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열개의 밤















-생명 나 사랑을 멈추지 않습니다.



찬열은 우주를 넘어오느라 조각난 단어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떠나버리고는 이렇게,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그렇게 웅얼대면서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비어버린 공간을 채워주는 것은 그 조각난 단어들뿐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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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동의를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모두가 함께 준비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맨 마지막 테스트에서 백현이 장난으로 윙크 한 번만 안 했더라면, 찬열 자신이 저 비어버린 하늘 어디를 헤매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 작은 장난이 찬열의 심장을 평소보다 빠르게 뛰게 했고, 결국 그 사소한 차이로 우주선에 오른 건 백현이 되었다.



출발 전까지는 함께 출발하지 못한 것에 대한 슬픔 반, 홀로 남는 것에 대한 슬픔이 또 반이라 매일 밤을 몰래 눈물과 한숨으로 지새웠고, 출발하는 날에는 비록 기간이 정해진 이별이라도 멀리 떠나는 백현이 혹시라도 마음이 무거울까봐 정말 무식할 정도로 웃었다. 한 번 안아 달라는 백현을 장난이랍시고 정들면 안 된다 등 떠밀어 떠나보낸 것이 찬열 인생에서 가장 크게 후회하는 일이 된 것은 두 달이 채 못 지난 후였다.



총 다섯 명이 출발한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통신이 닿는 동안 둘을 잃었다. 사소한 오작동으로 인해 강제로 우주로 떨어져버린 팀원들은 튕겨나가 한참 뒤에 발견 되었고, 시작부터 틀어진 항해에 팀장이었던 백현은 회항을 통보했다. 지구에서는 모험심이 없는 자라며 비난이 들끓었고, 상부의 명령을 거부한 백현을 당장 군법 회의에 회부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곧 예상에 없던 자기 폭풍이 우주선에도 영향을 미쳤고, 그렇게 통신이 두절되었다. 10주 후 기적적으로 다시 통신이 연결되었지만, 그 누구도 우주선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 난리 통에 우주선에선 단 한 명만이 살아 남았다. 백현이었다.



위치를 알 수 없는 우주선은 목적도 없이 동력도 없이 홀로 떠돌았다. 통신은 처음을 제외하고는 정확하게 잡히지 않았다. 그저 조각난 전파들만이 무작위로 도착하곤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은 영상이, 어느 날은 단어가.



 첫 메세지의 도착은 지구 기준으로 찬열의 생일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도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치 선물처럼, 희망을 잃고 마음이 말라가던 찬열의 수신기에 도착했다. 영상 조각은 백현의 얼굴을 또렷히 담고 있었다. 한참을 소리 없이 입만 벙긋대는 영상이 계속 되다가, 맨 마지막에만 정확한 소리가 나왔는데, 그 문장이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찬열은 한참을 울었다. 언제 작성되었는지 알 수 없는 영상은 우연의 우연을 타고 정확히 찬열의 생일에 도착해, 가장 듣고 싶은 사람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을 전달했다.





-미리,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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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열은 자주 백현의 방을 찾았다. 구석구석 먼지를 닦아내고, 잠시 이것저것 뒤적이며 방을 어질렀다가 이내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계절이 바뀌면 침구를 갈았고, 옷장 안에서 먼지 먹던 계절 옷들도 전부 빨아 건조시켜 왔으며 이제는 이 나라에서는 팔지 않아서 해외 배송까지 해서 찾아낸 디퓨저도 교체 시기마다 갈아 주었다. 그렇게 청소를 한 날은 꼭 백현의 방에서 잠을 잤다.



사람 사는 방의 느낌을 그렇게나마 억지로라도 남기고 싶어. 언제 돌아오든 어제 떠났다 돌아온 기분이 들었으면 좋겠거든. 언젠가 이유를 묻는 마더 H에게 찬열은 저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뒤에서 누군가는 미련하다며 혀를 찼지만, 마더 H는 찬열을 크게 안아주었다. 무작위로 도착하는 전파가 끊기기 전까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마더 H 최선의 위로였다.



마더 H는 우주선의 연락이 완전히 두절되었을 때 소개받은 심리 센터의 센터장이었다. 같은 경험이 있는 사람. 그 사실 하나로 커다란 위안을 주는 사람이었으며,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그 곳을 찾은 찬열에게 아직 돌아오지 못한 것 일 뿐 잃은 게 아니라는, 그 당시 가장 필요한 말을 해준 사람이기도 했다. 연락이 다시 닿기 시작한 이후로도 찬열은 자주 마더 H를 찾았다. 그 어떤 말이 필요하지 않아서 도망치는 곳이 되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상담용 의자에 기대듯 누워 잠만 자고 오는 날도 있었다. 마더 H는 그런 찬열을 묵인했고 센터에서 요구하는 상담 일지를 기각하기도 했다. 어느 날 센터를 나오다가 엿들은 대화에서, 마담 H의 일축이 찬열의 마음을 반영하는 듯 했다.



아직은 그럴 시기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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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너 만나요 만나 고래 다시



가장 최근의 메시지는 백현의 말장난을 닮아있었다. 언제 했는지도 모를 찬열의 말실수들을 적재적소에서 꺼내 살살거리면, 잔뜩 화가 나 있었어도 이내 마음이 풀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그런 백현에게 속이 없이 까분다고 말했지만, 찬열은 너무도 잘 알았다. 다정하기 때문에 그렇게 구는 것이라는 것을.


첫 만남은 별 다를 게 없었다. 사실 찬열은 기억도 흐릿했다. 그 흐린 기억을 섬세하게 살려준 건 백현이었다. 최종 8인 심사 면접 장소에서 만났다고 했다. 찬열은 17번, 백현은 9번. 백현이 면접을 무사히 거치고 나오는 길에 키가 엄청 큰 사람이랑 부딪혔는데, 그게 찬열이었다는 이야기였다. 잊기 힘든 얼굴이라 기억을 하고 있었고, 첫 인상은 무척 차갑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래서 최종 8인의 첫 합숙 훈련에서 다시 얼굴을 보자마자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한참 노렸으며, 덕분에 잔뜩 긴장을 하고 인사를 건넸는데 눈꼬리를 예쁘게 접으며 웃을 줄 몰라서 말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고. 난 잘 기억 안 나는데. 찬열이 퉁명스럽게 대답하면 우수에 찬 눈을 하고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던 백현이 순식간에 씩씩 거리며 투덜대는게 좋아서, 찬열은 자주 첫 만남 얘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찬열이 기억하는 첫 백현은 첫 인사보다는 조금 이른, 첫 합숙 아침의 모습이었다. 그 날 호텔 로비에는 묘하게 유자 냄새가 났는데, 바닷가 근처 숙소라 나는 모래 냄새, 소금 냄새를 가리려 강한 방향제를 쓴 건지 오래 맡고 있으니 머리가 좀 아프단 생각이 든 찬열은 로비로 나와 있었다. 저 멀리 안전용 펜스들을 바라보며 앞으로 있을 훈련들을 가늠하고 있던 찬열의 앞에 멈춰선 비틀에서 뛰어내린 사람이 백현이었다. 하얗고 말랑하게 생겨선 차랑 참 잘 어울리네. 덜 마른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는데 잠이 덜 깼는지 눈을 몇 번 깜빡이며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던 그 모습이 아직도 선했다. 선한 사람, 그리고 다정해 보이는 사람.


그 뒤에 합숙 훈련동안 맡은 미션은 악착같이 해내는 무서운 집요함에 한 번, 쉴 새 없이 주변을 들쑤시며 치는 장난들에 두 번, 잘못된 첫 인상인가 싶었던 찬열이었지만, 결국 틀린 것은 아니었다. 미션 과목 중 하나에서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 침울해진 동료의 기분을 풀어주는 것도, 사소한 오해로 생기는 많은 싸움들을 중재하는 것도 결국 백현이었다.



나는, 여린 네가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처음으로 백현이 찬열에게 제 마음을 꺼내어 보여준 날도, 그 다정함에 눈물이 핑 돌았다.  Chan은 항상 행복해서 좋겠어. 누군가의 힐난 섞인 말에 마음 깊숙이 상처를 받았던 그 밤, 백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다정한 말로 찬열을 위로했다.


어쩌면 그래서 백현은 찬열을 이 지구에 두고 우주로 향했는지도 몰랐다. 자신이 가진 가장 큰 다정함으로, 가장 평온한 일상을 선물하기 위해서. 찬열은 백현에게 우주에 대한 두려움을 말했던 적이 있었다. 찬열에게 우주는 양부가 준 거대한 미션에 가까웠다. 너는 내가 못 이룬 꿈을 이뤄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첫 테스트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찬열을 끌어안고 울던 사람에게 차마 그 우주가 무섭다고는 할 수 없었다. 지구에서는 그가 원하는 대로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줄 수 있지만, 우주에선. 그 광활하고 불규칙한 곳에서 잘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런 불안을 들어줄 사람은 백현 뿐이라서, 찬열은 백현의 품에 기대 자신의 두려움을 토로하곤 했다. 백현 역시 두렵지 않았을까. 찬열은 이제야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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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파는 한동안 닿지 않았다. 마치 모든 통신이 두절되었던 그 때처럼, 길고 긴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기다림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긴 시간. 그 사이에 찬열은 나이를 또 먹었고, 홀로 생일 케이크를 잘랐으며, 여전히 백현의 방을 청소했다. 어쩌면 일상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매일 모든 것이 완벽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은 디퓨저가 아예 단종되었다는 소식에 눈물을 흘렸고, 마담 H가 심리 센터를 문을 닫아서 울었다. 청소를 하다가 의미없는 행동을 해야하나 하는 우울에 사로잡혀 한달 가까이 방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상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찬열은 기다리는 것을 잘 해낼 수 있었다. 마지막 메세지가 도착하기 전까지, 찬열은 그렇게 잘 해낼 수 있었다.



마지막 메세지는 지구 근교에서 발송된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백현은 찬열에게 돌아왔다.



 -어디라고 해도, 너에게 도착.
 -사랑이니까.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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