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4


*수정 전 

*미완


토니는 모두가 기억하지만 지금은 그때 그런 음악을 들었지 하는 가수 인 거 보고싶다. 정확히는 그때 톱을 찍은 사람이라 연기도 좀 했고 cf도 나왔고 하는... 시대의 아이콘 중에 하나.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는 스타의 흥망성쇠였어. 알콜 문제가 심각했고, 그로인해 주변 사람들을 내쫓았고, 그렇게 잃은 경험에 속쓰려했고.

어마어마한 부를 거머쥐었던 건 물론이지. 흥청망청 써댔으니 몰락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는데 작곡 참여했던 곡으로 구사일생. 그러니 지금이라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건 아니었어. 다만 그는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도, 무대도 자신의 생각보다 더 좋아하던 사람이었지. 


누구누구가 사갔다던 애물단지 성은 진작에 처분했고,플레이보이 잡지 발행인이 살법한 저택도 치웠어. 일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얌전한 집을 사들여 청소소부터 했어. 부쩍 간소한 짐을 들여놓은 토니가 다음으로 한 일은 연극 오디션 찾기였어. 

당연히 퇴짜의 연속인데 그러고 다닌다는 소문을 들은 친구들한테서 차츰 연락이 오겠지. 워낙에 사람들이랑 만나고 어울리기 좋아했고 베풀기도 좋아했어. 단점이 너무 크고 감당하기 어려워져서 못 이겼을 뿐. 그는 일찌감치 대문을 열어뒀어. 덕분에 텅 비었던 그의 방에는 점차 주변인이 놓고간 옷가지나 괴상한 선물들로 채워져 갔겠지. 


그러다가 자신은 잘 기억도 안나는 인연을 들먹이는 전화를 받았어. 그때 친절을 베풀었다는 영화 지망생이 감독이 되었다고. 솔직히 기억도 안 나는데다가 호의를 냉큼 받아들이기에는 자신도 머쓱하기는 한데 어차피 등장은 한 3분 남짓이었고, 그 정도도 자신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라 염치 불구하고 찾아갔어. 바로 그 자리에서 만나게 된 게 스티브겠지. 


그런데 사실 스티브는 헐리우드 스타중에서도 얌전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라 거친 언사에는 아직 면역이 없는 편이었어. 괄괄하다고 소문이 난 상대는 보통 그런 사람이었고 그들과 스티브는 대게 어색한 시간을 보내가다 헤어지는 편이 많았어. 

토니는 워낙 이력이 화려했으니 살짝 긴장한 상태로 인사를 나눴지. 어차피 촬영은 금방 끝날테니까. 위안 삼고 연기를 하는데... 감독 나름의 팬심이었는지 짧아도 중요한 순간을 할애했기에 좋다는 싸인이 쉽게 나지 않았어. 몇 번 함께 하다보니 긴장이 풀리기도 했고, 스리슬쩍 아까와는 조금 다른 연기가 돋보이기도 했어. 본업은 가수잖아. 스티브에게 그는 정말 재능이 많은 사람이라는 인상이었지.


그리고 드디어 굿싸인이 나왔어. 다음 장면을 위해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걸 보고 맞은 편에 앉아 있던 토니가 "정말이지... 끝내주는 군. 안 그래?" 라고 하는거야. 스티브는 그가 현장을 만끽하고 있다고 느껴졌고 동의하며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어. 


그는 뭐라도 말하고 싶었지. "단순히 제 생각이긴 하지만... 당신이...뭔가... 부족하다고 느낀 것 같았어요." "뭐..." 토니가 말꼬리를 흐렸어.

이에 스티브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감독에게 다가가 뭐라 이야기를 했고, 그는 움직이던 사람들을 멈춘 후 다시 한 번 헤드폰을 머리에 썼어. 그렇게 다시 주어진 기회가 끝나고 토니가 말했어. 


"이봐, 핸섬가이. 내가 열 살 만 어렸어도 그 잘난 얼굴에 주먹을 갈겼을 거라고" 하고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툭치고 일어나는 거야. 표정은 웃는 낯에다 불쾌한 기색이 아니어서 지레 뿌듯한 기분마저 들었던 스티브는 어안이 벙벙해져 그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어. "여유가 넘치는데? 영화의 주인공인 네가, 이 전 장면이 아니라 이 장면이 베스트라고 자신 할 수 있어?" 선택은 저 양반 몫이겠지만 말이야. 하는 말에 비로소 부끄러움을 느꼈어. 그는 요즘 최고 몸값을 구가 하고 있는 배우였고, 자만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잘 다잡고 있다고 여겼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싶었으니까. 


사과를 하려는데 타이밍을 놓쳤고, 그는 감독과 가벼운 허그를 나누고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봐야만 했지. 


그날 촬영을 전부 마치고서도 영 켕기는 마음이 가시지를 않았음. 그런데 이제와 번호를 알려달라고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는 것도 무례한 것 같고. 메일로 연락을 하자니 과한 것 같고. 난처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문득 생각 난게 있어 사놓고 보지 않는 dvd를 뒤적거렸음. 그렇게 젊은 배우는 감독이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인 양 즐겁게 떠든 영화부터 지금은 조금 올드하게 느껴지는 음악까지 몽땅 찾아보며 밤을 꼬박 샜음. 


음악은 취향이 아니었으나 음색에 이끌렸고, 처음 출연한 영화 속 연기는 많이 어설펐으나 영원한 젊음을 상징하는 것 같은 스타의 반짝거림은 건재했음. 스티브는 이제와 훌훌 털어낸 감독보다 벅찼고, 자신의 무례가 매우,  몹시, 많이 사심까지 담아 마음에 걸렸음. 


잠시 머뭇거리던 검색창에 토니 스타크의 이름을 쳤고, 최근에 실린 기사 두 어개에 새로 걸리는 작은 소극장에 그가 주연으로 등장한다는 걸 확인했음. 계속 고민하던 스티브는 결국 스케줄이 없는 날 그의 무대를 보러 갔음. 


당연히 그가 밤을 꼬박 새우며 본 사람과는 많이 다른 이였음. 유쾌하고 발랄하면서도 어딘가 위태로운 구석이 있었던 부분이 많이 깎여나간 기색이 역력했고, 살짝 흔들렸던 발음은 흠잡을 데 없어졌으며 끊어오르는 에너지보다는 탄탄한 안정감이 드러나는 무대였음. 그는 기꺼이 박수를 쳤고, 만나기 전 기대는 묘하게 가라 앉았음을 느꼈음. 다행이기도 하고. 나도 참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싶은데. 들어오라는 허락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모습은 분장실 의자에 앉아 그가 두꺼운 메이크업을 지우는 모습이었음. 거울너머로 자신이 본 게 맞냐는 듯 뒤돌아보는데 스티브는 다시 난처한 기분이 들었음. 


"무슨 일이야?"


"이거"


마음을 담아. 스티브 로저스. 카드와 함께 건네준 꽃다발에 예의상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를 빤히 바라보는데 자신은 쭉 사과를 하고 싶었다고. 그때 무례하게 굴었던 것 같아 죄송하다고. 그에 토니가 웃고 말겠지. 


"그냥 심술을 좀 부린 걸 가지고. 나였으면 무슨 추태인가하고 열심히 씹기 바빴을텐데. 정말 어지간한 모범생이네."


대답하는 사이에도 그는 가발을 벗고, 렌즈를 빼서 안경을 썼음. 스티브는 미친 거 아니야 진짜? 절로 피곤해지는 느낌에 잠시 눈가를 비볐음. 


"시간있어? 술은 내가 사지"


"사과의 의미가 꽃다발이라고 하긴 좀 그렇죠. 괜찮다면 저녁을 살 기회를..."


"누가보면 꼬시는 줄 알겠는데?" 


스티브가 내심 움찔했음. 아무리 그래도 우중충한 옷을 걸치는 대신 조금 더 신경써서 입고 왔다면 좋았을텐데 따위를 떠올리고 있었음. 


"애석하게도 연극이 이제 막 시작해서 말이야. 저녁은 좀 어렵겠어. 사실 술도 난 마시는 걸 구경하는 쪽이 될 거야. 미안해서 어쩌지?"


"잘 됐... 아니, 그럼 약속은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나서 지키는 걸로 하죠."


"... 알았어. 너무 무리하지는 마" 


브로드웨이는 못 되더라도 충분히 번화가 이기는 해서, 계획을 좀 변경하는 게 어떠냐고 토니가 제안했지. 스티브가 "그" 스티브 로저스인 만큼 두 사람은 크게 걸린 스티브의 향수 광고를 지나쳐 토니의 집에서 술을 마시게 될 것 같다. 이사 한 지 얼마 안 된거냐 묻는데, 사실 예전에는 이것저것 사모았는데, 지금은 아끼는 기타는 전부 제 손으로 망가뜨렸거나 남에게 줬고 취미로 고치고 있는 망가진 차 정도만 있으면 될 것 같다고 답하고. 


스티브는 신발장 위에 놓여있는 차키와 동전 따위를 담아 놓는 통에서 토니의 금주 메달을 볼거야. 아... 저... 생각 못하고. 했는데 저녁도 못 먹는데 그럼 어쩌겠어? 남이 마시는 것도 주체하지 못할 정도면 바깥 생활 못해. 본인은 대수롭지 않은데 스티브는 결국 같이 물이나 마실 거 같다. 술은 자기가 가지고 갈 때 선물로 들고 간다고 해서 토니가 제발 그만 좀 웃기라고 나무랄 듯. 


아무튼 스티브는 토니의 다른 방의 벽이 덜칠해 진 채로 방치 된 것도 보고 다른 사람들이 편하게 들락날락 거린다는 소리도 듣고, 집구경만 가볍게 하면서도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러다가 토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서 익숙한 닭가슴 살 나눠먹으려다가 나란히 요령껏 샐러드로 만들어 먹다가 또 고개 절레 흔들면서 웃겠지. 연극  내용에 대해서, 연기에 대해서, 자연스레 촬영이 끝난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보니 시간이 아쉽게만 흘렀고 예정에도 없었는데 초대에 고맙다 이런 소리를 하며 헤어질듯. 토니는 대체 저 젊은이가 자신의 뭐에 꽂혀 이렇게 재밌어 하는 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데 또 만날 수 있냐고 몇 번이나 확인하길래 어어 그래; 하고 말았겠지. 


그도 요즘은 다른 사람과는 가벼운 데이트만 몇 번 나눈 적이 더 많았던데다가 둘 사이에 워낙 뭐가 없기도 없어서 설마 다른 방향으로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지는 몰랐지.  


이렇게 시작하는 두 사람이 보고싶다. 눈치는 처음에만 없었지, 점점 올 때마다 숨길 의지도 없이 멀끔해지는 데다가 달갑지 않은 파파라치가 다시 붙어 스티브의 새로운 친구라고 실리기도 하고. 억지로 하는 운동 같이 달리면 즐거울거라고 제안을 하질 않나... 스케줄 때문에 만나기 어려워지니 자기 헬스트레이너를 소개시켜주기도 하는데, 토니 입장도 머뭇거리다가 스티브 로저스를 검색하는데 대체로 성향이 원래 조용조용하다고 하기도 하고, 따로 여성 외에 스캔들이 난 흔적도 없어서 정말 제 착각인가... 헷갈릴 듯  


그 사이 스티브는 수트의 재킷만 덜렁 소파에 던져놓고 칠하다 만 토니의 벽을 칠해주기도 하고, 때로 끔찍한 닭가슴살 레시피를 가지고 와서 같이 먹다가 웃기도 하고, 몇 번씩 연극을 보고 꽃다발을 안겨주겠지. 친구들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 토니가 직접 기타를 잡으면 그 목소리로 듣고 싶었던 곡을 들려달려고 요청해보기도 했을테고. 유명한 것도 알았고 몇 가지 유명한 영화도 챙겨보았지만 모든 영화를 챙겨보지 않았던 토니도 혼자 안경을 쓰고 그의 영화를 봤겠지. 소파 맡에 놓여있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들을 보고 케이스를 흔드는데 쉽게 동요하지 않는 토니도 치우는 걸 잊어버리다니. 이런 멍청이. 하고 스스로를 탓하며 민망해하는 모습을 즐거워 할 거야. "근데, 이것도 아직 안 본 거예요? 서운한데" "이제 봤으니까 됐잖아." 


누가봐도 꿀이 넘쳐 흐르는 것 같은데 남자랑 침대 안에 이끌려 들어가서 별별 체위는 다 해봤어도 사랑을 해본 적은 없었던 토니는 이제 긴장한 기색없이 편하게 어울리는 데다가 저와 달리 조용하고 오래가는 헤7테7로 스티브가 저를 그런 쪽으로 좋아하는 건 아닌가 보다 하고 답지 않은 방심을 함. 


워낙에 사고 방식이 다른 것도 한 몫을 하겠지. 보니까 누구한테나 다정하고 살갑게 구는 편이네. 볼 때마다 신기하단 말이야. 주위에는 저같이 예민하고 피차 성격 뭣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득해서 이제와 새로 사귄 "잘 모르는 사이"에서 오는 스티브 로저스의 비극 아닌 비극... 


*


"그래서, 이쪽은 네 새로운 파트너?" 라고 물어온 게 벌써 다섯 번 째였어. 스티브는 토니 덕분에 졸지에 인싸되기 훈련을 받는 기분이었지만 이 정도면 내심 토니와 뭐가 있다고 봐도 되겠지? 라고 기대해보려 할 때마다 망설임 없이 친구. 라는 대답이 나와서 눈치 보게 되겠지. 스캔들 기사를 일일이 찾아보면 찌질해지는 기분에 열만 받으니까 찾아보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정말 모를까? 싶어서 심란해져. 


응, 근데 진짜 모름. 이상한 일이지 모두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사랑하고 싶어하지는 않아. 열성적인 팬과 만났다가 죽을 뻔했다는 기사만 나갔고, 사기꾼도 만났고. 그러니 토니가 판단해왔던 건 정확히 말하자면 이 사람이 나와 자고 싶은가 그렇지 않은가였어. 기대를 했던 적도 있는데 그랬다가 술독에 풍덩 빠졌다가 나온 후로는 건전한 방식으로 애정결핍과 멀어지기로 했어. 그런데 스티브는 아무리 봐도 쿨하게 몸만 섞는 사이를 좋아할 것 같진 않거든. 


그는 자기 객관화를 잘하는 타입이었어. 솔직히 제가 생각해도 과거 토니 스타크는 끝내줬거든. 예쁘고, 영롱하고. 그런 미모로, 저였으면 차마 외면하지 못했을 거 같은 애처로움으로 볼썽사나울 정도로 매달렸는데 구하지 못했던 사랑이잖아. 포기하면 편해. 인생이 이렇게 쉬워졌는 걸. 그러니 당장 tv만 틀어도 호들갑을 떨며 소개하는 남자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과 이어 붙이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 뭐 물론, 유명세가 있는데다가 이번 감독처럼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용도로 가끔 저를 붙잡는 번호들이 있었지만 그렇게 어울리는 건 정말 필요할 때였어. 덜 떨어진 진절머리 나는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히거나 한 여름 홀로 뼈가 시릴 정도의 추위가 느껴질때쯤. 약이나 술을 할 수는 없으니까. 더 늙으면 어쩌지. 토니는 밤에 마스크팩을 붙이고 얌전히 누워...죽지 뭐. 간단하게 생각했어. 


그러다가 그가 찾아온거야. 로키. 토니는 이 새끼랑 다른 게 대체 뭐라고. 투덜거릴 정도로 그때나 지금이나 커다란 무대에만 서는 남자였지. 


"마굿간인데? 예수야 뭐야"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저 바다 건너까지 걸리는 족족 네 연극이 망하고 있다고 소문나서. 그 꼴좀 구경하러 왔지. 너 질질짜면 배로 못생겨지잖아. 그 좋은 걸 놓칠 수야 있나. 근데 남편처럼 서 계신 이쪽은 누구?"


"스티브 로저스입니다."


"매일 보잖아. 이쪽도 마찬가지야. 너보다 잘 나가는 스무 살"


"토니... 난 그렇게 어리.."


"알아. 그 언저리. 애기지 뭐"


스티브가 둘 사이에서 멘붕이 오건 말건 서로 놀리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는 친구들 중에서도 정말 친한 친구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게 되었어. 요즘 그에게서 쉽게 보지 못하는 거친 언사가 줄줄 흐르는데 직접 마주친 적 없는 그의 "애기 때"를 보는 거 같았거든. 로키는 시시콜콜한 막말을 주고 받으면서 그 조신한 행태를 지켜봤어. 나중에는 아예 끼어들기를 포기하고 차랑 다과를 내놓더라고. 기가 막혀서. 나이 먹더니 뒤진 건 그나마 봐줄만한 낯짝이 아니라 눈치인가봐. 


토니는 다음 날 새벽 같이 걸려온 전화에 잔뜩 짜증을 냈어. 시차 다른 곳 가서 지혼자 엿먹기 싫다고 좆같이 구는 거 여전해. 어렸을 때야 서로서로 집구석에 알람도 숨겨놓고 별별 짓 다했지만 이제 자신은 세계는 커녕 다른 도시로도 잘 안 나가는데.


"한 번 만 더 전화하면 다음 주 기사 1면에 실릴 줄 알아. 토니 스타크 끝끝내 거지 같은 락스타를 암살하다."


"네가 어딘가 맛탱이가 간 거야 내가 진즉에 알아봤지. 그래서 갸륵하게 여겨줬는데 하다하다 엉덩이 간수까지 시켜줘야 하나 싶다"


"뭐래. 술 처마시고 전화하지 말랬지"


"니 친구 스티브 로저스 말하는 거지. 다 늙어서 둘이 소꿉놀이 해?"


"스티브가 거기서 왜 나와... 아 진짜 미친새끼.."


로키는 인내심을 가지고 다섯 번인가 전화를 더 걸었어. 애잔하긴 옛날 옛적에는 휴대폰이 개박살나고도 남았을 텐데 뚝뚝 끊기는 게 금덩이인 휴대폰도 아껴야겠고, 섭외 전화 직접 받으셔야 하니 그렇겠지. 쯧쯧. 


그리고 둘이 이러쿵저러쿵 하다가 기어이 잠이 깨고야 마는 토니겠지. 일부러 쓰게만 내린 커피를 삼키면서 로키가 얼른 네 잘난 궁둥이를 대주라는 둥 떠들어댔던 내용 말이야. 지도 지 집인 양 돌아다니고 맘대로 꺼내마시면서 무슨 헛소리냐고. 그런 내가 언제 니네 집 치워주는 거 봤냐. 다른 애들 식탁 차려준 기억은 없다. 지들끼리 좋아 죽어서 몇 년은 같이 산 게이 부부같더만 웃기고 있네. 하니까 막상 마냥 좋지가 않네. 그냥 산뜻하게 토니 스타크 안 죽었네. 평소처럼 이게 안 돼. 

세 명 마주치면 두 명이 게이인 판이 헐리웃이라는 농담도 있는데 (없음 걍 아무말) 노래만 부르는 것과 배역을 따내야 하는 입장하고는 좀 다르잖아. 자의식 과잉이라 설레발 친다 하기에는 또 듣고보니 그렇기도 하고. 아니면 좋지 싶은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드네. 



마침 스티브한테 전화가 와. 


"오늘은 일찍 받네요?" 


"음. 그때 같이 봤던 정신나간 애가 아침부터 전화질을 해대는 통에 깼어"


매번 잠결에 받아서인지 이렇게 나긋하고 좋은 목소리로 말했던가 기억이 안 나. 왜 몰랐지. 


"뛰기 좋은 날씨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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