 보이는 것 때문에 하늘 씨랑 사귀는 것이 아니니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과 정성이 중요한 거지.


한 사람은 입이 쓰고, 한 사람은 입이 단 채로 우리는 잠깐 소파 위에서 끌어안고 있었다.


오늘은 하늘 씨의 몸에서 빵과 과자의 냄새가 났다. 

평소와는 조금 다르지만, 이것도 나름대로 하늘 씨 다운 냄새가 났다.


"사랑해요, 우진 씨."


"저도 엄청 사랑해요."


---------------------------------------------------------------------------------------

Q : 왜 낙원마을 시장님은 외전으로 안 나오나요?

A : 그쪽은 당분 중독이라 화이트데이로 외전을 쓰면 그 다음주에 당뇨 진단 받고 좌절할 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lorantz@naver.com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장현우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